월간복지동향 2010 2010-11-10   770

편집인의 글

남찬섭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근 학계와 정치권, 그리고 시민단체와 노동단체에서 복지국가론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창하고 있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필두로 삼차원 복지국가론, 정의로운 복지국가론이 등장하였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불과 이, 삼 년 전만 하더라도 이른 바 “줄푸세”라고 하여 큰 정부 지향성을 반대하였고 복지에 나름대로 공을 들인 참여정부를 경제를 외면한다면서 국시(國是)가 의심스럽다고까지 했던 한 보수정치인도 복지국가론을 말하고 있다.
   복지국가론이 다시 등장하고 논의되고 있는 현 상황을 보노라면 지난 민주정권 10여년 동안 복지를 둘러싸고 수많은 논란이 벌어졌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지금 등장한 복지국가론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민주정권이 추진했던 사회‧경제‧정치적 과제가 아직 그 해결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 과제를 추구해야 할 객관적 여건이 여전히 상존함을 보여준다. 이를 반영하기라도 하듯이 최근의 복지국가론들은 지난 민주정권이 말했던 생산적 복지나 참여복지의 틀을 적어도 언술의 차원에서는 뛰어넘고 있다. 지난 민주정권은 복지에 나름대로 공을 들였음에도 여전히 경제와 복지를 대비시키는 차원에 머물렀던 반면 최근의 복지국가론들은 한국 사회에서 수 십 년 동안 맹위를 떨쳐왔고 지금도 그런 경제를 복지국가라는 이름 아래 복속시키고 있다. 적어도 언술의 차원에서는 말이다.
   이것은 최근의 복지국가론들은 사회복지학자들이 말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복지에 대한 국가책임만을 의미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다시 최근의 복지국가론들이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경제‧정치적 과제에 총체적으로 대응하려는 포괄적인 비전의 또 다른 표현임을 의미한다. 이는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비전을 ‘민주화’라는 단어가 표현했고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비전을 ‘개혁’이라는 단어가 표현했던 것과 유사하다. 탈산업화, 세계화, 저출산‧고령화, 양극화라는 객관적인 조건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비전을 요구하고 있고 이것이 여러 복지국가론들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나 개혁이라는 화두가 그 나름의 독특한 본질과 개념상의 특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복지국가라는 화두 역시 그 나름의 독특한 본질과 개념상의 특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민주화는 보수세력이 그것을 자신의 구호로 삼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개념적‧원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복지국가는 민주화에 비해 보수주의자들도 그것을 자신의 명분으로 삼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보수주의자들의 명분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해서 이것이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복지국가가 성립될 수 있다거나 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사회비전이 지금 한국 사회가 당면한 객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적절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이 복지국가를 명분으로 취할 때에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노동계급의 힘과 시민사회의 힘에 의해 추동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복지국가는 사회 전반의 비전 제시와 그것의 실현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장이 될 것이다.
   민주화나 개혁이 그 나름의 개념적‧원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복지국가 역시 그러하므로 최근의 복지국가론들도 그것의 실현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는 지점에 이르면 아무래도 그것의 중요한 구성부분이 될 사회복지제도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사회복지제도는 그 범위도 좁게 해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준도 여전히 낮은 편이다. 게다가 탈산업화나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롭게 요구되는 제도들도 도입해야 하고 또한 그에 맞추어 기존의 제도들도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과제의 해결을 위해 재정제약을 획기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조세개혁을 이루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지난 10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가운데 복지예산을 보면 이런 이중 삼중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정부의 비전이 너무나 미약하다.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복지국가론들이 그리고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포괄적인 비전을 좀 더 거시적이고 대담한 차원에서 상정하고 이를 잣대로 하여 전통적인 의미의 복지제도를 개편하고 나아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방향을 설정하고 그리고 노동시장정책과 산업정책, 조세‧재정정책, 금융정책에 이르기까지 각 제도들의 상보성을 조화롭게 확보하는 기획을 완성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정치사회적 동력을 구축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노동세력 간의 연대와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하여 이루어지는 사회가 바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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