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빈곤정책 2007-08-22   1445

최저생계비, 상대적 방식으로 계측해야

[‘최저생계비 바꾸기’ 릴레이 편지 ⑤]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보내는 편지

오늘(8/22) 오전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최저생계비를 결정할 계획이다. 최저생계비는 ‘어느 한 사람이 인간적 삶을 누리기 위해 최소한으로 드는 비용’이라는 의미이지만, 한 사회의 공적부조를 결정짓는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차대한 결정이다. 최저생계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수와, 전체 사회의 사회보장 비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들,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체험을 한 대학생들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최저생계비 결정을 앞두고 최저생계비가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 하고 있는지, 최저생계비 인상을 통한 국가의 공적부조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역설하는 편지를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들에게 보내왔다.

13명의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들이 내리는 결정에 따라 160여만 명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 그리고 최저생계비보다 한 두 푼 더 벌어 기초생활보장을 못 받고 있는 차상위 극빈층이 국가의 공적부조를 받을 수 있는지도 결정이 된다. 그 마지막 순서로 윤홍식 전북대 교수가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전부에게 편지를 보냈다.<편집자>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님들께

여러 가지 사회적 재정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사회안전망의 최후의 보루를 지키기 위해 애쓰시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최저생계비를 대폭 높여 어려운 생활에 고통 받는 주위의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야 위원님들이나 위원님들의 결정을 밖에서 지켜보는 저희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심전심으로 복지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예산상의 제약이나 우리사회의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을 생각해보면 최저생계비를 높이자는데 선뜻 동의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기적으로 최저생계비 수준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에서 위원님들의 소신을 펼치기도 쉽지 않고, 무엇을 제외하고 무엇을 집어 넣어야하는지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모두 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최저생계비를 둘러싼 이러한 지리한 논란을 언제까지 반복해야하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드실 것입니다.

낮아지는 최저생계비와 확대되는 불평등, 대안은 없나?

그러나 과거를 되돌아보면 위원님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저생계비의 모습은 우리 국민들과 위원님들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러 가지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9년 처음 최저생계비를 계측했을 당시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대비 최저생계비수준은 38.2%에서 2006년도 현재 31.1%로 18.6%(7.1%포인트)나 감소했습니다. 현재와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최저생계비가 명목적 수준으로 떨어질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확대되는 불평등ㆍ양극화와 소외된 이웃

수출, 내수와 관련된 거시지표들은 우리경제의 밝은 전망을 보여주고 있고 대선주자들은 앞 다투어 장밋빛 경제전망을 내오고 있는데 우리사회 많은 분들의 삶은 더욱 더 곤궁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대되는 고용불안, 여전히 현기증 나는 집값 등은 성실히 생활해온 우리 이웃들에게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참여정부를 비롯해 역대정부에서 복지확대를 외치고 있지만 서민들이 정작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댈 곳은 기초생활보장제도 이외에는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낮아만 지는 최저생계비로 인해 기초생활보장 이외에는 기댈 곳 없는 우리 이웃들의 박탈감과 위기의식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무엇인가 결단을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엽적인 논의를 넘어 상대적 방식의 ‘수준균형방식’으로 전환을

“휴대폰을 최저생계비에 포함시키는 것이 국민정서에 부합 하는가” 등 본질을 왜곡하는 지엽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현재 최저생계비가 가구의 생계수단이 막막한 많은 이웃들의 생활을 적절히 보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지 되 물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으로 최저생계비를 높여 중산층과 빈곤층의 삶의 수준의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적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서 적어도 현재의 불평등이 확대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은 차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최저생계비 수준을 상대적 빈곤개념을 직접 적용해 중위소득의 50% 또는 40%수준에서 정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중위소득 대비 50%, 40%가 자의적이고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어 만든 최저생계비를 현상 유지하는 방법을 택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99년 측정한 최저생계비 수준이 미덥지 못하고, 지난 2004년에 측정한 기준 조차 과학적이지 않다면 지금 마련하고 있는 최저생계비 수준을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에 고정시키는 ‘수준균형방식’을 취하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07년 현재 전물량방식에 의해 측정된 4인가구의 최저생계비가 120만원이라면 이를 도시근로자 평균소득(또는 다른 기준이 되는 소득)의 몇 %인지를 정하고 그 비율로 최저생계비를 고정시키자는 것입니다.

왜 ‘수준균형방식’이어야하는가?

수준균형방식으로 최저생계비 계측을 대체했을 때 네 가지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우리사회의 실정에 근거해 만들어진 전물량방식의 최저생계비 논리에 근거함으로써 수준균형방식의 최저생계비가 비과학적이라는 논란을 피할 수 있습니다.

즉, 근거 없이 중위소득의 몇 %가 아니라 실제 생활비를 계산해 보니 어느 정도가 필요하고 이 수준을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에 대비해 보니 몇% 수준이라는 방식의 접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모든 사람들의 선호가 동일하다는 논리적 전제에 입각한 전물량방식에서 간과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선호가 실제 생활에서 반영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양과 종류의 밥과 반찬을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백 사람이 있으면 백 사람 모두가 백 가지 선호를 가지고 있는데 전물량방식으로는 이를 반영할 수 없고, 다양한 선호를 반영할 수 없는 제도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제한된 재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은 개인의 선호와 필요가 정확하게 반영된 제도이고 상대적 개념에 근거한 ‘수준균형방식’은 이러한 개별국민의 다양한 선호를 생활에서 반영해 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앞으로 최저생계비 계측과 설정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마다 되풀이되는 불필요한 논란과 공방을 피하고 한국복지가 나아가야할 보다 더 큰 논의에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힘을 모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위원님들의 일거리가 감소하는 것이 조금 염려(?)가 되지만 흔쾌히 동의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마지막이지만 가장 중요한 장점은 수준균형방식에 입각한 최저생계비가 우리 사회 전체의 소득수준에 연동됨으로써 불평등과 양극화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분들은 만약 경기가 급락해 우리 모두가 어려워지면 최저생계비가 전물량방식에 비해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십니다. 물론 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이에 대한 현실적 가능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가 직면한 현실을 빈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함께 책임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상대적 개념에 근거한 ‘수준균형방식’은 사회적 통합과 연대를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준균형방식은 모두를 위한, 소외되지 않는 복지국가를 향하는 첫 걸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가올 사회가 지식기반사회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적자본의 확충이야말로 국가의 명훈을 건 중대한 정책과제라는데 이견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더욱이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인적자본의 확대는 높은 수준에 인적자본에 근거한 생산과 함께 지식기반사회의 생산물을 소비할 높은 수준의 인적자본이 담보된 광범위한 소비층을 필요로 합니다.

즉, 인적자본 확충의 대상은 특정한 몇 몇 사람들의 문제가 아닌 전체 국민들의 과제이기 때문에 국가는 모든 국민들의 인적자본 확대를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적자본 확충의 대 전제가 불평등과 빈곤완화에 근거한 안정적 생활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수준균형방식에 입각한 최저생계비는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한 초석이 될 것임에 의심에 여지가 없습니다.

존경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님! 많은 현실적 제한들 속에서 최저생계비를 극적으로 높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는 차선의 대안을 선택해 주시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빈자와 부자의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을 용인할 요량이 아니시라면 최저생계비의 수준균형방식으로의 전환은 존경하는 위원님들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위원님들의 지금의 결정이 한국 공공부조의 큰 진전을 가져오는 역사적 결정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원합니다.

2007년 8월 22일

윤홍식 전북대 교수(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 본 편지는 프레시안(www.pressian.com)을 통해 동시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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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 (전북대 교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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