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전국민연금시대의 개막과 그 영향


불안한 전국민연금시대의 개막과 그 영향





김 연 명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1988년에 10인 이상 근로자를 대상으로 처음 실시된 국민연금은 1990년대 들어와 상당한 제도 변화를 겪었다. 1992년에 국민연금의 당연적용대상이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되었으며, 1995년에는 농어민에게 연금이 확대되었고, 1999년에는 국민연금법의 전면개정으로 동년 4월에는 도시지역주민에게까지 연금이 확대되었다. 이른바 전국민연금이 시작된 것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임금근로자를 대상으로 순조롭게 진행된 연금제도의 정착과정에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3년 말에 제정된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이다(이하 공자법). 공자법은 국민연금기금을 국가가 강제적으로 차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노동계 등 관련 당사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공자법이 제정된 이후 별다른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지 않던 국민연금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말부터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공자법의 위헌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이다.

 공자법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법원이 1997년에 헌법재판소에 공자법의 위헌제청을 함으로써 국민연금 문제는 기금운용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이 이후로 1996년과 1997년 동안에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계,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노동계가 본격적으로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물론 당시 헌법재판소가 위헌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야당과 시민단체, 노동계 등에서 국민연금제도와 기금운용 관련 공청회를 여는 등 국민연금은 본격적인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국민연금개혁과 관련하여 사회적 쟁점이 된 또 다른 계기는 정부에서 국민연금개혁 문제를 다루기 위해 1997년에 5월에 설치된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의 보고서가 제출된 1997년 12월이다. 기획단에서는 현행 소득비례연금제도를 기초연금제도와 소득비례연금제도로 이원화한 후 소득비례부분을 완전적립방식으로 바꾸자는 안을 제시하였다. 이 안은 결국 정부에서 수용하지 않았으나 1990년대 후반 이후 국민연금 논쟁의 큰 갈래를 형성한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다.

 1998년은 정부가 전국민연금 확대를 준비하면서 국민연금법 개정을 시도한 해이다. 1998년은 이미 국민연금에 대한 웬만한 쟁점이 다 드러난 시점이기 때문에 법개정을 놓고 노동계, 시민사회계, 학계 등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결국 국민연금법의 개정으로 임금대체율이 70%에서 60%로 낮아졌으며, 국민연금기금운용과 관련해서는 가입자의 기금운용 참여가 보장되고 기금운용의 투명성이 보장되는 상당히 혁신적인 법안이 만들어졌다. 적어도 기금운용과 관련해서는 정상적인 기금운용이 가능한 기반을 1998년 법개정으로 마련한 것이다.

 또 한가지 이 시점에 국민연금과 관련하여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우리나라가 IMF 관리체제를 받게 되었으며, 노사정위원회가 구성된 것이다. IMF측은 우리나라 국민연금제도의 개선을 다양한 측면에서 요구하였다. 그중 우선적인 초점을 둔 것은 공자법의 폐지이었다. 시장논리를 강조하는 세계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공자법의 존재는 관치금융의 상징이었다. 또한 거의 같은 시기에 구성된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계는 공자법의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런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공자법 폐지에 그토록 완강하게 반대하던 재경부는 결국 공자법을 수정하여 향후 몇 년간 국민연금기금의 강제예탁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1990년대 국민연금사에서 가장 의미있는 사건을 뽑으면 이른바 ‘전국민연금시대’의 개막을 들 수 있다. 1988년 임금근로자를 대상으로 처음 실시된 국민연금은 1995년에 농어촌주민 약 2백만명에게 확대 적용되었고, 20세기의 마지막해인 1999년 4월에 도시지역주민에게도 확대됨으로써 전국민연금 시대가 개막되었다. 12년 만에 전국민을 대상으로 공적 연금을 확대했다는 것은 적어도 수십년이 걸린 선진국과 비교하면 놀랄 만한 기록이다. 그러나 놀랄 만큼 단기간에 전국민연금을 적용한 것과는 달리 그 내용은 극히 좋지 않다. 우선 농어민, 도시지역자영인 등 전체 지역가입 대상자 1천 1백만명 중 소득이 있다고 신고한 사람이 536만명으로 48.7%에 불과하고, 약 52%에 달하는 554만명은 소득이 없는 것으로 신고되어 있다. 물론 52%에 달하는 사람들 중에는 학생, 실업자 등 소득이 없는 사람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나 적어도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연금에 대한 소득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지역가입자를 보면 ‘반쪽 연금’이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소득신고자 536만명 중 실제 보험료를 내고 있는 사람은 이보다 더 떨어져 대략 4백만명 정도만이 연금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적어도 지역가입자의 적용비율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리지 않는 한 전국민의 노후생활을 책임지겠다는 국민연금의 목적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으며 전국민연금시대의 의미는 퇴색될 것이다.

 전국민연금 시대의 의미가 결정적으로 퇴색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소득이 없다고 보험료 납부 예외를 신청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영세 자영자, 일용직 근로자 등 서민층에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즉, 상대적으로 직업과 소득활동이 안정되어 있는 정규직 근로자들과 보험료 부담능력이 있는 자영자층이 연금에 가입함으로써 후세대로부터의 소득이전을 받는 특혜를 누리는 반면 보호를 더 받아야 할 서민층은 오히려 혜택으로부터 배제되는 모순이 발생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이 빨리 시정되지 않으면 국민연금의 정당성은 뿌리째 흔들릴 것이다.

 1990년대에 개막된 전국민연금 시대가 우리 사회와 사회복지에 미친 영향 중 매우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자영자 소득파악 문제를 국가적 관심사로 부각시킨 점이다. 자영자의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나 도시지역 연금확대를 계기로 이 문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국가과제가 되었다. 앞으로 자영자 소득파악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면 이는 국민연금의 확대시행이 가져온 예상치 못한 ‘소득’이라 할 수 있으며 의료보험이나 기초소득보장 등 여타 사회복지제도를 발전시키는 결정적 토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1999년 4월의 국민연금 파동은 우리나라 사회복지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회보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증폭시킴으로써 사회보험 발전의 기반을 침식한 점이다. 이것은 도시지역 자영자 확대과정에서 보여준 복지부의 행정적 일관성 부족, 국세청이나 다른 국가기관의 비협조 등 국가행정 전반의 무책임이 낳은 결과이다. 국민연금 파동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나라 사회보험의 발전을 가로막는 암울한 그림자로 작용할 것이다.

 1990년대는 또 다른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가 일반 국민들의 노후생활을 위해 연금지급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1993년부터 5년 이상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60세에 도달한 사람에게 특례노령연금이 지급된 이후 1999년 1월에는 조기노령연금이 지급되어 현재 약 21만명 정도가 노령연금, 장애연금, 그리고 유족연금을 받고 있다. 2000년 7월부터는 농어촌주민이 특례노령연금을 지급되고, 연금 최저수급기간이 20년에서 10년으로 단축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연금수급자 수는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아마 5천년 역사상 공무원이나 군인 등 특수직역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국가가 노후생활을 책임지는 구체적 행동을 취한 것은 1990년대가 처음일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의 최종적 결정권을 갖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실질적인 위상을 회복하고, 제대로 된 기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 국민연금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변화이다. 1998년 말 국민연금법이 개정되기 이전 기금운용위원회는 거수기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회의도 열리지 않고 서면회의로 대치하는 극히 비민주적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국민연금법의 개정과 공자법의 폐지로 기금운용위원회는 명실상부한 연금기금운용의 최고 결정기관으로 위상을 회복했다. 특히 1999년은 기금운용위원회가 민주화된 이후 최초로 개최되었던 시기이다. 몇 차례 회의를 거친 결과 위원의 대표성과 전문성의 문제가 제기되기는 하였지만 기금운용위원회는 정부의 위원회가 사회적 대표성을 갖추고 제대로 운영될 경우 쟁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획득에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1990년대 국민연금제도의 변화, 특히 1990년대 후반의 제도변화는 도시지역연금 확대의 난맥상이 없었다면 상당히 평가받을 만한 개혁이었다. 이러한 제도의 변화를 규정한 것은 1990년대에 성장해 온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사회적 힘이었다. 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과정에서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올바른 제도개혁을 위해 입법청원, 공청회 등 수많은 활동을 벌였으며 그 결과 시민사회계의 주장이 법안에 대폭적으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1999년 4월 국민연금 파동은 국민연금의 개혁방향을 둘러싸고 시민사회계와 노동계의 이견이 표출된 해이기도 하다. 특히 자영자와 근로자의 연금기금 분리문제를 둘러싸고 노동계 내부에서 그리고 시민사회계 내부에서 좁히기 힘든 시각의 차이를 노정하고 있다. 일부 노동계에서는 현행 소득비례연금제도를 기초연금과 소득비례부분으로 이원화하자고 주장하고 있어 1997년 국민연금제도개선 기획단에서 제기된 안을 놓고 또 다른 쟁점이 형성되고 있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 국민연금이 전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복지제도로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내년에는 세계은행의 요구로 구성된 연금개혁위원회에서 국민연금과 퇴직금을 포함한 종합적인 노후소득보장제도 개선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21세기 벽두부터 국민연금은 지속적인 논란을 거듭할 것이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현재의 환경을 냉철하게 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기초연금제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수용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따라서 당분간은 제도 자체에 대한 논쟁보다는 국민연금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한 외부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과제이다. 자영자 소득파악, 납부 예외자의 체계적 관리, 사회보험 행정체계의 정비 등 사회보험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체계의 구축에 정부는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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