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0 2010-08-10   1283

[심층4]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위한 최저생계비를 위해

1인가구 체험단 우기윤



“더워지는 날씨와 상반되게 최저생계비로의 삶은 춥기만 했습니다.” 7월 한 달 1인 가정으로 삶을 표현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라고 생각하네요.


정부가 정한 1인 가구의 주거비 8만 7천원. 그 가격의 집을 찾아 모든 것을 다 포기 하고는 성북구 삼선동의 작은 산에 올랐습니다. 그곳 정상에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동네 ‘장수마을’을 만났지요.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람도 통하지 않고, 무너질 것 같은 싱크대와, 불도 들어오지 않는 공중화장실 그리고 한 사람 겨우 쭈구려 앉아 물을 뿌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의 월 15만원 짜리의 집이였습니다.


헛된 망상의 8만7천원과 차가운 현실의 15만원. 현실은 나에게 주거비 부분의 초과 지출을 만들었고, ‘건강하고 문화 적인 삶’을 살아 보겠다는 나의 다짐을 무참하게 짓밟아 버렸습니다. 6만원이 넘는 초과로 인해 내가 줄일 수 있는 것은, 의료비와 식비 였습니다.


식단은 김치찌개 하나로 4끼 식사를 해결 했으며, 한판에 2.300원의 싸구려 계란을 찾게 만들었습니다. 더운 날씨 아이스크림조차 사치라 느끼게 만들었으며, 외식은 꿈꿀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냈습니다.


친구를 만나면, 어쩔 수 없는 지출이 두려워 친구를 만날 수도 초대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응원 차 놀러온 친누나에게도 냉수 한잔 먹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성대한 대접 이였습니다.


그렇게 금전적인 환경은 외부와 소통의 단절을 안겨 주었습니다. 최저생계비 50만 4천원, 주거비 8만7천원은 소통의 단절, 즉 ‘빈곤의 섬’으로의 티켓 비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사람, 그리고 한정된 식단, 중저가로 맞춰진 그 한정된 삶에서 단 하나라도 어긋나 버리면 삶은 힘들어 저버리고 맙니다.


건강함. 나는 건강한 20대의 청년입니다. 그러기에 주거비의 한정된 공간의 탈출을 의료비에서 메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의료비가 지출이 되고 나니, 최저생계비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제 넌 아프면 않되, 네가 아플 때 사용할 비용에 대해서 더 이상 존재 하지 않아. 그러니 넌 아플 자격이 없어.” 나는 건강하기에 참을 수 있습니다. 감기가 걸려서 하루 종일 누워있어도, 환경의 변화로 복통으로 시달려도, 수많은 개미 때문에 피부트러블로 힘들어 해도 참고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인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인 분들은 어떠할까요? 나이로 인해 질병이 더 많은 분들. 하지만 아픔은 이미 죄가 되어버린 환경. 병원 문턱을 밟는 것 조차도 사치라 말 할 수밖에 없는 생활. 혹여나 그 사치를 하기 위해 큰 결심을 하더라도, 병원과는 멀기만 한 집. 어느 것 하나 국가가 정의를 내린 ‘건강한 삶’에 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생활 속에서 ‘문화적인 삶’ 그것을 상상하는 것조차 가능할까요?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 앞에서 적은양의 재료로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하고, 슈퍼를 지날 때 마다 한 없이 작아지는 나의 모습. 그렇게 충족되지 못하는 기본적 욕구들. 여유 따위 찾아 볼 수 없는 그 삶에서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문화’라는 단어. 국가는 어떠한 부분에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이라는 정의를 내린 것인지 의문점이 듭니다.


국가 측정 교양.오락비용 9.864원. 이 돈에서 ‘문화적인 삶’을 위하여 영화를 선택 한다면,


조조영화를 선택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권은 주워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영화시간은 강제적인 선택으로 해결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팝콘이나 음료에 관한 것입니다. 팝콘이나 음료에 대한 선택은 사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의 선택은 두끼 혹은 하루 식단 전체가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보이는 눈앞의 스낵부스는 나에게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한없이 작은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나의 형편의 그것을 선택 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영화가 끝날 두 시간 가량 의 목마름은 집에서 보리차를 싸가는 것으로 해결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현재 전물량 방식의 계측은 많은 부분에서 비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저 생계비가 아닌, 최저생존비 라는 것입니다. 사람답게 사는 비용이 아닌, 사람으로 살기위한 기초적 비용이라 말할 수 있는 것 이죠. 돈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갇혀버린 생활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3년만에 돌아온 실계측 기간입니다. 사람으로 살기위한 기초비용이 아닌, 국가가 정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