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6 2006-01-10   1605

새로운 접근 – 노후소득보장

1. 들어가며

노후소득보장은 소외되고 아직은 소수인 사회주변계층으로서의 ‘노인’의 문제만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대단한 사회적 폭발력을 지닌 ‘연금’문제를 핵심으로 하는 전국민적 문제이다. 나아가 현세대 뿐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포함하는 범세대적 문제이다. 네티즌 정치가 절정인 우리 나라에서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의 안티 국민연금 운동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우려어린 관심이 더욱 높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젊을수록 연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더욱 높다. 20-30대의 상당수가 납부예외자이다. 소위 연금제도 비순응자들이다. 이들은 노령은 예견된 보편적 위험이므로 개인이 알아서 노후를 준비할 테니, 국가는 더 이상 개인의 근시안적 노후 무대비를 걱정하여 온정주의에 관점에서 공적연금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광범위한 안티 국민연금 운동에 대응하는 정부의 조치들은 매우 즉자적이며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이해를 높이고 설득시키기 위해 대국민 홍보 및 설득에 엄청난 돈을 투입하고 있지만, 그 홍보내용 조차 일관성이 없다. 어떤 때에는 국민연금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재테크 수단이라며, 노테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국민연금의 높은 수익성을 자랑한다. 또 어떤 때에는 국민연금의 높은 수익성이 미래세대에게 과중한 부담을 준다면서 지속가능한 제도를 위해 국민연금의 급여를 깎고 보험료율은 높여 수익률을 낮추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한다. 상황에 따라 다른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 운영을 책임맡고 있는 정부가 근본적으로 왜 국민연금이 필요한가에 대한 정확한 철학적 이해를 갖고 있는지, 또한 달라진 인구‧사회‧경제적 여건하에서 향후에 국민연금이 어떻게 유지‧발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국가적 비전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연금개혁은 세계적 쟁점이다. 고령사회에 이미 접어든 선진국은 물론 고령사회로 급속히 진전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도 고령사회의 ‘부담’으로 대표되는 연금제도는 개혁의 대상이다. 연장되는 평균수명, 낮은 출산율은 사회적 부양구조를 매우 악화시키고 있고, 그 결과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미래세대의 부양부담은 너무 과중하여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령사회가 야기하는 과중한 부양부담과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과제에 직면하면, 해결책은 너무나 단순히 부양부담을 미래세대에 가능한한 전가하지 않는 것으로 귀착되는 것처럼 보여진다. 본인이 보험료로 낸 만큼만 연금으로 받아가는 수급-부담의 긴밀한 연계 원칙에 기반하여 보험료를 더 내고 급여를 깎는 내용만이 고령사회 연금해법인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오랫동안 연금제도를 발전시켜온 선진국과 연금제도 도입정착기를 막 지나고 있는 우리 나라는 세계회된 경제속에서 동일한 경제사회여건의 영향력하에 규정을 받는 것 같으면서도 제도적, 역사적 발전의 상이성으로 인하여 연금개혁에 있어 해결해야 하는 과제의 성격은 차이가 있다. 선진국이 오랜 제도 발전과정에서 당연시하는 전제들이 우리는 아직 정책선택 문제로 남아 있다. 때문에 현시점에서 선진국이 주력하는 문제만 보면서 따라잡기를 하게 되면, 선진국이 오랜 역사속에서 소중히 유지하고 가꿔나가고 있는 기본전제 조건을 놓치기 쉽다. 예컨대 공적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적용의 보편적 포괄성이 그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그 제도형태나 내용은 상이하더라도 국가가 노후소득보장, 특히 노후 기초소득보장에 대해서는 분명한 책임을 지고 있고, 여기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없도록 하고 있다. 소득계층이 높은 사람들 중 국가보장이 필요 없는 사람들의 자발적 배제가 있을지언정 타의적 배제는 발생하지 않도록 포괄성 원칙을 견지한다. 더욱이 최근의 연금개혁에서도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개혁과 함께 중요한 강조점을 두는 개혁내용이 기초보장의 강화이다. 혹시나 기초보장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없도록 여러 층의 안전망을 마련하고 안전조치를 강구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연금은 어떠한가. 당연적용에서 제외되는 비경제활동자 혹은 불안정경제활동자 등의 구조적 배제, 임시,일용직,시간제 등 비정규근로자의 관리운영상 배제, 제도불신, 납부기피 등에 의한 자발적 배제 등으로 국민연금 가입대상 연령의 50% 이상이 국민연금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반쪽 연금을 가지고 아무리 고령사회에 대비하여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개선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반쪽 연금에 불과한 것이고, 반쪽 국민을 위한 것이다. 소외된 반쪽의 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반쪽 국민을 위한 정부이냐 하는 질문이 안 나올 수 없다. 국민연금을 통해 아무리 세대간 재분배와 새대내 재분배가 아름답게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국민연금의 열차를 운좋게 탄 사람들의 이야기며, 국민연금 열차를 타지도 못한 국민들에게는 더욱 분통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국민연금 열차를 타지 못해 세대내 및 세대간 재분배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불안정 경제활동을 지속해 온 비교적 상황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서 다시금 우리 정부가 고령사회를 맞이하는 이 시점의 우리 사회에서 국민연금이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 질문에 답하는 진지한 자세로 국민연금을 다루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비단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성숙한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거듭나려는 시점에서, 국민연금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하도록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인 연금개혁을 단순히 정부가 우리의 기득권을 침해한다, 정부가 약속을 안 지킨다, 정부를 못 믿겠으니 국민연금 하지 말자 등의 개인의 이해득실 계산으로 환원되는 외침이 아니라, 권리와 책임을 함께 하는 성숙한 시민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 공동체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국민연금을 어떠한 원칙하에 재설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준비되고 정리될 필요가 있다.

2. 노후소득보장과 국가의 역할

국민연금 폐지론이 만만챦게 제기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과연 정말 필요한 필수적인 제도인가 하는 질문에 우리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국민연금의 존재 의의, 즉 국민연금이 어떠한 역할, 어떠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를 기대받고 있는가로부터 찾아져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노후소득보장에 있어 굳이 국가가 나서서 국민연금을 운영해야 하는 필수적인 이유가 있는가를 분명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공적연금은 노후소득상실의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여 사회연대에 기반하여 소득을 재분배하는 주요 정책수단이다. 공적연금에는 네가지의 소득재분배 원칙이 작용하는데, 그 첫째는 한 개인의 생애 이시점간의 불균등한 소득을 균등하게 재배분하는 것이다. 두 번째 소득재분배는 개인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노령이라는 불확실한 크기(노령기간)의 사고위험을 분산하는 보험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즉 개인의 수명에 따라 상이한 노령기간, 불확실한 장수 위험을 보험원리에 입각하여 보험가입자들이 분산하여 담당해주는 것이다. 세 번째 소득재분배는 소득이 높은 개인으로부터 소득이 낮은 개인으로 소득이 재분배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득계층간 소득재분배는 공적연금에서만 보여지는 특징이지만, 모든 공적연금에서 소득계층간 소득재분배가 필수적 요건은 아니다. 네 번째 소득재분배는 공적연금제도의 고유한 역사성과 연관된 것으로서, 가족 단위에서 자녀가 부모를 사적으로 부양하던 것에서 사회적 단위에서 근로세대가 노령세대를 부양하는 사회적 부양메카니즘으로 출현하게 된 공적연금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세대간 재분배이다. 근로세대가 노령세대를 부양함으로써 발생하는 세대간 재분배이다. 현재의 연금위기는 인구고령화로 이와 같은 세대간부양의 균형이 깨질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소하는 근로세대가 증가하는 노령세대를 부양하려다 보니 엄청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대간재분배 역시 사적연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공적연금의 고유한 특징이지만, 세대내 소득계층별 재분배와 마찬가지로 세대간 재분배도 공적연금의 필수적 요건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와 네 번째인 세대내 소득계층간 재분배와 세대간 재분배는 공적연금만의 독특한 요소일 뿐 아니라, 최근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공적연금 및 사적연금의 역할분담 변화,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와 시장의 역할분담 변화, 복지혼합의 지형 변화로 일컬어지는 논의의 핵심에 놓여있다. 사회연대에 입각한 세대내 소득재분배와 세대간 소득재분배가 공적연금이 현재의 위기속에서도 여전히 중요하게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인가 하는 점,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면 세대내 소득계층간 재분배 및 세대간 재분배는 어느 정도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과연 적정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만약 강제적(의무적) 가입이라는 국가규제만으로 사적연금도 갖출 수 있는 생애 이시점간 불균등한 소득 재배분의 강제화, 그리고 보험적 성격에 입각한 장수위험의 분산(이 조차도 선택적일 수 있지만) 등 첫 번째 및 두 번째 소득재분배만이 필요하다면, 굳이 공적연금의 형태를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국가만이 담당할 수 있는 사회구성원의 연대의식에 입각한 고유한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금개혁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쟁점은, 과연 국가가 공적연금이라는 재분배 수단을 활용하여 공적연금만의 고유한 사회연대에 입각한 소득계층간 재분배 및 세대간 재분배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가, 민간연금도 수행할 수 있는 생애 이시점간의 소득재분배 및 장수위험의 분산을 국가가 강제화, 의무화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노후소득보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 라는 쟁점으로 정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 연금개혁을 둘러싼 논의는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가 규제자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해도 좋은지, 아니면 국가가 여전히 사회연대에 입각한 재분배 집행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한다면 어떤 기준에서 얼마만큼 수행해야 하는지 등의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재규정하는 작업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선진국 연금개혁을 깊이 관찰하면 찾아질 수 있다. 선진국 연금개혁의 핵심은 한마디로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가 필수적으로 직접 책임지고 챙겨야 하는 부분과 제 2선에서 감독자, 규제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해도 되는 부분을 분명히 구분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이것이 공적보장과 사적보장의 역할 재편으로 나타나고, 관점에 따라 국가역할의 축소와 시장의 강화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복지국가 황금기에 과대하게 커진 노후소득보장에서의 국가의 역할을 이용가능 자원이 제약되는 고령사회를 맞이하여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가 수행해야 하는 필수적 역할과 부차적 역할로 구분하는 과정이 바로 연금개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선진국의 연금개혁을 통한 공적보장과 사적보장간의 역할분담 변화의 핵심은 공적보장의 기초보장적(basic security) 성격은 강화하는 한편, 기본욕구 이상의 부분에 대해서는 사적보장의 유연한 대응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직접적 책임이 노인의 빈곤방지에 목적을 둔 기초보장에 있음을 명확히 하되, 적정소득대체에 목적을 둔 기업연금 및 개인연금에 대한 국가의 감독과 규제, 보증의 역할을 강화하는 등 공적보장에서의 국가역할 축소가 사적보장에서의 국가의 여건조성자(enabler)로서의 역할로 대체되는 국가역할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선진국 연금개혁의 핵심은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의 필수적인 역할을 중심으로 재편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현행 연금위기에 직면하여서도 공적연금의 고유한 사회연대에 입각한 재분배를 여전히 유지하고 중요시 할 뿐 아니라, 사회연대적 재분배의 가장 기본전제 조건인 모든 국민이 혜택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특히 취약계층이 배제되지 않도록 노인 기초소득보장 강화를 위한 여러 정책적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이용가능한 자원이 제약되는 고령사회를 맞이하여 국가가 노후소득보장에서 담당해야 하는 역할의 우선순위를 점검하고, 이에 근거하여 국민연금 개혁방안을 설정하여야 할 것이다.

3. 노후소득보장,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노후소득보장에 있어 안정적 노후생활보장과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일견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는 두가지 과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찾아야 하는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안정적 노후생활보장과 지속가능성이라는 과제에 대해 별도로 각각의 해법을 찾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될 수 없다. 이 두과제를 동시에 풀수 있는 하나의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각각의 해법을 별도로 모색하는 것은 또 다시 상호 모순적인 해법을 대립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하나의 조화로운 해법 속에 이 두과제의 해법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해법은 사회변화의 방향성에 따른 ‘조응’이라는 관점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의 본질이 사회변동의 산물인 것처럼, 사회보장제도인 연금제도도 변화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자연순응의 원칙을 상기해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고령사회, 경제의 세계화 및 노동시장 유연화, 가족구조의 변화로 요약되는 변화된 사회여건¹에 조응하는 우리의 노후소득보장 재구축에서의 원칙과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먼저 변화하는 사회여건속에서 원칙들을 정리해 보면, 크게 세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하나는 고령사회 및 저성장 경제하에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노동시장 유연화로 갹출에 입각한 사회보험 방식에 의한 보장방식이 보편적 보장방식으로서의 한계를 가짐으로 보다 보편적인 보장이 가능한 방법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가족구조 변화로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 입각한 가족단위 보장에서 개별단위 보장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칙하에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해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의 역할을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노후소득보장에서 어떠한 역할을 얼마만큼 해야 하는가. 국가는 사회연대적으로 노령 위험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수준, 빈곤방지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국가의 강점은 보편적인 대상에 대해 표준화된 급여를 보장하는데 있다. 다양한 개별 욕구의 충족에는 적합하지 않다. 노동시장 유연화, 가족구조의 변화 등 여건이 변화된만큼 모든 국민들에게 어떻게 노령의 소득상실 위험으로부터 구해 줄 수 있을 것인가의 방법론은 베버리지 사회보장 구상과는 분명히 달리 검토되어야 하지만, 국가가 반드시 보편적인 국민에 대한 일정정도의 소득보장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것은 베버리지 사회보장 구상 당시와 마찬가지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정책과제이다. 이는 연금의 사각지대 문제를 단순히 저소득층 노령계층의 소득보장문제 정도로 접근할 수 없다는 의미를 갖는다. 연금은 세대간 재분배 기제이고, 재분배는 형평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국민연금제도의 선별성으로 인하여 국가차원에서 강제되는 세대간 재분배 혜택에 동참하지 못하는 다수의 국민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해명되기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국가가 집중해야 하는 일은 보편적 대상에게 얇게 나마 노령 기초소득보장의 안전망을 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사회연대적 역할을 수행하는 노후소득보장에서의 국가의 역할과 관련해서, 공적연금의 재분배 혜택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국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보장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 개혁시에 ‘보편적 개별보장의 원칙’이 견지되어야 한다. 공적 자원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의 ‘기본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득자 중심의 사회보장체계와 남성가장부양모델의 한계가 분명해진 만큼, 조세방식에 의한 1인 1연금체계를 만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연금제도를 다층화하여 하나의 층이 표적으로 하는 정책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 연금의 지속가능성 확보 측면에서나 연금을 통한 안정적 노후생활보장의 측면에서나 바람직하다. 현행 국민연금은 하나의 연금제도 내에 여러 가지 목표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사회연대적인 부분(균등부분)과 저축적인 성격(소득비례부분)이 혼재되어 있어, 변화하는 여건에 유연하게 제도를 적응해 나가기가 어렵다. 최근 연금개혁 동향에서 거론되는 표적화(targeting)는 공공부조 방식의 선별주의적 접근과는 구분되며, 연금체계내에서 다층화를 통한 목표효율성 제고를 의미한다. 연금운영 체계에 있어, 얼핏 공적연금의 축소와 사적연금 비중의 강화, 확정급여방식에서 확정갹출방식으로의 이전 등의 변화로 관찰되지만, 사적연금 비중의 강화가 국가책임의 단순한 축소라기 보다는 국가역할의 재편이며, 확정갹출방식으로의 이행이 수급자에 대한 보장위험의 단순한 전가라기 보다는 저소득층, 여성, 비정규직근로자 등 연금혜택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된 계층을 배려하는 보다 복잡한 재편논리와 국민들에게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측면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선진국 연금개혁에서는 국가가 사회연대에 입각한 분배 역할을 여전히 중요하게 수행하고 있으며, 다만 국가개입에 의한 분배의 역할 및 정도에 따라 다층화함으로써 공적보장과 사적보장의 역할분담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의 연금제도도 다층화하여 국가 중심으로 사회연대적 재분배를 수행하는 1층, 역시 국가 중심으로 안정적 소득보장을 위한 소득비례부분의 2층, 기업 및 개인 중심으로 부가적 소득보장을 위한 기업연금 및 개인연금 등의 3층으로 다층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공적연금을 통하여 보장되는 1층 연금수준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1층의 기초연금 급여수준이 적어도 최저생계비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개진되어 왔다. 그러나 공적 책임하에 1층, 2층을 통하여 기초보장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할 뿐 공적연금의 1층 부분을 통하여 최저생활수준을 모두 충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의 예에서도 경험적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철학적으로 연금은 세대간 부양을 사회제도화한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인구고령화가 문제가 되는 것도 세대간 부양구조의 악화 때문이다. 따라서 연금급여 수준은, 특히 본인이 낸 만큼 받아가는 부분이외에 세대간 부양을 전제로 하는 1층의 연금급여 수준은 세대간 부양구조에 연동하여 세대간에 적정한 자원배분의 관점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여타 소득원이 전혀 없어 공적연금 기초보장 급여수준만으로 생활해야 하는 노인들은 빈곤선 이하에 놓이게 되겠지만, 이 경우에는 0층이라 할 수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충급여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것이다. 즉, 대다수의 노령계층은 1층 및 2층, 혹은 3층을 통하여 기초보장 이상의 안정적 노후생활을 영위하며, 1층 연금을 수급하고도 빈곤한 노령계층은 0층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를 통해 기초보장 수준의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다섯째, 1층 연금의 기능은 반드시 현행 국민연금의 균등부분을 분리하여 수행해야 할까. 현행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해소 능력의 한계는 이미 드러나 있는 상황에서, 사각지대 해소 대책으로 공적연금 성숙기까지 임시적인 보완제도로서 운영되는 경로연금을 영구적인 공적연금 보완제도로 자리매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경로연금은 현재 65세 이상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노인과 72세 이상 차상위 노인에게 3-5만원 수준으로 지급되고 있다. 선별적인 경로연금을 통해 저소득층 노령계층에게 5-10만원 가량을 보장함으로써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법 역시 지속가능성 해법과 사각지대 해법을 별도로 모색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주장이다. 경로연금의 확대를 통해 저소득층 노령계층에게 아주 작은 소득이전은 이루어지겠지만, 공적연금 참여자들이 사회연대에 입각한 재분배라는 보편적 재분배 원칙하에 받는 반면, 경로연금 대상자는 선별적인 자산조사를 통해 지급대상이 선정된다는 점에서 차별이 있다. 더욱 심각한 오해는 현행 연금제도의 모수적 개혁을 하면 지속가능성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이다. 5년마다 재정계산을 통해서 계속 모수적 개혁을 해나가겠다는 구상인데, 연금개혁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를 고려하지 않는 발상이라 생각된다.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근본적 해결책은 지속가능성 목표하에 연금체계를 유연하게 적응시켜 나갈 수있는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여섯째, 세대간 부양을 가시화한 기초연금 및 다층화체계 대안의 평가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문제는 세대간 부양구조의 악화로 기초연금에 막대하게 소요되는 재원을 어떻게 재원조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기초연금은 조세로 재원조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현행 조세규모를 고려할 때 조세구조의 혁신적 변화가 있지 않고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세로 조달한다면 어떠한 세원으로 조달할 것인가도 쟁점이다. 흔히 소득세는 누진적이고 부가가치세는 역진적이라고 이해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그러하지만, 연금의 경우 노인이 다수가 되고 노인이 소비주체가 되는 고령사회에서 부가가치세로 재원의 일부를 구성하게 한다면, 노인도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면서 근로연령계층의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재원조달에 대해서는 보다 전향적이고 유연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은 연금체계를 다층화하며 1층 연금을 만들었기 때문에 드는 돈이 아니라 고령사회 대비 필수적 사회적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규모의 지출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각지대에 놓여진 궁핍한 노인들 집단을 방치한 채 고령사회를 이끌어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일곱째, 연금개혁의 시점이 가능한 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미래세대 과중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개혁의 시점이 앞당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지속가능성(재정안정화)과 안정적 노후생활보장(사각지대 해소)의 과제는 별개의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며, 이 두과제를 모두 같이 해결할 수 있는 통합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 지속가능성을 앞세운 재정안정화를 위한 모수적 개혁안과 사각지대 해법으로 부각되는 기초연금 등 구조적 개혁안이 대립하면서, 선 재정안정 후 구조개혁을 연금개혁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두 과제의 해법이 모순적이라는 잘못된 문제진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우리 나라와 같이 반쪽 연금을 가진 상황에서 구조적 연금개혁 이외의 대안은 변화된 여건에 조응할 수 있는 해법이 아니다. 현행 연금체계의 사각지대 해소능력의 한계가 자명한 가운에, 이 체계를 고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현 연금구조의 유지냐 아니면 구조개혁이냐로 모아져야 한다. 흔히 구조개혁은 사각지대 문제의 해법이지만, 지속가능성과는 관계 없는 대안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그러나 연금구조의 개혁은 지속가능성의 필수요건이다. 다층연금체계는 모든 국제기구에서 권고하고 있듯이 그 자체가 변화하는 여건에 유연하고 효율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고안된 고령사회 지속가능형 연금체계이다. 따라서 빨리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고, 연금개혁은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하는 어려운 정치적 과정을 필요로 하므로 처음에 개혁필요성과 개혁방향을 정확히 설명하고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4. 정리하며

선진국의 경험에서 보듯이 연금개혁은 하나의 사회보장제도를 재정비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한 국가의 여러 세대에 걸쳐 경제사회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이로 인해 연금문제를 다루다가 정권이 바뀐 예도 많고, 그만큼 정치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연금개혁의 초점은 기존의 혜택을 축소하고 부담을 강화하는 지독히 인기없는 내용이 그 주축이기 때문에 정권들은 웬만한 사명감을 갖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용기있게 다루려 하지 않는다.

고령사회 대비한 노후소득보장체계의 재구축, 그 핵심에 놓여있는 공적연금 개혁은 현재 우리 나라에서도 뜨거운 감자이다. 정부와 야당에서 각각 다른 연금개혁안을 제안하며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며, 정부의 모수적 개혁안은 3년째 표류하고 있다. 또한 연금개혁 관련 전문가 논의도 대안의 표면적 선호, 비선호에 따라 대립선이 이루어지면서, 대안이 담고 있는 철학과 논리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매우 부족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본 고에서는 간략하나마 노후소득보장의 주축인 연금개혁의 근저에 놓여진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본 논고가 연금개혁을 둘러싼 보다 생산적인 논의의 전개와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주석>

1)현행 연금체계는 다수의 생산인구가 소수의 노인을 부양하는 안정적 인구구조, 여성은 아동양육과 가사를 담당하고 남편은 가족을 부양하는 남성부양자(male-breadwinner)로 구성된 성별분업에 입각한 가족단위 부양구조, 안정적 근로소득이 가능한 상시근로자 중심의 고용형태, 안정적인 경제성장 체제를 전제로 하여 설계되었다

석재은 /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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