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06-03   5665

[기획1] 생계급여,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생계급여·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부양의무자 기준이란,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한 수준에 미달하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이어야 한다는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요건을 말한다. 여기서 부양의무자란 같은 가구에 속하지 않은 1촌 이내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를 말한다. 따라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핵심은 다른 가구에 속한 사람의 재산과 소득을 기준으로 수급자격을 따지고,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한 규모 이상인 경우 해당 재산과 소득을 같이 향유할 잠재적 가능성이 없을 것을 요건으로 한다는 점에 있다. 수급자는 본인의 재산과 소득뿐만 아니라, 같은 가구에 속하지 않은 부양의무자와 그 가구원의 재산과 소득의 규모, 그리고 그러한 재산과 소득을 같이 향유할 잠재적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수급 진입단계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그러나 같은 가구에 속하지 않은 사람과 그 가구원의 소득과 재산은 자신의 지배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항이므로 이를 급여의 요건으로 삼는 것은 본질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당장 생계가 급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최저생활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기초생활보장급여의 성격과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일수록 증명책임을 부담시키는 것만으로도 사실상 권리행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사각지대의 주범, 부양의무자 기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폭넓은 사각지대가 존재하여 비수급 빈곤층을 양산하고 있고, 부양의무자 기준이 그러한 사각지대의 주범이라는 데에 시민사회, 학계와 정부 내에 별다른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 역시 한국의 규약 이행현황을 심의한 결과를 발표한 2017년 10월 9일자 최종견해에서 “위원회는 일부 사회보장 급여에 대한 자격 기준으로 부양의무자의 적용을 점차적으로 폐지하려는 당사국의 의도에 주목하며, 이와 동시에 현재 부양의무자 기준이 사회보장혜택을 필요로 하는 개인과 가정에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을 우려한다”고 하며 “위원회는 사회 보장 급여의 적격성 기준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하여 필요한 사람들이 실제로 사회 보장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1) 

2019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1년 동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수급하기 위해서 신청한 경험이 있는 가구 중 급여별로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한 가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결과, 먼저 생계급여는 ‘부양의무자의 소득 및 재산이 기준보다 많아서 탈락했다’고 응답한 경우가 49.39%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소득이 기준보다 많다’고 응답한 가구가 29.39%로 그 뒤를 이었다. 의료급여와 주거급여 탈락 사유의 비중 또한 생계급여와 같은 순서로 나타났는데, 의료급여는 ‘부양의무자의 소득 및 재산이 기준보다 많아서’가 51.10%, ‘소득이 기준보다 많아서’가 26.99%였으며, 주거급여는 ‘부양의무자의 소득 및 재산이 기준보다 많아서’가 41.32%, ‘소득이 기준보다 많아서’가 32.86% 순으로 나타났다. 한편 2017년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 및 평가연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기준중위소득 40% 이하 가구 중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은 약 93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요약하면, 문제와 원인에 대한 진단은 이미 나와 있다. 원인을 파악하면 제거하거나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다음 순서이다. 그러나 그동안 이루어진 조치들은 부양의무자 기준이라는 커다란 장벽에 드문드문 개구멍을 내고 알아서 찾아가라는 정도의 방안에 불과했다. 2019년 11월 1일부터 수급가구와 부양의무자가구 모두에 노인 또는 중증장애인이 포함된 경우에 한해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있고, 2020년부터 수급자 가구에 중증장애인이 있는 경우 생계급여에 한해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이 필요한 비수급 빈곤층 중 일부를 매우 제한적인 인구학적 특성을 기준으로 꼭 집어서 뽑아내는 핀셋식 처방으로는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수급자가구가 아닌 부양의무자가구의 인구학적 특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기초생활보장급여를 필요로 하는 가구가 아닌 그 부양의무자가구를 기준으로 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의 본질적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한계가 있다. 2018년 10월부터 주거급여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 것이 그나마 한 걸음 나아간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도 필요한 가구에 주거급여만을 제공하는 것은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종착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현 정부의 공약사항이다.2) 현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 7월에 발표된 제1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은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를 주요 과제로 명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2019년 4월 16일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을 담겠다고 발표하였으며 이후에도 재확인한 바 있다.3) 그러나 현 정부가 지금까지 단행한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조치들은 그 한계가 분명하다.   

임기 중반부를 훌쩍 넘어선 현재까지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구체적 계획이 마련되지 않았다. 올해 7월 말 의결될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담긴다지만, 정부는 벌써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해 유보적인 듯한 태도를 보여 공약파기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4) 2020년부터 중증장애인이 수급자인 경우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 않지만, 의료급여에 대해서는 제외하고 있어 계획이 구체화되고도 전에 우려가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부양의무자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의료비를 지원받을 가능성은 더욱 낮다.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라는 말이 방증하듯, 건강보험료를 체납하거나 체납하지 않더라도 아파도 진료 받지 못하는 의료급여 사각지대야말로 긴급하게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로 외면되어서는 안 된다.5)

주거급여 현실화

2018년 기준 기준 임대료는 주거급여 수급자 중 민간임차가구의 실제 임차료의 83%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민간임차가구 중 실제 임차료가 기준 임대료를 초과하는 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는 57.9%에 달하여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임차가구 중 민간임대 거주가구의 18.3%가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곳에서 살고 있어 주거급여를 받고도 열악한 주거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6) 특히 1급지에 해당하는 서울지역의 경우 2015년 기준임대료 최초 산정 당시 “지역별 형평성을 고려하여” 기준 임대료가 당초 산정값의 80%로 조정되어 수급가구가 부담하는 실제 임차료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7)

현실적이지 않은 기준임대료

2017년 의결된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은 수급가구의 실제 임차료 부담수준 등을 고려하여 2022년까지 기준임대료를 단계적으로 현실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2020년까지 인상 필요분의 50%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담고 있지만 그 이후 현실화 계획에 관한 구체적 내용이 없어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의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기준임대료 현실화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목표치 역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와 상당한 격차가 있음이 지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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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가구가 부담하는 실제 임차료와의 격차 규모에 관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주거급여의 기준이 되는 기준 임대료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정부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계적 현실화’ 방안은 그 자체로 정당화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 주거급여가 최저주거기준 주거의 실제 임차료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생계급여를 주거비로 지출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최저생활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거급여는 ‘단계적’이 아닌 지금 당장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

 

1)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Concluding observations on the fourth periodic report of the Republic of Korea, E/C.12/KOR/CO/4

2) 뉴스팟, ‘문재인,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 2017. 3. 22. (m.todaysn.com/12182, 2020. 5. 24. 접속)

3) 한겨레, 박능후,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하겠다”, 2019. 4. 16.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0283.html#csidx7ab60cdb629a9828b267d2aefba9e3b, 2020. 5. 24. 접속), 서울신문, “기초 생활 부양의무자 2022년까지 완전 폐지”, 2019. 11. 7.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1108001038#csidx49150566d37898096de9f81c2d96dd3, 2020. 5. 24. 접속)

4) [공동성명] 박능후 장관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 파기할 셈인가?!, 2019. 10. 23. (https://www.peoplepower21.org/Welfare/1662988, 2020. 5. 24. 접속)

5) 의약뉴스, 김상희 의원 “생계형 장기체납자 의료사각지대에”, 2019. 10. 14. (http://www.newsmp.com/news/articleView.html?idxno=196076, 2020. 5. 24. 접속)

6) 이길제, 생애주기별 저소득층 주거실태와 주거급여,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20주년 기념 ‘기초생활보장 제도 발전방안’ 심포지엄,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 

7) 박은철, 주거급여 개편의 쟁점과 합리적 운영방안, 2014. 10., 부동산 포커스, 31면. 제1차 기조생활보장 종합계획,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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