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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20
  • 2020.04.01
  • 524

‘사회적 거리두기’와 ‘잠시 멈춤’이 비껴간 공간들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설령 시의성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지금-여기의 말과 글에서 코로나19를 배제하기란 여간해선 어렵다. 누구나의 머릿속에 일정 비율로 자리잡고 있는 감염병에 대한 우려와 공포는 ‘마스크’라는 하나의 주제로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진풍경을 만들어 낸다. 약국마다 기다랗게 늘어선 줄 사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시비들,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은 마스크를 대량 구매할 수 있는, 혹은 당분간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일상을 해 나갈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간의 격차, 누군가는 코로나 초기에 마스크로 150억 원을 벌었다더라, 6월이면 마스크 공급과잉이 올 거라더라 등등의 무성한 소문과 추측들까지. 마스크 하나만으로도 이럴진대 다른 것들이야 오죽할까. 필자가 사회적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입을 뗄 수 없는 건, 웬만해선 판단을 미루고 또 미루는 성격 탓도 있지만 WHO의 판데믹 선언, 쇼크 독트린 현상(Shock doctrine.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이 명명한 개념으로, 재난이나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가 우왕좌왕하는 대중을 선동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전략을 의미함.)과 같이 눈알이 휙휙 돌아가는 낯선 자극들 뒤에 가려진 중요한 것들을 혹시나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

 

대구의 중증장애인들은 왜 서울로 갔나

이를테면 이런 거다. 얼마 전 대구의 한 장애인 재활시설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중증장애인들이 서울의 시립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고혈압, 당뇨 등 기저질환이 있어 위험했던 이들은 서울의료원으로 보내져, 서울 지역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파견하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의료지원과 생활지원을 모두 받게 될 것이었다. 이런 일이 기사화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단기간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확진자로 인해 자원이 부족한 대구의 사정도 있겠고, 평소 장애가 있는 환자를 케어한 경험이 많은 서울 공공의료원의 긍정적 특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정치적 지향이 서로 다른 대도시 지자체장들의 상호협조적인 모습을 부각하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명백한 이유는 ‘시스템의 부재’다. 대구 정도의 대도시에서조차 장애인, 만성질환자 등 감염취약계층에 대한 감염병 대응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특수한 사례’로 소개될 수 있었으리라. 청도 대남병원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강행했다가 철회한 ‘코호트 격리’도 이를 방증한다. 

 

메르스 이후는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는? 

사실 이 같은 상황은 과거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이미 예견되었다. 2015년 국내에서만 38명의 사망자를 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코로나19와 자주 비견되곤 한다. 메르스 당시 감염병 위기관리 대응지침으로 피해를 본 장애인들은 2016년 국가를 상대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 및 시행’,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작성 및 운영’ 등을 요구하며 장애인 차별구제 소송을 제기하였다. 장애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감염병 대응지침을 집행한 정부로 인해 장애인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계속해서 조정이 결렬되자, 정부가 2017년 발표한 ‘장애인 안전 종합대책’에 장애인 등 감염취약계층의 특수성을 고려한 감염관리 인프라 개선, 감염취약계층 대책 중 인센티브 확대 및 인식개선 캠페인, 감염병 표준매뉴얼에 감염취약계층 관련 사항 구체적 명시 등을 반영하라는 강제조정안을 제시하였지만 복지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약속’에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행정부의 입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이미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 메르스 등 여러 차례 감염병 사태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시스템 마련에 소극적인 모습이 최근의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위 소송은 5년 째 계속 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잠시 멈춤’이 불가능한 사람들

‘뇌병변장애인 A씨는 입원해있던 병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자가격리대상 통보를 받았는데, 격리 중에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어 지옥 같은 14일을 홀로 버텨야 했다. 지체장애인 B씨는 통원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병원에서의 바이러스 감염 우려 때문에 활동지원인력이 끊겨 결국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메르스 당시 알려졌던 일들이지만 요즘 나오는 기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정부에서 감염병 예방수칙을 아무리 홍보해도 스스로 손을 씻기는커녕 화장실에 갈 수도 없고, 마스크와 소독약이 있어도 사용할 수가 없다. 자가격리 지침은 대상과 의무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대상자의 특수성과 불편함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일부 발달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 경우는 감염질환이나 자가격리의 의미, 상황의 심각성 등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지만 지침이나 매뉴얼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어느 장애인권단체 활동가의 말처럼, “몸을 부대끼며 서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 ‘잠시 멈춤’ 캠페인만으로 안도하기란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다. 

 

재난과 질병은 공평한 얼굴로 오지 않는다

코로나19 대응 모범국가로 불리는 대만은 사스 이후 다방면에서 법률과 제도를 개혁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령, ‘위생서조직법’을 개정하여 감염병 확산 시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취약계층, 집단시설, 요양원 등의 관리를 체계화한다든지, ‘질병관리국조직법’을 개정하여 감염병 확산 기간에 정부 외에도 민간 전문가 인력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개인적으로는 홍콩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제작해 놓은 ‘장애인거주시설 내 전염병 예방 가이드라인’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 가난하고 힘든 이들에게 재난과 질병은 결코 공평한 얼굴로 오지 않기에 빈틈을 메울 법과 정책이 긴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또 아니다. 

 

예컨대 사회서비스원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민관이 협력하는 모델과 같은 감염취약계층 생활지원 인프라 및 전달체계 구축, 감염취약계층을 비롯해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등 생활지원 인력에 대한 감염병 예방·대응교육 의무화, 비상상황 발생 시 공공의료체계 전환 및 장기적인 공공의료병원 확충, 감염병 발생 시 생활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비상계획 수립 및 가이드 제작·배포, 감염취약계층 및 생활지원 인력에 대한 물품 우선 지원, 감염병 확진 시 감염자 특성을 고려한 이송 및 우선 입원·입소 조치, 감염병 상황 종식 후 일상회복지원 정도는 사실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포스트-코로나는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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