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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위원회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의 복지를 만들어갑니다

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20
  • 2020.04.01
  • 623

혐오가 아닌 관용으로 실질적 자유를 누리를 사회

 

김아래미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혐오가 지배하는 사회를 원하는가?

한국사회 전반에 혐오가 만연하다. 일반적으로 혐오는 소수자 또는 나와 신념이 다른 사람들에게 행해져 왔으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혐오는 특정 대상에게만 발생하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혐오표현들을 되짚어 보면 혐오가 한국사회에 얼마나 만연한지를 알 수 있다. 어린이, 청소년, 아저씨, 아줌마, 노인, 여성, 남성, 외국인, 성소수자, 장애인 등에 대한 혐오표현1)을 보면, 이 사회에서 혐오대상이 아닌 사람은 없다. 이 사회의 모두는 특별한 개인적 잘못 없이 누군가로부터 극도의 미움을 받는다. 특정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혐오를 당하는 것이므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를 해결할 방도 역시 거의 없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64.2%가 혐오표현을 경험하였고, 20대는 80.7%가 혐오표현을 경험하였다. 제한 없는 표현의 자유를 통해 혐오가 자유롭게 표현됨으로써 우리는 모두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회를 만들어냈다. 누군가 나를 혐오하는 사회가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사회인가? 혐오를 표현해서 자유는 신장되었는가? 오히려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말과 행동에 대한 자기검열이 심해지지는 않았는가? 누군가 나를 혐오한다는 것이 억울하지는 않은가? 앞서 언급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들의 87.3%는 혐오표현에 공감하지 못했고, 약 50%는 위축감과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73.4%는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이나 장소를 피했고, 52.5%는 자유로운 표현이 위축된다고 보고하였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퍼져나간 혐오는 결국 우리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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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을 통해 실질적 자유를 주는 사회를 원한다

우리는 어떠한 사회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천부적 존엄성을 가진 인간은 개별적 특징을 가진다. 인간은 동일해질 수 없고 무한히 다양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인정받으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민주주의라는 사회체제를 만들어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나와 다른 배경이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용인하는 관용이 강조된다. 관용은 타인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자유를 제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존중함으로써 타인이 나를 존중하게 만들고, 이는 결국 나의 자유를 신장시킨다. 혐오표현의 자유는 혐오표현 외 모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창의와 혁신을 막지만, 관용은 혐오표현 외 많은 모든 표현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고 창의와 혁신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킨다. 관용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으면서 실질적 자유를 누리고, 다양성을 통해 사회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내가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발전가능성이 있는 관용 사회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닌가?

  

관용은 무엇인가?

관용이란 프랑스의 똘레랑스(tolérance)를 번역한 용어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에 대한 용인이나 너그러움을 의미한다. 프랑스에서 강조하는 핵심가치인 똘레랑스는 사실 관용의 사전적 의미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관용은 나와 상대의 관계를 수직적 관계로 설정하고, 상위자가 하위자의 잘못을 용서해주거나 너그러이 이해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감정적인 너그러움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똘레랑스는 나와 상대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이 나에게 대한 존중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전제로 이성적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관용은 인간존엄과 평등을 기반으로 자신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권리를 보장해준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똘레랑스의 의미와 등가성을 띈 한국어가 없어 관용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나, 똘레랑스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관용은 민주주의의 핵심 운영 기제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다양한 의견, 신념, 가치관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체제이다. 의견 차이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은 자연스럽고 다양한 의견 공유를 통해 사회가 진보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관용이 전제될 때 가능한 일이다. 차이를 존중하지 않을 경우, 사회갈등은 지나치게 심화되고 공존은 어려워진다. 즉, 관용은 다양성 속에서 개인을 존중하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사회를 진보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관용은 비관용(intolerance)을 허용하지 않는다. 관용은 극단주의를 용인하지 않음으로서 관용을 지켜낸다. 물론 비관용을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관용보다는 느슨한 관용을 통해 가능한 모두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관용은 비관용의 결과인 혐오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 혐오이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할 때 나타나는 이성적 판단이 관용이다. 나의 다양성 존중여부에 따라 개인은 혐오가해자가 되거나 관용실천자가 된다. 내가 혐오가 만연한 사회를 거부하고, 관용수준이 높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관용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관용은 동정이나 시혜가 아니고 타인의 인간존엄에 대한 인정과 나의 존중을 위해 행해지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관용 수준은 어떠한가?

오랜기간 단일민족사회를 국가의 자랑으로 여겼던 대한민국은 동류의식이 매우 강한 나라이다. 누군가를 만나면 공통점부터 찾고, 공통점을 찾으면 친밀감과 안전감을 느낀다. 그러나 반대로 차이에 대해서는 매우 배타적이다. 이러한 한국문화는 경제발전 및 민주화과정에서 사회갈등을 증폭시켰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심화시켰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홍세화가 1995년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통해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소개하면서 한국사회에서 관용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관용에 대한 논의가 증가하는 듯하였으나, 관용은 성장론과 색깔론에 밀려 논의가 확산되지 못하였다. 이후 홍세화는 ‘10년 전과 똑같은’ 한국사회를 비판하며 똘레랑스의 대가인 필리프 사시에의 책 「민주주의의 무기, 똘레랑스」를 번역하였다. 그럼에도 2020년 한국사회는 관용이 아닌 혐오의 사회가 되고 말았다. 

 

한국사회의 관용수준은 실증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한 사회의 관용수준은 혐오집단에 대한 정치적 관용,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용 등으로 측정될 수 있다. 윤종빈 외(2011)2)의 연구에 의하면, 2005년 미국의 혐오집단 정치행위의 관용 수준은 57.5~61.6%인데 반하여 2010년 한국의 혐오집단 정치행위의 관용 수준은 33.1~36.6%로 약 절반 정도 낮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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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용 수준을 살펴보자. World Values Survey(Wave 6) 분석 결과에 의하면, 한국은 이주외국인과 성소수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많이 낮았다. 한국은 66%가 ‘이주외국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인다’고 응답하였고, 이는 비교적 폐쇄적이라 알려진 일본(78%)보다도 낮았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용은 이주외국인 사회적 관용의 1/3보다 낮은 20%로, 가장 사회적 관용 수준이 높은 독일(78%)의 약 1/5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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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외(2013)는 시계열적으로 OECD 31개 회원국의 관용 사회 수준을 비교하였다. 관용사회를 장애인노동자 관련법률 수, 타인에 대한 관용, 외국인 비율로 측정하였는데, 한국은 1995년 25위에서 2000년, 2005년에는 30위로 순위가 더 하강하였으며, 2009년에는 31위를 최하위를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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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의 조사인 2018년 BBC Global Survey A World Divided5)는 27개국의 19,248명을 대상으로 사회분열, 관용, 신뢰, 동질성 등에 대해 조사하였다. 사회가 다른 배경, 문화, 관점 등에 대하여 얼마나 관용적인지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약 20%만이 관용적 또는 매우 관용적이라고 응답하였고, 27개국 중에는 25위로 나타났다. 관용을 다르게 측정해 보고 시점을 달리해 보아도 한국사회의 관용수준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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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관용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사회신뢰 및 사회적 지지에 대한 인식도 낮게 나타나고 있다. 위 BBC의 동일한 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을 신뢰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한국은 약 12%만이 그렇다고 응답하였고, 이는 27개국 중 21위 수준이다. 경제수준 만으로 선진국을 정의하는 것에 대한 비판에 대한 대응으로 OECD는 삶의 질을 고려하여 Better Life Index(BLI)라는 국제지수를 개발하였다. 그중 community의 사회적 지지 네트워크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78%가 ‘도움이 필요할 때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의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응답하였는데, 이는 40개국 중의 최하위이다6). 혐오가 만연하고 관용이 부족한 사회에서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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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을 실천하자

혐오를 줄이기 위하여 관용수준을 높여야 한다. 관용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고, 함께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혐오의 부정적 영향과 관용의 긍정적 영향을 널리 알려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전달해야 한다. 시민교육과 캠페인도 필요하고, 접촉이론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 간의 접촉시간을 넓혀 혐오감을 감소시켜야 나가야 할 것이다. 다양성 존중을 어떻게 실천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 제공도 필요하다. 

 

나아가 혐오표현과 행동을 규제하는 법적이고 제도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자유권 규약 제20조 2항은 ‘차별, 적의 혹은 폭력의 선동이 될 모든 증오의 고취는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19조 3항은 법으로 규정되며, 타인에 대한 존중 등과 같은 정당한 목적을 추구하고, 민주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국가가 표현을 제한할 수 있다고 허용하고 있다7). 실제 독일은 인정한 국적, 인종, 종교, 출신민족으로 이뤄진 집단 및 개인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면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고, 혐오 표현 담은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은 SNS기업에는 최대 벌금 5,000만 유로를 부과하고 있다. 캐나다 및 프랑스 등도 징역형으로 혐오표현을 규제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하여 혐오표현 및 행동에 대한 비관용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다양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세계화로 국내 인종/민족성은 더 다양해 질 것이며, 성적 취향의 다양성도 더욱 가시화될 것이다. 인권수준의 향상으로 다양한 의견들이 더 많이 노출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 또한 진보·보수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닌 의제별로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의 확대 속에서 사회갈등은 또다른 양상으로 표출되고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혐오를 줄이기 위하여 우리가 관용을 실천할 때 홍세화가 말한 ‘다른 것을 그대로 둔 채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관용은 타인에 베푸는 것이 아니다. 내가 존중받고 사회와 공존하기 위하여 해야 하는 것이다. 혐오를 표현하고 혐오를 당할 것인가? 관용을 실천하고 실질적 자유를 것인가?

 

1) 혐오표현의 예로는 유충, 급식충, 틀딱충, 개저씨, 김여사, 김치녀, 한남충, 짱깨 등이 있다. 혐오표현의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주에 예시를 언급한다. 

2) 윤종빈 외. (2010). 한국사회 관용의 수준과 혐오집단. 세계지역연구논총 29(3), 161-185.

3) 원숙연. (2017). 이주외국인과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용’의 구조와 정책적 함의: 탐색적 비교연구. 한국행정학보 51(3), 225-256.  

4) 박명호, 오완근, 이영성, 한상범 (2013). 지표를 활용한 한국의 경제사회발전 연구: OECD 회원국과의 비교분석. 경제학연구 61(4), 5-35.

5) Ipsos MORI Social Research Institute. (2018). BBC Global Survey A world divided?. 

6) OECDBLI. (2017). http://www.oecdbetterlifeindex.org/countries/korea/ 

7) ARTICLE 19. (2015) ARTICLE19 ‘혐오표현’ 해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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