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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20
  • 2020.04.01
  • 561

위기로부터 공존을 모색하는 성소수자의 사회적 권리보장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위원장

 

코로나19가 한국사회를 강타하는 동안 몇몇 지자체는 전방위의 방역과 관리를 위해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했다. 동선 공개는 시민의 불안감 경감과 의료행정을 투명하게 한다는 당위 아래 진행되었지만, 나이와 성별을 밝히며 시간별로 구체적 장소가 공개된 동선은 다른 이들에게는 적지 않은 우려와 부담을 안겼다. 

 

감염병의 공포는 신체적 아픔 너머 내가 확진자가 되었을 때 낙인찍히고 사회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사생활이 노출된다는 공포로 바뀐다. 여기서 방역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 질병이 은유로 작동하는 지점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그런 중에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이 아직 감염되지 않은 안도감을 다른 지점에서 찾고 있었다. 가령 내가 감염이 되었을 때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성소수자 친화적인 업소가 동선에 잡힌다면 나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게이들이 유흥을 즐기고 사람을 만나는 클럽과 찜질방이 동선에 잡힌다면 공동체는 혐오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일상에서도 아웃팅(Outing,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에 대한 우려가 이미 깊이 각인된 이들에게 질병에 대한 투명한 추적은 낙인의 선동으로 교차할 수 있다. 자신의 동선이 파악되고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것은 나아가 자신이 활동하는 공동체가 질병의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불안을 함의한다. 낙인은 개인과 집단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가로지른다. 

 

질병 예방과 방역에 지원되는 제도로부터 배제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현실은 이미 일상에서 성소수자를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적 제도에 연결되어 있다. 감염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은 일상의 불안과 배제에 맞닿아 있다. 가령 동성 파트너의 아픔에 나는 보호자로서 사회적 역할을 갖기 힘들다. 검사를 하는 과정 속에서 지정성별과 다른 젠더 정체화를 하고 있는 이들은 검사를 하기도 전에 나의 성별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어긋나는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재난관리와 방역 속에서 성소수자가 겪는 취약성은 기존에 사회가 가지고 있는 낙인이 확대되는 모습으로 작동한다. 질병에 대한 전파와 감염의 두려움은 질병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 감염인은 감염을 당한 ‘피해자’인 동시에 잠재적으로 타인을 감염시킬 수 있는 ‘가해자’라는 모순적 위치로 각인된다. 여기에 당사자가 특정 종교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질병은 특정한 얼굴이 덧씌워진다. 과거 HIV/AIDS가 ‘게이 암’으로 불렸던 것처럼, 질병에는 특정 집단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것이다. 그것의 문제는 질병뿐 아니라 질병에 취약한 계층과 정체성의 구성원까지도 낙인을 찍고 배제하게 된다는 점이다. 질병당사자가 특정 집단으로 묶이게 되면 해당 집단뿐 아니라 질병당사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은 배가된다. 그것은 누구라도 질병과 해당 집단에 연루되면 법의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언론은 연신 전파자의 동선과 그의 소속을 들먹이며 가십화하고, 정치인들은 질병의 진원과 특정 집단을 포개면서 질병과 해당 집단의 낙인을 강화하며 여론을 선동한다. 하지만 질병의 전파를 가해로서 확진자와 잠재적 피해자로서 비감염 시민을 나누는 관점은 오히려 사회에 질병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는 동시에 도덕적 낙인을 찍어 어떤 증상을 가졌을지라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어렵게 만들면서 질병 예방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결정적으로 그것은 확진자와 감염인들이 치료과정에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를 배제함으로써 질병에 책임을 져야 하는 공동체와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HIV/AIDS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취약집단에 대한 낙인은 질병을 음지화할 뿐 예방이 될 수 없음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오지 않았는가.

 

<사진3-1> 천안 추가 확진자 이동 동선 공개를 브리핑하는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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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BS 유튜브

 

재난은 개개인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위축시킨다. 공동체를 복원하고 경계를 세워야 한다는 당위는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 공동체를 성찰하고 재건하는 노력과 소수자를 배제하며 단속과 감시를 심화하는 건 쉽게 구분 짓기 어려운 상황들이 만들어진다.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안정을 도모하고 울타리를 확인한다. 재난 속에서 국가는 제 구조를 재확인할 뿐 아니라 정립하고 강제할 수 있다. 그것은 국민의 기준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포함하기도 할 것인데, 여기서 사회적 소수자는 보장의 기준에 밀려나기 쉽다.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사회적 인프라로부터 배제된 상황에서 불안정한 삶의 조건들은 이들을 낙인찍고 삭제하기 쉬운 상황으로 몰고 간다.

 

재난은 사회의 손길이 닿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배제한 지점에 확대경을 비춘다. 방역주체는 구성원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한다.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자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위생을 신경 쓸 수 없으며 질병예방과 검진 및 치료에 대한 사회적 의료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은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이, 비정규직 노동자, 시민권을 받지 못하는 난민과 이주민, 장애인과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이다. 

 

질병은 계급과 계층을 다시금 확인케 한다. 재난 대응에 취약한 계층과 집단을 ‘위험군’으로 묶어 색출과 낙인을 강화하는 상황은 낙인의 순환을 확장한다. 그것은 이미 일상이 재난인 이들에게 재난을 배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성소수자는 규범을 일탈하고 일상의 질서를 위반하는 존재로 취급당하곤 했다. 성소수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시도에 대해 ‘돌출’로 일축하고 문제 삼으며 재난으로 몰아세우는 논리가 여론으로 만들어지고 정치세력화되었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성소수자는 찬반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기 쉽다. 하지만 판단하기 앞서 이들이 공공장소에, 사회에 성소수자로서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가에 귀 기울인다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2020년 초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변희수 육군 하사는 성별정정을 통해 여군으로 복무할 것을 요청했다. 그녀는 성별정정 이후에도 성실히 복무할 것을 다짐했지만 육군은 전역을 명령했다. 성별정정 수술에 대해 육군은 장기 적출로 해석하고 장애판정을 한 것이다. 자신의 선택을 장애로 강제하는 판단의 기준은 그녀를 배제하기 위해 논리를 만드는 것에 다름없다. 

뒤이어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등장은 곧장 학교 내 ‘랟펨’(래디컬 페미니스트의 줄임말)과 ‘Terf’(TransExclusionaryRadicalFeminism의 줄임말,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즘으로 부른다)로 부르는 이들의 공격과 비난에 부딪혔다. 이들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트랜스젠더의 입학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논리의 핵심에는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여성의 정체성을 재차 확인하는 방식은 그에 부합하지 않는 이를 배제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집단은 질서를 유지하고 울타리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무엇보다 이들은 여성에게 보장되었던 안전이 침해된다는 논리를 최전선에 세웠다. 그것은 자신들이 단일한 정체성의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공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타인의 등장이 경계를 침범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내부의 공간은 불변하며 안전을 지켜왔다는 내용을 함의한다. 하지만 이들의 논리는 집단의 안전을 비호하기 위해 정체성의 기준을 공고히 하고 내부의 다양성을 배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내부의 인종과 계층, 젠더의 상이함과 내부 투쟁과 연대의 역사를 부정하고 압축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는 외부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타인의 존재를 탈락시켜도 된다는 정상성의 논리의 궤도 위에 있다. 

 

당사자들의 커밍아웃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사회에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은 제도의 공간 아래 자신들을 드러내며 일상을 확보해왔다. 그럼에도 다른 점이 있다면 최근의 당사자들은 일상의 구체적인 현장에 얼굴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군인으로서, 노동자로서, 학생으로서 트랜스젠더가 곁에 있다는 선언은 함께 일하고 배우는 일상의 장소에 이들이 이미 ‘곁’에 있어 왔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의 드러내기는 일상처럼 인식하지 못한 채 경직된 공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쉬웠던 장소의 규범을 폭로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들이 노동자로서, 학생으로서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사회의 변화뿐 아니라 곁에서 살아가는 이들 또한 바뀌어야 함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3-2> 트랜스젠더로서 사회에 살아갈 수 있기 위한 권리를 요구하며 ‘트랜스젠더의 권리도 인권이다’라는 구호를 오랫동안 외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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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arc Nozell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자기 드러내기가 이슈가 되면서 성소수자 당사자들 역시 발언의 욕구가 높아졌다. 이들은 뉴스를 보며 힘을 얻고 동시에 힘을 주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강제 전역당하고 입학을 포기하게 되는 자신들의 처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는 양가적인 감정을 나눴다. 자신의 정체성이 핸디캡이 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사회적 안정성을 공고히 하고자 누구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면서 사회적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것은 항상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은 매 순간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면서 의심과 눈총을 받으며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을 함의한다. 

 

가령 성별을 입증해야 하는 제도들은 일상에 있다. 남녀 양자택일은 많은 이들에게 일상적인 항목일지 모르지만, 이는 다시 말하면 당사자들이 강요된 선택에 매 순간 놓여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트랜스젠더에게 익숙해진 것은 ‘포기’의 태도다. 사회적 활동을 하는 데 있어 많은 서류들이 당사자의 정체를 확인한다. 국적과 나이와 성별을 묻는 항목들은 당연하게 취급되곤 하지만, 막상 많은 이들에게 진입장벽으로 작동한다. 트랜스젠더의 경우 성별을 확인하는 많은 자리에의 참여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투표를 포기하고, 학교를 포기해야 하고, 직능에 대한 경력을 포기해야 하고, 취업을 포기하고, 심지어는 화장실 가는 것까지도 참아야 한다. 자신들이 행사함이 마땅한 기본적인 권리마저 포기하게 되는 상황에서 이들이 겪는 것은 일상의 반복되는 단절 속에서 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처하는 것이다. 

 

성소수자의 권리는 단발적인 사건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단절은 삶의 고립을 만들고 안팎의 낙인을 찍어낼 뿐이다. 복잡한 삶의 맥락 속에서 삶이 보장받기 위해서는 나의 과거와 현재가, 타인과의 관계가, 집단 안에서의 소속감이 연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전제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사회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단발적인 드러냄일지라도 이들이 보인 용기의 과정을 읽어야 한다. 구성원으로서 언어를 만드는 것은 타인과 소속 집단에게 인정을 갈구할 뿐 아니라 학교와 일터에 존재를 드러내며 학생으로서 교육받고 노동자로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로 연결된다. 나아가 자신을 지지할 수 있는 동료를 만들고 사회적 안전망을 요구하고 구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어떤 지지자가 있고, 어떤 자원이 확보되었으며 안전망으로서 일상이 보장되고 있는가를 찾는 것은 향후 이들의 사회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며, 무엇보다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피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시도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자신을 반대하고 사회적 참여를 제한하는 문턱이 있는 한 부담과 불안은 완전히 떨쳐낼 수 없다. 다시 말해 트랜스젠더로서 부대 복귀가 결정되고, 여대에 다니게 되었다는 결정 자체가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할 수 없다. 동시에 성별정정 기준을 법적으로 완화하여 이전보다 어렵지 않게 성별정정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될 수 없다. 성소수자의 권리 요구는 자신을 드러내기 전부터 지지하는 동료를 만나고 그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을 완충할 수 있는 장치들을 확보해야 한다. 설령 인정을 받고 사회적 참여를 한다고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충돌과 갈등, 불화의 협상과정을 피할 수 없다. 강제적이고 배제적인 규범과 질서에 개입하며 공간의 변화를 요청하는 것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 일상의 공간들이 이미 제도적으로 구획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나아가 사회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변화를 위해 어떤 과정이 구축되어야 하는지, 국민의 범주를 재고하는데 국가가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가를 향한다. 

 

성소수자 사회권의 요구는 단지 인정과 포섭의 문제로 수렴하지 않으며, 사회에 과감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가령 동성혼 법제화는 결혼의 가치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트랜스젠더가 결의하는 충성과 애국은 다른 이들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거꾸로 국가가 충성과 애국을 요구하고 의무로 강제하는 국민의 기준은 무엇인가의 질문으로 향한다.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않는 이들의 권리 요구는 국가의 정의와 기준에 도전하며 동시에 국가를 재정의한다. 동시에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은 가부장제로부터 교육받을 권리가 배제된 여성들을 위해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던 여대의 이념을 재차 묻는다. 국가와 학교의 울타리를 재차 갱신하고 변화시키도록 만드는 물음들은 가부장제와 싸우는 페미니즘 운동 내부의 차이를 호소하고 경계를 넓힌다. 그것은 공동의 삶을 도모하는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가치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확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타인과 공존을 모색하는 것은 나의 정체성이 규범적으로 구획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안전을 제공하면서 무엇을 강제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이분법적 공간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확보해나가는 노력은 공간과 제도로부터 무엇이 배제되고 박탈당하고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볼 것을 촉구한다. 그것은 위기 속에서도 공존이 어떤 의미로 곱씹어지며 어떤 실천을 필요로 하는가를 되묻는다. 이제 우리가 함께 답을 만들어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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