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11-10   1079

캄보디아에 심은 희망나무 한 그루 – 빈곤가정 청소년 해외여행 이야기

이루지 못하는 꿈은 없다

지난 6월, ‘사회복지관 중간 관리자의 리더십’이라는 강의를 온주종합사회복지관의 김일용 관장님께 들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일을 해야 할 때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해야되는지 물으시면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에 나오는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중요하면서도 급한 일,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전 당연히 중요하면서도 급한 일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강사분의 설명은 이러했습니다.

“우리는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예방사업이나 욕구조사처럼 지금 당장은 급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때 제일먼저 해야될 일입니다.”

생존을 위협하는 경제적 어려움도, 생사를 다투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결손가정과 빈곤이라는 낙인에 꿈마저 좌절당한 우리 청소년들을 위해 ‘글로벌 프로젝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나처럼 재수없는 애가 어딨어. 내가 부모를 잘 만나기를 했어, 그 흔한 학원을 한번 다녀봤어. 엄마가 해주는 밥을 제대로 먹어봤어, 흥! 학원 가라고 내모는 부모님이라도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어, 내가 가장 가난한데 누구를 도와줄 수가 있어’ 이런 아이들을 다독여 해외로 자원봉사를 가자고 마음을 먹기까지 사실은 힘겨운 싸움이었습니다. ‘에이, 우리가 무슨 외국을 가요’ , ‘우리는 바닷가도 한번 못 가봤는데… 그냥 바다에 가봐요’ , ‘전 그냥 비행기 한번 타보는 것으로도 좋은데’ 못가요! 우리가 외국엘 어떻게 가요!. 아이들은 그렇게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일로 여겼습니다. 패기에 찬 도전의식도,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도 전혀 없이. 적어도 2002년 여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2001년 여름,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그때까지도 저 역시 마음이 흔들렸던 게 사실입니다. ‘여자가’, ‘혼자 어떻게’ , ‘이 나이에 무슨…’ 스스로가 옭아맨 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 할 수 있었습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돼 민속춤 공연시간을 몰라 입장료를 내고서도 관람을 할 수 없었고, 방향치인 제가 숙소를 못 찾아 첫날은 새벽까지 길을 헤메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느끼고 체험하고. 무엇보다 ‘자신감’이라는 선물을 ‘성취감’이라는 기쁨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2002년 글로벌 프로젝트를 마음속에 넣고 태국과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나라 캄보디아로 떠났습니다. 태국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으며 세상에 신발도 없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캄보디아의 힘겨운 아이들을 만나고, 너무나 덜컹거려 10시간 동안 엉덩이가 아픈채로 차로 이동도 하였습니다. 가는 길에 스콜도 만나고, 길이 끊어져 임시 다리를 다시 잇기도 하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는 소를 보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오랜 내전과 기아, 지뢰밭, 그리고 킬링필드…. 하지만 앙코르왓이 주는 감동과 함께 톤레삽 호수위에 떠 있는 난민과 빈민 자녀를 위한 수상학교 아이들, 그들을 위한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을 만났습니다. 여전히 무기력하고 영구임대아파트에 거주한다는 낙인으로 힘겨워 하는 우리 아이들, 복지 수혜자임을 당연하게 여기고 미래에 대한 꿈도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 하루를 그냥 살아가고 있는 이 친구들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그로 인해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은 멀기만 했습니다. 많은 후원자들을 만나고 설명을 드리면서 ‘아직 우리 애도 외국에 안 나가봤는데 굳이 외국까지 갈 필요가 뭐가 있어?’ 높은 벽에 부닥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 볼 수 있다는 ‘희망’과 평생 외국에 간다는 꿈조차 꿔보지 못한 ‘절망’은 그 처지가 다릅니다. 우리 아이들이 글로벌 프로젝트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음식배달, 청소년 연수지원 프로그램 참여, 패스트푸드점, 세차, 배달, 스티커 돌리기같이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고 차비도 아까워 작은 용돈을 쪼개 힘겹게 돈을 모으며 가슴에 품었던 것은 바로 ‘희망’이라는 별이었습니다.

글로벌 프로젝트의 실현이 불확실한 가운데서도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수차례 사전모임들과 기초회화교육을 통해 캄보디아와 태국에 관한 문화와 특성을 이해하고 자원봉사활동 장소에 대해 공부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침내…“우리가 무슨 해외예요? 그냥 바다나 놀러가요!”하던 청소년들이 여권을 만들고, 외국어를 공부하며, 땀 흘려 번 돈으로 경비를 마련하는 모습을 알게 된 아름다운 재단과 삼익 LMS 주식회사에서 후원을 해 주셔서 우리 청소년들의 꿈은 현실로 이루어 졌습니다.

나는 능력있고 멋진 사람이며 보배롭고 귀한 존재입니다.

번듯하고 으리으리한 하얀색 큰 건물을 한참 지나 비로소 우리의 목적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에이즈 호스피스 센터. 에이즈가 감염률이 높지 않다고 안내해 주신 신부님으로부터 수없이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저주저 하게 했던 곳.

어제도 두분, 오늘 아침에도 한분이 돌아가셨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준비해 간 캬라멜 한웅큼씩을 얼른 드리고 그것도 혹시나 손이 닿을라 싶어 잽싸게 병실에 놓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 부끄러웠습니다. 진정 부끄러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에이즈 환자라는 말에 겁먹고, 낡고 초라한 먼지만 가득한 길을 달려오며 지친 아이들이, 그들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사탕을 입에 넣어드리고, 병실 밖으로 모시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뜨끔해져 왔습니다. 한국 아이들이 여기까지 와주었다고, 볼품없이 초라하게 다 죽어 가는 자신들을 위해 먼길을 와주었다며 내내 고마워하던 그분들의 감격보다, 할 수 없다고, 우리가 무슨 봉사를 하냐며 쉼없이 불평만 하던 우리 아이들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해외로 간다며 들떠서 동네 친구들 친구들마다 자랑만 하던 아이가 철거민 아이들에게 사탕도 넉넉히 못 줬다며 아쉬워하고,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게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던 아이는 자신의 집이 그렇게 천국인지 몰랐다며 감사해 했습니다. 6박 8일간 함께 할 친구들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사전 모임을 하는 내내 고개만 숙이고 있던 녀석이, 에이즈 감염 아동들이 사는 짬짜오에 가서 다시 아이들과 놀아주고 싶다는 글을 보내 왔습니다. 처음 본 요술풍선에 신기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제가 가진 작은 능력에 감사하며, 땀을 뻘뻘 흘려가며 강아지며 꽃들을 만들었습니다. 에이즈 환자인 부모에게 태어나 처음부터 축복된 삶을 허락 받을 수 없었던 그곳 친구들을 위해 우리 아이들은 그네를 밀어주고, 비누방울을 불어주며, 다독여 안아주고, 밥을 먹여주며, 잠을 재워가면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따뜻한 마음의 손길을 그득그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없이 묻혀있는 지뢰로 인해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되신 분들이 기술을 익히며 재활을 준비하는 장애인 기술학교인 반티 프리엡! 이분들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었다’며 오히려 많은 응원과 용기를 보내주셨습니다.

자원봉사는 결국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소중함을 알아차린 우리 아이들이 금번 자원봉사를 통해 더욱더 보배롭고 귀한 존재로 세상의 빛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캄보디아에서 우리 아이들의 자원봉사를 이끌어 주셨던 신부님의 메일이 와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생각하도록 강요할 수 없고 느끼도록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저 보여주고 들려주고 그리고 그 나머지는 아이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지요. 행복은 비교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오히려 비교하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겠지요. 단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사실 저는 이 곳의 사람들을 통해서 저 자신을 더 많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네 아이들도 그렇게 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진첨부>

대구 월성종합사회복지관 최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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