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0 2000-10-10   2089

최저주거기준 설정의 의미와 과제

건설교통부는 지난 9월 23일, 그 동안 주거관련 학계 및 시민·사회단체에서 줄곧 주장하였던 최저주거기준을 설정·발표하였다. 최저주거기준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데 필요한 최저한의 주거와 주거환경의 기준을 말한다. 이러한 최저주거기준은 이미 오래전부터 선진외국에서 주택정책의 기준으로 도입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국가들의 주택문제를 해결을 위한 쾰른(1966년의 경우 1인당 12㎡이상)기준이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이 기준을 고려하여 유럽각국에서는 저마다의 최저주거기준을 마련하게 되는데, 영국의 파커모리스 기준, 프랑스의 공영주택(H.L.M) 면적 기준 등이 그 예이다. 구체적인 기준은 각 국의 경제 및 사회·문화 환경, 신체구조 등에 따라 다양하나 대개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정책의 기준으로 사용되어 이들의 주거수준 향상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최저주거기준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최저주거기준은 면적기준, 시설기준, 구조·성능·환경기준 등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면적기준은 가구원 수에 따라 필요한 최소한의 침실 수를 제시하고, 침실·부엌·화장실·현관·수납공간 등을 합한 총 주거면적을 설정한 것으로 1인 가구의 경우 12㎡(3.6평), 4인 가구의 경우 37㎡ (11.2평)이다(아래 <표 1> 참조). 시설기준은 침실·부엌·화장실 등 주거 및 부대시설 설치기준으로서, 침실은 기본적으로 부부 침실을 확보하고, 만 5세를 초과한 자녀의 침실을 부부침실과 분리하였으며, 만 8세 이상 이성자녀의 침실은 별도로 확보하도록 하였다. 또한, 전용부엌 및 화장실을 확보하되, 부엌에는 상수도 또는 수질이 양호한 지하수 이용시설을 완비하도록 하였다. 구조·성능·환경기준으로는 영구 건물로서 구조 강도가 확보되고, 주요 구조부의 재질은 내열·내화·방열·방습에 양호한 재질을 사용하며, 적절한 방음·환기·채광·냉방·난방 설비를 갖추는 한편, 소음·진동·악취·대기오염 등 환경요소가 법정기준에 적합하도록 규정하였다.

< 표 1 > 면적기준

* K: 부엌, DK: 식사실 겸 부엌. 숫자는 침실의 수

자료: 건설교통부 주택도시국 주택정책과 보도자료(최저주거기준의 설정), 2000.9.24.

최저주거기준 발표와 관련하여 건설교통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90년대 이후 지속적인 주택공급 확대시책에 힘입어 주택의 양적 부족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된 반면, 주거의 질적 수준 제고 및 저소득층에 대한 실질적인 주거지원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음에 따라, 최저주거기준을 설정하고 주택공급의 확대와 병행하여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해소'를 통한 주거수준의 질적 향상을 주택정책의 우선 과제로 삼기로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금년 11월중에 실시 예정인 인구·주택 총 조사를 통해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를 파악하여 우선은 주택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지표로 활용하고, 앞으로 주택건설촉진법 개정 시 이를 법제화하여 정책지침 및 지원의 근거를 마련할 계획을 표명하였다. 또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사례로 영세민 전세자금 및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주거급여 지원대상 선정, 주택재개발·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지정 시 참고자료로 사용하며, 주택 개·보수비용 지원 등의 근거 자료로도 활용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번 최저주거기준의 설정은 10월 1일부터 시행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주거급여 실시와 더불어 그 동안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기조였던 물량위주의 주택공급에서 벗어나 주거의 질적 수준을 제고 할 수 있는 일보를 디딘 것으로 평가될 만 하다.

그러나 이러한 최저주거기준의 설정이 저소득층, 특히 과밀주택·불량주택·무허가주택·열악한 주거환경의 거주자 및 홈리스(homeless) 등의 주거상황 개선에 직결되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제기된다.

첫째, 최저주거기준의 적정성에 대한 재검토 및 세부기준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현재 건설교통부가 설정한 최저주거기준은 그 설정과정 및 방법에 대해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한 제시된 기준은 유럽 각국의 면적기준에 미달함은 물론, 1인 가구의 경우 일본의 최저주거면적 4.2평(13.9㎡)의 85%수준이고 서울시가 '97년에 제시한 면적기준 4.0평(13.5㎡)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구체적인 기준은 경제·사회·문화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설정과정 및 방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만큼 이에 대한 논의의 활성화와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더불어 최저주거기준의 세 가지 구성요소를 구체화한 보다 세부적인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욕실의 구비여부, 온수의 사용여부, 거실의 확보여부 등이 그것이다.

둘째, 최저주거기준을 현실화할 법적 장치가 요구된다. 만일, 최저주거기준이 이를 강제할 법적 장치가 구비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상징적 지표에 머무르고 말 것이고, 이는 그 동안 정부가 내세웠던 '구호만의 주거복지'로 귀착될 것이다. 물론, 건설교통부는 장차 주택건설촉진법 개정시 이를 법제화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주택건설촉진법은 주택공급을 주목적으로 하는 만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보다는 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한 (가칭)주거기본법 등을 통해 그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최저주거기준이 보다 확대된 공공임대주택의 건설 및 입주기준 설정, 임대료보조정책 등 다양한 주거복지정책을 통한 주거권 확보의 발판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최저주거기준외 적정주거기준(유도기준)의 설정이 필요하다. 최저주거기준은 말 그대로 '최저한'의 기준이기 때문에 보다 나은 주거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의 지표가 되는 적정주거기준의 설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의 시행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질적 수준이 낙후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그 가운데 주거복지 만큼 뒤떨어진 분야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그 동안 국가가 주거정책을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고려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경제논리에 종속시킨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 최저주거기준의 설정이 갖는 의미는 자못 중요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가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최저주거기준이 본격적인 주거복지 도입의 단초로 작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정부의 후속조치를 촉구하며, 아울러 그 동안 주거복지에 무신경했던 사회복지계의 관심도 고대해 본다.

박윤영 / 안산공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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