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07-01   1351

[기획1] 특이점의 경계에 선 복지 :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

특이점의 경계에 선 복지 :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

 

한동우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감염병보다 감염

1601년 영국은 인클로저 운동의 후폭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부랑자들(vagabonds)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250년 전 크림반도의 화물선에 들끓던 쥐에 기생하던 벼룩들을 떠올렸다. 모든 사람에 대해 거주이전이 금지됐고, 교구에서 시행하던 빈민구제는 무효가 됐다. 부랑자들은 빈민이었고, 빈민은 범죄자였으며, 범죄는 마땅히 중앙정부가 다스려야 할 사안이었다. 영국 전역에 감옥이나 다를 것 없는 구빈원과 작업장이 세워졌고, 모든 빈민은 격리됐다. 작업장에서는 사람들이 오전에는 밧줄을 풀어 실을 만들었다가, 오후에는 다시 그 실을 꼬아 밧줄을 만들었다. 흑사병을 다뤘던 경험은 부랑자들을 처리하는 데 유용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설령 그것이 밧줄을 풀었다가 다시 꼬는 것이라 할지라도, 모두 일했다. 감시와 격리는 부랑자로부터 영국 사회를 지키는 강력한 사회적 방역체계였다. 영국 사회에서 비효율과 비합리는 사라지고 있었다. 사회는 기계공학적 방식으로 설계되어 작동하고 있었다.

 

확신컨대 한국은 코로나 19 방역과 치료를 가장 잘하는 나라다. 전국 600개의 선별진료소에서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차별 없이 무료로 감염 여부를 진단받을 수 있다. 2020년 6월 13일 현재 누적 감염확진자 수는 12,051명인데 이 중 완치 등의 사유로 격리 해제된 사람은 10,691명이며, 이 병이 직접 사인이 되어 사망한 사람은 271명이다.1) 인구 5000명당 1명 정도의 감염률과 감염확진자 100명당 2명 정도의 사망률을 보이니 코로나 방역 일등 국가라 할만하다.

 

처음의 막연했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수개월 동안 지속하고 있는 코로나 19의 문제는 감염병이 아니라 감염 그 자체다. 감염을 두려워하는 우리는 스스로를 마스크와 넷플릭스 안에 가두고, 집안으로 격리했다. 선별진료소 의료진뿐 아니라 홍천강 주변에서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컵라면 잔해를 치우는 일자리 참여 노인들도 마스크를 썼다. 2020년 5월 이태원 클럽에서 슈퍼전파자가 발견되었을 때 국내 이동통신 3사는 4월 26일부터 5월 6일까지 클럽 주변 기지국에 접속한 모든 사람의 개인정보를 서울시와 질병관리본부에 제출했다.2) 서울시는 이 정보를 신용카드 거래내역과 대조하는 방식으로 클럽 방문자를 찾는 한편, 인근에 있던 사람들에게 감염 여부를 진단받으라는 문자를 보냈다. 온라인으로 개최된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에서 토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지자체 경계를 넘을 때마다 날아오는 감염병 정보가 자동차 스크린에 자동으로 뜨는 바람에 코로나가 아니라 교통사고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일등 방역체계가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방역에 드는 비용은 사실 국민이 지불한다. 모든 것이 무료인 듯하지만, 헌법과 초헌법의 경계를 줄타기하듯 넘나드는 정부의 강력하고 일방적인 통제를 모든 사람이 순순히 따르는 방식으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는 중이다. 아무런 동의서도 없이 개인정보가 지자체와 질병관리본부로 넘어가고 있다. 박정희 때의 숙박부가 다시 등장했다. 정부는 누가 언제 어디에 있었으며, 누구와 통화했는지 알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일을 원래 할 수 있지만, 코로나 19 방역체계 속에서 그 능력과 실행 가능성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가장 강력하면서도 효율적인 한국의 방역체계 속에서 파놉티콘(panopticon)을 떠올리는 것은 과잉상상일까.

 

망원경 속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영화 콘택트(Contact,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에서 엘리 에로웨이(조디 포스터)는 전파망원경을 통해 직녀성으로부터 유입되는 신호의 패턴을 해석해서 거대한 접속장치를 만들어 웜홀을 여행한다. 엘리에게 우주는 실존의 외로움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고, 현실의 부조리를 외면할 수 있는 피신처였으며, 과학자로서의 직관을 증명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엘리는 꿈같은 여행을 마치고 몇 초 만에 현실로 돌아왔다. 엘리가 본 것을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평행우주 속에는 아마 지금도 그녀가 살고 있을 것이다. 토머스 모어도, 로버트 오언도, 생 시몽도 꿈을 꾸었다. 마르크스는 설계도를 그렸고, 레닌은 웜홀을 직접 여행했다. 그들의 여행도 결국 짧게 끝났지만, 평행우주 속에는 정말 꿈같은 공산주의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1941년 영국은 독일의 막강한 공군력에 속수무책으로 맹폭 당하고 있었다. 초토화된 런던의 빅벤에서는 윌리엄 베버리지에게 복지국가에 관한 설계를 의뢰했다. 망원경에는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과 베르사유조약 이후 바이마르공화국의 초인플레이션으로부터 신호들이 유입되고 있었다. 빈민법의 후예이자 동시에 개혁가였던 베버리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누구도 가난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전쟁 영웅 처칠은 승리 직후 치러진 선거에서 노동당의 애틀리에게 패배했다. 영국은 실용적이었고, 전략적이었으며, 심지어 위대했다. 베버리지의 설계를 따라 떠난 여행은 오일쇼크로 인한 국가재정위기와 함께 끝났고, 우리가 새로운 신호를 찾아 망원경 속에서 헤매는 동안 꿈과 현실의 인지 부조화는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모순은 즉시 발생하고, 지식인과 정치인은 당황한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나른하게 이야기하고 있던 우리는 코로나 19에 맹폭 당하고 있다. 코로나 19는 우리가 여태 기대하지 않았거나 실상은 주저하던 실험들을 강제했다. 학교를 벗어난 교육이 가능할까? 사회복지관이 문을 닫으면 지역사회가 붕괴하지 않을까? 실험은 끝나지 않았고, 이것이 실험으로 끝날지 아니면 새로운 현실이 될지 아직은 모른다. 확실한 것은 교육이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노동자들이 망가지고 있으며, 지역사회가 붕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관에서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계약제 사회교육 강사들이 붕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19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혹시 끝나더라도 또 다른 코로나가 언제 창궐할지 아무도 모른다. 누구나 코로나 19 이후 세계에 대해서 말하지만, 정작 우리가 스스로 준엄하게 물어야 할 것은 코로나 19 이전의 세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했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코로나 때문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사실은 감히 대적도 하지 못하는 한낱 현미경적 기생체에 우리의 모든 섣부름과 어설픔을 귀인하고 있다.

 

생산적 복지국가, 참여복지국가, 사회투자국가, 포용적 복지국가. 우리는 늘 꿈★은 이루어질 것처럼, 그곳으로 당장 갈 수 있을 것처럼 말해왔지만, 결국은 했던 말들을 삼켰으며 스스로 배반했다. 토머스 모어가 암시했듯이 우리의 망원경 속 세상은 사실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곳으로 갈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까.

  

‘특이점(singularity)이 온다’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수확 가속의 법칙(law of accelerating returns)’3)을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속도를 추월하는 특이점이 도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통찰은 사회 문제와 제도 사이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사회 문제는 산술적으로 겹치거나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으로 융합하여 새로운 양상의 문제로 변용된다. 문제 간의 관계는 너무 복잡해서 인과관계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어떤 현상은 촉매로 작용하여 문제의 폭발력을 극대화한다. 코로나 19처럼.

 

사회 문제의 기하급수적 팽창속도는 복지국가의 제도발전 속도를 이미 추월했다. 사회 문제와 인간의 욕구는 스스로의 관계와 역학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수많은 제도와 프로그램들은 사각지대라는 이름으로 다시 새로운 문제와 욕구를 만들어 낸다. 차별과 배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우리는 고작 우리가 만들어 낸 제도의 우수성을 극구 옹호하느라 오히려 사람을 비난하는데 이미 익숙해졌다. 사회 문제가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하게 되면, 이전의 제도적 패러다임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혁명 즉 단절적 파열에 의한 새로운 패러다임’4)을 통해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나눠 주었다. 재난지원금은 사회적 보상(social compensation)이기도 하다.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르느라 붕괴해 버린 비정규직과 돌봄 노동자들과 소규모 자영업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다. 모든 국민이 헌법에 보장된 거주이전의 자유(제14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제17조), 통신비밀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제18조), 집회와 결사의 자유(제21조)를 무기한 보류한 대가이다. 그래서 정부가 고맙다기보다 기특하다고는 해야겠다.

 

14조 원이 넘는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재원은 별도의 증세 없이 마련됐다. 지자체별로 금액 차이가 있긴 했지만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고, 신속하게 지역 화폐와 현금으로 지급됐다. 사회보장제도의 중복급여를 색출하느라 전산망을 강화하고, 전문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의 허브 역할을 하고 싶어 했던 한국의 우수한 핀테크 기법은 재난지원금의 사용지역, 용도, 기간을 전자적으로 통제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특이점에 근접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한 첫 사례라 할만하다.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

재난지원금은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경기도 지역화폐 가맹점 매출은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된 4월 둘째 주에 전년 동월 대비 118%를 기록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5월 말에는 159%로 8주 평균 44% 증가했다.5)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재난지원금의 효과가 소멸한 후 직면할 사회경제적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감염병 대유행이 가져온 경제적 충격을 일상의 모습으로 목격했다. 아마도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다른 모습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국가와 기업은 코로나 19를 통해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두에서 엄청난 양의 학습을 하고 있다. 국가는 위기상황에서 시민사회를 통제하고 동원하는 자신의 능력을 확인했으며, 연습이 아닌 실제 상황으로 수많은 임상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러한 국가의 경험이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 구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시민사회를 국가의 하부 영역으로 식민화하는 국가주의적 통치로의 우회로가 될지 알기 어렵다.

 

기업은 비대면 방식의 조직운영과 상품공급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한지를 하루하루 확인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초개인화 마케팅과 플랫폼 방식의 고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원격제어와 자율주행기술은 자동차 뿐 아니라 기업의 인사관리에도 즉시 도입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고용과 노동에 전면적인 충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일자리 수가 지금까지 줄어들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코로나 19는 누군가 4차 산업혁명이라고 명명한 세상의 얼굴을 훨씬 가깝고 또렷하게 보여준다.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를 점화했다. 코로나 19는 특이점에 도달한 현재의 한국사회의 문제가 기존의 사회보장 패러다임으로 해소될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지나치게 관념적이어서 다소 황당하고 엉성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기본소득을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의 사회보장제도로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이념적 지향과 더불어 엄정하고 정교한 기술적 설계가 필요하다.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경험은 기본소득을 제도화하는 논의과정에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재난지원금을 기본소득으로 부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 내용과 형식은 필리페 판 파레이스 등 기본소득을 주장하거나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장과 유사한 점이 많다. 한국에서 지급된 재난지원금의 지급원칙과 사용기준을 통해 기본소득에 논의에의 함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보편성
재난지원금은 모든 국민에게 차별없이 지급되었다. 다만, 고소득자의 재난지원금 기부를 유도하기 위해 『긴급재난기부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고용노동부장관이 직접 기부금을 모집하도록 한 것은 대의와 실익 모두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이었다. 재난지원금의 보편적 지급은 기본소득을 제도화하는 경우 대상자 선정기준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지침을 제공할 것이다. 기본소득 논의에서 보편주의-선별주의 논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것은 기본소득을 여전히 기존의 사회보장 체제 내에서의 프로그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개별성
재난지원금의 지급대상은 개인이다. 지자체에서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개인을 단위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었고, 중앙정부의 재난지원금은 가구원수를 고려하여 가구를 단위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재난지원금 지급에 있어 개별성 원칙을 최대한 고수하기는 했으나 가구 단위 지급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비 산정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지급단위를 결정하는 것은 재정집행 효율성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것은 기본소득의 이념적 정의에 관한 것이며, 기본소득을 통해 보장하고자 하는 인간의 문제와 요구에 관한 것이다.

 

화폐
재난지원금은 화폐로 지급되었다. 대부분의 재난지원금은 전자적 방식으로 지급되어 대상자의 신용카드나 직불카드의 지불계좌에 입금되었다. 일부 지자체에서 종이에 인쇄된 지역화폐로 발행하여 바우처에 가까운 형식을 취한 경우도 있었으나 현물이나 대인서비스로 지급된 사례는 없다. 기본소득 역시 현금 등 화폐로 지급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이 유통되는 시장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본소득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주도로 제공할 집합재와 공공서비스의 범위를 우선 결정해야 한다. 현금으로 지급된 기본소득으로 공공서비스를 구매해야 한다면 그것은 기존 사회보장체계의 수당제도와 다를 것이 없다.

 

적절성
지자체별 금액 차이는 있으나 재난지원금의 지급 규모는 시장 수요와 정부의 재정능력을 고려할 때 대체로 적절한 수준에서 결정된 것으로 판단된다. 기본소득을 어느 수준으로 지급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과학적 문제이자 정치적 문제이다. 이 두 차원을 동시에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는 앞서 언급한 기본소득이 유통되는 시장을 정의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집합적 소비재나 공익적 서비스를 정부가 얼마나 직접 공급하느냐에 따라 개별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의 규모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소멸시효와 감가(減價, discount)
재난지원금의 사용시효를 특정하여 시장에서의 교환을 통한 순환을 촉진하게 한 것은 재난지원금 지급이 경제정책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환가치가 소멸되는 재난지원금은 금융자본주의 체제에서 화폐가 갖는 자기증식성과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미약하다. 한정된 시효 때문에 재난지원금은 최소한 지급 대상자의 계정에는 직접 축적되지 않고 자본으로서의 기능을 가질 수 없으며 교환기능은 최대화된다. 기본소득 논의에서는 소멸시효와 함께 감가화폐(discounting cash)의 가능성을 더욱 정교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용지역과 용도 제한
재난지원금을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이원적으로 지급하고, 지원금의 사용 지역과 용도를 제한한 것은 지리적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최종 소비영역에서 직접 화폐가 순환하도록 한다. 소멸시효와 사용조건 제한은 재난지원금이 기존 화폐와는 확연히 다른 교환조건을 갖고 있는 사실상 별개의 통화(currency)라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와는 별도의 발행체계를 통해 발행하면서도 현금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이는 기본소득의 지급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분담을 통해 시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추진주체
재난지원금 지급은 기본소득 논의를 촉발하면서 복지를 둘러싼 기존 담론의 대항구조를 해체하고 있다. 경제와 복지의 대항, 보편과 선별의 대항, 분배와 재분배의 대항, 성장과 분배의 대항 등이 그것이다. 진보적 지식인과 정치인도 기본소득을 주창하지만, 일론 머스크(Elon Musk) 같은 기업가도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최근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인 김종인이 모든 국민에게 ‘물질적 자유와 실질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담론구조 해체를 실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이점에 도달하는 시기의 복지제도는 이렇게 형성된다.

 

복지는 국가가 국민에게 베푸는 은전이나 시혜가 아니다. 복지는 전남 구례 운조루의 솟을대문 안에 있는 타인능해(他人能解) 쌀통도, 급할 때 꺼내 쓰라고 평소에 동전 따위를 모아 두는 돼지저금통은 더욱 아니다. 복지는 진보적 좌파 지식인과 정치인이 자기의 정체를 확인하는데 쓰는 거울도 아니다. 17세기와 20세기의 문명사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복지는 당대의 사회경제 구조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정교하게 결합하여 특이점을 돌파하는 전략적 합의의 산물이다. 그래서 복지는 시대의존적이며 문화상대적이다. 우리는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다.

 

1)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웹사이트, http://ncov.mohw.go.kr/

2) YTN 뉴스, 2020. 5. 11, https://www.ytn.co.kr/_ln/0102_202005121756436716

3) Kurzweil, R. (2005) The Singularity is Near, 김명남(역) (2007) 『특이점이 온다』, 김영사.

4) Kuhn, T. (1962)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김명자(역) (2013) 과학혁명의 구조, 까치

5) 연합뉴스, 2020. 6. 10, https://www.yna.co.kr/view/AKR20200610171200061?input=1179m

6) Parijs, P. V.(1995) Real Freedom for All: What (If Anything) Can Justify Capitalism, 조현진(역) (2017)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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