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6-09   658

최저주거기준 법제화의 좌절을 보며

우리 헌법 제35조는 쾌적한 주거환경에서 살 수 있는 주거권을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로 규정하고 정부에게 국민의 주거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한 책무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 비추어 주택은 시장에서 투기하기 좋은 상품만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혜택을 누려야 할 의·식·주의 기본 생활수단의 하나이고 정부는 시장에서의 주택공급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민이 기본 생활수단을 충족하기 위하여 직접 주택을 공급하고 주거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주택보급률 100%의 실상

정부의 주택정책은 경기부침에 따라 ‘건설 경기 부양’과 ‘부동산 투기 억제’를 반복해옴으로써 주택정책이 그 자체의 기본이념은 실종된 채 경기조절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정부는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다며 그 동안의 정부 주택정책의 노고(?)를 자랑스러워 하고 있지만, 그 100% 안에는 옥탑방, 쪽방, 비닐하우스, 4인 가족 이상이 13평 이하의 좁은 평수에서 생활하는 영구임대아파트 등 정부가 스스로 책정하고 있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여 정상적인 주택보급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는 전체의 23.4%나 되는 세대들이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지난 국민의 정부가 건설 경기 부양이라는 미명하에 분양권 전매금지, 주택분양원가연동제지침 폐지 등 사실상 부동산투기를 방치하는 정책을 사용한 결과,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주택가격이 50% 이상 상승하고 주택이 좋은 투기의 대상이 됨으로써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한 자와 더욱 더 내 집 마련이 요원해진 자가 크게 나뉘어졌는데도 위 100%의 통계에는 집 없는 자의 이러한 아픔은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들의 경우 수세식 화장실 비율은 29%에 불과하여 아직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세대가 71%나 되며, 입식 부엌을 마련하지 못한 세대가 29%, 온수목욕탕이 없는 세대도 49%나 되어 일반가구에 비하여 생활여건이 크게 뒤쳐지고 있다. 1인당 주거면적과 방당 가구원수도 일반가구는 7.3평, 0.98명인데 비하여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는 6.2평, 1.23명으로 가구 면적도 크게 미달한다. 이렇게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가 전체 가구 중 23.4%인 3백33만가구나 되니 이런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를 포함시켜 주택보급율 100%를 달성하였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차라리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23.4%를 위한 주택공급이나 주거개량사업, 주거비지원 사업이 시급하다고 발표하는 것이 솔직하고 참신한 정부의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여전히 공급위주 정책 포기 않는 정부

이렇게 부동산 투기가 만연하고 주택을 둘러싼 계층간의 차이는 더욱 심각해졌음에도 정부가 여전히 양적인 주택공급정책에만 안주하고 있는 모습은 주택소외계층을 더욱 절망하게 한다. 정부는 그 동안 양적인 주택건설촉진에만 주력하고 있던 주택건설촉진법을 개정하여 국민의 주거기본권을 질적으로 보장해주는 주택법을 제정하고 그 안에는 최저주거기준을 도입하여 정부의 주택정책의 내용에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국민의 주거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도별 계획이 포함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주택건설촉진법을 주택법으로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1996년 UN세계주거회의 참여를 계기로 [주택건설촉진법]이 공급 위주에서 질적인 전환을 통해 국민 주거복지 향상을 위해 대체입법이 되어야 한다는 시민단체와 일부 관료들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국무회의에서 최저주거기준의 설정과 주택건설종합계획에 최저주거기준 향상을 위한 노력을 필요적으로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은 삭제되었다. 그리고 국회의 논의과정에서도 이 부분은 부활하지 못한 채, 주택법은 주택정책의 이념과 그 이념 구현을 위한 주택정책 기본 목표와 수단이 생략된 상태로 지난 4월말 입법 공포되었다.

지금 당장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국민들에게 정부를 상대로 최저주거기준에 합당한 주택공급을 청구할 권리를 부여하자는 혁명적인 내용도 아니고 20년의 장기주택건설종합계획에서 연차별로 최저주거기준 향상을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를 규정하자는 것인데, 마치 애초의 주택법안이 통과되면 주택혁명이 일어날 듯이 반응하는 예산 부처의 대응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최저주거기준 향상을 위한 정부의 의무를 주택법에 담지 않는다고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는 국민의 주거기본권 보장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없어진다는 것인지, OECD 선진국 중 아직도 보급된(?) 주택 중 최저주거기준에도 미달하는 쪽방, 비닐하우스, 지하셋방, 영구임대아파트의 전체 주거의 23.4%나 되는 현실을 무시한 채 주택보급율 100% 달성 잔치만 계속 하자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에 주택정책의 이념 부재

서구유럽의 경우에도 1970년대 주택보급율 100%를 달성한 이후에는 주택공급위주에서 주택의 개·보수 등을 통하여 주거수준을 향상하도록 하고 공공임대주택의 경우에도 이러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들에게 우선적으로 배정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우리의 경우에는 주택정책의 이념이 부재하다 보니 정부가 약속한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건설계획에서도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에 우선적으로 임대주택을 배분하는 것과 같은 공공임대주택의 배분과 관리 등의 내용은 부재하고, 역시 어떻게 100만호를 건설할 것인가 하는 주택공급정책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정부의 주택정책에 이념과 목표가 부여되어야 하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는 4월 주택법 논의과정에서 6월 임시국회에서 최저주거기준을 포함시키는 문제에 대한 논의를 다시 재론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6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최저주거기준과 주택건설종합계획에 최저주거기준 향상을 위한 연차별 구체계획을 포함하도록 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예산이 없어 국민을 비닐하우스, 지하셋방, 쪽방에서 살게 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정부라면 최소한 이러한 주거실태를 숨긴 채 100% 주택보급율을 달성했다고 자랑하는 비도덕적인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하고, 적어도 앞으로는 기본 생활수단의 하나인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평생을 살아야 하는 굴레에서 국민을 해방시켜주겠다는 의지라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남근 / 변호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droith@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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