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01-15   528

[심층분석2]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며

복지현장의 목소리 – 박근혜 정부에 바란다1 [다문화분야]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며

 

이한숙 l (사)이주민과 함께 부설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한국 정부의 이주민 정책이 값싸고 유연한 ‘외국인력’ 활용에서 ‘다문화정책’으로 정책적 전환이 모색되기 시작한 것은 국제결혼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2003년 즈음이었다. 2006년 ‘외국인정책위원회’가 발족된 데 이어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다문화가족지원법」등 근거법령이 제정되었고, 외국인정책 기본계획과 다문화가족정책 기본계획을 통해 2012년까지 향후 5년간의 정책 기조가 수립되었다. 그런데 그 5년은 이주민 당사자들과 그들의 인권 옹호 활동을 해 온 이들에게 길고 힘든 시간이었다.

 

정부는 이주민을 전문인력과 투자자, 선진국 동포, 결혼이주민, 중국 및 CIS 동포, 3D 직종의 이주노동자 순으로 위계적으로 구분하여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전문인력과 투자자에 대해서는 체류권과 국적 획득 등에서 특혜를 주고, 결혼이주민에 대해서는 사회통합정책을 추진한 반면, 소위 단순기능직 이주노동자와 중국 및 CIS 동포에 대해서는 정착을 금지하는 단기순환 정책을 고수해 온 것이다.

 

사회통합의 대상이 혈통주의에 근거해 결혼이주민으로 좁게 한정되었기 때문에, 소위 다문화정책의 예산과 프로그램은 결혼이주민, 그 중에서도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에게 편중되었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은 한국 사회가 그들에게 부여한 신부, 며느리,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에만 국내에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주고, 그 체류권은 한국인 배우자에게 전적으로 종속시켜 두었다. 때문에 이혼한 경우에는 자녀를 국내에서 양육하고 있거나, 한국인 배우자가 사망했거나,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으로 어쩔 수 없었던 경우에만 체류권이 부여된다. 때문에 체류권에 묶인 결혼이주여성의 가정폭력 피해와 사망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3D 직종의 인력부족을 메울 역할을 부여하고, 업종별 직장 이동을 전면 금지하고, 사업장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체류자격이 고용주에게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어서 형식적인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약 10년의 체류가 가능하도록 법 개정을 하면서도 영주권과 국적 신청이 불가능하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장기체류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가족동반과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

 

또한 중국 및 CIS 동포를 차별하는 재외동포법이 위헌판결을 받고 개정된 지 9년이 지났는데도 동등한 법적용을 미루면서, 단지 국적만으로 선진국 동포와 차별적 처우를 해 왔다. 그러면서 여타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보다 사업장 선택권을 넓게 보장하여 이중의 차별 논란을 빚어 왔다.

 

이런 정책적 한계는 미등록 체류자를 양산해 왔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구직신청기간을 하루만 넘겨도 미등록 체류자가 되기도 하고, 사업주의 일방적 이탈신고만으로 미등록 체류자가 되기도 한다. 결혼이주민은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한 사이 미등록 체류자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이주민 유입의 역사가 20여년을 넘으면서 국내에서 가족을 이룬 이주민이 많은데도 정책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 탓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태어날 때부터 미등록 체류자나 무국적자가 되는 아동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강제단속과 추방 일색의 정책으로 인해 미등록 체류자는 의료와 교육 등 기본적인 인권에서 배제되고 있으며, 단속의 두려움으로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도 문제제기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있는 자들에게는 무력하고, 없는 자들에게 날을 세운 현 정부의 ‘법치’가 가져온 결과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는 1차 기본계획이 끝나고, 다음 5년간의 2차 기본계획이 새로이 수립되는 시점에서 치러졌다. 지난 5년간의 다문화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와 학계의 평가는 냉랭하다.

원래 다문화는 민족적․인종적 차별과 배제 없이 이주민에게 인권과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려는 주의 혹은 정책을 의미하는 말로 등장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다문화는 국제결혼가족이나 결혼이주민이라는 특정한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변질되었다. 또한 거기에는 특별한 지원을 받아야 하는 문제 집단이라는 편견이 녹아 있어서 결혼이주민과 그 2세들이 가장 싫어하는 용어가 되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간의 다문화정책이 당사자에게 실제 별반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결혼이주민에 대한 편파적 지원 논란을 야기하면서 다문화정책에 대한 반발을 조장하는 역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다문화정책을 총괄, 기획하는 주무기관 없이 각 부처가 예산 확보를 위해 비슷한 성격의 전시성, 이벤트성 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면서 프로그램이 중복되고, 예산을 낭비한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결과적으로 “외국인만 인권 있나. 버림받은 국민목숨!”, “다 외국인 노동자 때문. 모조리 추방시켜라!”며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이주민에 대한 반감과 혐오가 널리 확산되었다.

 

그러나 향후 5년의 정책기조를 정한 제 2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과 다문화가족정책 기본계획은 이주노동자와 난민 등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그나마 형식적으로 부여되던 영주권과 국적 신청 자격조차 박탈했으며, 결혼이주민의 국적획득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하는 등 이런 현실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이즈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결혼이주민과 그 자녀의 지원 등을 내용으로 하는 다문화공약을 발표했다. 다문화정책 총괄을 위한 독립기구를 설치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다문화이해교육 전문기관을 설립하며,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을 제정해 미등록 이주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등의 공약은 현장의 문제제기를 반영한 공약으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공약들이 주장처럼 “선거를 앞둔 선심성 공약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한 결과라고 보기에는 아쉽고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그동안 현장에서 다문화정책을 총괄하는 독립기구의 필요성을 제기해 온 것은 이주민 유형을 구분해 차별하는 정책을 지양하고, 이주민 일반을 아우르는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선인의 공약은 여전히 다문화 정책의 대상을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만으로 한정하여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다수의 이주민에 대해서는 그 흔한 선심성 공약조차 단 한 문장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래서는 총괄기구가 만들어지더라도 실제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 대통합을 강조해 왔다.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국민은 아니지만 이미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자 지역사회의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통합은 소통에서 출발할 터이지만 이주민들은 투표권도 없고, 아직은 그들의 요구와 주장을 사회에 표현할 조직도 갖추지 못했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이 다수이다. 그래서 정말로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처한 현실과 어려움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며 또 다시 길고 힘든 5년을 견뎌야 하는 것 아닐까 낙담한 것이 사실이지만, 첫 행보부터 현 정부와는 달리 밟아보려는 당선인을 보면서 부디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5년 후에 지난 시간이 너무 짧았다 아쉬워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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