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13-01-07   1540

[시론]정치의 배반, 가난한 이의 아픔

 

[시론]정치의 배반, 가난한 이의 아픔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듯 ‘정치의 계절’이 지나간 다음에 오는 것은 늘 ‘배반의 계절’이다. 국민을 위해서라면 다 내놓을 것 같던 국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예산을 삭감하고 자신들의 지역구 토건예산을 챙기기에 바빴다. 

 

또한 하루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도 매달 120만원의 연금을 받는 ‘헌정회 연로회원 지원금’ 128억2600만원은 잊지 않고 챙겼다. 이쯤 되면 배반이 아니라 막장 드라마다.

 

그들이 삭감한 예산 중에는 저소득층 지원 의료급여 예산도 들어 있다. 이 예산은 작년 말 현재 6138억원이 지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려도 시원치 않을 예산을 국회는 되레 2842억원을 삭감해 버린 것이다.

 

이제 의료급여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진료비 지급은 늦어질 것이고, 이를 우려한 의사들은 미리부터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를 꺼리게 될 것이다. 앞으로 가난한 이들은 병·의원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입원을 하고도 조기 퇴원과 불법 보증금 요구에 시달릴 것이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을 뒤돌아보자. 지난 정치의 계절, 우리 사회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인지 아닌지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고, 여야 할 것 없이 모든 대선 후보들은 복지국가를 외쳤다. 하지만 그들이 외쳤던 복지가 보편적 복지이든, 선택적 복지이든 가난한 이들이 아파도 병원을 갈 수 없는 나라, 가난한 이들의 치료비가 제일 먼저 삭감되는 나라는 복지국가가 아니다. 복지국가는 고사하고 ‘나라다운’ 나라도 아니다. 

 

가난한 이들도 돌봄을 받고 그들의 존엄을 인정하는 나라, 그것은 한 나라가 나라다울 수 있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대선 직후 보여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산 삭감은 우리 사회가, 우리 정치가 얼마나 이중적이며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더욱이 이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마지막 사회안전망인 의료급여 정책은 진료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예산을 적게 책정하여 진료비 지급을 미루곤 하던 2000년 이전의 ‘원시적’ 제도로 ‘퇴행’하고 말았다. 

 

부자들이 좋아한다는 새누리당은 그렇다 치고 민주통합당은 무엇을 했는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서민정당을 표방하는 자신들에게 등을 돌린 가난한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보라. 진정 그들을 배반하고 있는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편임을 자처하면서도 이번 예산안 삭감에 동의한 당신들 아닌가? 

 

극장가에는 영화 <레미제라블>이 인기라고 한다. 그 제목의 뜻은 ‘불쌍한 이들’이다. 그 영화 중 한 장면,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고 어린 딸의 치료비와 양육을 위해 거리에서 몸을 팔다 병에 걸린 판틴(앤 헤서웨이 분)이 부르는 노래, “나는 꿈을 꾸었어요(I dreamed a dream)”에서 그녀는 노래한다. “하지만 가을과 함께 그는 가버렸어요(But he was gone when autumn came).” 

 

정치의 계절이 지나간 자리에 배반만 남았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가 넘는 칼바람 부는 겨울, 해고노동자들은 철탑 위에서 부들부들 떨며 하얗게 밤을 지새울 것이다. 오늘 밤 몇 명의 행려자는 추운 길에서 얼어 죽을 것이고, 연탄을 아끼느라 냉골의 방에서 자야 하는 산동네 할머니는 밤새 기침을 해댈 것이다.

 

정치의 배반에 가장 아픈 이들은 늘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다. 100% 대한민국을 외쳤던 당선인의 행보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하지만 정치가들만 쳐다보고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이 있다. 

 

그들에게 투표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저 “ ‘배반의 바리케이드’는 정녕 넘을 수 없는 것인가?”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사회의학,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 본 기고문은 2013. 1. 6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문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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