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2 2012-11-15   4306

[동향1] 장애인 이동권! 법은 있고 정책은 없다

장애인 이동권! 법은 있고 정책은 없다

 

이병원ㅣ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연구원

 

 

유엔이 제정한 인권헌장(1948)에 의하면, 이동은 ‘인간의 권리’이다. OECD(1998)에서는 “이동은 집을 떠나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의 기본적인 근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의 이동권 개념이 보편화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지난 2001년 1월 22일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 노부부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계에서는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운동이 시작됐다.

 

장애인당사자들의 이 같은 이동권 투쟁 운동 결과 지난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제정․시행되는 성과를 낳았다 교통약자법에서는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라 말하고 있다(법 제3조). 이 법은 각 지자체별로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 등의 도입을 의무화함으로써 교통약자도 쉽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장애인들이 건물이나 시설을 이용할 때의 접근성에도 차별을 두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동권은 왜 중요한가?

이동권은 단순히 독립적 권리가 아닌 사람이 행복한 생활을 위한 권리를 누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즉 사람들이 가진 권리의 총체를 감싸는 보호막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행복추구를 위한 활동의 근간이다. 사람들은 이동권에 의해 정치적 주체가 되며, 생산자 및 구매자로서 경제적 주체가 된다. 좋아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 생각을 공유하는 것. 그것도 이동권에 의해 가능하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34조인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한 해석(2002. 12.18)에서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경우에는 개인 스스로가 자유행사의 실질적 조건을 갖추는 데 어려움이 많으므로, 국가가 특히 이들에 대하여 자유를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고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제반정책 마련을 독려하고 있다. 교통약자법은 이처럼 사람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국가의 의무와 역할을 구체화한 법률이다.

 

법만 만들면 이동권이 보장되나?

교통약자법이 시행이 되면서 장애인의 이동권이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로 인식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실제 교통약자법을 준수해야 할 국가와 지자체가 이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제반정책을 제대로 수립하는가는 다른 문제다. 교통약자법은 기본적으로 국가 – 지자체 – 교통사업자 3개 주체가 유기적으로 관계함으로써 그 성패여부가 갈린다. 가령 휠체어나 유모차가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를 도입하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예산을 책정해놓더라도 버스업체에서 저상버스를 도입하기를 꺼린다면 책정된 예산이 불용처리가 된다. 저상버스 도입을 버스업체에 강제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에 대한 국가의 도입계획과 실제 이행률을 보면 문제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교통약자법에서는 국가와 지자체에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5개년 단위로 수립하도록 되어있다(법 제6조, 제7조). 이 법에는 ‘저상버스 도입에 관한 사항’과 ‘특별교통수단 도입에 관한 사항’을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강제한다. 이 법에 따라 2007년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제1차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계획(07~11)>을 수립하였다. 건설교통부는 당시 계획에서 저상버스를 2007년 304대를 시작으로 2008년 624대, 2009년 2,240대, 그리고 2010년과 2011년 각각 2,685대씩 도입하기로 했다. 계획이 원안대로 추진되었다면 2011년 말까지 9,130대의 저상버스가 전국 지자체에서 운행될 예정이었다. 건설교통부는 이를 위한 4,733억 원(국비+지방비 50%씩 매칭펀드)의 예산 계획도 잡았다. 하지만 실제로 2011년 말까지 도입된 저상버스는 3,899대에 불과해 본래 계획에 비해 42%의 이행률만 보였을 뿐이다. 국토해양부는 올해 3월 26일 <제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계획(12~16)>을 새로이 수립하였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16년까지 저상버스를 13,493대를 도입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제1차 계획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재정여건이 어려운 지자체일수록 저상버스 도입을 꺼리고 있으며, 국가 및 자지체가 버스 업체에 저상버스를 도입하도록 하는 통제력도 사실상 없어 그 가능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특별교통수단도 마찬가지다. 국토해양부는 특별교통수단을 2016년까지 법정대수 대비 10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특별교통수단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국토해양부가 그 계획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12년 3월 국토해양부가 고시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을 보면 전국의 특별교통수단은 2010년 말 기준, 모두 1,318대였다. 하지만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가 2011년 12월 기준으로 각 지자체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조사해보니 1,271대였다. 1년 뒤 조사 결과가 오히려 47대가 부족한 것은 국토해양부의 집계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6곳 시도 가운데 8곳 시도에서만 모두 218대가 부풀려져 집계되었다. 시도별로 보면 경기 47대, 경북 45대, 전북 40대, 대전 30대, 충북 21대, 강원 14, 전남 12대, 충남 9대 씩 부풀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도입률이 부풀려진 이유는 지자체에서 특별교통수단이 아닌 차량까지 특별교통수단으로 산정하기 때문이다. 교통약자법에서는 특별교통수단을 ‘이동에 심한 불편을 느끼는 교통약자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휠체어 탑승설비 등을 장착한 차량’으로 정의하고 있다.(교통약자법 제2조 8항) 또한 이 법에 따르면 ▲현재의 위치에서 목적지까지 이동을 지원하는 차량 ▲ 정기적으로 지정된 노선을 순회 이동하는 차량이 특별교통수단이 된다. 시각장애인심부름센터차량이나 임차택시는 휠체어 탑승설비가 없어 특별교통수단으로 볼 수 없다. 이들 차량은 특별교통수단 이용자를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 효과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특별교통수단 도입대수에 포함시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국토해양부에서도 “시장 또는 군수 소유로 도입․운행하는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및 복지관 등에서 정기적으로 지정된 노선을 운행하고 있는 셔틀버스”를 특별교통수단으로 정의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한 법과 정책간의 괴리는 이 지점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경기도의 이동권 현실

장애인정책 모니터링센터에서 조사한 결과 경기도는 2011년말 기준으로 저상버스 도입대수가 757대로 전국 도입대수의 19.7%를 나타내고 있다. 경기도 지역에 있는 전체 시내버스가 2011년 기준 9,793대임을 감안하면 교통약자법에 따라 전체 시내버스의 1/3인 3,265대를 도입해야 한다. 아직 2,508대가 부족한 현실이다. 각 시군별 저상버스 도입현황은 아래의 <표 1>와 같다. 살펴보면 수원시가 106대로 경기도 전체 저상버스의 14%를 운행하고 있으며, 그 뒤로 성남시 92대, 안산시 87대로 나타나고 있다. 31개 시․군 중 저상버스가 50대 이상 운행 중인 곳은 전체의 1/5인 6개 시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었다(수원, 성남, 안산, 남양주, 의정부, 김포).

 

그러나 전체 31개 시군 중 1/3 가량이 저상버스가 전무한 것으로 드러나 시군간의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부터 향후 5년간의 도입계획에 있어서도 수원시와 성남시와 같은 대도시는 매년 20∼35대씩 증가하고 있는 반면에 저상버스가 전무한 시군들은 도입계획에서도 전혀 의지가 나타나 있지 않다. 이렇게 볼 때, 경기도의 저상버스 도입현황은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저조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시군의 적극적인 정책의지가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경기도의 특별교통수단은 총 129대로 도입률이 23%에 불과하다. 법정대수에서 443대가 부족한 것이다. 전국적인 과부족 대수인 1,514대 중 경기도가 29%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경기도의 장애인구가 많음에도 절대수가 부족함을 의미한다, 경기도 31개 시․군의 현황을 살펴보면, 2011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장애인콜택시의 경우 10대 이상 운행 중인 곳은 6개 시에 불과하다(의정부시, 용인시, 성남시, 수원시, 부천시, 고양시). 이들 6개 시가 보유중인 장애인콜택시는 84대로 경기도 전체의 71.8%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경기도 전체의 절반 가량인 16개 시․군은 한 대도 보유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이중에서 도입계획이 있는 곳은 4곳에 불과하다(동두천시, 연천군, 이천시, 포천시). 이는 경기도의 장애인콜택시에 대한 무관심과 정책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무료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는 곳은 31개 시․군의 1/4 수준인 8곳으로 지자체별로 1∼2대에 불과하다(과천시, 광주시, 군포시, 김포시, 남양주시, 시흥시, 평택시, 용인시). 장애인콜택시가 운행중인 지역에도 운행방법이 지역마다 달라 이에 따른 이용상의 불편함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야간운행과 거주여부에 따른 차별 문제이다. 의정부시를 제외하곤 야간운행(대체적으로 22시∼07시)을 아예 안하거나 하더라도 1대만 배차(고양시, 성남시, 수원시, 용인시, 하남시)한 실정으로 조사되어 대부분이 야간운행의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거주지역에 따른 차별도 7곳으로 조사되어 이도 이용상의 불편함으로 지적되고 있다. 교통약자법에서는 거주여부에 따라 차별할 수 없도록 하고 있어 이를 어기고 있는 것이다.

 

법을 정책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교통약자법과 각급정부의 정책간의 괴리를 채우는 방법은 적극적인 예산투자, 지자체의 관련조례 제정, 계획추진의지, 각계각층의 지속적인 관심 등 종합적인 맥락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이미 국토해양부는 2016년까지 전체 버스의 41.5%를 저상버스로, 특별교통수단은 법정대수 100% 확보를 계획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라 지자체에서는 예산을 투입해야 할 마땅한 의무가 있다. 특히 중앙정부에서 지자체의 예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특별교통수단 도입 시 국비지원 및 저상버스 국비지원을 지자체별 재정여건을 고려한 차등 보조에 대한 계획도 세웠다. 지난 9월 28일 국토해양부는 내년도 예산에 저상버스 도입비 250억, 특별교통수단 도입비 50억원을 지자체에 보조해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상버스를 도입하기 위해서 버스업체에 대한 도입유도정책이 부재한 것은 아쉽다. 버스업체입장에서는 저상버스를 도입할 때 국비와 지방비 지원으로 인해 일반버스 수준의 도입비용만 지불하면 되지만 일반버스에 비해 운영비가 많이 들어가고 고장이 잦아 꺼리는 형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규 버스업체 사업자 선정 시 저상버스를 일정 비율로 도입하고자 하는 업체를 우대하거나, 일반버스 폐차시 일정비율로 저상버스를 필수 도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례 제정 등이 필요하다. 특별교통수단을 제대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도의 책임이 절실하다. 현행 교통약자법에서는 특별교통수단의 도입책임이 시․군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시․군 등 기초지자체의 경우 지하철이나 저상버스가 도입되지 않는 곳이 많기에 이들 교통수단보다 비교적 적은 비용의 예산이 수반되는 특별교통수단이 절실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특별교통수단의 도입 및 운영비용을 국가 및 도의 지원 없이 시․군의 자체예산으로 부담하도록 하여 도입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돌파구는 마련됐다. 지난 5월 개정되어 12월 시행을 앞둔 개정 교통약자법에서는 특별교통수단을 도입할 때 국가 및 도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또한 특별교통수단이 시․군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도록 광역이동지원센터 설치에 대한 조항도 신설됐다. 물론 이들 조항은 임의조항이기에 법과 정책의 괴리는 아직도 존재한다. 장애인단체 활동가 및 장애인 당사자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이 괴리를 채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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