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2 2012-07-15   1648

[동향1] 의료급여 수급자는 아프면 그냥 죽으란 말인가?

의료급여 수급자는 아프면 그냥 죽으란 말인가? 

– 정부의 의료급여 본인부담금 인상 논의에 대해

 

 김정숙 | 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가

 

지난 5월 31일 기획재정부는 관계부처 장관들과 재정분야 전문가를 모아 제1차 재정관리 협의회를 열어 ‘기초생활보장지원사업군 심층평가 결과 및 지출성과 제고방안’을 논의하였다고 한다. 

이날 논의에서 ‘기초생활보장 지원사업’은 절대 빈곤층 축소 등 빈곤완화에 기여하여 왔으나 재정지출의 효율성·형평성, 근로능력자 관리 및 근로·탈수급 유인체계가 미흡하고, 의료서비스 과다이용의 문제가 있다고 평가하였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낮은 본인부담금에 따른 의료이용의 도덕적 해이가능성이 높아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억제하기 위해 기초생활보장 급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의료급여의 지출 개선 제고방안으로 의료급여 본인부담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어 6월 4일에는 국무총리 주재로 ‘사회보장심의위원회’를 열고 기초-차상위 균형지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 해소, 기초생활 통합급여 체계 개편 등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 보고를 통해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등 현재 기초생활보장법의 빈곤정책을 전반적으로 개선할 ‘통합급여체계 개편’ 이 논의되었다.

 

생산적 복지에서 맞춤형 복지로?

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가경제안정화에 주력한 결과 발생한 사회 양극화와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복지정책의 조치로 당시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의 핵심이었다. 개인이 국가로부터 복지혜택을 일방적으로 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신과 가족의 복지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 주 골자였다.

 

그러나, 실상 기초법은 인권과 기본적인 시민적 권리가 아닌 잔여적 성격의 복지정책으로 일반시민들의 지지가 감소하여 정책의 기반이 저해될 가능성이 정책 초기부터 농후했다.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통한 자립자활 조성에 대한 인프라 없이 근로능력만 평가하여 수급을 탈락시키려는 최근의 시도는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빈곤예방, 자활촉진, 기초생활보장 내실화 방안을 논의할 `빈곤정책 제도개선 기획단’을 발족하고 빈곤정책 전반에 걸쳐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후 기획단은 공청회를 통해 최종 사회안전망으로서 기초생활 욕구를 ‘효율적’으로 충족시키는 동시에 ‘자활을 통한 탈빈곤’ 을 적극 지원하는 ‘맞춤형 빈곤대책’ 으로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욕구특성별로 다원화된 맞춤형 지원체계로 수혜 체감도를 높이고, 기본적 삶의 조건에서 배제되지 않고 살아가며, 일을 통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대안으로 ‘맞춤보장’과 ‘사각지대 완화’, 근로빈곤층 자립서비스 지원 및 관리 강화로 ‘탈빈곤 안정화’와 ‘탈수급 유인’을 기대효과로 뽑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정확충 없이 욕구별 맞춤형 급여라는 명분으로 각각의 개별급여 자격조건을 달리하는 것은 빈곤층의 접근성을 더욱 후퇴시키고 기존 수급자에게 지급되던 현금급여(생계급여, 주거급여) 액수를 낮추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근로능력평가기준도 높아지면서 수급자 지원의 축소와 인권침해가 심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려된다.

 

의료수급권자, 지금도 입원시 15% 자기부담인데 5% 더내라? 

‘의료급여’ 개편안은 더욱 심각하다. 의료급여 1종 수급자들이 입원할 때도 ‘본인부담 5%’를 부과하겠다는 것과 근로능력평가를 강화하여 2종 수급권자의 진입을 제한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정부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소득층의 본인부담을 늘리는 동시에 국민건강보험으로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현재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의 경우 입원 시 법정본인부담금이 없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선택진료비나 상급병실료 등으로 인해 의료급여 1종 수급자가 입원해도 본인부담이 전체 의료비의 8~15% 정도 든다. 여기에 법정본인부담 5%를 추가할 경우 전체 의료비의 20% 안팎까지 본인부담률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 정부가 의료급여를 축소하겠다고 논의하기 이전에는 2006년 참여정부 당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미 의료급여 제도를 개악한 역사가 있다. 당시 유 전 장관은 의료급여 대상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시대를 사는 다른 국민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는 사람으로서 이런 정도는 감수할 수 있고, 또 감수해야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귀중한 그 무엇이 공짜로 제공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유 전 장관은 마치 의료급여 대상자가 모든 건강보험 재정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수급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며 ‘의료급여 대상자 본인부담제’를 신설했다. 이제 현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이용을 인위적으로 축소하고, 의료이용에 대한 책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떠넘겨 온 개악정책을 또다시 답습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이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담보로 2004~2006년간 평균 21%에 달하던 의료급여 진료비 증가율이 2007년에는 7.6%로 낮아져, 연간 240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되었다.

 

MB, ‘복지선진국’이라더니 기초수급자 11만명 자격 정지

이명박 정부도 “보편적 복지가 ‘칼끝의 꿀’처럼 위험한 것”이라고 하더니,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매년 보건복지 예산을 늘려왔다”며 스스로 ‘복지 선진국’이라고 우스운 자화자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늘어난 복지예산 대부분은 기초노령연금 지급대상 확대분과 건강보험 재정부담금 등 어쩔 수 없이 늘어나는 ‘법정의무지출’들이었다. 오히려 빈곤, 취약계층과 직결되는 사업비는 지속적으로 삭감했고 올 4월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을 통해 복지수급자 일제정비조사를 통해 11만6000명에 이르는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정지시켰다.

 

정부가 빈곤정책이라고 만든 것이 사실상 가난한 사람들에게 본인부담금을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는 셈이다. MB정부는 부자들에게는 감세를 해주고 4대강으로 대기업들과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재정적자를 키워놓았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는 재정 건전성을 들먹이며 복지 재정을 삭감하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경제위기로 빈곤과 불평등이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비현실적인 부양의무자 기준과 재산 및 소득기준으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정부발표 자료로 410만 명이 넘는다. 또 최저생계비 이하 빈곤층이 600만 명으로 조사되고 있음에도 현재 기초생활보장보호법 수급자는 전 국민의 3%(157만 명, 2010년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도 이 정부는 수급자 보호와 탈수급에 대해 말은 하지만 실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가혹한 정부인 것이다.

 

의료급여 본인부담금 인상 계획, 가난한 사람의 삶 악화시킬 것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지출액이 OECD 최하위로 공공분야가 취약하고 환자부담이 높은 나라이다. 정부의 의료보험 지원액도 계속 줄어 왔고 정부가 말로만 약속해 놓고 지급하지 않은 의료급여 국고 미지급금 누적액도 총 5415억원이나 된다는 것은 잘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마치 이 문제의 원인이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자유방임적이고 과잉진료를 하는 현재의 의료시스템 하에서 기초생활 수급자가 복합적인 질병을 얻었을 때 본인부담금이 늘어나면 의료이용을 포기하는 이들이 더 많다. 이미 조사된 결과에서도 지원되지 않은 의료비 때문에 수급자가 의료이용을 포기한 경험이 20~26%에 이르는 것은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과잉진료가 얼마든지 가능한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에 있지 이를 이용하는 기초수급자에게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들이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치의 제도와 같은 정책변화를 통해 의료이용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수급자의 도덕적인 해이를 거론하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낙인을 조장하는 본인부담금 인상 정책은 역겨운 책임전가이다. 근본적인 과잉진료 공급체계를 개편하는 일에 대해서는 의료계 반발을 의식하여 무기력하면서도, 가난한 국민에게는 ‘도덕적 해이’라는 낙인을 전가시키는 짓이야 말로 이 정부의 도덕적 해이를 드러내는 진면목이다. 언제까지 약한 국민들에게 강하고, 강한 기득권에는 ‘약한 정부’의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본인부담금을 높여 의료급여 제도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겠다는 기획재정부의 이번 발표는, 자신들의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하고 제도 변화에 저항하기 어려운 수급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정부는 경제 위기의 책임을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가시키려고 하는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도덕적 해이’라는 낙인을 함부로 찍어도 되는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유독 엄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 정부의 도덕성은 과연 얼마나 높은가?

 

가난한 국민도 국민이다. 아니 가난한 국민을 적극 보호하고 존중하는 정책적 배려를 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는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다. 더 이상 가난한 국민 개인들에게 빈곤과 복지의 책임을 떠넘기는 ‘꼼수’로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지 마라. 가난과 불평등은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고 공적 책임을 강화시키는 방향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가난한 이들의 삶을 더욱 악화시킬 의료급여 본인부담금 인상 계획 논의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권과 생명권 평등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더 많은 복지를 확대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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