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2 2012-07-15   844

[동향2] 포기할 수 없는 꿈,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꾼다

 

포기할 수 없는 꿈,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꾼다

– 3회 청소노동자 행진에 부쳐

 

류남미 | 공공운수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

 

‘포기할 수 없는 꿈’들의 행진

‘분회장이되기 전에는 큰~빌딩을 갖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경희대 총장과 직접 교섭해보는 게 꿈입니다!’ 경희대 청소노동자 백영란 분회장의 포기할 수 없는 꿈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3회 청소노동자 행진은 시작되었다. 6월 15일 오후 4시 30분 홍익대 앞은 포기할 수 없는 꿈을 가진 800여명의 청소노동자와 학생 시민들도 가득 채워졌다. 홍익대역, 상수역, 신촌역에서 시작된 행진, 고깔모자를 쓰고 빗자루 피켓을 든, 광대와 풍물패를 앞세운 행진이 마침내 홍익대 정문 앞에서 만난 것이다. 이후 이들의 포기할 수 없는 꿈은 집단 율동이 되었고, 연극이 되었고, 간드러지는 트롯 메들리와 춤이 되어 잠시도 시선을 땔 수 없는 흥겨운 축제 마당을 만들었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쥐꼬리만 한 월급, 언제 잘릴지 모르는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란 법 없다.’(한원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은 당연히 계단 밑, 지하실이란 법 없다. 청소노동자는 온 몸에 골병이 들고, 위험한 약품을 만져도 된다는 법 없다.’(이영분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청소 일을 한다고 막말을 듣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홍현숙 동덕여대 청소노동자) 

‘민주노조 이것은 우리 청소, 경비노동자의 꿈이다. 모든 노동자의 꿈이다.’(이숙희 홍익대 청소노동자)

 

이것이 6월 15일 3회 청소노동자 행진에서 외쳐진 청소노동자들의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먹고 살만한 임금, 해고 걱정 없이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 그리고 이 모든 꿈을 현실로 만들어갈 민주노조. 이것은 청소노동자들만의 외로운 꿈이 아니다. 청소노동자들의 꿈은 쌍용차 노동자의 꿈과 같고, 재능 노동자의 꿈이며, 전북버스 노동자의 꿈과 다르지 않다. 또한 이 꿈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대학생, 만원 지하철에 지친 몸을 싣고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꿈이며, 하루하루 힘겨운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의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 청소노동자 행진은 포기할 수 없는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행진이기도 하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때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10년 6월 5일 오후, 젊음의 거리 대학로에 50~60대의 여성들이 하나 둘 나타나더니 마로니에 공원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500여명의 청소노동자들과 학생,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마로니에 공원을 꽉 채웠다. 청소노동자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우리는 당당한 노동자’ ‘우리에게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도심의 유령처럼 살아가던 청소노동자들이 ‘청소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여 스스로의 권리를 거침없이 당당하게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1회 ‘청소노동자 행진’을 개최하는 순간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은 고령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청소 일을 한다는 이유로 저임금과 각종 차별에 시달렸다. 새벽부터 건물 구석구석을 쓸고 닦지만 정작 청소노동자들에게 주어진 공간은 계단 밑, 지하실, 화장실이었고, 청소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서러운 한 끼 밥을 먹어야 했다. 연말마다 반복되는 고용불안은 젊은 소장의 반말과 폭언도 그저 참아야 하는 일로 만들었다. 때로는 몇 푼 안 되는 임금에서 관리자의 선물을 사야했고 남의 집 산소 벌초도 해야 했다. 일하다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손님들이 있는 곳에서는 앉을 수도 없고, 땀 냄새에 얼굴 찌푸리는 이들을 피해 빈 엘리베이터가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가장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존재하지만 노동자로서 아무런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청소노동자, 그래서 우리는 청소노동자를 이 사회의 ‘유령’이라고 불렀다. 그 ‘유령’들이 2010년 6월 환한 대낮에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날 그 행진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2011년 새해 벽두 집단해고에 맞선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청소노동자의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사회적 문제로 만들었다. 이후 2011년 3월 8일 서울지역 대학 청소노동자 860여명은 최저임금이 아닌 생활임금 쟁취와 원청과의 직거래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그 파업의 결과로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넘어선 임금과 동일한 단체협약을 쟁취할 수 있었다. 청소노동자의 임금은 당연히 최저임금이라는 사회적 공식을 깨기 시작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올해 1월 26일부터 시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 29조 ⑧항에는 ‘원청이 용역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실과 샤워실 등의 위생시설을 설치할 장소를 제공하는 등의 협조를 취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더 이상 청소노동자들이 계단 밑, 지하실, 화장실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부족하나마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청소노동자들이다. 예전에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던 학생처장에게 당당하게 큰소리를 치고, 반말과 폭언을 일삼던 소장의 버릇을 고쳐놓았다. 청소 일을 한다는 부끄러움은 자식들에게 저 건물이 내가 청소하는 건물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청소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를 통해 인간으로서,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은 이 조금의 권리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민주노조를 와해시켜 청소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권리를 다시금 빼앗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교섭창구단일화’이다. 

 

민주노조로 단결할 권리, 권리를 위해 투쟁할 권리

3회 청소노동자 행진을 개최했던 홍익대 정문 앞에는 지난 5월 9일부터 임단협 체결과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홍익대 청소, 경비노동자들의 천막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 초 공공운수노조는 홍익대, 고려대, 경희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의 청소 ․ 경비 ․ 시설관리 업체와 임금인상 및 단체협약 체결에 합의했다. 그러나 홍익대 경비용역업체인 용진실업은 지난 해 7월 이후 ‘홍경회노동조합’이라는 어용노조가 설립되고 이들이 경비노동자 중 다수를 조직하게 되자 공공운수노조와의 교섭을 지금까지 거부하고 있다. 이 와중에 용진실업은 홍경회노동조합과 올해 임금을 시급 4900으로 합의했다. 이는 타 대학 집단교섭에서 합의된 시급 5100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전주지역에 있는 전주대, 비전대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현재 서울 강남에 위치한 밀알학교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부장의 단식투쟁도 50여일에 가까워가고 있다. 전주대와 비전대 청소 ․ 경비노동자 130명 중 113명은 월 70여 만 원의 저임금과 비인격적인 처우를 개선하고자 지난해 6월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한 뒤 용역업체인 온리원 측에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이후 온리원에는 온리원이 운영하는 ‘천냥마트’라는 전국 30여개의 영업매장 판매원을 중심으로 온리원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이후 사측은 교섭창구단일화를 이유로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비단 홍익대와 전주대, 비전대 뿐만 아니라 연세대, 이화여대 등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통해 조금씩 권리를 쟁취해 온 대다수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생겼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염원이었던 복수노조 허용이 교섭창구단일화라는 악법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억압하는 제도가 된 것이다. 저임금과 각종 차별, 비인격적인 처우에 시달리던 청소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통해 처우를 개선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해 왔는데, 교섭창구단일화는 청소노동자들이 민주노조로 단결해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투쟁할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노동자들은 명확히 알고 있다. 민주노조로 단결할 권리, 권리를 위해 투쟁할 권리의 박탈은 곧 청소노동자들이 쟁취한 모든 권리의 박탈이다. 그것은 청소노동자들에게 새로운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빼앗는 것이다. 또다시 파리 목숨이 되어 소장 말 한마디에 벌벌 떨어야 하는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과거로의 회귀다. 따라서 청소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꿈꿀 수 있는 희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오늘도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4회 청소노동자 행진에 당신을 초대한다 

청소노동자들이 ‘유령’이 아님을 선언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선 이후 수많은 시민들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했다. 자신이 설계한 건물에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너무도 부끄러웠다는 어느 건축사의 고백, 어린 자녀와 함께 홍익대 농성장을 찾았던 이름 모를 이들, 지금도 SNS를 통해 청소노동자의 투쟁을 알리고 응원하는 이들, 이루다 글로 옮길 수 없는 수많은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은 청소노동자들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청소노동자를 지지하는 응원이 연민의 마음을 넘어 포기할 수 없는 꿈을 위해 투쟁하는 청소노동자들과의 든든한 연대로 확장되길 기대한다. 먹고 살만한 임금, 해고 걱정 없이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 그리고 이 모든 꿈을 현실로 만들어갈 민주노조라는 청소노동자들의 꿈이 당신의 꿈과 다르지 않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청소노동자들과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당신을 4회 청소노동자 행진에 미리 초대한다. 당신의 직장과 아파트에서 매일 같이 마주치는 청소노동자와 함께 온다면 더더욱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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