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10-01   1158

[복지칼럼] ‘공정’이 화두인 시대에 생각해보는 질문, 어떤 공정인가?

‘공정’이 화두인 시대에 생각해보는 질문, 어떤 공정인가?

 

남찬섭 동아대학교 교수

  

최근 ‘공정’이 우리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이 공정 담론은 여러 사례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해 이른 바 조국사태라 하여 수개월 동안 검찰발 뉴스가 언론을 도배질하였고 그 중 중요한 화두가 공정이었으며 그것은 주로 입시와 관련해 제기되었다. 그 후 올해 여름에는 인천국제공항 보안직군의 직고용이 발표되면서 또다시 공정 논란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지난 8월부터 9월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는 의사들의 집단휴진이 진행되었는데 그 집단휴진의 근거 중 하나가 공정이었다. 전공의를 중심으로 한 젊은 의사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공공의대 설립과 의사정원 확대 등의 정책을 밀어붙였다고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 단체는 인천국제공항 보안직군의 직고용을 반대하는 청년들과 연대한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이들 여러 사건들에서 제기된 공정 담론의 핵심내용은 무엇인가?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경쟁절차에 어떠한 오염도 개입되어서는 안되며 그렇게 어떤 오염도 개입되지 않은 경쟁절차를 거쳐 소정의 성과를 얻었다면 그 이후의 과정에서 얻는 성과는 모두 정당화된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식으로 공정을 바라보는 것은 공정을 경쟁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며 이렇게 본 공정을 경쟁적 공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적 공정의 시각에서는 경쟁을 둘러싼 넓은 의미의 과정보다는 경쟁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절차가 더 중요시되는 경향이 있다. 이른 바 조국사태 때 자녀의 영어논문과 표창장이 문제가 되었고 이것은 사실 대부분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였다는 것이 최근의 재판과정에서 밝혀지고 있다. 지난 해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영어논문이나 표창장이 좁은 의미의 직접적인 경쟁절차를 오염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좁은 의미의 경쟁절차의 오염에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은 그 좁은 의미의 경쟁절차에서 전국의 수많은 고등학생들이나 대학생들에 비해 이미 많은 특혜를 누리고 있는 소위 명문대학 재학생들이었다. 지난 해 지방대 학생들 중에 영어논문이나 표창장으로 입시공정성 문제에 시비를 제기한 사례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명문대 학생들에게는 지방대 학생들이 입시의 공정을 문제삼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지되지 않았겠지만 이 사실 자체가 공정이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 제한되게 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서울의 명문대는 서울의 특정 지역 특정 계층 출신이 장악한 지가 오래되었다. 이처럼 특정 지역과 특정 계층 출신이 명문대를 장악한 한 극단적인 결과가 의사들의 집단휴진 때 의협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의사가 된 사람’과 ‘시민단체 추천으로 공공의대에 가서 의사가 된 사람’을 비교한 카드뉴스이다. 지역에서 일할 예비의사를 뽑는 과정에 해당 지역의 시도지사와 시민단체의 추천이 시험과 함께 포함되는 것은 사실 문제가 될 것이 없는데도 직접적인 선발절차만 따지는 좁디좁은 시각에 갇혀 의료 인프라의 균형적 분포나 국민들의 의료권리 등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민단체나 시・도지사의 추천만으로 공공의대에 입학할 수 있는 것처럼 가짜뉴스를 만들고 더 나아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시험을 잘 치는 사람만 의사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할 정도로 끼리끼리의 폐쇄적인 문화에 갇혀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옛날 대입 본고사가 있던 시절 소위 명문고를 나와 서울대에 입학한 사람들이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서로 만나서 대입성적이 몇 점이었느니 그걸로 서열을 이야기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과 흡사하다.

 

특정 지역과 특정 계층 출신이 특정 전공이나 특정 대학을 장악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공정이 무너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가 공정하게 작동하려면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는가 혹은 어떤 부모를 만났는가가 이후의 삶의 경로에 지나치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는가 혹은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는가는 개인이 선택하거나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에 입시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명문대생들은 이런 의미의 공정성에는 눈을 감고 지나치게 좁은 의미의 입시절차에만 그것도 대부분 가짜뉴스에 근거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 인천국제공항 사태도 결국은 경쟁을 통한 승부만이 공정을 보장하는 것이고 그 외의 어떠한 절차도 공정을 보장할 수 없다는 좁은 의미의 경쟁절차에만 주목한 결과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한다. 보안직군과 그 외 정규직 직군은 다르며 공항업무의 특성상 보안직군은 필수 직종이라는 정부의 설명에도 공정시비가 가라앉지 않는 주된 이유는 우리는 그 치열한 입사경쟁을 뚫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고 치열한 입사경쟁절차를 거쳐 입사하는데 보안직군은 그런 ‘공정한’ 경쟁절차 없이 정규직 전환이라는 절차에 의해 부당하게 입사한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고 본다(이처럼 대단히 좁은 의미의 시험절차에 공정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최근 국가고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에 대한 추가적인 구제조치를 반대하는 강력한 근거로 작용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에 의해 그런 좁은 의미의 경쟁절차에 아예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지난 9월 중순에는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천의 한 초등학생 형제가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나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형제는 대단히 불행한 사태를 당했지만 이처럼 불행한 사태까지 당하지 않더라도 이들처럼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은 많이 있고 현재 코로나 사태로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아이들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지금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훗날 의사가 되는 꿈을 꾸거나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되는 꿈을 꿀 수 있을 것인가?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건 어떤 지역에서 태어났건 모든 사람은 꿈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꿈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인프라를 공평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부모와 지역에서 태어난 관계로 누리는 온갖 인프라에 대해서는 이를 당연시하면서 그런 인프라가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사회구조적 현실에 눈을 감는 것을 공정이라 할 수 있을까?

 

좁은 의미의 경쟁적 공정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구조적 공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 인천 라면 형제 사건에서 우리는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던 우리나라의 공교육이지만 그 공교육이 교육만이 아니라 돌봄의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특히 초등교육에서 학교는 돌봄의 공간으로 매우 중요하다. 물론 우리나라는 교육이 별도의 자치로 운영되고 있는 점이 독특하고 또 교사들은 교육서비스의 제공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나 여타 돌봄수행기관들과 협업체계를 구축하여 일과시간뿐만 아니라 방과 후에도 학교가 돌봄의 공간으로 작동될 필요가 있고 이렇게 할 때 교육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의대도 마찬가지이다. 의사들의 집단휴진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의정협의체 구성을 의협과 합의했지만 여기에는 국민이 포함되어야 하며 이런 협의체를 통해 정부가 추진하려던 공공의료 확대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어떤 지역에 거주하건 의료서비스는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지난 의사 집단휴진 사태 당시 전공의들은 코로나 감염병으로 고생하는 의료진에 대해 국민들이 표현한 감사의 표시를 거꾸로 이용하여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더니’ 라면서 오히려 국민들의 감사 표시를 조롱하였다. 전교 1등 해서 의사가 되었다고 해서 수많은 이득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의사들이 취하는 이득의 대부분은 국민들이 매달 꼬박꼬박 내는 건강보험료에서 온 것이다. 의사들 내부의 보수의 불평등이나 병원이 의사들을 고용하여 취하는 지나친 이득의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건강보험료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제도에만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태도는 근시안적이고 지나치게 좁은 시각에 근거한 것이며 의사들 스스로가 자신들은 의료기술자일뿐 보건의료정책에는 문외한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난 해의 조국사태와 올해의 인천국제공항 사태 그리고 의사들의 집단휴진 사태로 이어지면서 제기된 공정 담론은 지나치게 좁은 의미의 경쟁절차에 한정된 경쟁적 공정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청년층이 이런 좁은 의미의 경쟁적 공정에 집착하게 된 배경에는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전개된 신자유주의화가 놓여있다. 재벌에 의한 한국경제의 수직계열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및 양극화 그리고 재벌의 경제권력에 빌붙은 언론과 권력기관들의 부패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화와 양극화를 방치하고 부추겨왔다. 이를 방치한다면 한국사회는 활력을 잃을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당면의 과제로 권력기관과 언론, 재벌을 개혁하는 과제를 하루빨리 완수하여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루어지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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