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12-01   785

[동향1]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소송의 의미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어떤 의사로부터 과로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자료가 별로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한 연구를 열심히 하는 유럽 등지에서 사람들이 과로를 하지 않아 연구대상이 별로 없고, 과로가 많은 한국과 같은 나라들은 그러한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무직도 과로로 숨지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국가가 은퇴해도 된다는 연령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아파서 일하기 힘들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C씨는 심혈관계 질환으로 일을 하지 못해 기초생활수급자로 보호받던 중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근로능력 있음” 평가를 받고 취업시장에 내몰려 지하주차장 청소부로 일하다 수년 전 심혈관계 질환 치료를 위해 이식받은 인공혈관 주변 감염으로 숨졌다. 사안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2014년 여름 즈음으로 당시 C씨는 이미 중환자실에서 코마 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고통스러운 생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C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유족인 배우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국가는 무슨 죄를 지었다고 아픈 사람에게 일을 하라고 시켜서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는가. 공공부조를 받은 것 자체가 잘못이었던 걸까? 당시 2010년부터 시행된 “근로능력평가” 도입을 시작으로 2012년 말 “근로능력평가사업”의 국민연금공단 위탁, 2014년 “근로빈곤층취업우선지원사업” 시범실시, 2015년 “근로빈곤층취업우선지원사업” 전국실시로 이어진, “근로능력” 있는 빈곤층의 노동시장 내몰기가 절정을 이루던 때였다. 그 바탕에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너무 관대하게 운영되어 수급자들이 근로능력 있어도 노력해서 탈수급을 하지 않고 안주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C씨는 “근로능력 있음” 평가를 받을 당시 근로능력이 없다가 갑자기 생긴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C씨 사망 이후 유족은 빈곤사회연대의 도움으로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근로능력 있음” 평가의 근거에 대한 정보의 공개를 청구했지만, “공정한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라는 이유로 비공개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은 당시 C씨를 “고혈압”이 있거나 “심혈관계 질환이 의심되는 경우”에 해당하는 의학적 평가 1단계로 평가하였다. C씨의 주치의인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문의가 작성한 근로능력 평가용 진단서는 주요 증상과 치료 내용에 대해 도저히 1단계로 볼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고려되지 않았다. 근로능력평가를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최근 2개월분의 진료기록부에 수년 전 받은 인공혈관 이식수술 이력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진료기록부는 기재 당시의 진료내역만 기재하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C씨는 의학적 평가 점수에 합산되는 활동능력 평가를 위해 방문한 국민연금공단 직원에게 수술받은 사실을 말했으나, 이 역시 의학적 평가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런데 의학적 지식이 없는 C씨는 진료기록부에 어떤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고, 국민연금공단이 자신의 수술이력을 평가에 반영하지 않았음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평가의 “객관성”과 “전문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조치들이 결국 C씨의 건강상태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정보가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 직원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근로능력평가에서 누락되어

C씨의 실제 건강상태와 상반되는 평가가 이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공단은 소송 내내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라 근로능력평가를 했고 C씨가 재판정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단은 잘못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론을 최대한 막기 위해 근로능력평가의 근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잘못된 결과의 책임을 다시 수급권자에 미루는, 위탁받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으로서 무책임하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는 태도였다.

국민연금공단의 잘못된 근로능력평가는 수원시의 잘못된 “근로능력 있음” 판정과 조건부수급자 선정으로 이어졌다. “근로능력 있음” 판정 직후 조건을 부과하기도 전에 수원시는 C씨 가구의 급여액 중 60%를 삭감하였고, C씨가 취업성공패키지사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확인한 후에야 급여를 복귀시켰다(삭감한 급여는 회복하지 않음). 당시 수원시는 “근로빈곤층 취업우선지원사업” 시범실시 지역에 속했고, 수원시는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은 모든 수급자를 자활역량평가 없이 곧바로 고용센터에 인계하여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에 참여시키라는 보건복지부의 공문에 따라 C씨에게 고용센터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에 참여하라는 조건을 부과하였다.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은 노동시장에서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으로, 원래 수급권자 중 자활역량이 가장 양호한 사람들이 배치되는 사업이다. “근로빈곤층 취업우선지원사업” 실시로 근로능력 있다는 판정을 받은 수급권자들은 모두 취업을 전제로 한 취업성공패키지사업으로 인계되어, 거기서 탈락한 사람들만이 다시 지자체로 재배치하도록 하였다. C씨는 수원시가 부과한 조건을 잘 이행했다. 숨차서 계단도 오를 수 없는 몸으로 교육프로그램에 성실히 참여하였다. 그나마 감당할 수 있는 일이 경비라는 생각에 의미 없는 교육훈련 과정은 건너뛰고 바로 구직단계로 넘어갔다. C씨는 3교대근무나 주간근무를 희망하였으나 그러한 일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거주지 근처이고 주간근무가 가능한 대형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 청소부로 취직하였다. 그러나 C씨는 취직 3개월 만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3개월 만에 사망하였다. 국가가 부과한 조건대로 자활했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이처럼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할 것을 조건으로 하여 생계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9조 제5항에 근거로 두고 2000년대 후반 이후 강화된 한국형 근로연계 복지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의 픽션을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 모든 과정은 C씨의 자활을 위한 것이었다지만, C씨의 의사는 “평가”의 대상이 될 뿐, 자신의 인생경로에 대해 올바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보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C씨는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은 이유, 자신의 건강상태에 맞는 일자리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일자리인지, 그러한 일자리가 없으면 취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내를 전혀 받지 못했다. 문제는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 똑같은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데 있다. C씨의 사안은 인권단체들의 노력으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부당한 조건부과로 수급에서 탈락하거나 지병이 악화되거나 심지어 사망했더라도 스스로를 부양하지 못한 자기 책임으로 돌아가서 알려지지 않은 사례들이 있을 것임은 넉넉히 짐작된다.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조건부과는 국가가 후견적 입장에서 최저생활보장을 담보로 수급자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최근의 제도 변화는 근로능력평가와 조건부과에 대한 책임마저 불분명하게 하고 있다. 근로능력평가의 국민연금공단 위탁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의 전문성을 활용하겠다는 것이었으나, 처음 위탁할 당시에도 수급권자를 진료해온 의사가 발급한 진단서가 신뢰성 없다는 이유로 수급권자와 만나보지도 못한 간호사 자격 있는 심사 직원에게 의학적 평가를 맡기겠다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1) 국민연금공단의 근로능력평가는 수급권자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의학적 평가는 서류심사를 원칙으로 하고, 의학적 평가점수와 합산되는 활동능력평가는 한 번의 대면심사로 이루어짐).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명목이지만, 수급권자와 소통하는 형식적 결정권자(보장기관)와 실질적 결정권자(국민연금공단)의 분리는 처분의 권력성을 높이고 책임성을 약화시켰다. C씨에게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국민연금공단은 C씨에 대한 근로능력평가를 함에 있어 최근 2개월분의 진료기록부에 관련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주치의 작성의 근로능력 평가용 진단서 내용을 배척하였다. 수원시 담당 직원은 C씨의 수술 이력을 알고 있었으나 국민연금공단의 평가 결과대로 기계적으로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하였다. 소송에서도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근로능력평가사업 위탁은 보장기관인 수원시에 위탁 기관으로서의 책임 외에 독립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 사유가 되었다.

1심2)에 이어 항소심 법원3) 역시 잘못된 근로능력평가가 취업 강요와 수급권자의 사망으로 이어졌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보장기관으로서 국민연금공단의 근로능력 평가를 토대로 C씨에 대해 최종적으로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하고 추정소득을 부과함으로써 급여부터 삭감한 후 조건부수급자로 선정하여 조건을 부과한 수원시에 대해 위탁 기관으로서의 책임 외에 독립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행정에 경종을 울리지 못한 점은 여전히 아쉽다. 추정소득 부과 및 급여 삭감에 관해 법원은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3년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의 추정소득 부과에 관한 내용은 법적 근거가 없고 해당 사업안내에 따르더라도 조건 불이행시에 부과하도록 되어 있는데 조건부 수급자로 선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C씨에게 추정소득을 부과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하면서도 “망인이 근로능력 있음으로 판정되어 조건부 수급자로 결정된 이상에는 구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30조에 의하여 조건 불이행시 생계급여의 지급이 중단되는, 다시 말하여 자활사업 참가 등의 조건 이행에 나서야 하는 구조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피고 (수원)시가 망인에 대하여 2013년 11월 망인에 대하여 추정소득을 부과하여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감액한 것과 이 사건 사고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까지 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 객관적이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근로능력평가가 자활해야 하는 당사자인 기초생활수급자의 의사를 무시하는 빌미가 되는 “구조적” 문제가 다소 역설적으로 소송에서마저 피해자의 불이익으로 작용한 셈이다.

객관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된 근로능력평가가 실제로 단기간 자활(현행 제도상 ‘자활’은 유급노동을 통한 자활로 이해되고 있다)4)이 가능한 사람들을 조건부 수급자로 선별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그동안 많은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활사업 참여자들은 대개의 경우 근로능력이 미약하다.5) 따라서 이들에 대한 유급노동을 통한 “자활” 강요는 무의미하거나, 폭력적이거나, C씨의 경우처럼 생명권과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자활이란 애당초 강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활은 강요가 아니라, 더 나은 생활과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 활용하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목적에 맞는 제도운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C씨는 수원시가 부과한 조건을 성실히 이행하여 목적인 취업까지 달성하였다. 이처럼 국가가 부과한 조건을 모두 이행했다면 상황이 전보다 나아져야 하는데 “자활” 강요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국가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1) 라포르시안 2012. 12. 3.자 기사, 의사는 진단만, 평가는 간호사가?… 이상한 ‘근로능력평가’

2) 수원지방법원 2019. 12. 20. 선고 2017가단531037

3) 수원지방법원 2020. 10. 29. 선고 2020나51686

4) 김병인 외, 복지국가의 활성화와 사회적 시민권의 재구성, 비판사회정책 제6호, 2020, pp. 7-44. 위 논문은 “한국 사회에서도 일을 통한 빈곤 탈출, 고용연계복지정책 등 다양한 정책 개혁 담론이 드러내는 것처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정책 개혁은 급여 인상이나 수급자격의 완화 등 최저소득보장 의 관대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보장성 확대’보다, 기초생활수급자의 탈수급 및 경제적 자활을 유도하기 위한 ‘노동유인 개선’에 방점을 두어 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5) 권지성 외, 자활사업 실무자들이 경험한 자활사업의 맥락과 패턴: 지역자활센터 실무자들과 관련 공무원들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20권 제8호, 2020, pp. 232-250; 정성철, ‘나, 다니엘블레이크 소송’과 근로능력평가 –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혁의 과제 발제문, 반빈곤정책포럼, 2017, pp. 5-27; 이문국, 자활사업 제도 변화에 따른 조건부수급자 참여 변화 실태와 정책적 대응방안, 사회서비스연구 제6권 제1호, 2016, pp. 8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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