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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20
  • 2020.07.01
  • 743

긴급재난지원금이 가져온 새로운 선순환의 가능성

 

윤형중 정책연구자

   

재난 기본소득 논의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까지

정부가 5월 13일부터 총 14조 2448억원 규모로 지급하기 시작한 긴급재난지원금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전국민 대상의 현금성 수당이었다. 재난 대응 성격의 현금성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논의는 국내에서 ‘재난 기본소득’ 논쟁에서 비롯됐다. 필자는 2월 25일에 미디어오늘에 ‘재난 기본소득을 검토해보자’는 칼럼을 기고해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필자는 칼럼에서 “스스로 감지한 위험의 정도에 따라 멈추는 선택을 해야 하지만, 실제 일을 멈추는 사람은 경제 형편과 직장에서의 입지가 괜찮은 사람에 한정된다"라며 모든 이들에게 잠시 멈출 권리를 보장하자는 방역 차원의 재난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하지만 같은 칼럼에서 필자는 “’재난 기본소득’은 아직 논의가 무르익지 않은 정책 제안”이고, “재난을 계기로 내가 했던 연구를 알리려는 것인가라는 자문이 집필을 주저하게 했다. 그럼에도 공론장에서 다양한 모색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 글을 쓴다”라고 썼다.

 

필자가 ‘재난 기본소득’이란 아이디어를 조심스레 꺼낸 이유는 아직 기본소득이 충분히 알려지지도, 논의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본소득은 축적된 논의가 있는 나름 뿌리가 있는 의제이지만, 최근 들어 활발한 논의를 거치며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개념이고, 여러 이념적 스펙트럼을 반영한 다양한 기본소득 모형을 만들 수 있는 특징도 있다. 기본소득의 개념 중에서 아직 공신력 있는 합의가 이뤄진 부분은 5가지 요건인 보편성(모두에게 지급), 무조건성(소득이나 자산 조사, 의무 부과 등이 없음), 개별성(가구가 아닌 개인 단위로 지급), 정기성(일정한 간격으로 지급), 현금성뿐이다. 기본소득을 현실의 정책으로 실현하려는 활동가, 연구자, 정치인 등이 소속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가 공인한 이 개념은 기본소득의 ‘지급’ 측면에서만 주요 요건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고,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에 있어서는 2016년 서울총회에서의 결의인 “우리는 사회서비스나 수당을 대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계층, 취약계층, 또는 중저소득층의 처지를 악화시킬 경우 그러한 대체를 반대한다” 등 여러 합의가 있었으나 필수 요건으로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기본소득은 다양한 정치적 주체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반영한 여러 유형을 만들 수 있는 ‘동상이몽적 의제’이고, 각각의 정치적 주체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재원을 마련하느냐’에서 주로 드러난다.

 

무엇이 기본소득이고, 무엇이 아닌가

기본소득이란 이름은 다소 알려졌지만, 개념과 특징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에 기본소득 논쟁은 주로 오해에서 비롯되거나, 특정한 일면에 과몰입하는 형태가 반복되고 있다. 재난 기본소득 논쟁 초기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무조건성’조차 충족되지 않은 정책이 ‘기본소득’으로 불리는 탓에 ‘잘못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필자의 칼럼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이 논의 초기에 공론화를 주도한 이재웅 당시 쏘카 대표는 "경계에 서 있는 소상공인, 프리랜서, 비정규직, 학생, 실업자 1천만 명에게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집세를 낼 수 있는, 아이들을 챙길 수 있는, 집에서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는 소득이 필요하다"라며 1천만 명에게 50만 원씩 지급하자고 주장했고, 바로 이어서 신생 정당인 ‘시대전환’이 “비임금근로자 650만 명, 비정규직 750만 명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두 제안 모두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수당을 기본소득으로 부르며 오해를 야기했다. 지자체 최초의 재난 기본소득 사례로 알려진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역시 중위소득 100% 이하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소득조사를 기반한 선별수당이었다. 이들 주체의 의도와는 별도로 이들이 주장한 현금수당은 기본소득의 가장 기본적 요건인 ‘무조건성’을 충족하지 못한다.

 

선별수당이 기본소득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이런저런 현금성 수당을 기본소득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 무엇이 진짜 기본소득인지 등의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기본소득의 5가지 요건은 대개 우리 사회에서 ‘진짜 기본소득 감별사’ 역할을 하고 있다. 기본소득 비판론자들은 이 5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않는 ‘재난 기본소득’(정기성 미충족), 경기도의 청년 기본소득(만 24세 청년에게만 지급해 보편성 미충족) 등을 기본소득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동안 축적된 기본소득 논의에선 이 5가지 요건은 감별사 역할이 아니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5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기본소득을 실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무조건성을 제외한 다른 요건들을 선택적으로 취합한 ‘범주형 기본소득’이나 ‘부분 기본소득’을 완전 기본소득으로 가는 경로적, 과도기적 대안으로 본다. 특히 선별을 최소화하는 ‘무조건성’이 적용된 현금 수당은 기본소득의 중요한 특징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기본소득 논쟁에서 5가지 요건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일부 기본소득 비판론자들은 ‘충분성’을 기본소득의 기본 요건이라고 스스로 정의한 뒤에 충분한 금액을 달성하지 못하면 ‘가짜 기본소득’ 혹은 ‘용돈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은 그간의 기본소득 논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서는 “충분히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지한다”라는 결의를 한 적은 있지만, ‘충분성’을 기본소득의 기본 요건으로 삼지 않았다. 충분성에 대한 각국 네트워크와 연구자마다의 생각이 다르고, 비록 충분성을 중시하는 이들이라도 낮은 수준의 금액부터 시작하는 과도적 기본소득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칼럼에서 정기성을 제외한 4가지 요건(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 현금성)을 갖추면서 재난을 계기로 시작하는 기본소득을 ‘재난 기본소득’이라고 개념화하고, 선별적 현금수당을 ‘재난수당’이라고 구분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과는 별도로 필자는 기본소득 제안이 세금 제도의 개편으로 이어져 정기적인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면 ‘정기성’이 충족된다고 봤다. 기본소득은 대체로 세금 제도의 개편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세제 개혁의 동력이 복지 체험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복지체험이 우선이냐, 재원 마련이 먼저냐는 ‘닭과 달걀 중에 무엇이 먼저냐’는 논쟁처럼 진행되기가 쉽다.

 

모두가 정부로부터 현금을 받은 전례 없는 경험

긴급재난지원금으로 기본소득 논쟁이 촉발된 결정적인 배경은 재난 기본소득의 이름 논쟁보단 모두가 현금을 받으면서 겪게 된 집단적인 ‘복지 체험’이었다. 오히려 모두가 현금을 받으면서 겪게 된 집단적인 ‘복지 체험’과 선별과 보편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일단 긴급재난지원금은 광범위한 계층, 직종이 처음 경험하는 복지였다. 한국의 복지 체계에서 근로연령 인구 가운데 복지 수혜층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취약계층 중에서도 복지 수혜자는 일부에 한정된다. 대표적인 공공부조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경우 2018년 대상자가 174만 명으로 인구의 3.3%에 불과하다. 물론 대다수의 중산층도 고령자가 되면 기초연금, 국민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누리게 되지만, 수혜 연령층이 되기까지는 복지의 효용을 덜 체감하게 된다. 모든 국민이 빠짐없이 국가로부터 일정 금액의 현금을 똑같이 받은 경험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기본소득’과 동등한 체험이기도 했다.

 

또한 기존의 복지 지원체계의 대상자와 코로나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 영세사업자 등이 서로 미스매칭되는 문제가 있었다. 경제적 피해를 입은 대상을 지원하려면 기준을 세우고, 예산을 확보하며 피해 대상자에게 신청을 받고, 지원 대상을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했지만,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치면 신속한 지원이 불가능했다. 이런 지원의 긴급성, 신속성이 요하는 상황은 긴급재난지원금을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 적절한가, 취약계층에게만 선별해 지급하는 것이 나은가에 대한 논쟁에서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보편적 재난수당과 선별환수 논쟁이 남긴 것

정부가 ‘기본소득’과 선을 긋고 재난 시기에 지급하는 현금수당 정책의 명칭을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정한 뒤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논란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보편과 선별을 둘러싼 논쟁으로 격화됐다. 당초 기획재정부는 소득 하위 50% 계층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마련했으나, 여당의 요구로 이 정책의 지급 대상은 당초 소득 하위 70% 계층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곧바로 70% 선별이 적절한가, 전국민 지급이 나은가로 논쟁이 이어졌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 대상이 전국민에게 확대되기까지 중요한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2020년 4월 15일에 실시한 국회의원 총선거가 주로 꼽히곤 하지만, 당초 이 논쟁의 시발점은 ‘선별의 기준’에서 비롯됐다. 정부가 복지정책을 운영하며 사용하던 기존의 선별방식들은 매우 한정된 대상만을 선별하는데 사용됐고, 긴급재난지원금처럼 많은 사람들을 선별하는데 사용된 적은 없었다. 기존 선별방식이 지닌 나름의 한계와 단점은 새로운 속성이 아니지만, 전국민의 70%를 선별하는 기준이 되면서 기존의 단점이 표면화된 것이다. 정부가 복지 수급자를 선별하는 수단은 주로 두 가지로 하나는 기초생활보장대상자, 기초연금 등 대표적 선별 복지에 사용되는 ‘소득인정액’이고, 다른 하나는 청년수당 등 지자체가 운영하는 수당 지급시에 주로 활용되는 ‘건강보험료 본인부담금’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의 경우엔 이 중에 건강보험료 본인부담금이 활용됐다. 소득인정액보다 확인이 편리하고, 빠르기 때문이었다. 개인이 자신의 소득(직장가입자) 혹은 자산과 소득(지역가입자)에 따라 납부하는 건강보험료가 긴급재난지원금 수급 자격의 기준이 된 것이다.

 

정부가 기준을 건강보험 본인 부담금으로 삼겠다고 하자, 이 선별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일단 건강보험료가 과거의 소득을 기준으로 부과돼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영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특히 5월에 신고하는 종합소득세 대상인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두 해 전 소득이 건강보험료의 기준이라 현실에 부합하지 않았다. 간발의 차이로 수급 자격을 얻거나 탈락한 이들의 총소득이 역전되는 현상은 근로장려세제(EITC)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복지정책의 기본 속성에 가깝지만,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인한 소득 역전은 유독 큰 주목을 받았다. 정부는 건강보험료 기준의 문제를 보완해 소득이 급감한 가구를 선별하는 방안을 별도로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런 조치로 인해 지자체와 일선 주민센터의 공무원들의 업무부담이 커지고, 지급이 지체될 우려가 있었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 범위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선별’과 ‘보편’이 대립하는 구도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한정된 예산을 전제하면 보편지원과 선별지원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선별지원은 선별에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반해 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자원을 몰아줄 수 있고, 보편지원은 선별할 필요가 없는 대신에 도움이 불필요한 이들마저 지원하느라 정작 어려운 이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할 수 없다. 한국에서 보편과 선별 논쟁이 처음 공론화됐던 2011년 무상급식 의제에선 선별을 비판하는 주된 근거가 ‘낙인’(stigma) 효과였다. 하지만 이 보편과 선별 논쟁은 복지와 세금과 관련된 논쟁을 진화하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의 경우 논의의 구도가 단순히 '선별지원vs보편지원'으로 한정되지 않고, '선별지원'과 '보편지원 선별환수'가 경합하는 논쟁으로 나아갔다. 선별환수는 과세를 통해 모두에게 지급한 재원의 일부를 환수한다는 의미다. 모두에게 지급하고 선별적으로 과세해 환수하면 선별지원과 같은 금액으로 동일한 지원 효과를 낼 수 있는 데다 선별에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는다. 국세청이 담당하는 선별환수는 각급 지자체와 주민센터 등 일선 현장에서 담당하는 선별지원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보편수당과 결합된 선별적 과세를 아직 해본 적이 없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우려가 있을 뿐이었다.

 

선별환수의 구체적 방법으론 기본소득에 과세하거나 한시적으로 소득계층별로 다른 세율을 부과하거나, 기존의 역진적인 소득공제 항목의 일부 정비 등이 있다. 사실 기본소득 자체가 그냥 나눠주는 제도가 아닌, 어딘가에서 거둬 나눠주는 재분배 체계다. 소득에서 선별적으로 과세한 뒤에 보편 지급하는 방안도 재난지원금 논의에서 새로 등장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상당수 기본소득 모형에서 채택한 바 있다.

 

보편과 선별 논쟁은 기존의 복지체계를 돌아보는 계기도 제공했다. ‘기본소득이 복지 국가의 원리와 상충한다’고 주장하는 기본소득 비판론자들은 ‘기본소득이 보편’이고 ‘기존 복지가 선별’로 받아들여지는 구도에 반대하며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복지 국가의 기본적 원리라고 주장했다. 무상급식에선 선별에 반대되는 개념만이 보편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기존의 복지 정책에서도 보장 범위에 따라 혹은 위험에 처할 모든 가능성에 대한 보장 등으로 ‘보편’의 개념이 확대된 것이다.

 

선별 환수와 연계해 보편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제안은 복지와 세금의 문제가 따로따로 지적되는 것이 아닌, 세금 제도의 개편과 결부된 복지 정책이 거의 처음으로 공론화된 의제였다. 비록 그 방향대로 정책이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향후 복지정책이나 기본소득 등이 논의될 때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정부가 돈을 쓰는 한쪽 면만이 아닌, 돈을 마련하고 쓰는 양면을 두루 고려해야 정책에 대한 온당한 평가가 가능할 뿐 아니라, 양쪽 모두의 개혁을 촉진하는 종합적인 대책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정책vs경제정책 이분법은 무의미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된 이후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군불을 때자 다시 기본소득에 사회적인 이목이 집중됐다. 김종인 위원장이 6월 4일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라고 말하며 공론화를 시작하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 국민에게 20만 원씩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고 건의하면서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이 아닌 경제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기본소득이 복지정책인지, 경제정책인지를 두고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기본소득이 어느 한쪽에 속하는지를 따지는 논쟁은 크게 의미가 없다. 오히려 재분배 효과가 높아 복지정책의 성격이 강한 기본소득일수록 총수요가 진작되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이루는 경제정책의 성격이 강하다.

 

물론 기본소득이 경제정책일 수도 있다는 인식은 기존의 관념에선 파격에 가깝다.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소득재분배 정책이 나름의 경제효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1980년대 이후 경제정책은 주로 세금의 부정적인 유인을 줄이는 ‘감세정책’이었다. 감세가 아닌,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증세와 연결되는 기본소득이 경제정책일 수 있다는 것은 분배가 성장에 해롭지 않고 오히려 성장정책일 수 있다는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과도 맞닿아 있다. 이재명 지사의 발언을 선해하면 이런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에 발맞춘 기본소득 담론을 제시한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복지정책이 아니라며 대립 구도를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도 아닐뿐더러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도그마에서 벗어나 현실을 봐야 할 경제부처

끝으로 긴급재난지원금 논의 과정에서 유독 존재감이 컸던 경제부처에 제언을 하고자 한다. 기획재정부가 중시하는 재정건전성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필요는 있지만, 언제나 중요한 가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요하다고 해서 재정건전성이 지고 지순의 절대적 가치일 순 없다. 어느 수준으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것인지, 위기 시에 가용 가능한 재정이 어느 수준인지를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정해야 유연한 위기 대응이 가능하다. 특히 정부 부채비율 40% 마지노선 등 단일하고 경직적인 잣대를 가질수록 합리적인 의견을 내기 어렵다. 국제 비교와 경제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를 통해 상황에 맞는 정부지출과 부채, 현금성 복지의 규모 등을 정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은 이후 가계나 기업뿐 아니라 정부 역시 과도한 빚을 져선 안 된다는 '국가부도 트라우마'가 남았고, 과도한 재정건전성 집착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돼 오히려 건전 재정의 기반이 무너져 가는데도 재정 여력이 있는 정부는 소극적인 대응에 그쳤다.

 

이제 경제부처가 봐야 할 현실은 저부담, 저복지, 저신뢰의 악순환이다. 고성장과 낙수효과가 살아있던 시대엔 그나마 이런 악순환을 보완할 만한 계급 이동이 있었지만, 저성장이 지속되고 격차가 커지는 시대에 진입한 상황에선 어떻게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어떻게 적절한 세금과 부채로 단단한 안전망을 만들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선순환의 시작인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 내기 위해 경제부처가 내디뎌야 할 첫걸음은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도그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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