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07-01   609

[편집인의글] 복지동향 제261호

편집인의 글

 

이주하 복지동향 편집위원,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 자본주의로 인해 재조명을 받은 기본소득이 기존 경제교리를 무력화시키는 코로나발 경제위기 ‘준전시’ 상황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기폭제와 함께 수면 위로 급부상하였다. 다학제적 연구자의 모임인 사회정책연구회에서는 언컨택트 시대에 걸맞게 기본소득 논쟁을 온라인상에서 진행 중인데, 마치 ‘움직이는 표적’을 맞추는 것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누군가는 ‘라쇼몽’을 떠올릴 수도, 누군가는 기획 글에서 언급된 ‘동상이몽적 의제’란 표현에 공감을 표할 수 있을 것이다. 애당초 기본소득이 좌파와 우파 모두의 지지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던 의제였으니 오늘날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먼저 한동우 교수의 글은 자칫 과열될 수 있는 기본소득 찬반논쟁을 인문학적 통찰로 조명하고 있다. 그는 K-방역의 성공이 파놉티콘(panopticon)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후, 재난지원금의 지급원칙과 사용기준을 통해 기본소득에 주는 함의를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하였다. 특히 재난지원금의 지급으로 촉발된 기본소득 논의는 경제와 복지의 대항, 성장과 분배의 대항, 보편과 선별의 대항 등 기존 담론의 대항구조를 해체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공동대표인 이상이 교수와 함께 기본소득 반대론의 선봉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양재진 교수는 긴급재난지원금이 비록 기본소득의 핵심 요건을 갖추고 있진 못하지만 기본소득으로 가는 길을 열어젖힌 정책이며, 욕구(needs)에 기반한 사회적 급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기본소득의 문제점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는데, 기존의 복지급여보다 소득보장 효과, 사각지대 해소 실효성, 소득재분배와 소비증대 효과 모두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예산 제약을 고려할 때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여 정책효과성을 높이는 전략이 더욱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경제학자인 최한수 교수에 따르면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 19시대 재정의 과제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코로나발 위기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제주체를 지원하는 역할과 장기간 경기부진으로 고착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경기부양대책으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긴급재난지원금의 본질은 완화된 형태의 ‘실업수당’인데, 보편적 특징을 지닌 재난 ‘기본소득’으로 잘못 명명함으로 소모적인 논란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아울러 기본소득 실험자로서의 정부가 아니라 소득 및 고용안정화 정책의 최종 비용부담자로서 책임 있는 정부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기본소득의 온다』의 저자로 이승윤 교수와 함께 기본소득의 핵심 주창자인 백승호 교수는 긴급재난지원금의 경험은 국가가 1차적 소득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민들이 실감하게 된 계기이며, 기본소득 역시 플랫폼 자본주의로의 전환 속에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기본소득 논쟁의 쟁점을 기본소득의 개념, 복지의 원리, 예산의 제약, 기본소득의 소득보장 기능 및 소득재분배 효과로 구분한 후, 기본소득 비판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특히 예산제약론을 넘어 기본소득과 사회보험의 소득보험화가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LAB 2050’의 전(前) 정책팀장인 윤형중 연구자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용어를 일찍이 개념화하였다. 그에 따르면 ‘충분성’은 기본소득의 기본 요건이 아니며, ‘부분 기본소득’은 과도기적 대안으로 볼 수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집단적인 ‘복지체험’을 제공하였을 뿐 아니라 무상급식 때 시작된 보편-선별 논쟁을 진일보시켰다. 또한 긴급재난지원금을 복지-경제 정책의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기본소득을 굳이 복지정책이 아니라며 대립구도를 만드는 것 역시 적절치 않은 것이다. 끝으로 그는 경제부처의 재정건전성 집착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찬반논쟁은 과거 생산적 복지에 대한 해석으로 촉발된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과 사회투자전략의 한국 적용가능성에 대한 격론을 이은 대표적인 복지패러다임 논쟁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어찌 보면 논쟁의 핵심에는 예산제약과 증세여력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이 놓여있는데, 이는 결국 복지확충의 반대 진영과 더 큰 싸움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혹자는 샌더스 돌풍에 기여하였고 국내에서 불거진 국가채무 논쟁에 신선한 해법을 제공하고 있는 현대통화이론(MMT)이나 『21세기 자본』의 피케티가 신작인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제시한 ‘기본재산’을 든든한 우군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금과옥조로 여겨진 재정건전성의 신화, 경제관료의 거부점(veto point)으로의 정책결정권한, 교육체계에서 재생산되는 주류 경제학의 과잉, 보수언론과 대기업의 견고한 영향력 등을 고려할 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클 수밖에 없다.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고(故) 노회찬 의원의 촌철살인을 되새기며 ‘함께’ 강한 결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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