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복지국가 2009-07-01   1843

[복지학교 후기⑤] 건강보험, 의료의 공공성을 부탁해


건강보험, 의료의 공공성을 부탁해

제2기 참여연대 희망복지 학교 셋째 날, 이진석 서울의대 교수님께서 ‘의료민영화, 한국의료의 대안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셨다.

사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의료민영화와 관련된 논쟁은 꽤 많이 접해봤기 때문에 내심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조금 진부하고 재미없는 주제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의료민영화는 분명 위험한 시도이지만, 지금까지 언론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한 정보만으로도 대략적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이진석 교수님의 탁월한 강의 앞에서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인기강사’라는 손대규 간사님의 소개가 결코 단순한 형식적 멘트가 아니었다. 문제의 배경, 실태, 원인, 해결책까지 체계적으로 구성된 강의는 이진석 교수님의 뛰어난 언변과 함께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전공의로서 터득한 현장의 생생한 지식을 당신의 문제의식과 결합시키는 모습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2시간의 강의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강의는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현재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기관, 국민을 중심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의료보장의 재원 확보가 순탄치 않다는 것이다. 매년 증가하는 국민의 의료비 지출은 건강보험의 재정을 위태롭게 한다. 따라서 현행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전체 의료비 지출의 65%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낮은 보장성은 곧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현행 건강보험은 국민, 의료계, 정부-보험자 입장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취약한 보장성과 ‘행위별 수가제’라는 비용 유발적인 구조로 인해 국민의 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건강보험의 재정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구조에 빠져있는 것이다. 국민은 국민대로 과도한 치료비 지출에 허덕이고, 의료계는 의료계대로 낮은 건강보험수가에 불만을 갖고 있으며, 정부는 정부대로 비효율적인 지출 구조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역시 국민들이다.


교수님께서 의료계를 무작정 이기주의적인 집단으로 몰지 않고, 비교적 공정한 시선으로 그들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설명하셔서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사실 특정한 시스템이 의도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들 간의 긴밀한 조율이 필요한 법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가 의도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의사와 환자, 정부가 가지고 있는 각각의 입장이 엇박자를 만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을 무작정 의료계의 이기주의나 정부의 의지 부족 탓으로 몰지 않고 좀 더 심층적인 관점에서 다룬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접근이었다고 생각된다.


중간 질문 시간에 교수님께서 소개한 영국의 ‘주치의 제도’는 이러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가 아파야 의사가 많은 돈을 버는 현재의 구조로는 도저히 의료비의 과잉 지출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의사가 자신의 환자를 철저히 책임지고 관리하는 ‘주치의 제도’ 하에서는 환자가 건강해야 의사도 편해지기 때문에 예방적 치료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주치의 제도’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를 증진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의사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해져 있는 상태다. 만약에 주치의 제도를 통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지속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진다면 뿌리 깊은 불신을 제거하고 상호 신뢰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의는 이제 ‘의료공급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의료공급체계는 현재 의료기관의 무제한적 증가, 수도권 대형병원과 지역병원 사이의 양극화, 이로 인한 환자의 부담 증가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수도권 대형 병원 중에서도 빅4 라고 불리는 일부 초대형 병원들이 압도적으로 환자를 독점하고 있어서 다른 대형 병원들조차 경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대형 병원들마저 이런 상황인데, 지방 중소병원들이 겪는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역시 국민이다. 지역 병원이 뒤처지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에 사는 환자들은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힘들어질 것이고,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은 가속화될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 대형 병원들은 이미 많은 환자들 유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수요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의료서비스의 가격도 올라가게 된다.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높은 의료비를 지출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자유로운 시장 경쟁이 최선의 서비스를 만들어낸다’는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알려주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의료기관 사이의 경쟁이 환자들의 선택권을 강화시키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여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병원 간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 국민의 의료비 부담은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의 공공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건의료체계가 처한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교수님께서는 다양하고 체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셨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강조하신 것은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보험료 인상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말씀하셨다. 국민 스스로 건강보험료 인상을 요구하여,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시킨다면 의료민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가 될 수 있음은 물론 보건의료체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국민에 대한 설득과 홍보이다.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를 조금 더 많이 내서 지금보다 훨씬 좋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건강보험료 인상에 반대하는 의견은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

또 그렇게 한번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시키고 나면 그 혜택을 입은 국민들은 이제 건강보험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의료민영화에 대한 시도를 저지시키는 데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희망적 메시지를 남기시면서 강의를 마무리하셨다. 


이번 강의는 적어도 보건의료체계에 있어서 ‘복지국가’를 향한 희망적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가 ‘포괄수가제 도입’이나 ‘주치의 제도 시행’ 등 각종 의료 공공성 강화 정책과 맞물린다면 가지고 있는 돈과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사회는 결코 꿈이 아니다.

현재의 부조리한 구조를 옹호하는 이들은 언제나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훌륭하고 체계적인 대안이 버젓이 존재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런 대안을 현실에서 실현시킬 수 있는 의지와 노력이다.

아무리 좋은 대안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관성을 타파하고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없으면 현재의 잘못된 구조는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강의를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현실을 타개해나가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임성준(서울대 3학년, 2기 복지학교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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