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분리하면 안된다

연금보험료의 형평문제를 놓고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도시자영업자들의 신고소득액 평균이 80만 원으로 발표되자 은근히 자기들의 평균소득인 140만 원을 기대했던 월급쟁이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대책 중의 하나가 재정을 분리하자는 것이다. 얼핏 보면 해결책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큰 함정이 있음을 알게 된다.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국민연금을 실시하는 목적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연금이 소득재분배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예가 많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부익부 빈익빈 경향이 있어 사회구성원들을 분열시키는 단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공동체정신을 키워보려는 국민연금제도가 분리된다면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법상의 자영업자들 중에는 절반이 영세사업장의 불완전 취업자들이며 순수 자영업자들 중에도 다수는 양심적으로 신고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선의의 피해자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의 분리는 시작에 불과하다.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 집단 내에서도 소득차이, 업종차이, 지역차이 등의 이유로 제 2, 제 3 의 분리를 요구할 경우 무슨 대응 논리로 막을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생각할 점은 형평논쟁의 발단 원인이다. 오늘의 이 지경이 된 근본원인은 자영업자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국가제도의 부실 때문이다. 권장소득을 제시받은 자영업자들이 그 근거를 대라고 아우성칠 때 소득조사권을 갖고 있지 않은 보건복지부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국세청에 구원요청을 해보지만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인력과 예산 부족을 이유로 현재의 국세청으로서는 불가능이라는 반응이다. 그야말로 자영업자는 보험료 형평과 조세정의의 사각지대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국민연금의 분리가 문제의 원인 치유와는 초점이 맞지 않는 엉뚱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잘못된 처방은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부작용을 낳기까지 한다. 재정분리의 경우 세 가지 문제점이 우려된다. 우선, 재정분리는 현재 진행중인 자영업자 소득파악을 위한 제도개선 작업을 중단시킬 가능성이 높다. 건국 이후 50년 역사에서 이번처럼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영업자 소득파악에 성의를 보인 적은 없다. 이러한 계기가 마련된 것은 도시자영업자가 기존의 봉급생활자 연금기금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봉급생활자들의 압력이 없어지면 정부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자영업자연금을 따로 운영할 경우 예상되는 두 번째 문제점은, 하향신고 경향이 더 심화되는 한편 성실하게 신고한 자영업자들의 상대적 피해는 더 커진다는 점이다. 봉급생활자들의 압력 하에서도 예상소득액의 60%를 넘지 못했는데 자유방임상태가 되면 그 수치는 더 낮아지고 말 것이다. 그와 같은 극단적 하향신고 사태가 발생하면 연금제도의 근본취지는 뿌리째 파괴되고 선의의 피해자만 양산되는 최악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세 번째의 문제점은 분리 후 재통합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이다. 만의 하나 분리론자들의 희망대로 수 년 내에 만족스런 자영업자 소득파악이 가능해졌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밀린 부족액에 대한 보전문제 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에서 본 바대로 국민연금의 분리는 사회보험의 명분상으로는 물론이고 자영업자 소득파악과 노후소득보장이라는 실리적 측면에서도 결코 유리할 것이 없다. 도시자영업자 소득파악 문제에서 시작된 국민연금의 문제는 도시자영업자 소득파악을 성공시킴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 지금은 자영업자의 신고소득을 봉급생활자의 평균소득액인 140만 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역량을 집중할 때이지 국민연금을 분리할 때가 아니다.

자영업자 소득파악 얘기만 나오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갈 궁리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가능한 길이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권장소득액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자영업자를 국세청장에 의뢰해서 소득조사를 받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법정기일 내에 반드시 조사를 실시해야 할 의무를 국세청장에게 부과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고의적 하향신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예상이득과 소득조사를 당함으로써 잃을 수 있는 예상손실에 대한 득실계산에서 소득조사를 택할 만큼 어리석은 자영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국세청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불성실 신고를 대폭 줄일 수 있게 된다. 자영업자의 소득파악 문제도 해결하고 권장소득제도도 정착시키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김 상 균 /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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