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인하 기다리다 화병으로 죽겠어요”

글리벡 약가인하 요구하는 백혈병 환자들의 농성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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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언 7년! 내가 백혈병과 투병한 세월이다. 눈물과 고통 속의 지루한 나날들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건강을 자부하던 내가 아니었던가. 자살도 여러번 생각했었다. 글리벡을 먹으면 살 수 있으련만 한달 약값 750만원. 그림의 떡이다.–백혈병 환자 김영인(인권위 농성장에서)

▲29일 지난 1월 21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글리벡 약값 인하를 위한 백혈병 환자들의 국가인권위 점거농성 현장

지난 1월 21일 백혈병 환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한쪽 벽에 붙어 있는 김영인 씨의 글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에 육박한다는 찬 겨울의 농성장. 환자복을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설을 앞두고 보건복지부의 ‘글리벡 복용 환자단체의 요구에 대한 정부 대책’ 발표를 하던 날이라 농성장에는 작은 긴장도 감돌고 있었다.

이날 보건복지부의 발표결과에 따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농성장에서의 지루한 싸움을 계속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백혈병 환자들이 피로로 농성장에서 한둘씩 쓰러져 링거를 꽂고 있다
 

농성장은 마치 종합병원 중환자실 병실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각자 언제 어떻게 병에 걸렸는지 최근의 증세는 어떤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가 어떤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보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인고의 세월에서 나온 글리벡이 준 희망과 절망 또한 그들은 동병상련으로 잘 알고 있다.

최근 급벽하게 떨어진 기온 속에서 농성이 이어지며 환자들의 몸에는 벌써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1월 28일에는 최종섭 씨가 혈소판 저하증세를 보여 출혈이 발생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김재홍 씨는 어지럼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후송돼 수혈을 받았다.

농성장에는 이미 서너 명의 환자들이 탈진해 링거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저녁에 인의협 소속 의사들이 와서 혈액검사를 해주기로 했다고 전하는 환자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백혈병환우회 김호규 씨는 “1999년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후 지난 해 2월까지만 해도 거의 나는 죽은 목숨이었다. 그러다가 글리벡을 알게 되며 나는 생명을 얻었다. 지금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글리벡 덕분이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약값을 제외하고 한달에 한번 정기검진을 받는 데만 10만 원은 족히 든다. 거기에 약값을 매달 몇백만 원이나 내라니. 나 더러 죽으라는 얘기다”라며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아울러 그는 “인도에서 약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인도에 가서 직접 약을 사먹는 게 우리나라에 살면서 글리벡을 먹는 것보다 더 싸다. 개발된 약에 대한 안전성만 보장된다면 당장에라도 가야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1월 29일 오후 3시 30분을 넘기자 누군가가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보완책을 들고 농성장으로 들어왔다. 모든 환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곳으로 모여 들었다.

발표문을 본 환자들의 탄식이 여기 저기서 터진다.

“우리 몸 상태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만 둬야 하는 데 그럼 우리가 보건복지부의 안을 받아들인 것밖에 안되지 않느냐”며 한 환자가 긴 한숨을 내쉰다.

여기 저기서 “우리는 다음주에 입원을 하고, 다른 환자들을 불러모아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그들의 몸 상태는 10분 이상의 회의조차 힘겨워 했다.

“피곤하니까 한시간만 쉬다가 토론을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나오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글리벡이 백혈병 환자에게 주는 의미가 절절히 담겨있는 한 환자의 글환자들에게 더 이상 기다림은 있을 수 없다. 그들이 약을 기다리는 시간만큼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다국적기업 노바티스사의 횡포와 정부의 무관심은 그들의 생명을 서서히 앗아가고 있었다. 환자들은 글리벡이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목숨을 걸고 농성장을 지킨다.

낼모레가 설인데 농성을 계속 진행할 거냐고 묻자 한 환자가 답했다.

“농성은 계속됩니다. 백혈병 대신 화병으로 죽기 전에 복지부가 글리벡값 좀 내려줬으면 좋겠어요.”

글리벡, 약값인하는 없다?

알맹이 없는 보건복지부 보완대책

1월 29일 보건복지부는 ‘글리벡 복용 환자단체의 요구에 대한 정부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발표에는 환자들의 약가인하 요구가 반영돼 있지 않아 실망감을 더해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21일 발표한 대로 현행 약가산정 기준에 따라 글리벡캅셀 100mg의 상한금액 2만3045원에서 더 이상 인하할 수 없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보험약가는 건강보험법령에 의거해 약제전문평가위원회의 실무 검토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되는 사항을 복지부장관이 고시하는 것이지 회사와 정부가 협의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결정한 바에 따르면 글리벡 약가 2만3045원은 한 달 복용시 보험적용 되는 환자들의 경우 최저 49만7000여 원을 부담해야 하지만,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환자들은 최고 550여만 원까지 부담해야 하는 가격이다. 현재 글리벡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70% 이상이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을 환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또한 초기 만성골수성 백혈병(CML) 또한 보험급여가 불가능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초기 만성골수성 백혈병에 대해서는 식약청의 허가가 없는 상태이며 따라서 허가가 없는 적응증에 대한 보험급여는 현행 건강보험법령상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추후 식약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을 경우 허가일로부터 보험급여 적용이 가능하도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국백혈병환우회 강주성 사무국장은 “우리가 핵심적으로 주장했던 부분은 글리벡 약가 산정 문제와 초기 만성골수성 백혈병이었다. 나머지 조치들은 환영하지만 복지부의 보완책을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농성을 풀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인도 제약사 나코(NATCO)는 2003년 1월 26일 인도에서 글리벡(노바티스 사 판매)과 성분이 동일한 ‘비낫(VEENAT)’을 시판했다. 아직 우리나라에 수입이 허가되지 않은 ‘비낫’은 글리벡 약가의 약 1/7인 3달러로 시판되고 있어 글리벡을 구입하기 힘든 환자들에게 주목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2002년 12월 13일 한국화학연구원 박찬근, 박정한, 박교범 연구원은 성분분석을 통해 비낫과 글리벡의 주성분이 화학적으로 동일함을 밝혀낸 바 있다.

향후 비낫의 제품 안정성, 수입과 판매의 문제가 백혈병 환자들과 정부의 또 다른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백혈병 환자의 글리벡 약값 및 본인부담액

(단위 : 캅셀, 원)

1일복용량 1개월복용량 총약품비 건강보험부담액(80%) 본인부담금(20%) 10%무상지원액 실제본인부담금

(총액의10%)

4 120 2,765,400 2,212,320 553,080 276,540 276,540
6 180 4,148,100 3,318,480 829,620 414,810 414,810
8 240 5,530,800 4,424,640 1,106,160 553,080 553,080

※ 글리벡캅셀100㎎ 상한금액 23,045원

※ 글리벡캅셀100㎎ 식약청 허가범위내 최대복용량은 1일 8캅셀임

황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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