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복지예산 어떻게 편성되어야 하는가?

올해 1/4분기의 경제성장률이 4.6%를 기록하였다는 한국은행의 발표와 실업율이 감소하고 있다는 통계청의 발표는 우리에게 IMF 위기의 지루한 터널이 끝나고 있다는 섣부른 기대를 갖게 한다. 국제금융자본의 대리인인 캉드쉬는 우리나라에 찾아와 "금융위기를 겪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필리핀과 함께 한국은 위기에서 확연히 벗어났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중소기업 협동조합 중앙회 인력정보센터에 접수된 구직희망자는 3,654명, 구인희망자는 2,860명으로 구직희망자가 많았던 것에 비하면 올해 4월 말 현재 그 숫자가 각기 799명과 1,044명으로 변한 것도 희망적 징표로 거들 만하다. 이제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반면에 4월 중 상용근로자가 60만 명 준 것에 비하여 임시근로자가 9만 명, 일용직근로자가 63만 9천 명이나 늘어났다는 통계는 현재 고용증대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IMF는 작년 10월에 펴낸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빈민층이 외환위기 이전에는 전체 인구의 15.7%에 불과했으나 대량실업으로 인해 작년 연말에 27.8%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상위계층이 100만 원을 벌어들일 때의 중위계층의 소득은 지난 95년 75만 2천 원, 96년 74만 1천 원, 97년 75만 6천 원이었으나, 98년엔 68만 원에 그칠 전망"이란다. 이로써 중하위계층의 생활상이 추락하는 정도를 짐작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경제의 상반된 양면성을 현실로 두고 이제 서서히 2000년 예산작성 작업이 행정부 내에서 시작되고 그 파고는 복지 부문에도 예외없이 시작된다. 이미《복지동향》의 지면을 통해 여러 번 주장한 것처럼 '한시적'과 '긴급'의 꼬리표를 단 예산배정에 급급한 상태임에도 올해 복지예산은 괄목할 만한 증대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년과 올해 사회안전망 관련 예산투쟁이 벌어진 가운데 한시적 생활보호예산의 배정에만 치중하였으므로 그 외의 복지분야에서는 예산의 정체 또는 감소를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성적인 생계유지곤란자 및 신규 생계곤란자, 그리고 생활고가 가중된 중산층의 생활을 지지할 대책 및 정책적 프로그램을 준비하지 않은 채 '근로를 통한 복지'(workfare) 또는 '생산적 복지'의 철저한 신념만을 되뇌이는 관료집단에 의하여 내년의 복지예산조차 올해와 같은 구도로 가는 한, 그리하여 단기급여임이 분명한 실업급여와 극히 한정된 가구만을 대상으로 지원되는 생활보호제도가 핵심적인 사회안전망이라고 말하여지는 한 한국 사회의 진정한 탈출구는 보장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내년도의 복지예산을 구체적으로 운운하기 이전에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도대체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 구조가 시기적인 흐름을 염두에 둘 때 어떠한 형태가 되어야 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단기, 중기 및 장기별로 경제상황이 바뀐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복지정책은 어떠한 방향성을 지녀야 하는지를〈그림〉에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제도적인 정비가 쉽지 않았던 99년도에는 고용보험의 급속한 확대와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의 확대, 공공근로사업 등 보완적 대책의 시행으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였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실업자 100명 중, △실업급여 혜택자 13.5명, △·공공근로사업 참여자 20.2명,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 11.3명, △직업훈련 참여자 9.8명, △대부사업 혜택자 4.3명, △공적인 사회안전망에 의하여 보호받지 못하는 자 41.9명으로 나타나는 현실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2000년도는 사업의 지속성과 참여자격의 모호성, 직업상담과의 연계부족 등이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공공근로사업을 흡수하고 기존의 자활보호대상자와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 긴급구호대상자를 포괄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국민기본선 확보책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또한 그 동안 충실하지 못했던 사회복지서비스를 발동시켜 IMF 경제위기 동안 해체된 가정과 그 구성원들에 대한 지지적 서비스 및 악화방지적 서비스가 이루

어지는 것은 소득보장적 성격의 대책만큼이나 중요하며, 사회복지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는 데 더없이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들은 물론 공적인 사회복지 전달체계와 민간 사회복지서비스 인력 및 기능의 강화를 동반하는 것이어서 이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도 부응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시도가 2001년에도 지속된다면 2002년 정도부터는 경기가 완전 정상화된다는 가정하에 사회보험제도가 완전히 정비 및 충실화될 기회를 맞는 한편, 기초생활보장제도도 제 궤도에 오르고 소득보장책으로서의 각종 사회수당, 예컨대 아동수당, 모자가정수당, 장애인수당 등이 도입 또는 충실화되는 것과 함께 어떠한 사회적 위기에 대하여도 방비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수립되는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볼 때 2000년의 복지예산 책정 및 확보는 향후 한국의 사회보장제도가 공고화되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된다는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예산확보를 둘러싼 전면적인 돌파가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제 2000년 예산수립에서 고려해야 할 실제 예산 배정액 중 주요한 것들만을 고려하여 보기로 하자.

첫째, 무엇보다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에 따른 추가적인 예산부담분 약 1조 7천억 원을 들 수 있다. 김미곤(1999)에 따르면, 99년 생활보호대상자 173만 명 중 거택 및 시설이 50만 명, 자활보호대상자가 123만 명이고, 자활보호가구의 30%에게 월 15만 원의 생계비 보조할 계획이므로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하여 자활보호대상자에게 생계보호를 현행 방식대로 급여할 경우 추가 소요예산은 약 1조 6,996억 원1)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2) 물론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내용이 어떠냐에 따라 구체적인 대상인구와 혜택수준이 달라지므로 이 수치는 개략적인 추정치에 불과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적용대상자로서의 자활보호대상자를 기준으로 추계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둘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은 그외의 복지서비스 확충과 연계시켜 볼 때 당연히 전달체계의 확충을 동반하게 되고 이는 우선적으로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의 수를 증대시키게 된다. 이미 올해 7월부터 사회복지 전문요원 1,200명을 추가 채용할 것이라는 보도에서 실현되는 감이 있지만 내년에 역시 추가된 전담공무원을 유지하는 데 중앙부처의 예산이 필요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복지관 등 복지시설에 전문적인 사회복지사업을 행할 수 있는 인력의 확충도 요구된다. 이로써, 공적 및 민간의 전달체계를 확충하는 과정에서 400∼500억 정도의 추가부담이 예상된다.

셋째, 사회복지서비스에 올해 모두 5천억 원이 예산으로 배정되었으나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아동복지, 여성복지, 보육사업 등에 분출되어 있는 복지욕구와 서비스 개입의 여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득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될 때에는 올해 예산보다도 최소 20% 정도의 예산 증액이 요구된다 하겠다.

넷째, 사회보험 분야에서 무엇보다도 논란이 되었던 내년도 연금수급자의 실수령액 감소액을 보전한다고 할 때 이를 위하여 약 96억 원이 소요된다 할 수 있다.3)

따라서 위와 같은 추가예산확보액을 감안하면 내년 복지예산의 증대액은 2조 원 정도로 예상된다.

이러한 추가적인 정부의 부담분은 순수한 증분이라기보다는 공공근로사업의 축소조정이나 여타 비효율적인 실업예산의 용도전환을 통하여 얼마든지 조달 가능하다는 점에서 결코 비현실적인 요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예산의 확대가 향후 장기적인 사회보장제도의 틀을 공고히 하는 교두보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때 사회복지계의 지대한 노력을 아낄 수 없을 것이다. 장기적인 사회보장제도에 대해서까지 용인하고 싶지 않은 예산당국자라면, 적어도 그는 사회복지예산의 대상은 인간이며 인간에 대한 서비스는 스톡효과(stock effect)를 지닌다는 점만이라도 이해해야 한다. 한번 채굴된 석탄이나 석유는 다시 충당될 수 없듯이 한번 손상된 인간의 상태도 다시는 원상태로 복구될 수 없다는 점을 말이다.

1) 123만 명 ×13.1만 원/인(생계비 지원액) – 2,340억 원(자활보호가구의 30%에게 월 15만 원 지원금)

2) 김미곤, <99년 실업대책 백서>, 새정치국민회의 실업대책 위원회, 미발간.

3) 연금관리공단 내부추계에 따르면 내년 신규 연금수령자를 220만 명으로 보고 있음.

이 태 수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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