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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위원회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의 복지를 만들어갑니다

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09
  • 2009.06.09
  • 808
한 서민(庶民)의 서거(逝去)를 생각하며

남찬섭(동아대 사회복지학)


지난 5월 23일 아침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보도를 접하면서 받았던 충격과 허무함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관련된 칼럼을 써 달라는 부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시간만 하릴 없이 갈 뿐 글은 참으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필자는 2005년 4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이른 바 국정과제위원회에, 우리나라의 보수언론이 그렇게도 미워해마지 않았던 국정과제위원회에서 일했었다. 필자가 일했던 국정과제위원회는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후에 양극화민생대책본부로 변경)였는데, 그 곳에서 필자는 장애인지원종합대책 수립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정부안 작성에 실무자로 참여했고 소득분배와 양극화 관련 업무도 담당했었다.

필자가 참여정부 국정과제위원회에 일하게 되었을 때 혹자는 정권 말기에 가서 뭘 하겠느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돌이켜 볼 때 그처럼 자유롭게 정책을 기획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보장된 조직이 또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 대통령은 필자를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위치에 있었지만 필자는 그 당시 2년 5개월 동안 늘 대통령 지시를 근거로 야근과 휴일근무를 밥먹듯 하면서 일했고 또 그것을 근거로 정책을 기획하고 부처 공무원들과 때로는 협의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일하면서도 가끔씩 생각했던 것이지만 지금에 와서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은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참여정부에서 일하면서 몇 번의 국정과제회의 때 노 대통령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몇 번의 회의에 참석하면서 내가 느낀 노 대통령은 정치인 치고는 상당히 사회학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필자가 정치인을 많이 알고 있지는 않지만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정치인이나 고위관료들은 사안의 핵심만 파악한다는 명분으로 복잡한 사안을 희한하게 왜곡하여 요약하는 경향을 자주 보인다.

그럴 때면 참 대꾸하기도 난감하고 다시 설명하기도 난감하고 그저 내가 보고한 것을 어쩌면 저렇게 희한한 각도에서 바라볼까 하는 생각만 들 뿐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적어도 필자가 준비했던 여러 가지 대통령 보고사항과 관련해서 말이다. 사안을 대단히 정확하면서도 통찰력있게 파악하였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데에는 약자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고 상식에 대해 회의할 수 있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2007년 5월 어느 날 필자가 일하던 위원회의 위원장과 노 대통령의 오찬자리에 배석하게 되어 함께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날 오찬회의의 주제는 양극화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비록 필자가 준비한 보고문건이었지만 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었는데 대통령은 그 내용의 핵심을 대단히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하였다.

게다가 필자가 더욱 놀란 것은 그 날 대통령이 하신 일종의 지시랄까 부탁이랄까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식사를 마친 후 차를 마시면서 그동안 참여정부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관계론, 참여복지, 동반성장론, 양극화, 비전 2030, 사회투자 같은 것들을 내세우면서 사회정책에 나름대로 노력해 왔는데 이러한 참여정부의 노력이 우리나라 복지국가의 전반적인 발전과정에 비추어 볼 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며 어느 위치에 있는 것인지를 누가 좀 정리해줄 수 없냐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 지시라고 할 것은 없고 그저 부탁이고 희망이니 좀 정리할 수 없겠느냐고 너무 급하게 할 것은 없고 시간나는 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필자가 그 날 대통령이 하신 말씀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내용은 위와 같은 것이었다. 필자는 정치인과 고위관료들 중에 그런 통시적인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을 그 때까지 본 적이 없었고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복지를 전공했다는 연구자들 중에도, 참여정부가 끝난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런 문제의식을 가질 연구자가 있겠지만, 그 시점에서 그런 문제의식을 그처럼 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연구자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필자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솔직히 이 분이 만일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다면 뛰어난 학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필자의 기억의 편린 속에 남아 있는 노 대통령은 아래를 볼 줄 아는 분이었던 것 같다. 2007년 4월 4일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서명식과 함께 장애인업무보고가 있던 날이었다. 장애계가 그토록 원했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통령이 서명하는 일종의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었는데 당시 필자와 사회정책비서관은 복지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애계의 한 인사를 초청하자고 주장했다.

이 인사에 대해 복지부는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으로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 초청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논의 끝에 복지부는 필자더러 그러면 당신이 그 인사가 행사당일 돌발행동을 하지 않도록 책임지는 것을 조건으로 하자면서 그 인사의 초청에 동의했다.

하지만 실제 행사 당일 그 인사는 대통령 앞에서 펼침막을 펼치고 구호를 외치는 돌발행동을 감행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 돌발상황에서 ‘말씀을 하시는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말하면 시간을 드리겠다’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인사는 계속 구호를 외쳤고 결국 대통령이 세 번째 말씀을 하시면서 그는 경호원들에 의해 들려나가게 되었다. 필자는 행사장 바깥으로 나가서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는데 경호원들은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옛날 같았으면 집으로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끌려갔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담당부처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인사를 초청해야 한다고 주장한 필자도 옛날 같았으면 그 사람과 공모하지 않았는가 하는 심문을 어디론가 끌려가서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 다음날 다 지나간 일인데 어쩌겠느냐며 그냥 놔두라고 하셨다.

당시 사회정책수석실에서 일하던 행정관과 필자는 경위서를 작성하는 정도로 그쳤다. 대통령이 그 돌발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시간을 주겠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권위의식에 젖어있지 않고 아래를 볼 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아래를 볼 줄 알고 통시적인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노 대통령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장애계 인사가 돌발행동을 벌였던 그 날 일간지의 보도는 대체로 ‘구멍난 청와대 경호’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서명식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게다가 그 날의 장애인업무보고는 이른 바 수요자중심 업무보고였지만 그것 역시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집권 후반기에 시도한 아쉬움은 있지만 수요자중심 업무보고는 필자가 본 업무보고 중 가장 선진적이고 획기적인 것이었다. 기존의 업무보고는 정부의 각 부처가 부처별로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수요자중심 업무보고는 정책대상자, 즉 노인이나 장애인, 여성을 보고의 중심에 놓고 각 부처가 노인과 장애인, 여성에 대해 어떻게 정책을 수립할 것인지를 보고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컨대 장애인에 관련된 수요자중심 업무보고를 할 때에는 과거처럼 복지부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부와 노동부, 여성부, 문화부, 교육부 등 장애인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모든 부처가 모여서 계획을 협의하여 보고해야 한다.

노인에 관련된 업무보고나 여성에 관련된 업무보고도 마찬가지이다. 참여정부가 비록 집권 후반기이기는 했지만 이런 선진적이고 획기적인 수요자중심 업무보고 형식으로 업무보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은 아마 극히 드물 것이다. 이 땅의 보수언론과 기득권자들에게 수요자중심 업무보고가 눈에 보였을 리가 만무하며 따라서 장애인에 관련된 수요자중심 업무보고뿐만 아니라 다른 정책수요자에 관련된 수요자중심 업무보고도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이 땅의 기득권자들은 노 대통령을 깎아내리고 멸시하고 능멸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필자가 실무를 담당했던 업무와 관련해서도 보수언론들은 거짓보도도 불사하였으며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법대로 하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쳐댔다. 필자는 2007년 봄 이후에는 보수언론들의 왜곡보도에 대해 대응자료를 만드는 데 엄청난 시간을 쏟았다.

그 대응자료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리 할 수 없는 것을 우리나라 언론들은 벌건 대낮에 버젓이 자행하고 있으니 그것을 상식에 기대어 바로잡는 수준이었다. 참여정부의 다른 공무원들도 필자와 대동소이한 처지였을 것이다.

이 땅의 짐짓 온건파라는 사람들 혹은 점잖다는 사람들은 참여정부가 내는 그런 대응자료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보이곤 했다. 맨날 언론과 싸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의 수준에서 가질 수 있는 상식에도 맞지 않는 보도를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 그런 것에 대해 정부가 가만히 있다면 그것은 정부가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해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땅의 이른 바 진보라는 사람들은 노 대통령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로드맵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기득권자들 못지않게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 집권세력을 비난하였다. 그들은 보수세력과 그들이 구축해 놓은 보수적인 구조 속에 포위당해 있는 참여정부의 처지는 외면하였다. 자기들이 집권해도 마찬가지로 보수세력과 보수적인 구조 속에 포위당한 처지를 발견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적 실수나 큰 방향설정의 오류로 국민들 중 어떤 사람은 삶의 위기에 빠지기도 하며 이는 정부를 비난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만 그런 오류가 사람들을 삶의 위기에 빠뜨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 내에서조차 예산을 따내지 못하고 설사 정부에서 예산을 확보해도 그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최근 어느 신문에서 본 내용인데 정확한 단어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대체로 노 대통령은 머리와 몸이 분리된 상황에 있었다는 취지의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꿈은 멀리 있되 그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은 그 꿈과는 거리가 먼 땅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처지는 이른 바 진보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 땅의 서민들에게 공통된 것이 아닌가 한다. 노 대통령은 생전에도 그러하였지만 사후에도 여러 가지 엇갈린 평가에 노출될 것이고 이미 그러하다. 현재 발을 딛고 선 땅을 꿈에 좀 더 가깝게 할 때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한 전략과 정책을 냉철하게 구상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 때 노 대통령의 서거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다음 세상에서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가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는 발을 딛고 선 땅을 당신이 가진 꿈과 맞게 꾸밀 수 있는 대통령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대통령이 되십시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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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말씀에 감사합니다. 장애인차별법 서명식에서 노대통령께 난동을 부린 것이 아니라 호소입니다. 정부가 들어 주지 않으니까요. 박경석 동지의 큰 결단이 없이는 장애인을 대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장애인과 소외계층을 사랑하시고, 국민을 사랑하시고, 가족을 사랑하시고, 측근을 사랑하신다면 극단적인 선택보단 살아서 우리 곁에 계셔야 하지요, 자살은 이해가 안 됩니다. 간디도 어려움을 당해도 인도국민을 구했고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만다라대통령도 온갖 핏박을 당해도 자살하지 않고 대통령으로 흑인들의 인권을 신장시켰습니다.
    노 전 대통령께서 임기 중 많은 업적도 많지만 실패한 것도 많습니다. 특히 준비 없이 복지를 지방분권 이양 한 것은 장애인에게 고통을 안겨 준 사례로 보지 않습니까. 저는 노대통령을 좋아 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습니다. 좋아하지 않은 이유는 항상 돌발적인 발언에 내 마음이 불안했고, 좋아했던 이유는 소박하고 항상 옆집 아저씨 같기 때문이죠. 비리가 터질 때마다 성역 없이 지시하셨는데 비리 내용이 크고 적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본인은 봉하마을로 금의환향할 때 새종대왕과 소헌왕후 같은 훌륭한 국왕과 국모를 우리 국민이 모시게 되는구나 하고 내심으로 기뻐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비리와 연루된 친인척 관리와 들쥐들의 관리를 잘못한 부덕으로 오점을 남긴 노대통령 답지 않게 승부수를 잘못 내린 것 같습니다.
    자살은 절대 미화 될 순 없으나, 임기 중에 남기신 업적은 평가 되어야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국화 한 송이를 드릴 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코, 불쌍한 민초들을 두고 간 노 전 대통령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치욕 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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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오용균님의 의견과 같습니다.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는지라, 그 동안 너무 부정적으로 평가된 것들이 서거를 계기로 새롭게 조망되면서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추모에 대한 온정도 더할 겁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님의 비극적 서거가 곧 재임시 국민의 비판적 여론들이 잘못됐다거나 이를 뒤엎게 하는 근거는 아니지요. 서거 전후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물론 유례를 찾기 어려운 추모의 바다였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추모는 성공에 대한 칭송이 아니라, 국민 당신들의 역정에서도 겪었던 좌절과 실패를 공유하면서 서러워 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이지요. 다시 그 길을 가야한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노 대통령은 과거의 대통령과는 다른 새로운 면과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나 시대 탓이든 무엇이든 대통령직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또 다시 그 길을 간다면 당신 자신과 국민을 위해서 바람직할까요? 다시는 그런 좌절과 실패의 길을 가지 않아야 하겠지요. 이점에서 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해서 대통령의 서거가 친노진영에게 무슨 영예는 아닙니다. 마치 영예를 얻은듯 다시 나서 참여정부 시절 국민들이 등을 돌렸던 행태를 재현해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일단은 비극에 대한 책임을 함께 하며 자숙하고 다시는 그런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성찰해야 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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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이 미화되는 나라는 없다.

    필자는 한마디님의 고귀한 말씀을 읽으며, 노 전 대통령의 슬픈 애도와 더불어 자살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지적하고자 합니다. 본래 필자는 시국이나 정치 따위 등의 글은 쓰기 싫고, 비판적인 논조는 더욱 쓰기 싫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일에 참지 못하고, 정의로운 진실과 정의로운 사랑을 배려하는 글이라면 두서없지만 애써 쓸려고 노력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요령으로 살지 않았고, 정당하고 정의로운 일이 아니고는 억지를 부려가며 행동하는 짓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필자는 중도장애인 중에서도 1급 중증장애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면서 편안하게 살지 않고 부지런하게 일에 지나 칠 정도로 몰두하다 보니 큰 성과는 없었지만 벌써 이순(耳順)이 지나는 나이가 되었다. 결국, 인생은 일회적인 것인데 한번 흘러가면 그만인 것인 줄 알면서 인생을 연습 삼아 살면 후회가 될 것 같아 여념 없이 일을 했다. 장애를 입은 후에도 장애인정신운동을 하다가 때로는 힘들어도 이것이 행복이거니 하며 힘든 줄 모르고 장애인들의 권익증진을 위해 앞만 보고 살아 왔다.
    요즘 우리나라의 자살하는 숫자가 하루 32명 정도라고 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심리학자는 자기의 뜻을 죽음으로 끝나는 단순한 생각도 배제 못한다고 한다. 항간에는 ‘대통령도 죽는데’라고 할 정도로 노 전 대통령이 후세에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더 이상 어린들 입에서 장래 희망이 대통령이라는 꿈과 희망을 말하지 않으리. 이렇게 자살로 희망과 꿈을 잃어버리게 한 대통령이라면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본다. 따라서 자살은 미화돼서도 안 되며 방치해서도 안 된다. 이는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국화와 칼」의 작가 루스베네딕트는 ‘일본인은 자살을 죄의 중대함 보다는 수치의 중대함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살을 청소년이나 사회 일각에서 모방이나 내면의 뿌리는 보지 않고, 자살이라는 비중에 자칫 착시(錯視) 현상으로 더 많은 자살자가 속출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야당이나 일부 국민 사이에서는 노 전 대통령 자살의 의미를 애써 다른 것으로 찾으려고 한다. 정치적인 반성을 하라고 하는 틈새 정치인은 자살사건을 정략적 호기로 삼고, 일부 교수들과 종교계까지 시국선언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필자 역시 정부의 정국 쇄신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아름다움으로 미화되고 이에 대한 문제점과 사회적인 파장과 반성은 일체 거론되지 않는 채 아직도 편향적인 사회 분위기로 치닫는 것이 필연코 잘못되어 가고 있다. 어떻게 노 전 대통령 자살의 문제점은 실종되고, 갑자기 영웅처럼 부각되는지 세계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과 노란모자부대는 노 전 대통령은 하나 같이 고무 찬양하고, 과도한 검찰의 수사로 자살하게끔 부각시킨 것이 언론이 아닌가. 언론은 의심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사실과 중립보도를 생명처럼 하여야 하나 지나친 편파보도가 너무 아쉽다. 국민들이 바르게 알도록 하고, 바르게 판단하도록 하고, 바르게 행동하도록 하는 무거운 책임이 바로 언론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생각해 자살방지대책위원회까지 만들었던 노 전 대통령이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미화할 순 없다. 어떻게 전직 대통령으로서 스스로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역대 통치자 중에서 자살을 한 사람은 BC60년 6월9일 로마제국 네로 황제가 무엇 때문에 자살했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할일이 많다. 그래서 특별법에 의거 예우를 받는다. 끝까지 청백리 삶으로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더라면 역대 전후무후한 대통령으로 국민으로부터 더욱 추앙(推仰)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필자 역시 비리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상당히 존경스러웠다.
    결국 빗나간 자식 사랑이 비쳐진 결과도 배제할 수 없다. 특별히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어느 시대의 대통령보다 비리의 액수가 적다지만, 돈이 적고 많고를 떠나 중요한 것은 모든 비리사건에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했던 노 전 대통령이 ‘나를 수사하면 성역이 없길 바라고, 남을 수사할 때에는 성역이 있어야 된다.’는 말인지 고인(故人)에게 묻고 싶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크게 실수한 것은 그동안 권력의 주변에서 권력의 맛을 알고, 눈을 반짝거리며 꼬이는 들쥐나 부나비 등의 관리를 잘못한 부덕(不德)했던 점을 생각하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승부수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깨끗하게 정면 승부로 수습하는 것이 가족이나 측근들을 위해 최소한의 자존심과 영역을 지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의 간디는 온갖 핏박을 당하면서 인도를 구했고 자살하지 않았다. 남아공화국 만다라 대통령 역시 온갖 수몰을 당하면서도 자살 하지 않고 정의와 싸운 결과 명예회복과 인권을 찾지 않았는가. 성웅 이순신 장군도 적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병사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외치며 죽었다. 유관순, 안중근, 안창호, 윤봉길, 김구, 여운영 등 많은 독립 운동가도 모두 큰일을 하고 이름을 남겼지 자살이라는 불명예는 남기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에게 충격적이며 슬픈 일이다. 그리고 죽음 자체가 전혀 소중한 교훈을 주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너무 자살이 미화되여 영웅시 되는 것은 좋은 결과가 못됨을 냉철하게 판단했으면 한다. 결코 칭찬받고 훌륭한 죽음이 아니라 치욕의 죽음으로 맹자는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사람과는 말할 것도, 일할 것도 못된다고 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은 누려야 할 모든 것을 다 누린 대통령의 금번 장례식만 해도, 국민장이 아니라 가족장으로 했어야 했다. 과거 이승만 초대대통령도 가족장으로 했던 선례가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자살은 모든 것에 대한 긍정이며, 패배로부터 승리하고 싶은 심리적 변화가 아닌가. 필자는 그만한 일로 죽기로 한다면 필자 같은 민초는 벌써 죽었어야 했으며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없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 재임 시, 노대통령의 영향으로 스스로 자살을 한 저명인사가 기억이 난다. 그분들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결국, 낮은음자리표까지 이해하지 못한 노 전 대통령은 자수성가로 한국의 고졸 대통령, 학력파괴로 한때는 국민의 신기루처럼 인기를 온 몸을 받았지만 어렵게 살던 시절은 추억에 지나고 초심을 잃은 것이다. 진정 서민 대통령으로 장애인, 노인, 여성 등 소외당한 사람들의 희망이 되기를 원했다면 살아 있어야 했다.
    필자는 2009년 6월3일(수)KBS1-TV ‘현충일 특집’을 보면서 6.25 전쟁터에 나아가 아직도 생사를 모르는 80 노인의 손엔 남편의 사진 한 장과 ‘사랑한다,’는 편지 한 장을 가슴에 안고 현충일을 기일(忌日)로 삼으며, 통곡하는 기막힌 미망인의 눈물이 노 전 대통령에게 비교가 될까. 60년을 수절하며 살아 온 이 땅의 많은 전쟁미망인들은 분명히 남편의 죽음으로 나라를 지켰고, 미망인들은 면면히 이어 주는 어머니 젖줄처럼 발전하는 이 나라의 모습을 보며 이제나 저제나 남편의 뼈 하나라도 올 날을 기다리는 애닮은 마음을 생각하면, 이 땅에서 노 전 대통령은 무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비리로 얼룩진 최고 통치권자로서 행복을 누렸던 것 아닌가. 자살해야 할 사람은 서럽게 사는 많은 미망인들이지 노 전 대통령이 아니란 생각에 더욱 분노와 배신감을 씻을 수 없다.
    솔직히 필자는 노 전 대통령을 좋아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싫어 한 대통령도 아니다. 그러나 이미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은 우연히 아니라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훌륭한 리더십으로 국정을 펴기를 원했을 뿐이다. 싫어했던 것은 정치 리더십에 있어 항상 돌발적인 발언으로 실수를 해 조바심을 가졌기 때문에 불안해서 싫었다. 한편 싫어하지 않았던 것은 구수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과 소박한 서민 대통령이라는데 싫어하지 않은 이유였다. 그러나 죽음은 사랑의 끝장, 인생의 끝장, 희망의 끝장, 투쟁의 끝장, 우리들이 매달리는 모든 것의 끝장에서 태양은 저버리고, 희망의 새벽이 없는 길로 노 전 대통령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남기며 가고 말았다.
    북한은 국상이던 상관없이 핵과 미사일 실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개성공단 직원이 억류되어 있고, 공단유지 자체마저 흔들리고 있다. 더욱이 서해 연평도 근해는 일촉즉발 위기로 우리 어린 형제들이 적의 도발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우리 국민은 어떤가. 노 전 대통령은 있어도 국가는 없어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는 밤새도록 몇 날을 두고 애도 했고, 필자도 국상이기 때문에 분향을 했다. 그러나 애도기간은 끝났다. 언제까지 애도기간을 끌고 갈 것인지 묻고 싶으며, 북한은 우리를 협박하고 도전적인 발언을 일삼는데 국회와 사회단체는 그들에게 결집력 있게 항의 한 번 제때 해 보았는지. 마치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정부에게만 소리 낼 뿐 진정한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우리 자신들에게 돌팔매질만 하고 있진 않는 지 곰곰이 생각했으면 한다.
    이제 단결할 때이다. 여야, 보수, 진보 구분하지 말고 증오와 갈등과 반목을 버리고 원망하지 않으며 나라의 어려움이 있을 때 국란극복(國亂克復)으로 이겨내야겠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도, 이완용이 아니라, 모든 것은 ‘나 자신’에게 있다고 가르쳤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도 누구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서 비롯된 것뿐이다.
    지금 민주당과 일부 교수 및 시민단체와 종교계까지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감정을 부추기고 있는 지각없는 일로 국민 전체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있어서는 안 될 행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무엇을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것인지 국민을 위한 공당과 지식인이라면 얼마든지 깨끗한 요구로 국민들도 동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더욱 요즘 세계적 장기불황과 경기사정으로 일 하지 않고는 먹고 살기 힘들고 5,6월에도 발을 동동 굴릴 판국에 의원 모두가 틈새 정치인으로 표(票) 하나에 눈치 보는 국회의원보다는 국민을 위한 정의(正義)의 의원으로 돌아 가 국제정세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정치 소모전은 그만하고 차분한 가운데 서로 머리를 조아리며 처리하여 국민에게 칭송 받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하루 빨리 국민 화합으로 국민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 주었으면 한다.
    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로 금의환향할 때만 해도 마음속엔 오랜만에 금실 좋기로 소문난 조선 4대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 심씨 같은 훌륭한 국왕과 국모를 우리 국민은 모시게 되겠구나 하며, 내심 한쪽으로 기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유야 어떻게 됐던지 간에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온 국민에게 충격과 슬픔을 남긴 역사적 사건에 온 국민은 자살 신드롬에서 빨리 벗어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박연차리스트와 관련된 사건들은 검찰과 사법부에서 가려질 것으로 국민들은 지켜 볼 일이며, 기소 종결된 노 전 대통령의 포괄적 뇌물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더 밝혀질 것으로 보지만, 이것 역시 역사가들이 우습게 기록을 남길 것 같지 않다.
    역사는 진실을 감출 수 없고, 보탤 수 없다. 역사는 끊임없이 검증되기 때문에 어차피 후세의 역사들이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를 제외한 이름 없는 민초들은 발전의 시대를 세우기 위해 살았는가 아니면 붕괴를 불러오기 위해 살았는가. 깊이 자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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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용균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잘 쓰셨네요.. 공감하는 글을 오랫만에 접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합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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