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6-09   1511

한국자활후견기관 노동조합 설립의 배경과 의의

시작하면서

2003년 3월 29일 한국자활후견기관 노동조합(이하 자활노조)이 설립되었다. 자활노조는 50일 동안의 준비를 통해 전국 단위의 노동조합를 세우고 힘찬 출발을 하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현재 자활사업이 전반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문제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어려움과 문제에 대해 많은 자활 실무자들이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자활 실무자들은 현재의 어려움과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동조합을 선택했고, 그것은 노동조합만이 현재 자활의 총체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제 노조가 설립된 지 2개월이 채 안 되었으며, 충분한 준비과정을 거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너무도 명확한 자활의 문제들 속에서 자활노조가 가야할 길은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자활후견기관의 설립배경과 현재 상황을 간단히 소개하고 자활현황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출발한 자활노조의 설립 과정, 그리고 자활노조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자활노조의 존재를 알리고 자활노조의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한다.

자활후견기관의 현재상황

한국사회는 IMF 이후 대량실업사태, 불안정한 고용의 확대, 급격한 구조조정, 만성실업의 증가 및 빈곤의 심화, 빈부격차의 확대 등의 문제에 직면하였고, 이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 정부는 빈민지역에서 시험되고 있던 ‘협동조합 방식의 생산자공동체운동’을 제도화하게 되었다. 이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에 명시되어 있는 자활지원사업, 자활공동체이며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빈곤극복책을 주도하던 민간단체들의 기능을 제도화한 것이 바로 ‘자활후견기관’이라 볼 수 있다.

자활후견기관은 1996년 5개 자활지원센터의 시범운영으로 시작하여, 2000년 6월 20개에 불과하던 시설이 2000년 9월 90개소, 2001년 157개소, 2002년 171개소, 2003년 5월 현재 전국 191개소로 증가하였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하여 조건부 수급자 및 차상위계층과 함께 간병, 청소, 집수리, 폐자원재활용, 음식물재활용, 외식 등의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공공성 확보 및 생산자공동체의 건설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빈곤계층의 경제, 사회, 심리적인 자립·자활을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현 자활사업 및 자활후견기관의 운영은 법적, 제도적, 기관내적으로 많은 문제 및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자활지원사업 목적의 비현실성

보건복지부는 자활지원사업의 목적을 “자활근로사업을 통한 자활공동체의 설립 및 육성”으로 두고 2년을 설립시한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 이후 사업의 주 참여 대상이 저소득 실업층보다 노동능력·의지가 현저히 약한 조건부수급자로 변화되면서 점차 현실과 괴리되어 가고 있다. 또한 자활공동체의 시장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체계가 전무한 상황에서 대부분이 10인 이내로 구성되는 소규모의 공동체가 생산·협동·나눔의 정신을 실현하면서 시장에서 활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처럼 자활지원사업의 목적 자체가 대상, 지원체계 등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설정되면서 자활후견기관사업 운영이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후견기관의 자주적 운영과 연대를 저해하는 양적 평가

보건복지부는 2001년 설립 1년 이상의 후견기관을 대상으로 평가를 실시하고 공동체의 수, 수급자의 수 등 양적·결과적인 지표에 근거하여 전국의 후견기관을 가∼라 등급으로 서열화하였다. 그러나 자활지원사업은 장기적·과정 중심적·연대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이러한 양적 평가로는 후견기관의 점검 및 발전방향 도출이라는 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후견기관의 자주적 운영과 연대를 저해하는 역효과를 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2003년 전국 171개 후견기관에 대해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밝혀, 후견기관의 주체적이고 안정적인 사업운영을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자활인프라의 부족

자활지원사업은 후견기관 단독으로 추진·발전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자활에 대한 연구, 지자체의 협조, 사회복지단체·시민단체 등과의 연대, 자활공동체에 대한 각종 법규제정 및 지원, 기업자본의 활용 및 유입 등 다양한 방식의 지원체계 등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분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활후견기관의 사업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운영주체들의 자활사업에 대한 이해부족

자활후견기관의 보장기관은 보건복지부, 각 지자체이며 이를 사회복지법인, 종교법인, 학교법인,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자활지원사업은 현재 보건복지부 및 지자체 담당자의 잦은 교체 및 비전문 인력의 순환근무로 인해 자활사업의 연속성 및 전문성을 담보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또한 모법인이 자활후견기관을 전체기관의 한 부서로 사고하여 업무분장에 있어서의 중첩 및 불명확함을 보이거나, 비민주적 기관운영을 하고 있는 경우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실무자 이직으로 인한 조직구조의 불안정

최근 자활정보센터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후견기관 실무자의 이직률은 37.1%, 평균 근무기간은 13개월로 나타났다. 그 원인은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자활정책방향과 실제운영의 불일치, 자활철학의 부족, 단기적 성과요구, 열악한 근로조건 등에 기인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실무자가 사업단에 대한 밀도 있는 고민을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자활후견기관의 전체 조직구조가 불안정한 상황에 있다.

한국자활후견기관 노동조합 설립 배경과 과정

자활후견기관 실무자들은 2001년 보수직제지침, 2001년 자활후견기관 평가와 관련하며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각 지역별로 실무자협의체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법적 효력이 없는 실무자 협의체의 형태로는 자활전체의 문제를 지속적이고 심도있게 고민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노조의 형태로 전환하기로 합의하였다. 자활노조의 설립 이유는 자활노조의 창립선언문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현재 자활운동의 상황이 총체적 위기에 처해있다고 인식한다. 외적으로는 자활제도와 지원 체계의 미비, 사회적 연대의 부족, 자활 정책 방향과 실제의 불일치와 혼란, 무리한 단기적 성과와 평가주의에 직면해 있으며, 내적으로는 자활 철학의 부족, 관성적이고 비민주적인 기관 운영, 심각한 근로조건, 자활 조직의 단결력과 지도력 부족의 문제를 안고 있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자활노조는 노조 설립의 당위성을 표현하고 있다.

위에서 이미 서술한 바와 같이 자활후견기관은 여러 가지 문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2000년 이후 자활후견기관 지원금을 4년째 동결하였고, 평가를 통해 자활후견기관으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차등지원 방침을 거론하여 기관과 실무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압박은 결국 자활후견기관간의 경쟁을 유발할 것이며, 자활후견기관간의 경쟁은 실무자들의 노동강도 강화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경쟁시장에서 아픔과 상처를 받은 많은 저소득 빈곤계층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자활후견기관 관장단을 포함한 많은 실무자들은 이러한 자활의 문제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2003년 1월 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 총회에서 “차등지원 철폐와 실무자 처우개선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또한 협회 총회에 참석했던 서울, 경남, 충남의 실무자들은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자활사업의 위기를 공유하고 자활사업 및 운동의 발전을 위해 전국적인 실무자 연대에 대한 필요성을 공유하였다. 이에 2월 8일 각 지역의 실무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현 상황의 자활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면서 현재의 체계로는 자활사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자활 사업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힘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자활 사업의 발전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결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2개월 정도의 준비과정을 거쳐 3월 29일 창립총회 및 출범식을 하였다.

한국자활후견기관 노동조합의 방향과 목적

자활노조는 그 시작부터 많은 과제를 안고 출범하였다. 당장의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평가에 대한 문제, 실무자들의 열악한 임금 및 노동조건의 개선문제에서부터 자활제도 전반의 개혁을 통한 자활사업의 정상화 및 저소득 빈곤계층의 삶의 질 향상을 꾀하는 일까지 자활노조의 과제는 너무도 많다. 또한 자활 사업에 대한 다양한 시각 차이의 극복, 노동조합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의 융합, 전국조직으로 갖게 되는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 자활노조의 과제를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극복해야할 어려움들도 산재해 있다.

이러한 과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자활노조가 설립되었다는 것은 자활사업의 발전과 저소득·빈곤 주민의 보다 나은 삶을 이루기 위한 투쟁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사회의 복지 개혁 및 사회 전반의 개혁에 동참하게 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활노조는 어떤 방향을 가지고 있는가? 먼저, 자활노조는 강령에서 밝힌 것과 같이 ‘저소득·빈곤 주민에게 가해지는 모든 사회적 배제와 맞서 싸우며, 노동과 복지가 실현되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위의 과제와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자 한다. 또한 ‘자활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통해 우리로부터 공동체를 실현하고 이를 지역과 사회로 확대’하기 위해 보다 넓은 시야와 다양한 시각을 갖고 투쟁해 나갈 것이다.

자활노조는 단지 자활 실무자들의 이익단체로 설립된 것이 아니다. 자활사업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활제도의 개혁을 통해 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의 빈곤 주민들이 우리 사회에서 당당히 주체로 서고, 자신의 권리를 찾아 나갈 수 있는 주체가 되도록 돕는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자활노조의 또 하나의 목적이자 과제는 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저소득 빈곤 주민들의 조직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활노조는 우리 사회의 자활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전반의 문제, 사회 전반의 문제를 인식하고 사회복지의 개혁,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의 개혁의 주체가 될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활노조는 내적으로는 지역 주민들과의 연대를 꾀할 것이며, 외적으로는 다양한 주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자활의 문제를 함께 극복하고, 나아가 전 사회적 문제에 접근할 것이다.

마치면서

자활후견기관의 실무자들은 현재의 자활제도와 상황 속에서는 자활 사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존재의식 마저 흔들리고 있기에 이제 자신의 존재 형태를 깨닫고 노동조합 건설을 통해 이 사회의 노동자로서 자활 운동을 하는 노동자로서 거듭나게 되었다.

이제 시작하는 한국자활후견기관 노동조합은 많은 과제만큼이나 많은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부터 자활운동을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 그리고 개별 기관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시각의 차이로 인한 문제들 등 헤쳐 나가야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자활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다. 한국자활후견기관 노동조합은 자활 개혁의 주체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김진수/한국자활후견기관 노동조합 위원장, jhnojo@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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