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0 2000-06-10   2232

한국의 노숙자 – 일시적 사회현상 아니다

지난 2000. 5. 9일 “전국실직노숙자대책종교,시민단체협의회”(이하 전실노협)는 노숙자 정책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기대하면서 “한국의 노숙자”라는 종합보고서를 출간하였다. 98년 시작된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노숙자 대책의 흐름 뿐 만 아니라 노숙의 원인과 양상 분석, 건강실태 파악, 전국 노숙자 쉼터 현황 등 다양한 자료들을 취합하였으며, 빈곤과 주택, 일자리, 의료 등의 대책에 관한 나름대로의 대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98년 극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던 거리노숙자들의 현상에 대하여 이제는 차분하게 되돌아보고자 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장기적인 대책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덧붙였다.

노숙자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의 노숙자”는 결코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회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노숙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산업의 발달 과정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우리사회의 항상적인 계층으로 규정지어야 한다. 이제는 국가정책으로서의 “노숙자 대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사항은 한 해를 별 큰 문제없이 지나가도록 하는 일시적인 대책이거나, 노숙자의 죽음으로 인한 정치적인 책임 추궁을 피하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 국가복지정책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은 노숙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특별하게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 다름없는 우리의 이웃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는 언론에서 말하듯이 “갑자기 다시 늘어나는 노숙자”의 숫자나 현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아직도 서울역에 노숙자가 있다”라는 어디론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야 하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 노숙자 증가의 원인은 무엇인가? 혹자는 실업자가 모두 노숙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개인적인 게으름, 무능력을 그 이유로 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60-70년대 가난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밀려들기 시작한 그 현상에서 뿌리를 찾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는 거대한 문제를 안게 되었고, 빈곤계층과 빈곤지역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중산층과는 분리된 지역적인 상황을 낳았다. 농촌은 비어갔고, 도시주변 판자촌으로 이어지는 빈곤은 부동산 투기와 모두가 잘살아가고 있다는 거품경제 속에서 일부에 과도하게 집중된 부는 상대적으로 “자기 것”을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계층의 가난한 생활을 낳게 됐다. 그 개발의 논리는 도시 판자촌 지역을 중심으로 고급주택과 여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아파트로 변해갔고, 도시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빈곤한 사람들의 집과 일터는 사라져 갔다.

또 하나, 중요한 노숙자 증가 원인중의 한 면은 국가적인 제도의 미비이다. 성장 후 분배라는 국가정책은 사회복지를 마치 소비되는 국가예산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을 낳았고, 빈곤을 예방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맞은 국가의 경제위기는 빈곤한 사람들을 거리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상황이었다.

이러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안고있는 계층에게 있어 실직은 곧 집과 가족, 이웃을 잃어버리는 하나의 사태였다. 주거불안, 소득불안, 사회안전망 부재 등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노숙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 뿐 만 아니라 개인적인 만성질환을 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알콜중독과 사회부적응 문제, 가족해체 등의 문제는 자활을 위한 노력에 치명적인 약점일 수 밖에 없다. 이들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는 데 있어 이러한 점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한국의 노숙자 문제의 복합성을 든다면 여성과 가족노숙자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자가구, 모자가구 등 가족노숙자는 그나마 가족의 형태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 아동이 겪고 있는 문제는 더 많은 관심과 예산이 필요하다. 여성 노숙자는 남성노숙자에 비해 더많은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사회적인 상처와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민간의 종교단체 중심으로 여성과 가족노숙자를 위한 보호쉼터를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이 복합적인 상황을 모두 배려한 예산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시급하게 지원이 보완돼야 한다.

노숙자에게 있어서의 자활 대책

노숙자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서울시는 지하철역에 공공근로를 배치하는 것 등의 시도를 했고, 숲 가꾸기에 300여명을 파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활 대책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으로 자활의 집을 통한 주거 대책을 마련해 준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일자리를 찾는 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주거지가 없으면 다시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약점을 보완해주는 셈이다.

99년 하반기부터 시도된 “노숙자자활사업”은 자립에 이르기 위한 정신, 신체적인 치유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쉼터 나름대로의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재활”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것을 위한 “노숙자자활사업평가단(위원장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을 두어 점진적인 변화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이러한 재활프로그램 중 중요한 하나의 시도는 노숙자의 의료 실태의 파악과 치료이다. 대부분의 노숙자가 호흡기, 순환기, 소화기 질환 등을 앓고 있으며, 전염성이 있는 질병을 앓고 있는 비율도 높다. 서울시는 99년 1월 28일 자유의 집과 희망의 집 등 노숙자보호시설 106곳에 수용된 노숙자 3,900명을 대상으로 결핵검진을 실시한 결과, 전체의 11.8%인 462명이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98년 9월 대구시 중구 달성동의 무료급식소, 대구역, 동대구역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결핵검사를 한 결과 전체 326명 중 무려 18.4%인 60명이 결핵 증상을 보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노숙자의 치료를 담당 할 “상설의료소”가 검토되고 있는 점은 종합적인 재활대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점이다.

99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자활 프로그램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활에 성공했는지는 아직 말하기는 어렵다. 노숙자의 자활을 그리 쉬울 것이라는 예측했던 것처럼 몇 달에 걸친 한두 차례의 프로그램이 노숙자 자활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전에 비해 노숙자 정책이 장기적인 “자활”을 위한 “과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확인한 것에는 분명하다.

노숙자 대책의 과제

98년 IMF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대도시 역사를 중심으로 노숙자들이 증가하였으며, 서울역 주변에서 노숙자들이 밀집하는 상황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97년 말까지 서울역 주변의 노숙자는 100명을 넘지 않았으나, 98년 4월에 약 400여명, 6월에 1,300여명, 9월에 약 2,000여명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현재 노숙자를 보호하고 자활을 위한 구조적인 체계는 일시보호를 위한 대규모 “자유의 집”같은 쉼터와 167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쉼터(서울 복지관 소속 “희망의 집”포함)등이 마련되어 6,300여명의 (2000,3월 현재/ 전실노협 집계) 노숙자들이 보호받고 있다. 그리고, 응급구호에서 수용보호, 그리고 자활에 이르는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전실노협”과 보건복지부 등의 논의 창구가 마련되어 있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노숙자 예방의 내실화 필요

노숙자 문제와 관련하여 노숙자 발생을 예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노숙자 발생 예방 정책은 이미 발생한 노숙자에 대한 대책만으로는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복지체계를 선진화하는 등 노숙자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99년 12월 보건복지부는 쪽방 거주자에 대한 지원 대책을 수립했다. 잠재적인 노숙자층이 광범하게 존재하는 쪽방은 노숙자들이 일시적으로 거주하기도 하는 곳이고, 쪽방에는 노숙자와 비슷한 계층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생활 방식도 유사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따라서 쪽방 거주자들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노숙자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99년 10월 현재 서울시내 주요 쪽방 지역에는 3,000여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00년 4월까지 서울시 중구와 종로구에 각각 1개소씩 상담소를 개설했고, 앞으로 쪽방 상담소는 더 늘여갈 예정이다. 쪽방 지역에는 이밖에도 화재예방 등을 위한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을 하기로 계획했다.

노숙자의 계층적인 보호 위한 “노숙자지원법” 마련 돼야

지금의 과제는 현재까지의 노숙자 대책을 점검해보고 어떤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쉼터는 수용하기에 바빴던 지금까지의 구조를 체계적인 내용을 가진 쉼터로의 유형화, 특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며, 노숙자의 특성별로 적절한 서비스를 마련하고, 의료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그리고 이러한 노숙자 보호사업을 집행하는 실무자들의 안정적인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노숙자 지원법” 마련을 위한 기초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제까지의 일시적인 정부대책이나 종사자 처우개선 등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여기에는 국가적인 책임을 명기하여 지금까지의 예산지원이 명목없이 집행되는 것을 지속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하며, 쉼터 뿐 만 아니라 쪽방, 여인숙 등 주거가 불안정한 사람들을 위한 공식적인 규정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위정희 / 경실련, 경불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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