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9 2009-06-09   1182

한 서민(庶民)의 서거(逝去)를 생각하며

한 서민(庶民)의 서거(逝去)를 생각하며


남찬섭(동아대 사회복지학)


지난 5월 23일 아침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보도를 접하면서 받았던 충격과 허무함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관련된 칼럼을 써 달라는 부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시간만 하릴 없이 갈 뿐 글은 참으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필자는 2005년 4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이른 바 국정과제위원회에, 우리나라의 보수언론이 그렇게도 미워해마지 않았던 국정과제위원회에서 일했었다. 필자가 일했던 국정과제위원회는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후에 양극화민생대책본부로 변경)였는데, 그 곳에서 필자는 장애인지원종합대책 수립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정부안 작성에 실무자로 참여했고 소득분배와 양극화 관련 업무도 담당했었다.

필자가 참여정부 국정과제위원회에 일하게 되었을 때 혹자는 정권 말기에 가서 뭘 하겠느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돌이켜 볼 때 그처럼 자유롭게 정책을 기획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보장된 조직이 또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 대통령은 필자를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위치에 있었지만 필자는 그 당시 2년 5개월 동안 늘 대통령 지시를 근거로 야근과 휴일근무를 밥먹듯 하면서 일했고 또 그것을 근거로 정책을 기획하고 부처 공무원들과 때로는 협의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일하면서도 가끔씩 생각했던 것이지만 지금에 와서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은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참여정부에서 일하면서 몇 번의 국정과제회의 때 노 대통령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몇 번의 회의에 참석하면서 내가 느낀 노 대통령은 정치인 치고는 상당히 사회학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필자가 정치인을 많이 알고 있지는 않지만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정치인이나 고위관료들은 사안의 핵심만 파악한다는 명분으로 복잡한 사안을 희한하게 왜곡하여 요약하는 경향을 자주 보인다.

그럴 때면 참 대꾸하기도 난감하고 다시 설명하기도 난감하고 그저 내가 보고한 것을 어쩌면 저렇게 희한한 각도에서 바라볼까 하는 생각만 들 뿐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적어도 필자가 준비했던 여러 가지 대통령 보고사항과 관련해서 말이다. 사안을 대단히 정확하면서도 통찰력있게 파악하였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데에는 약자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고 상식에 대해 회의할 수 있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2007년 5월 어느 날 필자가 일하던 위원회의 위원장과 노 대통령의 오찬자리에 배석하게 되어 함께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날 오찬회의의 주제는 양극화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비록 필자가 준비한 보고문건이었지만 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었는데 대통령은 그 내용의 핵심을 대단히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하였다.

게다가 필자가 더욱 놀란 것은 그 날 대통령이 하신 일종의 지시랄까 부탁이랄까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식사를 마친 후 차를 마시면서 그동안 참여정부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관계론, 참여복지, 동반성장론, 양극화, 비전 2030, 사회투자 같은 것들을 내세우면서 사회정책에 나름대로 노력해 왔는데 이러한 참여정부의 노력이 우리나라 복지국가의 전반적인 발전과정에 비추어 볼 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며 어느 위치에 있는 것인지를 누가 좀 정리해줄 수 없냐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 지시라고 할 것은 없고 그저 부탁이고 희망이니 좀 정리할 수 없겠느냐고 너무 급하게 할 것은 없고 시간나는 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필자가 그 날 대통령이 하신 말씀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내용은 위와 같은 것이었다. 필자는 정치인과 고위관료들 중에 그런 통시적인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을 그 때까지 본 적이 없었고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복지를 전공했다는 연구자들 중에도, 참여정부가 끝난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런 문제의식을 가질 연구자가 있겠지만, 그 시점에서 그런 문제의식을 그처럼 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연구자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필자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솔직히 이 분이 만일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다면 뛰어난 학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필자의 기억의 편린 속에 남아 있는 노 대통령은 아래를 볼 줄 아는 분이었던 것 같다. 2007년 4월 4일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서명식과 함께 장애인업무보고가 있던 날이었다. 장애계가 그토록 원했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통령이 서명하는 일종의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었는데 당시 필자와 사회정책비서관은 복지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애계의 한 인사를 초청하자고 주장했다.

이 인사에 대해 복지부는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으로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 초청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논의 끝에 복지부는 필자더러 그러면 당신이 그 인사가 행사당일 돌발행동을 하지 않도록 책임지는 것을 조건으로 하자면서 그 인사의 초청에 동의했다.

하지만 실제 행사 당일 그 인사는 대통령 앞에서 펼침막을 펼치고 구호를 외치는 돌발행동을 감행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 돌발상황에서 ‘말씀을 하시는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말하면 시간을 드리겠다’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인사는 계속 구호를 외쳤고 결국 대통령이 세 번째 말씀을 하시면서 그는 경호원들에 의해 들려나가게 되었다. 필자는 행사장 바깥으로 나가서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는데 경호원들은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옛날 같았으면 집으로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끌려갔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담당부처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인사를 초청해야 한다고 주장한 필자도 옛날 같았으면 그 사람과 공모하지 않았는가 하는 심문을 어디론가 끌려가서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 다음날 다 지나간 일인데 어쩌겠느냐며 그냥 놔두라고 하셨다.

당시 사회정책수석실에서 일하던 행정관과 필자는 경위서를 작성하는 정도로 그쳤다. 대통령이 그 돌발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시간을 주겠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권위의식에 젖어있지 않고 아래를 볼 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아래를 볼 줄 알고 통시적인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노 대통령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장애계 인사가 돌발행동을 벌였던 그 날 일간지의 보도는 대체로 ‘구멍난 청와대 경호’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서명식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게다가 그 날의 장애인업무보고는 이른 바 수요자중심 업무보고였지만 그것 역시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집권 후반기에 시도한 아쉬움은 있지만 수요자중심 업무보고는 필자가 본 업무보고 중 가장 선진적이고 획기적인 것이었다. 기존의 업무보고는 정부의 각 부처가 부처별로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수요자중심 업무보고는 정책대상자, 즉 노인이나 장애인, 여성을 보고의 중심에 놓고 각 부처가 노인과 장애인, 여성에 대해 어떻게 정책을 수립할 것인지를 보고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컨대 장애인에 관련된 수요자중심 업무보고를 할 때에는 과거처럼 복지부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부와 노동부, 여성부, 문화부, 교육부 등 장애인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모든 부처가 모여서 계획을 협의하여 보고해야 한다.

노인에 관련된 업무보고나 여성에 관련된 업무보고도 마찬가지이다. 참여정부가 비록 집권 후반기이기는 했지만 이런 선진적이고 획기적인 수요자중심 업무보고 형식으로 업무보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은 아마 극히 드물 것이다. 이 땅의 보수언론과 기득권자들에게 수요자중심 업무보고가 눈에 보였을 리가 만무하며 따라서 장애인에 관련된 수요자중심 업무보고뿐만 아니라 다른 정책수요자에 관련된 수요자중심 업무보고도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이 땅의 기득권자들은 노 대통령을 깎아내리고 멸시하고 능멸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필자가 실무를 담당했던 업무와 관련해서도 보수언론들은 거짓보도도 불사하였으며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법대로 하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쳐댔다. 필자는 2007년 봄 이후에는 보수언론들의 왜곡보도에 대해 대응자료를 만드는 데 엄청난 시간을 쏟았다.

그 대응자료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리 할 수 없는 것을 우리나라 언론들은 벌건 대낮에 버젓이 자행하고 있으니 그것을 상식에 기대어 바로잡는 수준이었다. 참여정부의 다른 공무원들도 필자와 대동소이한 처지였을 것이다.

이 땅의 짐짓 온건파라는 사람들 혹은 점잖다는 사람들은 참여정부가 내는 그런 대응자료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보이곤 했다. 맨날 언론과 싸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의 수준에서 가질 수 있는 상식에도 맞지 않는 보도를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 그런 것에 대해 정부가 가만히 있다면 그것은 정부가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해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땅의 이른 바 진보라는 사람들은 노 대통령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로드맵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기득권자들 못지않게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 집권세력을 비난하였다. 그들은 보수세력과 그들이 구축해 놓은 보수적인 구조 속에 포위당해 있는 참여정부의 처지는 외면하였다. 자기들이 집권해도 마찬가지로 보수세력과 보수적인 구조 속에 포위당한 처지를 발견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적 실수나 큰 방향설정의 오류로 국민들 중 어떤 사람은 삶의 위기에 빠지기도 하며 이는 정부를 비난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만 그런 오류가 사람들을 삶의 위기에 빠뜨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 내에서조차 예산을 따내지 못하고 설사 정부에서 예산을 확보해도 그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최근 어느 신문에서 본 내용인데 정확한 단어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대체로 노 대통령은 머리와 몸이 분리된 상황에 있었다는 취지의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꿈은 멀리 있되 그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은 그 꿈과는 거리가 먼 땅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처지는 이른 바 진보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 땅의 서민들에게 공통된 것이 아닌가 한다. 노 대통령은 생전에도 그러하였지만 사후에도 여러 가지 엇갈린 평가에 노출될 것이고 이미 그러하다. 현재 발을 딛고 선 땅을 꿈에 좀 더 가깝게 할 때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한 전략과 정책을 냉철하게 구상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 때 노 대통령의 서거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다음 세상에서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가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는 발을 딛고 선 땅을 당신이 가진 꿈과 맞게 꾸밀 수 있는 대통령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대통령이 되십시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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