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9-08   878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기필코 저지하여야 하는 이유

너무 잦은 비 때문에 일조량이 부족해 올 해 지어놓은 농작물이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이삭알도 적고 고추도 썩어버려 농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또한 사과, 배, 포도 등에도 병해충이 퍼지고 병이 돌아 농민들의 가슴을 썩게 하고 있다. 곧 다가올 추석이 서민들에게도 농민들에게도 풍족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세계적 이상가뭄과 수해로 태국, 베트남 등 쌀 수출국의 쌀 생산량 및 재고가 20%가량 감소해 세계 쌀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럽도 계속된 폭염과 가뭄 등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흉작이란다. 그래서 곡물, 과일, 채소, 축산물 할 것 없이 가격 폭등이 우려된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것이 지금 현실이다. 반면에 이것이 농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현실이다.

산업화와 자본만을 위해 굴러온 전세계의 경제 구조는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과 사회를 황폐시켰다. 환경오염과 기상이변은 예측된 재앙이다. 이렇게 나간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모두는 환경 파괴에 따른 식량과 물의 부족, 환경오염에 고통받을 수 있다.

이 위험을 극복할 유일한 대안은 농업뿐이다. 자국의 먹거리를 담보해 낼 수 있도록 농업기반을 확충하고 안정적인 식량자급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자연으로 순환하는 환경 농업이야말로 농약과 살충제, 전염병과 유전자 조작 농산물 등에 맞서 국민들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그런데 WTO를 앞세운 미국 등 식량 수출국들은 농업도 하나의 상품일 뿐이며 전세계적 시장개방만이 모두의 이익을 위한 선(善)이라는 논리를 끊임없이 설파하고 있다. 또한 싼 농산물을 사다가 먹는 것이 이익이라며 세계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새로운 무역 협상들을 끊임없이 추진하며 우리와 같은 식량수입국, 약소국의 농업 시장개방을 확대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이것이 바로 2001년 11월에 출범한 WTO DDA(도하 개발아젠다, 즉 뉴라운드)이다. 2004년 말까지 더 많이, 더 빨리 시장 개방을 하자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UR협정으로 인해 약소국, 식량수입국, 제 3세계 국가의 식량 및 농업기반과 농민의 삶이 해체되었던 것 보다 더욱 강도 높고 잔인한 질서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한편에서는 FTA(자유무역협정) 논의가 한창이다. FTA는 농업 개방을 더욱 과감하게(?) 진행시킨다. 정부는 칠레라는 낯선 나라와 FTA를 타결했는데 사과, 배를 제외한 포도, 감귤 등 과수, 축산물 등을 비롯해 수천가지의 농축산물 품목에 대해 수년안에 무관세 자유 무역을 하자는 것이다.

도대체 자유무역협정이란 무엇인가?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이란 국제 무역을 하는데 있어서 나라와 나라사이의 모든 무역장벽을 완화하거나 철폐하여 무역을 무한 자유화하자는 양국간 또는 지역간의 특혜 무역협정을 뜻한다

지금 정부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에 최종 서명을 하고 국회비준 동의 절차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표 빠짐)

한국 정부는 최초의 자유무역체결 국가를 칠레로 선정한 이유를 우리 나라와 보완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즉, 우리나라는 공산품을 수출하고 칠레에서 과일 등 농산물과 원자재를 수입할 수 있고 또 계절이 반대여서 농업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이 한·칠레 협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한국 정부가 한국 농업 포기를 전제로 한 무역협정을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기 때문이다.

우선 한·칠레 협정이 타결된다면 한국농업에 막대한 손실을 주면서도 전체 국익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명한 학계와 연구소 등의 발표자료를 보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인해 농업이 완전개방 되면 우리 경제가 얻게 될 경제적 효과는 전무한 반면, 농업의 산업조정을 위한 경제사회적 비용은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칠레 농업은 미국 등의 거대자본에 의해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발전했다. 특히 다국적기업이 유통을 장악하고 있으며 과일농업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과 엄청난 생산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농업이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무역수지 흑자의 대부분이 농산물 분야인 나라가 칠레인 것이다. 우리나라와 칠레 농업시장과의 무한 경쟁은 3살 먹은 아이와 어른이 씨름경기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산품 수출에서의 큰 이익 때문에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구, 국민소득이나 시장규모 등이 우리나라의 3분의 1정도로 작으며 매년 관세를 인하해 10년 안에 무관세 시장 전면 개방을 공언하고 있는 칠레와 왜 자유무역협정을 맺어야 하는지 우리는 납득할 수가 없다. 또한 미국, 호주 등 선진국들도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과정에서 자국의 농업보호를 위해 많은 품목을 예외로 하거나 일본처럼 농업 자체를 제외한 무역 협정을 맺고 있는데 우리 나라는 쌀과 배·사과를 제외하고 모든 농산물의 관세를 철폐하려는 협정을 맺은 이유가 무엇인가. 한 품목이라도 5%이상 과잉 생산되면 가격이 폭락되고 도미노처럼 다른 작목의 연쇄 가격폭락이 일어나는 농업의 특징을 살펴본다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체결에 따른 농업 파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사람 죽어나가는데 복지정책 펴겠다고?

지난 18일 농림부가 발표한 ‘농업·농촌 종합대책안’을 보면 정부는 향후 농업 구조를 전업농 위주로 재편할 계획이며, 이에 따라 농가 인구의 비중은 지난해 7.5%에서 2008년에는 4.8%로, 2013년에는 3.4%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쌀 산업의 경우 6ha규모의 전업농 7만호를 육성하고 축산업도 축산농가 2만호가 전체 사육의 85%를 담당하도록 할 계획이란다. 결국 지금 농업의 대부분인 영세농, 중·소농가들을 퇴출시키고 규모화할 능력이 있는 농가만 남기겠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WTO DDA 농업협상과 자유무역협정(FTA)등 시장개방에 따른 농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 농가부채의 일부 해결, 농민복지 정책 및 지역개발 촉진법 등을 제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시장개방과 복지 등 현안문제를 맞바꾸는 빅딜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농업을 전면 포기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94년도에 타결된 UR협상에서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을 개방하여야 했다. 협상을 잘못하고 농업포기 정책을 수행해온 정부 덕(?)에 2002년 현재 농업예산과 맞먹는 8조원에 달하는 농축산물이 매년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농민의 숫자는 10년간 급감해 지금은 400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쌀을 제외하면 5%도 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쏟아져 들어오는 싸디싼 농축산물은 농가소득 감소와 그에 따른 농가부채 급증 사태를 만들었다.(표 빠짐)

UR개방이후 농민들은 자살과 야반도주, 파산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런데 계속 개방을 하겠으니 경쟁력 있는 농민만 살아남으라는 정부, 도대체 자국의 농업, 농민을 보호할 의지와 계획이 없는 정부를 어떻게 농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가. 대책 없는 농축산물 개방 때문에 빚더미에 나앉아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농민에게 부채 이자률을 낮춰주고 생색내기식 복지특별법을 만드는 것으로 무슨 희망이 생기겠는가.

이제 생명을 살리자! 농업을 살리자!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은 UR협상 이후 수입농산물 급증과 정부의 개방 정책에 의해 짓밟혀온 농민의 한가락 남은 생명줄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한번 붕괴된 농업기반은 복구하는데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고 수백년이 걸릴 수도 있을 만큼 어렵다. 그러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체결에 따라 수많은 농민들이 영농의욕과 희망을 잃고 농사를 포기하고 있다. 농업을 포기하고 방치된 농지에는 온갖 유흥 향락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하기야 정부가 공공연하게 농지 규제를 풀고 있으니 부동산 투기꾼들은 더 기세 좋게 투기바람을 일으키며 농지를 비롯한 농업기반을 훼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환경오염에 따른 기상이변 등으로 식량 위기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는 전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다가오는 통일과 북녘의 식량 부족을 감안하면 더 많은 농지와 농업생산기반을 보호하고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한 농업시장 개방 협정은 우리 농업의 파탄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 분명하다. 농업은 국민들에게 안전한 식량을 제공하고 식량주권과 환경을 지키며 4천만의 고향을 지키는 효자 산업으로서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라의 기본을 튼튼하게 지키고 있다. 실제로 농업기반공사의 발표에 따르면 사회안정과 일자리 제공 등 사회경제효과와 홍수조절효과, 대기와 수질의 정화 및 토양보전 등의 환경보전 효과, 농촌 경관 보전과 전통 문화 보전, 휴양 및 레저 공간 제공 효과 등을 모두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매년 50조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제라도 농업을 지키기 위해 개방농정이 아닌 농업보호 육성정책을 펼쳐야 한다. 대통령부터 정부관료, 정치인들부터 농업에 대한 올바른 철학을 가지고 전농이 주장하는 통일대비, 식량자급, 소득보장, 환경농업의 큰 틀로 농정을 개혁해 나가야 한다. 이제 농업이 상품이 아니라 생명임을 말하자. 우리 모두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 즉 안전한 먹거리를 먹고 건강할 권리, 깨끗한 환경을 보전하고 향유할 권리, 농민이 일한 만큼 대가가 보장받을 수 있을 권리, 자국의 식량자주권과 후대들의 식량창고를 담보하기 위해 농업을 보호할 권리를 되찾아 와야 한다. 이것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기필코 막아내야 하며 더는 농업을 시장과 자본의 논리로 개방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수현 /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부장, nongs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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