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6 2006-11-11   4604

프랑스의 주거복지정책

1. 역사적 발전 과정

프랑스 주거복지정책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1960년대 초반부터 국가가 주도적으로 국토개발과 경제성장전략을 추진했던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역사가 길다. 그러나 처음부터 국가가 주거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이농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주로 인구가 모여들던 산업도시에서 주거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는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최소한의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라는 야경국가적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다. 따라서 국가는 치안, 외교 등의 업무를 주로 담당하면서 고용관계, 주거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19세기 말까지 근로자의 주거문제는 사회적으로 방치되거나 일부 박애주의정신으로 무장한 고용주들이 근로자주택을 건설하는 등 민간부문 스스로 이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19세기 중반부터 의회에서 카톨릭 보수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서민들의 주거문제를 공론화하여 국가의 개입을 유도해보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기득권층이라 할 수 있는 자유주의자들의 반대와 협조부족으로 인해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19세기 전반에 등장했던 페스트의 위협 등으로 인해 위생문제를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 1850년에 ‘비위생주거 정비법’을 제정하는 등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는 듯 했으나 법안의 내용이 주로 권고사항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실효성 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가 국가가 주거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 계기는 1894년에 제정된 ‘시그프리드(Siegfried) 법’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그 동안 민간이 보여주었던 근로자주택지원 사례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확산됨과 동시에, 마르크스, 엥겔스 등이 주장한 과학적 사회주의사상이 기득권층을 압박해왔기 때문에, 사회적 맥락에서 볼 때 국가가 하층민의 주거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무관심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이 법으로 인해 민간이 근로자주택을 건설할 경우 공적자금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도(département) 단위 지자체에 사회주택 사회주택의 대부분이 임대형으로 건설되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택과 공공임대주택 등의 용어가 유사한 의미로 혼용되기도 하지만 사회주택 중에는 분양주택도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후원회의 설치가 가능해졌다. 이후 ‘스트로스(Strauss) 법’, ‘리보(Ribot) 법’, ‘본베이(Bonnevay) 법’ 등 다양한 입법을 거치면서 국가의 역할은 점차 확대되었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가개입을 확대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를 거쳐 임대료 통제, 가족수당 도입, 기업의 공공임대주택 건설 참여 등의 사회적 제도가 도입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임대형 사회주택, 즉 공공임대주택의 대량공급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1970년대에 들어서 주택재고도 상당히 확충된 상황에서 석유파동 등으로 국가경제가 타격을 입게 되자 결국 1977년에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주택공급 위주의 정책보다는 임대료보조에 치중하는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부터는 ‘베송(Besson) 법’ 제정과 함께 주거권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주택문제가 갖는 사회적 측면, 즉 빈곤, 사회ㆍ공간적 분리(segregation), 사회적 배제(exclusion), 지역슬럼화 등의 문제가 주거정책의 주요 관심사항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현재 프랑스의 주거정책은 주택의 수급보다는 주택을 매개로한 사회적 문제의 해결에 더욱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초까지 주택업무를 프랑스의 건설교통부(ministère de l’Equipement, des Transports, du Logement, du Tourisme et de la Mer)가 담당했었으나, 지금은 고용연대부(ministère de l’Emploi, de la Cohésion sociale et du Logement) 가 이를 담당하고 있다.

2. 오늘날의 주거실태

2002년 현재 프랑스에는 약 6천만 명이 거주하며 총 2,949만 5천 호의 주택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별장, 공가 등을 제외하고 가구가 항시 거주하는 주택(이하 ‘거주주택’ 프랑스의 주요 통계는 거주주택을 중심으로 작성된다.

)은 2,452만 5000호이다. 따라서 국가전체적으로 볼 때 주택의 절대부족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구 천 명 당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503호로서 오히려 이웃 유럽국가들보다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는 417호, 영국은 430호이며, 참고로 우리나라는 238호이다,

전체 거주주택 중 56.7%는 단독주택이며 나머지는 공동주택이다.

질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편의성은 화장실, 목욕시설, 난방시설을 의미하는데 1973년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주택의 비율은 전체주택의 44.1%에 불과했으나 2002년에는 그 비율이 90.6%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 측면에서의 편의성뿐만 아니고 <표1>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 밖의 객관적인 지표들도 점차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표 1> 프랑스 가구의 주거여건 변화(1973-2002) – 생략

마지막으로 주거만족도를 살펴보면, 프랑스 국민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주거여건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유형태별로 살펴보면 장기모기지론을 통해 주택소유권을 취득한 가구의 만족도가 87.3%로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은 순수 자가점유가구(84.6%), 무상거주가구(72.8%), 임차가구(59.4%)의 순으로 나타났다. 점유형태와는 관계없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만족도는 점차 증가해왔으나, 임차가구의 만족도는 다른 점유형태의 가구에 비해 언제나 낮게 나타났다.

3. 공공임대주택정책과 임대료 보조제도

1) 공공임대주택(HLM)

프랑스의 경우 「건축주거법」에 따라 취약계층을 위해 공급하는 임대형 사회주택에 대해서만 공공임대주택(HLM)이라는 명칭이 독점적으로 사용된다. 단, 공급주체는 반드시 공공부문일 필요는 없다. 건축주거법에 근거하여 민간부문이 HLM을 공급해도 정부로부터 동일한 지원을 받으며 동일한 의무를 부여받는다. HLM은 2002년 현재 383만 2천호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전체주택의 약 16%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HLM 공급ㆍ관리기관들은 비영리성을 유지해야 하며, 설립을 위해서는 국가의 허가가 필요하다. 또한, 이사회에 반드시 입주자 대표가 참여하도록 되어있다.

중앙정부는 이들 기관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주고, 보조금과 융자혜택을 제공한다. HLM 건설사업을 시행할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도 부여한다. 또한, 이들 기관들에 대해 정기적으로 감사를 실시한다. HLM 공급ㆍ관리기관은 기본적으로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으나 지방정부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주택의 신축 또는 개축에 필요한 자금을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릴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지급보증을 선다. 또한, 시장의 건축허가 없이는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구역 내에 HLM을 건설할 수 없다. 그리고 분위기 상으로도 지방정부, 지방의회 등의 의견과 다른 방향으로 HLM을 배분, 관리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HLM은 정책융자금, 국가의 재정지원 등을 바탕으로 건설ㆍ공급된다. 또한, 기업주거위원회(CIL) 1953년부터 종업원의 수가 10인을 초과하는 기업은 종업원 임금총액의 1%를 주거복지기금으로 적립해야 하는데 이 자금을 관리하는 기관.

도 민간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위탁받아 HLM의 건설에 재정적으로 참여한다. 건설된 주택의 일부는 재정적으로 기여한 기업의 근로자에게 할당된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 또는 가족수당금고(CAF) 등의 자발적인 기여금도 사업비용으로 충당된다. 지방자치단체는 토지를 무상 또는 저렴하게 제공하기도 한다.

HLM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국적을 소유하거나 외국인일지라도 프랑스에서 상당기간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또한, 소득이 매년 최저임금(SMIC)의 변화를 고려하여 설정되는 상한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현행 법령은 거주요건과 소득요건을 충족하는 자 가운데에서도 철거될 주택 또는 비위생 주택에 거주하는 자, 장애인, 편부모 가정 등에게 우선적으로 임대주택을 배분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권고사항이다. 실제로 임대주택을 배분할 때는 가구규모와 주택규모의 부합 여부, 직주근접 가능성, 입주대기기간, 임대료 지불능력 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HLM이 정부의 지원을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가구 또는 최저소득계층에게 우선적으로 배분되지는 않고 있다. 공급기관의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지만 경영상의 건전성도 중시되기 때문이다.

최초임대료는 HLM의 공급에 적용된 재원조달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입주 후의 임대료는 원칙적으로 건축비지수의 변동 범위 내에서 조정되어야 한다. 이는 임대료의 인상수준을 객관적 지표에 연동시킴으로써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을 막고 임대차와 관련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일차적 지원대상은 구매력이 취약한 계층이라 할 수 있으나 입주자격요건은 입주시에만 검증된다. 제도적으로 가구의 소득이 입주를 위한 소득한도의 10%이상을 초과할 경우 추가임대료의 부과가 가능하며, 소득한도의 40%를 넘는 가구에 대해서는 반드시 추가 임대료를 부과해야 한다. 동시에, HLM 공급ㆍ관리기관은 소득한도의 40%를 넘는 가구 수에 비례하여 국가에 일정금액의 기여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 기여금은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지원기금’이라는 특별계정으로 유입된다. 이런 이유로, 법정 소득한도 초과가구에 대해 부과하는 추가 임대료를 ‘연대(連帶)를 위한 추가임대료(SLS)’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추가임대료를 부과해도 거주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입주자와의 계약을 강제로 종료시킬 방법은 아직 없다.

2) 임대료보조제도

프랑스의 임대료 보조제도는 크게 주택수당(AL)과 차등적 주거비지원수당(APL)으로 구분되며, 주택수당(AL)은 다시 가족지원형 주택수당(ALF)과 사회정책형 주택수당(ALS)으로 구분된다. 1948년 ALF가 처음으로 도입될 당시에는 2자녀 이상의 가구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요건이 대폭 완화되어 결혼 후 5년이 경과되지 않은 부부 중 현재 자녀가 없고 결혼당시 양측 모두 40세 미만이었던 경우, 1인 이상의 자녀를 둔 가구, 적어도 65세 이상의 부모 1인을 부양하고 있는 가구 등을 지원하고 있다. AL과 APL의 지급액은 가족원의 수가 증가할수록 많아진다. 한편, 임대료 보조의 지원대상 확대 차원에서 ALF의 수혜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계층을 위해 1971년에 도입된 ALS의 구체적 지원대상에는 경제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노인, 학생, 장애인 등이 포함된다.

AL과 APL은 가구별 상황에 따라 주거비부담을 차등화하고, 임차인 외에 융자에 의한 주택소유권 취득자도 지원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두 제도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구별된다. APL의 경우 거주자의 특성보다는 당해 주택의 소유자와 국가 간에 협약이 체결되어 있는지의 여부가 지원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1차적 기준이 되며, 그 이후 구체적인 지원액을 결정하고자 할 때 거주자의 소득수준이 고려된다. 이때 협약이란 주택을 건축하거나 개량할 때 주택의 소유주가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는 대신 일정한 의무를 부담한다는 약속을 의미한다. 협약이 체결되면 임대료 상한선이 설정되며 임대료 조정 등에 제약이 발생한다. 또한, 협약체결대상 주택은 부동산대장에 그 내용이 기재되어 세입자가 이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즉, AL의 수혜대상이 가구위주로 선정된다고 한다면, APL의 수혜대상은 일차적으로 주택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AL은 「사회보장법」 상의 제도인 반면, APL은 「건축주거법」 상의 제도이며, 임차인이 동의하거나 임차인이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을 경우 등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임대인에게 직접 지불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AL은 임차인에게 지불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APL은 언제나 임대인에게 지불된다. 즉, APL의 수혜자(즉, 임차인)가 실제로 부담하는 임대료는 임대인에게 직접 지불되는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로, 이는 정부의 지원금이 주택부문에 사용되는 것을 확실히 담보하는 효과를 지닌다.

지급액은 기본적으로 가구의 주거비 지출 및 가구원의 수와는 정(正)의 함수관계에 있으며, 가구의 소득수준과는 부(負)의 함수관계에 있다. 여기에 형평성제고를 위한 기술적 측면에서 거주지역 등이 추가적 변수로 고려된다. 한편, 주택소유권 취득을 위해 융자를 받은 경우 지급액을 계산할 때는 실질 월임대료 대신 월 융자금 상환액이 변수로 고려된다.

프랑스의 임대료 보조제도에는 세 가지의 기본원칙이 적용된다. 첫째는 ‘최소지출(dépense minimale)의 원칙’이다. 가구 스스로 일정부분 주거비를 감당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가구의 주거비를 100% 지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계지출(dépense marginale)의 원칙’이다. 임대료 상승 등으로 주거비가 증가할 경우, 가구의 경제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해도 새롭게 발생되는 주거비 지출 증가분 중 일부분만 정부지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소득대비 주거비 부담능력(taux d’effort)의 원칙’이다. 주거비 지출 중 가구가 스스로 부담해야 할 수준을 정책적으로 판단하여 이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물론 AL과 APL의 지급기준을 설정할 경우에는 이 원칙이 고려되고 있다.

4. 정책적 시사점

프랑스의 공공임대주택이 나름대로 시장소외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이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HLM에 거주하고 있는 가구들의 상당수는 저소득층이나 문제는 가장 빈곤한 계층은 아이러니컬하게도 HLM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최하위 소득계층은 HLM에 입주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HLM 공급ㆍ관리기관은 경영상의 건전성 유지에 대한 염려 때문에 입주자를 선정할 때 소득수준뿐 아니라 지불능력도 파악하여 문제가 될 만한 취약계층을 처음부터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HLM의 입주가능여부를 판가름하는 소득한도가 너무 관대하게 설정되어있다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다.

1960년대부터 얼마간 HLM이 현대성과 편의성 등으로 인해 많은 인기를 누린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입주자 중 중상층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가 점차 주택은 노후화되고, HLM단지는 슬럼화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프랑스의 공공임대주택단지는 사회적 배제의 온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는 곳을 가지고 한 사람의 사회ㆍ경제적 지위를 추정해 보듯이, 프랑스에서도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한다고 하면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본다. 특히 대도시와 인접한 소도시의 HLM단지는 종교와 문화가 다른 이민자들도 많이 살고 있어서 일반주민들의 기피 또는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공공임대주택은 비영리 분야이므로 결국 공공부문의 개입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영리라는 이유만으로 운영기관 또는 재정지원주체의 손실을 무한정 강요할 수 있을까? 이 문제야말로 딜레마 중의 하나이다. 프랑스의 HLM 공급ㆍ관리기관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지만, 일정부분 경영상의 건전성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빈곤의 섬으로 인식되는 공공임대주택단지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납세자 대다수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결국 경영상의 건전성 유지를 위해 최저소득계층의 입주는 배제될 수밖에 없으며, HLM 공급ㆍ관리기관의 사회적 역할과 재무적 건전성 유지라는 조직목표 간에 갈등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 사회적 합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HLM의 배분에 있어 지역주민을 우대하는 규정은 법령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타 지역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의 유입이 제한되고 있다. HLM사업은 수익성이 낮고,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저소득층의 유입이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앙정부의 정책이 지역실정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역의 발전을 이끌고 있는 정치집단은 관할구역 내에 HLM이 건설됨으로 인해 타 지역으로부터 저소득층이 이주해 올 경우 그 도시의 평균생활수준이 낮아지며, 경우에 따라서는 범죄율 등이 증가할 것으로 믿는 경우도 있다. 결국 지역이기주의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임대주택 재고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이 나타날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 만큼, 관련정책의 수림과 추진에 있어 보다 장기적이고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특히 임대주택정책이 취약계층에 대한 주택의 배분으로만 끝나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입주 이후에도 입주자들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노동정책, 교육정책 등을 병행하여 취약계층이 자립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나아가서는 저소득층 밀집지역에 대한 선입견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목표가 실질적으로 달성될 수 있어야 추진되는 주택정책이 주거복지정책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거복지의 영역을 보다 넓게 적용할 수 있도록 물리적 거주 공간보다는 거주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법령체계의 구축과 policy mix가 가능한 전문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해서만 지급되는 주거급여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나아가서는 일정 소득수준 이하의 저소득층을 가구별 상황에 맞게 차등지원할 수 있는 임대료보조제도의 도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임대주택에 입주하지 못하는 취약계층도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확한 소득파악이 가능해야 하며, 사회적 공감대도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김영태/빈부격차 차별시정위원회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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