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5-02   633

평화를 사랑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남기자

– 대한민국이 전범국가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자 –

이번 전쟁에서 명확한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리란 것이고, 둘째, 무고한 이라크 국민이 희생 당하리란 것. 셋째, 인류가 평화에 목말라 절규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전쟁도 정당한 전쟁은 없었습니다. 전쟁은 국민 다수가 원하지 않고, 소수 권력자들의 욕망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전쟁으로 이익을 얻거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수많은 인명의 피해와 사회문화적 파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결코 창조적일 수 없습니다. 오로지 파괴를 통한 굴복과 원한만 남습니다.

이 전쟁이 미국이 말하는 대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거대 군수회사와 석유재벌을 등에 업은 미국 정치권의 더러운 획책에 따른 침략전쟁일 따름입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유일 패권시대를 겨냥한, 오로지 강대국만을 위한 그들의 이익만을 위한 전쟁입니다.

대통령도 이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알면서도 이 전쟁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 받았습니까, 아니면 안정적인 원유공급을 약속받았습니까?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국익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국민 앞에 당당히 밝히고 토론하십시오.

대통령이 어쩔 수 없는 곡절과 말 못할 속사정으로 전쟁지지와 파병을 선택했을지 모릅니다. 우리 국회가 80%이상의 한국인들의 평화의지를 반영해서 대통령의 불행한 선택을 바르게 고쳐놓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침략전쟁을 거부해 왔습니다.

무모한 국익에 사로잡혀 이웃나라를 침략하기 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안전하게 지키고 자손들이 번창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아름답게 가꿔오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 번의 불행한 역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대국의 힘에 굴복하여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강요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결코 국익에 부합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몽고의 강요에 의해 일본정벌에 나섰던 고려의 군사들은 대마도 앞바다에서 수장 당하는 비극적 종말을 맞았습니다.

베트남 해방이란 미명하에 몇 십만의 우리 청년은 이름 모를 정글 속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갔습니다. 아무런 원한도 없는 한국과 베트남 젊은이들이 흘린 피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채 슬픈 교훈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 대가는 무엇이었습니까?

경제성장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젊은이가 피를 흘리고 얻은 경제성장이 과연 자랑스러운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기회비용을 논하기에도 너무 초라하고 명분 없는 역사적 과오입니다.

일각에서는 대북 핵문제와 관련한 한반도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보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우리의 순진한 바램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기준은 우리 국민에 대한 보장이나 약속 때문이 아니라 철저히 그들의 이익에 따라서 움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은 필름을 되돌려볼 필요도 없는 역사적 사실이자 강대국의 패권논리임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석유소비 국가입니다. 석유 수입은 세계 4위,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10위 국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안보는 석유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라크전쟁이 끝나면 미국은 전세계 석유에너지를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을 지지하면 우리에게 안정적인 석유공급이 보장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국익우선주의 정책노선, 남북화해 분위기, 반미정서 등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 한-미 안보동맹관계로는 통제력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며, 곳곳에서 불만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결국 미국은 해외 에너지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경제를 미국이 통제하는 에너지 수급체계에 묶어, 한반도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 할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 여하에 관계없이 우리 경제는 대미 의존적으로 될 수밖에 없고,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세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과연 미국에 눈에 들기 위한 아부성 정책을 통과시켜야 합니까?

전쟁지지도 모자라 파병까지 논해야 합니까?

대한민국을 전범국가로 만들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지켜 대한민국을 전범국가로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겪은 민족입니다. 그 참혹한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북은 분단되어 있고 통일의 길은 험난합니다. 북핵문제로 긴장감이 맴돌고 동족상쟁의 깊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이산가족의 서러움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수한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폭력으로는 평화를 정착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전쟁이 이라크와 중동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장단을 맞춰 평화를 버리고 전쟁을 지지하는 어리석음에 동참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의 경제성장이 베트남의 희생을 딛고 이뤄진 것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침략적 전쟁에 동조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질지 모르는 떡고물에 대해 세계시민으로서 당당히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떡고물이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라크 현지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우리 국민 3명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이들도 전쟁의 희생양이 될 지도 모릅니다. 이들과 함께 국내 일간지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국내주재 이라크인들의 사진을 싣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선택이 이들 앞에 떳떳할 수 있습니까?

우리 국회는 87년 민주헌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헌법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가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침략 전쟁에 우리 군을 파견하는 결정을 고민없이 통과시켜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부여받은 헌법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파병안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대통령에게 되돌려보내야 합니다. 우리 대통령을 평화를 지킨 대통령으로 기록되게 해야 합니다.

이번 전쟁의 당사자인 미국에게도 즉각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적 정치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국제연합의 질서를 존중하고 침략적 전쟁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해야 합니다.

의원 여러분, 우리는 중대한 결정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어쩌면 역사적으로 오명을 남기게 될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아들을 전쟁지역으로 파병하자면 선뜻 찬성하겠습니까? 그렇다고 대답은 할 수 있겠지만, 실제상황이라면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이라크의 죄없는 국민이 지금 이 시각에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죄없는 미국병사들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그 가족들의 통곡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대구지하철 참사를 보고 얼마나 가슴 아파했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는 죄없이 죽어가는 무고한 이라크 국민들의 현실 역시 슬퍼해야 합니다.

의원여러분,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지만 조금 손해보더라도 자존심을 지킨 문명국가, 휴머니즘을 실천한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국회가 평화를 사랑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강자의 논리는 용서와 이해와 사랑입니다. 자기보다 절대 약자인 이라크를 침략하는 것은, 뻔히 이기는 전쟁을 감행하는 것은, 미국이 강자가 아니라 반드시 죄값을 치루어야 할 오만한 국가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런 오만과 독선에 왜 우리가 동조해야 합니까, 왜 우리가 죄악에 편승해야 합니까?

이라크전쟁을 지지선언하고 파병안에 찬성하는 우리의 슬픈 현실, 약소국의 서러움과 강대국에 기대어 보다 많은 것을 얻어 조금 더 잘살아 보자는 이 아픈 현실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인간목숨을 담보로 했다는 엄연한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남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고 있는 전쟁입니다. 전쟁이 마무리된다 할지라도 필연적으로 테러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테고, 그런 절망의 외침이 또다른 형태의 살상과 파괴를 동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목숨을 빼앗긴 그들의 절규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세상에 정의로운 폭력은 없습니다. 잔혹한 폭력은 복수를 낳고 결국 더 큰 불행을 만들 것입니다.

우리 국회에는 가톨릭, 기독교, 불교신자 의원 숫자가 많습니다. 종교정신은 사랑과 자비와 평화와 자유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희망입니다. 오히려 이라크 난민구호에 앞장서야할 한국이 전쟁지원을 한다는 것은 수치입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만, 불가에 인과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억겁의 전생에서 사람들 모두가 내 어머니였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증오할 수 없고, 더구나 전쟁을 통해 인간을 살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의 눈망울과 자식만 살리려고 몸으로 감싸안은 어머니의 희생에서 우리는 끝없이 인간존엄을 외쳐야 합니다. 어떤 국익이 인류의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침략의 들러리가 돼서는 안됩니다.

고귀한 전쟁도 없고, 고귀한 침묵도 없습니다. 옳은 일에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푸근한 우리 낱말 가운데 자비와 자애가 있습니다.

자비는 남의 고통을 해소하려는 마음이고, 자애는 남을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가슴 뭉클한 얘기 한 토막이 있습니다.

어느 원시부족이 죄인을 심판할 때

온 부락민이 모여

실컷 먹고 마시며 춤추며 논답니다.

그러면서 한 사람씩 나서서 죄인이 평소 행한 착한 일이나

죄인의 장점이나 칭찬하는 말만 한다고 합니다.

결국 그 죄인은 잘한 점이 너무 많아서

무죄가 선고되고 부락민과 함께

평화로운 마을을 가꾸며 산답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나라의 최대 가치는 사랑과 평화, 정의와 휴머니즘이어야 합니다. 우리에겐 이런 평화와 휴머니즘이 필요합니다. 정의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원시부족마을처럼 평화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착각과 오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마련입니다.

글쟁이인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해가 떠오른다”, “해가 진다”라고 표현합니다.

정말 해가 뜨고 지는 것입니까? 태양은 한번도 뜨고 진 적이 없습니다. 지구가 돌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이라크 전쟁은 인류사의 착각과 오해입니다. 그러하기에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모색하는 “진실찾기”에 우리의 양심을 바쳐야 합니다.

국회의원의 귀중한 한 표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곳이 아주 많습니다. 전쟁지원 말고 인류애를 위한 정의로운 일에 한 표씩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김 홍 신 / 한나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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