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6 2006-02-10   3694

1970년대의 사회복지 – 1

1970년대 초반의 사회복지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실은 사회복지사업법과 국민복지연금법이 제정된 사실일 것이다. 1970년 1월에 공포된 사회복지사업법은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사회복지서비스의 법적인 기본골격을 규정한 기본법에 해당하는 중요한 법률이다. 국민복지연금법은 1973년에 법 제정만 이루어지고 시행은 되지 않았지만 당시 이 법의 제정에 참여했던 학자 및 전문가들의 일부가 오늘날 시행 중인 국민연금제도의 입안에도 참여했던 만큼 현재의 국민연금법이 제정될 당시 그 이전의 국민복지연금법의 틀이 제도형성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한다. 이번 호에는 사회복지사업법의 제정에 대해서 살펴보고 국민복지연금법은 다음 호에서 다루기로 한다.

1960년대 말 사회복지시설의 상황

1950년대와 1960년대를 살펴본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방 후 한국 정부는 사회복지욕구에 대해 스스로의 재정과 인력으로 대응하지 않고 상당부분을 민간의 활동에 의존하여 대응하였다. 이 민간의 활동에는 국내 토착인들의 노력도 많았지만 이들의 활동은 규모가 작고 상대적으로 영세한 편인 경우가 많았고, 또 순수하게 복지적인 목적을 위한 활동도 많았으나 일부는 해방 이전의 친일경력을 무마하거나 해방 후 일재잔재 청산과정의 혼란을 틈 타 사회사업을 내세운 재산보존 등의 다른 목적에 의한 경우도 있었다. 해방 후 사회사업에서 규모가 크고 비교적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은 외원단체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다. 1970년에 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은 이전에 활동하던 외원단체들이 196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본국으로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동안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던 사회복지서비스에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지난 호에 언급했던 ꡔ사회복지종사자인력조사보고서ꡕ(1970, 국립사회사업종사자훈련원)(이하 ꡔ조사보고서ꡕ)에 나오는 국내사회사업단체와 외원단체의 규모 등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이 보고서는 1970년에 발간되었지만 조사는 1969년에 실시되었으므로 수치는 1969년 기준임). 조사대상이 된 사회사업단체(사회사업을 하는 재단법인, 사단법인, 등록단체 등) 97개 중 해방 이전부터 설립된 단체는 10개소, 해방 후 1950년 이전에 설립된 단체는 4개소, 한국전쟁 후부터 1950년대에 설립된 단체는 19개소로 1960년 이전까지 설립된 단체가 33개소로 약 35%(97개소 중 무응답한 3개소 제외하여 계산)를 차지하며 나머지 65%에 해당하는 61개소는 1960년 이후에 설립되었다. 1960년 이후에 설립단체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이유는 우선 1963년 12월에 「외국민간원조단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¹ 외원단체들이 이 때를 기점으로 등록하게 되었다는 점과 1960년대에 각종 민간봉사단체들의 조직화(로타리 클럽, 라이온즈 클럽 등)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그 배경으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외원단체의 경우에는 반드시 이들이 1960년 이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회사업단체의 수입과 지출을 보면 국내단체와 외원단체 간에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선, 국내단체의 연평균 수입은 약 1,1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외원단체의 연평균 수입은 약 9,000만원으로 국내단체 수입의 8.2배에 달한다. 당시 조사대상이 된 97개 사회사업단체 중 국내단체는 53개, 외원단체는 44개였는데, 국내단체 및 외원단체의 수입총액을 단체별로 모두 합한 합계액을 보면 연수입합계액이 국내단체는 6억 4백만원 가량이며 외원단체는 39억 8천만원 가량이다. 국내단체와 외원단체는 수입구조도 매우 달라서 외원단체의 경우 본국으로부터의 송금(즉, 외원)이 32억 8천만원으로 연간수입합계액 전체의 82.4%를 차지하며 사업수입이 4억 9천만원으로 합계액 전체의 12.3%를 차지하는데 비해, 국내단체는 사업수입이 2억 5천만원으로 절대액수로는 외원단체의 사업수입액의 절반 가량에 불과하면서도 국내단체 연간수입합계액 전체의 41.5%에 해당하고 외원보조가 2억 3천만원으로 합계액 전체의 38.8%를 차지하며 정부보조는 1,900만원으로 합계액 전체의 3.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외원단체에 대한 정부보조는 10만원으로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임).

지출을 보면 국내단체 및 외원단체들의 연간지출액을 모두 합한 연간지출액합계액이 국내단체는 5억 8천만원이며 외원단체는 38억 3천만원으로 수입과 마찬가지로 차이가 매우 크다. 지출구조의 차이도 매우 크다. 외원단체의 경우는 사업비 지출액이 26억 7천만원(69.8%), 사무비가 7천 6백만원(2.0%), 인건비가 3억 3천만원(8.6%), 기타가 7억 5천만원(19.6%)인데 비해 국내단체는 사업비가 3억 1천만원(53.5%), 사무비가 3천 4백만원(5.8%), 인건비가 7천 9백만원(13.4%), 기타 1억 6천만원(27.2%)인 것으로 나타나 외원단체는 관리운영비보다는 사업비 지출에 2/3 가량을 지출하는데 비해 국내단체는 사업비 지출과 관리운영비 지출이 1/2씩의 비중을 보이고 있다. 국내단체가 이처럼 사업비 지출에 많이 치중하지 못하는 것은 규모의 영세성으로 인해 시설 자체의 유지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함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단체 자체의 수입을 보장할 수 있는 재산규모도 국내단체와 외원단체 간에 차이가 있어서 재산규모를 응답한 국내단체 및 외원단체의 단체별 재산액을 모두 합한 재산합계액이 국내단체는 14억 5천만원이며 외원단체는 19억 7천만원인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조사에서 97개 단체 중 41개 단체가 재산규모에 대해 응답을 하지 않았는데 ꡔ조사보고서ꡕ에는 응답을 하지 않은 단체를 국내단체와 외원단체로 구분해 놓지 않아서 정확한 것은 파악할 수 없지만 어쨌든 국내단체가 외원단체보다 수자에 있어서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단체의 단체당 재산규모는 외원단체에 비해 작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ꡔ조사보고서ꡕ에는 사회복지시설에 관한 조사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 당시 조사 대상이 된 사회복지시설은 826개소였다(사회복지시설에 관한 조사내용에는 시설의 운영‧소유관계(외원단체가 운영하는 시설인지 국내단체가 운영하는 시설인지 등)가 구분되어 있지 않음). 사회복지시설의 재산규모를 보면 재산규모가 100만원 미만인 시설이 63개소(무응답 시설 51개소를 제외한 775개소의 8.1%)이며 100만원 이상 600만원 미만인 시설이 288개소(37.2%), 600만원 이상 1,200만원 미만인 시설이 205개소(26.5%)에 달하여, 자급자족이 어려운 1,200만원 미만의 재산을 가진 사회복지시설이 493개소로 전체의 63.6%에 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ꡔ조사보고서ꡕ에 의하면, 자급자족이 완전히 가능한 2,100만원 이상의 재산규모를 가진 시설도 118개소로 전체의 15.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사회복지시설 간의 재산규모의 차이가 매우 크며 이는 아동시설이나 영아시설의 경우 시설규모가 다른 시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인하겠지만 국내단체와 외원단체가 운영하는 시설 간의 차이도 상당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회복지시설들의 수입도 매우 열악하였지만 수입구조도 자체 수입보다는 외부보조에 크게 의존하였는데 외부보조 중에서도 정부보조보다는 외원보조의 비중이 훨씬 컸다. ꡔ조사보고서ꡕ에 의하면, 정부부조는 50만원 미만을 받는 시설이 237개소(33.4%, 무응답 시설 117개소를 제외한 709개소에 대한 백분율), 50만원 이상 100만원 미만이 238개소(33.6%)로 100만원 미만의 보조를 받는 시설이 475개소로 전체의 67.0%에 달하는 데 비해, 외원보조는 50만원 미만을 받는 시설이 143개소(22.8%, 무응답 시설 199개소를 제외한 627개소에 대한 백분율), 50만원 이상 100만원 미만이 47개소(7.5%)로 100만원 미만의 보조를 받는 시설이 전체의 30.3%이다. 또한, 정부보조는 대부분이 100만원 미만(150원 미만까지 합치면 609개소로 85.9%)의 보조금에 집중되어 있는데 비해 외원보조는 100만원 미만의 보조금은 탁아시설이나 육아시설 등 규모가 작은 시설에 집중된 것을 제외하면 400만원 이상까지 각 구간별로 골고루 분포하여 있다(정부보조는 400만원 이상 받는 시설이 12개소(1.7%)에 불과하지만 외원보조의 경우는 400만원 이상 받는 시설이 63개소(10.0%)에 달함). 시설의 사업수입은 이 질문에 응답한 500개 시설 중 436개 시설(87.2%)이 150만원 미만이라고 응답하여 대부분의 시설이 자체수입으로는 시설의 운영이 불가능하며 외부보조, 그 중에서도 특히 외원보조가 없으면 시설을 운영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원단체의 철수는 비단 사회복지사업을 행하는 시설의 중요한 수입원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당시로서는 매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1970년에 사회복지사업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외원보조에 대체할만한 새로운 지원책이 강구되어야만 했던 사정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복지사업법의 제정

사회복지사업법과 같은 기본법의 제정 필요성은 1960년대 중반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복지사업법안이 국회에 처음 제출된 것은 1966년이었다. 이 해에 김성철 의원 외 15인의 서명으로 사회복지사업법안이 마련되어 같은 해 12월 12일 국회 보건사회위원회에 상정되었던 것이다. 당시 제안자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생활보호법, 아동복리법 및 윤락행위 등 방지법 등 사회복지에 관한 법률(이 있고) 앞으로도 신체장해자의 복지를 위한 법률이나 기타의 사회복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것으로 보이나 아직 이들 사회복지관계법률의 기본법인 사회복지사업법의 제정을 보지 못하고 있어 이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법안의 제안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실제 사회복지사업법의 제정 배경을 다소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김성철 의원의 주도로 제안된 사회복지사업법은 1966년 12월 21일 국회 보건사회위원회에서 한 차례 질의 및 토론이 있은 후 논의되지 않다가 1967년 6월 30일 제6대 국회의 임기가 만료함에 따라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그 후 제7대 국회가 새로 구성되고 1968년 6월 26일 윤인식 의원 외 32인의 서명으로 사회복지사업법안이 다시 상정되었다. 윤인식 의원이 소개한 이 법안은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위원들의 연구로 만들어 보건사회부의 의견과 사회복지연합회의 의견이 종합되어 확정된 것이었는데(제70회 국회 보건사회위원회 회의록, 1969. 7. 18)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².

1. 사회복지사업의 정의를 아래와 같이 규정

① 생활보호법에 의한 각종 복지시설의 운영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② 아동복리법에 의한 각종 복지시설의 운영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③ 윤락행위 등 방지법에 의한 각종 선도사업 및 복지시설의 운영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④ 사회복지상담, 부랑인선도, 직업보도, 노인휴양, 인보무료숙박 등 각종 선도사업 및 복지시설의 운영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2. 사회복지시설은 보건사회부장관의 허가를 받은 사회복지법인이 서울특별시장, 부산시장, 도시사의 허가를 얻어 설치토록 규정(사회복지법인제도의 창설 및 시설설치에 관한 규정)

3. 보건사회부장관의 자문기관으로서 중앙사회복지위원회를, 서울특별시장 및 도지사의 자문기관으로서 지방사회복지위원회를 규정

4. 보건사회부장관으로 하여금 사회복지사업 종사자의 자격증을 교부케 하고, 사회복지법인은 자격증소지자를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수 이상으로 구성토록 규정(자격증 제도의 창설)

5. 사회복지법인의 수익사업을 허용하되 회계를 구분하게 하고 사업목적에 위반하였을 때에는 보건사회부장관이 그 사업의 정지를 명하거나 허가를 취소할 수 있게 규정(수익사업 허용)

6. 보건사회부장관은 사회복지사업을 돕기 위하여 기부금품모집금지법 제3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하여금 공동모금을 허가할 수 있게 하되 모금회의 조직‧운영‧모금방법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공동모금제도의 창설)

당시 법안의 주요 골자는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사회복지법인제도의 창설과 사회복지종사자 자격증 제도의 창설, 수익사업의 허용, 공동모금제도의 창설 등에 관한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제도의 창설은 그 이전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 등의 자격으로 해오던 사회복지사업을 보건사회부가 통제하는 법인으로 한정함으로써 외원단체 철수로 인한 공백에 대응하려는 것이었고,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의 적용예외를 두어 공동모금회를 창설하려 한 것은 정부재정지원의 부족을 예상하여 민간의 자원동원을 꾀하기 위한 것이었다(수익사업의 허용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외원단체 철수로 당시 사회복지시설 운영수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외원보조가 중단됨에 따라 이 보조금만큼을 정부나 다른 어떤 주체가 보조해야 하지만 당시의 경제개발 우위의 논리에 의해 사회복지시설에 정부보조가 충분히 가기는 어려웠고 따라서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이 있지만 이 법의 적용제외규정을 두어 민간의 모금이라도 활성화하여 보조수입을 유지하고 이렇게 해서 동원된 자원을 사회복지사업을 행하는 모든 시설이 아니라 사회복지법인으로서 사회복지사업을 행하는 시설에 대해서만 지원토록 하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사회복지사업법 제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외원단체 철수로 인해 생기게 될 재정지원의 공백을 어떻게 보충하느냐 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당시 제안된 사회복지사업법과 관련해서는 기부금품모집금지법과의 관계와 관련하여 논의가 일어났다. 1968년 10월 경 국회 내무위원회는 보건사회위원회에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의 적용제외를 규정한 사회복지사업법안의 규정(이 규정은 당시 제안된 법안의 원안에는 제24조에 규정되어 있었다)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내무위원회는 이러한 의견을 제시한 이유로 첫째 기부금품모집을 일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법의 적용에 예외를 두면 다른 부처에서도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일어나기 쉽고 이렇게 되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재산권 보장과 생활안정의 목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과 둘째 현행 기부금모집금지법에 규정된 기부금품모집심사위원회에 보사부 차관을 비롯 정부 관련 부처에서 참여하고 있으므로 굳이 보사부가 사회복지사업을 목적으로 기부금품을 모집하려 한다면 현행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제67회 국회 내무위원회 회의록, 1968. 10. 29). 국회 내무위원회는 1968년 12월 12일에도 동일한 의견을 제시했으며 이 때에는 내무부(현재의 행정자치부)장관이 참석하여 최근 기부금품 모집과 아울러 잡부금이 심각한 사회문제화하고 있다는 정황을 들면서 예외규정을 두는 것은 행정의 복잡성만 야기하고 국민의 생활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하여 역시 예외규정을 두는 것에 반대하였다(제67회 국회 내무위원회 회의록, 1968. 12. 12). 내무위원회와 내무부의 반대로 법안의 통과가 지연되었던지 그 다음 해 4월까지 사회복지사업법안의 논의 흔적은 국회회의록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1969년 4월 17일 국회 보건사회위원회에 사회복지사업법안이 다시 상정되었는데 아 자리에는 보건사회부장관이 참석하여 공동모금 관련 조항에 대한 내무위원회의 삭제요구에 대해 오히려 이를 더욱 강화하여 복지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모금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제69회 국회 보건사회위원회 회의록, 1969. 4. 17). 그 후 1969년 7월 18일 보건사회위원회 전문위원의 검토의견에 의해 사회복지사업법안이 수정되었는데 특히 공동모금 조항과 관련한 사항이 중요하였다. 당초 제안된 법안의 제24조는 “보건사회부장관은 기부금품모집금지법 제3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제2조 제4항의 규정에 의한 공동모금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기 위하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게 공동모금을 허가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던 것을 전문위원은 “보건사회부장관은 제2조 제4항의 규정에 의한 공동모금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기 위하여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허가할 수 있다”라고 수정하였다. 이에 대해 당시 회의에 참석하였던 보사부 차관은 “‧‧‧ 그간 연간 100억원에 가까운 외원이 들어오다가 ‧‧‧ 그러한 외원이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능력으로 보아서 ‧‧‧ 충분한 재정적 뒷받침을 할 ‧‧‧ 보증(도 충분치 않은 상황) ‧‧‧ (따라서) 사회복지사업에 대해서는 ‧‧‧ 재정적 지원의 방편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하는 데에 (관심이 집중) ‧‧‧ 가급적 (외국에서 하는 것처럼) 민간에서 활발한 모금이 이루어져 사회복지사업의 기금이 형성되기를 희망”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하였다(제70회 국회 보건사회위원회 회의록, 1969. 7. 18). 이처럼 내무부와 보사부의 의견이 크게 엇갈리자 보건사회위원회는 이 문제에 관련한 보다 심도있는 논의를 위해 소위원회를 구성하였는데, 소위원회는 법안의 원안 제24조는 보건사회위원회 전문위원의 의견에 따라 수정(“기부금품모집금지법에도 불구하고”라는 자구의 삭제)하되 대신 법안의 원안 제16조에 제3항을 신설하여 “모금회가 행하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그 사용에 관한 감독은 기부금품모집금지법 제7조 및 제8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보건사회부장관이 행한다”라는 규정을 두는 절충안을 제시하였다. 이는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한 공동모금 자체는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의 테두리 내에 두되 이 테두리 내에서 모금하는 기부금품의 모금과 사용에 관한 감독권은 보건사회부에 주도록 함으로써 내무부와 보건사회부 양 부처 모두에게 양보할 명분을 준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1969년 12월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사회복지사업법안은 이 절충안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이렇게 해서 마련된 사회복지사업법은 1970년 1월 1일 공포되었다(공포 당시 사회복지사업법은 1970년 4월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부칙에 규정되었고, 다만 사회복지사업 종사자 자격증 제도는 공포 후 2년 후인 1972년 1월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³.

이런 과정을 거쳐 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이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법 제정 당시 국회에서의 논의는 주로 공동모금과 관련하여 기부금품모집금지법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이루어졌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사회복지법인 문제였다. 그리고 사회복지법인과 공동모금의 문제 이면에 놓인 더욱 중요한 구조는 사회복지서비스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제개발 최우선의 국가형성논리였다.

서구의 경우 사회복지서비스는 정부의 책임 하에 발달하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서 사회복지서비스는 민간단체에 의해 시행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민간단체가 성립되는 과정도 공익적 성격을 강하게 지닌 것이었다기보다는 개인이 자신의 재산을 내어 사회복지시설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사회복지시설이 설사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으로 등록되더라도 시설을 설치한 자는 이 법인이 공익사업인 사회복지사업을 행하는 비영리 공익법인이라는 생각보다는 사유재산이라는 생각이 훨씬 더 강하다. 이들 법인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은 매우 적었으나 전혀 없지는 않았으며 외원에 의한 재정지원도 상당하였다. 앞서 본 것처럼 우리나라 사회복지시설들의 자체수입은 총수입의 1/10 내지 그것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이처럼 정부와 외국원조에 의해 운영되고 시설규모를 키워왔음에도 불구하고 출발점이 개인의 재산을 내어 설립한 것이었으므로 여전히 법인에 대한 사고방식은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1970년에 사회복지사업법이 제정되어 사회복지법인제도를 창설하는 과정에서도 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증폭하였다. 사유재산으로서의 재단법인 또는 사단법인이 정부가 정한 일정요건을 갖추어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함으로써 여전히 사유재산으로서의 사회복지법인으로 정부의 보조금을 받게 된 것이다. 심지어 정부가 정한 법인등록요건이 당시 국내 시설들의 여건에 비추어 지나치게 높아 영세한 국내단체들은 개인의 재산을 또 다시 보태어 법인등록요건을 충족하고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려 노력했다. 법인등록요건을 충족치 못한 시설들은 사실상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 규정된 법률관계에 편입되지 못함으로서 법적 규제도 받지 않지만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법외단체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 바 미인가시설인 것이다. 방금 이들 미인가시설들은 법적 규제도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새로 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해 사회복지법인이 아니면 사회복지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사실상 규정된 셈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해 규제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사회복지서비스에 나설 생각이 없었던 당시 정부는 이들 미인가시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였다(실제로는 미인가시설에 대해 법에 따른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미인가시설에 대해 법에 따라 사회복지사업을 행하지 못하게 할 경우 이들 시설에서 나오게 될 보호대상자들을 정부가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⁴. 이러는 사이에 이른 바 미인가시설은 그 정확한 수자도 파악하지 못한 채 30여년을 지내게 되었으며⁵ 이러한 상황으로 인한 모든 피해는 이들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돌아가게 되었다.

사회복지사업법 제정 당시 국회에서 기부금품모집금지법과 공동모금의 관계와 관련하여 논의가 있었지만 이렇게 된 것도 기실은 외원철수로 인해 생긴 재정적 공백을 정부가 국고로 보충하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볼 수 있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 의사가 미약한 상황에서 보사부는 민간모금의 동원을 생각하게 된 것이며 내무부는 그런 저간의 사정은 무시하고 단순히 민간모금에 관련된 법적 절차의 문제를 이유로 들어 보사부의 당초 안에 대해 반대했던 것이다. 어찌하였건 사회복지사업법의 제정 이후에도 민간모금은 그리 활성화하지 못하였는데 서구의 경우에는 사회복지서비스의 재원이 민간의 모금에서 시작하여 점차 국가재정으로 이전하였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민간의 활동이 처음부터 컸던 상황이고 보면 민간모금 비활성화의 책임은 사회복지서비스를 소극적으로 대했던 정부에도 있다 할 것이다. 오늘날 사회복지서비스의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는 현실을 보면서 이러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사회복지법인들의 준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지 또 우리의 복지재정(공공과 민간 공히)이 충분히 동원될 여력이 있는지 등을 생각할 때 1970년 사회복지사업법 제정 당시가 못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각주>

1) 이 법률에 의하면, 외원단체란 “그 본부가 외국에 있고 그 본부의 지원으로 국내에 보건사업, 교육사업, 생활보호, 재해구호 또는 지역사회개발사업 등의 사회복지사업을 행하는 비영리적 사회사업기관으로서 그 사업자원이 외국에서 마련되고 실질적으로 외국인에 의해 운영되는 기관”을 말한다. 이들 외원단체는 1955년 「한미간 민간구호활동에 관한 협정」에 따라 보사부에 등록하고 활동하였다.

2) 사실 윤인식 의원이 소개한 법안은 그 이전 김성철 의원 등이 서명하여 제안했던 법안과 제안이유도 거의 동일하며 내용도 거의 동일하다.

3) 공동모금에 관한 규정이 원안과 조금 다르게 수정된 것 외에 사회복지사업의 정의도 약간 수정되었는데, 원안에는 생활보호법과 아동복리법, 윤락행위 등 방지법에 의한 복지시설의 운영만 포함되었던 것이 복지사업(보호사업, 선도사업) 및 복지시설의 운영으로 수정되었고(제2조 제1호에서 제3호) 또 제4호에 열거된 사업에 원안에 없었던 나완치자 사회복귀사업이 추가되었다.

4) 미인가시설을 법에 따라 조치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들 시설 중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시설이 많은데다 어떤 경우에는 기도원 등의 이름을 내걸고 정신장애인이나 노인 등을 데리고 있는 경우도 많은 등으로 인한 종교정치적인 이유도 있다.

5) 미인가시설에 대한 전국적인 실태파악은 국민의 정부 때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남찬섭 / 고려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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