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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19
  • 2019.06.03
  • 1361

절차적 환경정의 실현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

 

심수은 환경정의연구소 국장

 

주민도 모르는 사이에

경북 영덕에 사는 주민 A씨는 우연히 군청 홈페이지에 방문했다가 영덕군이 군의회 동의를 거쳐 신규 핵발전소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군민 전체의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신청은 무효라고 문제제기를 하였지만 군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민도 모르게 이런 일이 진행될 수 있을까? 오래된 영화에나 있을 법한 이 이야기는 지난 2010년 영덕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난 2010년 정부가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열을 올리면서, 지자체로부터 신규 핵발전소 유치 신청을 받았다. 당시 신규 핵발전소 유치 신청을 했던 지자체 중 한 곳인 영덕군의 주민들은 군이 이미 신규핵발전소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고 난 후, 군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고 나서야 신청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청 당시 주민들에게 제공되었던 유일한 정보공유는 핵발전소 예정 부지 주민 399세대 만을 대상으로 건설계획과 경제적 효과, 이주계획 등 일방적인 정보를 제공하면서 이주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는 정보로, 이주 동의를 얻기 위한 요식행위라는 비판을 받았다. 군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정보제공과 숙의 과정이었던 사전환경성검토서 초안 열람은 열람기간을 마치기도 전에 주민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주민들의 참여를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군민들은 제대로 된 정보 제공조차 받을 수 없었던 반면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의 실질적 결정권 행사는 영덕군,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그리고 정부가 모든 결정 권한을 가지고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은 숙의 기회도 가질 수 없었다. 이후 주민 주도로 어렵게 주민투표가 실시되었지만, 그 결과도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영덕군의 신규 핵발전소 유치 신청 과정은 의사 결정은 물론,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이나 숙의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주민 참여가 배제된 대표적인 절차적 부정의 사례였다.

 

환경정의와 절차적 정의

환경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환경위험의 지역간 불균형의 문제 뿐 아니라 환경위험 시설이나 환경피해가 우려되는 개발 계획은 어떻게 세워지는지, 환경오염피해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환경정의는 이러한 물음에 답을 제시하고, 제도 개선 방향을 제안한다.

 

환경정의란 환경이용에 따른 혜택과 부담을 누구나 공평하게 나누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분배적 정의, 절차적 정의, 교정적 정의 세 범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현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에서, 선진국과 저개발국 사이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서 환경 이용에 따른 혜택과 피해가 어느 한 쪽에 집중되지 않고 공평하게 나누도록 하는 분배적 정의와 모든 사람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절차적 정의, 그리고 환경오염 피해에 대한 책임과 공정한 배상에 관한 교정적 정의가 환경정의 실현의 기본 원칙이다.

 

그 중 절차적 정의는 지역의 모든 구성원에게 환경위험에 대한 균형 잡힌 정보가 적절하게 공개되고, 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시민참여의 범주이며, 분배적 정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의 시민참여인 절차적 정의가 우선 보장되어야 한다.

 

절차적 정의에 대한 평가는 시민참여 보장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시민을 교육하고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듯 개인 문제로 해결하는 수준인 비참여 단계에서부터, 명목상 참여 단계, 파트너쉽, 권한 위임이나 시민통제가 가능한 시민권력 단계까지 셰리 아른스타인(Sherry Arnstein)은 의사결정 과정의 시민참여를 ‘시민 참여 사다리’를 통해 단계별로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시민 참여를 표방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적용 과정에서 실질적인 참여로 이어지는 지에 대한 평가가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그림 2-1> Arnstein의 시민참여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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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절차적 정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에게 정보는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정보 접근이 가능했는지, 정보제공 시기가 적절했는지,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한 숙의 과정이 이루어졌는지, 의사결정과정에 주민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주민 참여가 보장되었는지, 실질적으로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앞서 살펴본 영덕 핵발전소 부지 선정 과정에서는 제공되는 정보가 군민 전체에게 안전성과 경제성 그리고 사회적 영향 등이 포함된 균형 있는 정보가 제공되지도 못했고, 신규 발전소 예정 부지 경계선 밖의 주민들은 초기 정보 제공 대상에서 배제되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의 사전환경성검토보고서를 열람하도록 하는 정보제공은 고령의 주민들에게 정보를 제공은 하지만 이용하기는 힘든 정보였다. 더구나 일방적으로 공지된 날짜에 진행된 사전환경성검토보고서 주민설명회는 주민들이 알기 힘든 매체를 이용해 소극적으로 홍보되었고, 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면서 주민들의 찬반토론이나 충분한 정보의 공유를 오히려 가로막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후보부지선정 과정이 모두 개발자에게 맡겨져 공정성과 투명성 상실의 문제와 함께 부지선정과정에서 군 전체 주민 의견수렴을 포함한 시민참여가 신청서 제출 후 뒤늦게 진행되는 정책적 한계를 보여주었다. 또한 당시 진행된 주민투표는 핵발전소는 국가 사무이므로 주민투표가 불가능하다는 정부의 입장으로 인해 투표결과가 의사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영덕 핵발전소 신규부지선정은 이미 취소된 사업이지만, 정보제공 단계부터 숙의, 의사결정 참여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절차적 부정의 사례로 진단된다.

 

절차적 정의와 시민참여

절차적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투명한 정보제공과 시민의 정보 접근성 보장, 필요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충분한 숙의 과정, 그리고 의사결정과정에 주민들이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실질적인 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시민참여의 기본 단계는 정보 제공으로, 제도적으로 규정된 필요정보를 단순히 공개하는 것 뿐 아니라, 이해당사자가 관련된 정보를 요구할 때 기업 영업 이익이라는 이유로 공개가 거부되거나 주요 정보가 제외되고 부분 공개되는지 여부, 그리고 정보공유의 시기가 정책결정 과정의 어느 단계에서 제공되는지에 따라 정보 접근권 수준이 달라진다. 정보공개 신청 건수는 해마다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7년 855,021건의 정보공개 청구가 접수되어 1998년 대비 32배 증가하였고, 정보공개율도 2012년 이후 매년 95% 이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단순히 정보공개 신청 건수나 공개율로만 정보접근권이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숙의 과정은 찬반 입장에 대한 충분한 토론을 통해 사회 갈등을 최소화 하는 의사결정을 만들 수 있는 시민참여 과정이다. 커다란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수반하는 국가 정책 사업의 수립단계에서 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의미 있는 숙의과정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밀양 송전탑 주민 반대, 영덕 원전 부지 선정 과정의 주민 반대 등 국가 정책 초기 단계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민이 배제되면서 발생한 사회적 갈등은 숙의 과정이 시민참여 시기에 가지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정책결정과정에서 시민의 실질적 결정권 강화를 위해, 주민투표의 경우 엄격하게 제한되어 실질적인 지역 주민 의사결정 수단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문제의 개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주민투표법」 제7조의 2항 주민투표의 대상 중 ‘국가 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또는 사무에 속하는 사항’은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다는 규정은 영덕의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않는 근거가 되었다.

 

국내 환경정의에 대한 OECD의 평가

OECD는 회원국을 대상으로 각 국의 환경성과에 대한 평가를 시행하는데, 우리나라는 지난 2017년 세 번째 평가를 받았다. 3차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최초로 환경정의 분야에 대한 평가를 받았다. 2017년 OECD가 발표가 우리나라 환경정의에 대한 평가 내용은 환경정의 실현을 위해 보완해야 제도적 과제를 보여준다. OECD는 우리나라의 절차적 정의를 평가하면서 4대강 사업과 밀양 송전탑 사례 등 개발 사업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정보 접근권 개선의 필요성과 환경정보 공개는 증가하고 있지만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비밀로 분류되고 있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였다. 또한 환경영향평가에 주민참여가 현지 주민에게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점을 지적하며, 권고안에서 ‘절차적 정의와 시민참여 부분에 대하여 정보 접근권, 사법체계 접근성, 의사결정 과정의 대중 참여권 확대 등과 같은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환경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특히 환경 허가 과정에서 초기단계에서부터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도입하고 지역주민을 넘어 일반 대중 및 NGO에 까지 환경영향평가를 공유하고 시민참여를 향상 시킬 것을 권고하였다. 또한 주목할 만한 내용은 환경문제에 대한 사법 접근권 강화를 위해 리우 선언 제10조 시민참여 조항이 우리나라에서 법제화될 수 있도록 할 것과 환경의사결정에 공공 참여 촉진을 위해 오르후스협약 가입을 고려할 것을 권고하였다.

 

오르후스협약과 시민참여

오르후스 협약(Aarhus Convention)은 환경문제에 있어서의 정보의 이용, 의사결정에의 공공참여 및 사법적 접근에 관한 협약으로, 리우선언 제10원칙 시민 참여 조항 이행을 목적으로 1998년 유럽경제위원회에서 만들어진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로 2001년부터 발효되어 현재는 유럽을 넘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오르후스 협약은 환경문제와 관련한 정보접근과 이용(access to information), 의사결정에서의 공공 참여(public paricipation in decision-making), 사법 접근권(access to justice)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제협약으로 환경민주주의 영역의 가장 야심찬 모험으로 평가된다.

 

<그림 2–2> 오르후스협약의 3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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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osce.org//secretariat/161651

 

오르후스 협약의 환경정보의 접근과 이용은 정보공개 청구한 개별정보를 공개하는 수동적 정보공개 뿐 아니라, 정보 공개 범위를 확장하여 투명한 방법으로 환경정보에 효율적인 접근이 가능한 방법을 확보해야 하는 능동적 정보공개까지 의미한다. 이해관계가 없는 누구라도 이해관계를 증명할 필요 없이 환경정보를 청구할 수 있으며, 정보공개 당사자는 행정기관을 포함한 모든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다.

 

환경의사결정의 시민참여는 협약 제6조에서 환경 의사결정과정에 효율적으로 준비하고 참여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것과 효율적인 공중참여가 가능하도록 조기에 공공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협약은 환경정보 접근권이 거부되거나 환경행정절차 참여권이 침해될 경우 또는 이와 무관한 경우라도 환경과 관련한 법원의 심사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확보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특히 일정 요건을 갖춘 NGO의 법적 지위를 인정한다.

 

절차적 정의 실현을 위하여

오르후스 협약의 국내 적용은 헌법에 보장된 환경권의 보장과 절차적 정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제도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오르후스 협약의 환경정보 접근과 이용은 공공기관의 환경정보 보급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국내 환경정보공개에 관한 규정의 정비, 환경정보 공개의무자 범위 확대와 정보 비공개 사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환경의사결정에 의미 있는 시민참여를 위해 환경영향평가제도에서 의무화하고 있는 주민의견수렴 과정이 일회적 의견수렴이 아닌 충분한 숙의 기간과 연속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환경영향이 큰 국토공간계획 수립이나 핵발전소 관련 시설의 계획 수립에는 초기단계에서부터 숙의 과정에 시민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환경사법 접근권 보장을 위해서는 환경단체소송제도의 도입과 함께 환경분쟁 조정제도의 환경단체 조정신청이 적극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 또한 법안이 만들어질 당시 환경피해에 대한 책임과 구제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은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 피해자의 인과관계 입증 책임의 완화와 오염원인자 불명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제시 등 보완이 필요 한다.

 

 

환경부정의를 해소하고 환경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시민참여를 보장하는 절차적 정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절차적 정의가 강조하고 있는 환경정보 접근권과 환경행정절차 참여권을 보장하고, 환경공익소송이 가능하도록 환경단체소송을 포함한 환경사법 접근권을 보장함으로써, 누구나 쾌적하고 건강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환경권 보장과 환경정의 실현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내법과 제도의 개선과 함께 환경민주주의에 관한 국제협약인 오르후스 협약의 국내 적용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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