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05-01   1943

[기획4] 유급돌봄휴가 논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유급돌봄휴가 논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민경 공인노무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하루하루 확산되어가던 2월의 어느 날, 정치하는엄마들(이하 ‘정치하마’) 온라인 대화방은 시끌시끌했다. 인근 지역에서 이번에 확진자가 나와 관내 어린이집에 2주간 휴원조치가 내려졌다는 소식이 공유되면서 대화방은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길고 긴 겨울방학이라는 터널을 지나 다시 개학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많은 양육자들은 2월 23일 교육부의 개학연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모두들 패닉상태였다.

 

‘안 그래도 빠듯한 휴가인데 지금 휴가 다 당겨쓰고 나면 나중에 또 애들 아프면 어떻게 하나요.’

‘이렇게 길게 쉬면 신랑이랑 돌아가면서 연차 쓴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데… 친정엄마 찬스 외엔 정녕 답이 없는 걸까요?’

‘지난번처럼 고용노동부가 각 사업장에 공문이라도 내려보내서 연차 휴가 사용이나 근로시간 단축하라고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실제로 지난 2018년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로부터 각각 어린이집 등원 자제 권고 및 유치원 등 각급 학교 휴업공문이 내려왔을 때, 정치하마들은 양육자들이 최소한 ‘눈치 보지 않고’ 휴가 쓸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가 능동적으로 사업장에 공문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당시 실제로 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고용노동부 발 긴급 공문이 당일 각 사업장으로 발송된 바 있었다.

 

아마 그때가 처음으로 정치하마들이 ‘휴식’이 목적인 연차와는 다른 “긴급돌봄휴가”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매번 아이가 아플 때마다 눈치 보며 쓰던 연차 외에도 자녀를 포함한 ‘가족돌봄을 목적으로 한 별도의 휴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심지어 어떤 나라에서는 이를 유급으로 보장하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와 같은 ‘집단학습’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정치하마들에게 있어서 2020년 2월 그날 대화방의 화두는 모두에게 생소한 “가족돌봄휴가”라는 제도였다. 아니, 논의는 엄밀하게 “가족돌봄휴직” 제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누군가가 노동부에 연차도 사용할 수 없는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문의를 했더니 ‘가족돌봄휴가’를 활용하라는 답변을 받아왔다. 이어서 또 누군가가 남녀고용평등과 및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고평법’) 상 ‘가족돌봄휴직’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와서 공유하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가족돌봄휴직을 신청하려면 가족돌봄휴직을 시작하려는 날의 30일 전까지 사업주에게 신청해야 한다는데 이게 말이 되나요? 아니 30일 전에 애가 아플 걸 알고 신청하라는 말인가요? 게다가 한번 쓸 때 30일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건데 애가 무슨 30일 전에 아플 거라고 미리 예고하고 30일 동안 내내 아프나요? 정말 해도 너무하네요.”

 

작년 내내 취업규칙을 개정하느라 고평법을 내내 들여다보았던지라 가족돌봄휴가에 그런 내용이 있었던가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시행령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30일 이전 신청 요건은 가족돌봄휴직에만 해당되는 내용이고 가족돌봄휴가는 기본적인 내용만 적어 사업주 승인을 받으면 연간 10일의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인데 기존의 가족돌봄휴직과 혼동하여 오해한 것이었다. 가족돌봄휴가는 특히 올해 1.1.부터 시행된 만큼 아는 이들이 거의 없어 혼란은 더했다.

 

전술하였다시피 가족돌봄휴직 제도는 기존부터 있었던 제도로 연간 최장 90일 이내 범위에서 사용 가능한 무급휴가제도이다. 그러나 한번 사용할 때 30일 이상 사용해야 하고 30일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정작 긴급한 사유로 단기간 사용해야 할 경우에는 사용이 어려워 도입된 지 1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 새로 도입된 제도가 바로 가족돌봄휴가제도이다. 가족돌봄휴가는 가족돌봄휴직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무급이지만 개시요건이 휴직보다 완화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질병, 사고 등의 사유 외에 ‘자녀양육’을 이유로도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 기존 제도에서 진일보한 점이다. 또한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육아기 단축근로와 마찬가지로 가족돌봄을 사유로 한 단축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과는 달리 가족돌봄 관련 제도의 경우 그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심지어는 인사담당자조차도 잘 몰라 해당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안내조차 받지 못한 채 직장을 떠나야 했던 사람도 많다고 하니 하물며 올해 신설된 가족돌봄휴가 제도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취업규칙에도 업데이트되지 않은 채 상당히 오랜 기간 아무도 모르는 채로 존재했었을 지도 모를 이 제도는 금번 코로나19로 인하여 유례없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한시적이긴 하나 유급으로 일정 부분 소득보전까지 단숨에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돌봄휴가의 실효성 관련해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1일 기준 가족돌봄휴가 신청자 수가 4만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4만 명은 가족돌봄휴가라는 제도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업장에서 근무 중인, 극소수의 근로자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하기 전에 이미 노동시장에서 이탈‘당한’ 사람이나 가족돌봄휴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해고의 위협 때문에 쓸 수 없는 사업장의 근로자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과도 같은 제도라는 뜻이다.

 

원래 근로기준법 상의 연차휴가(Annual Leave)는 근로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보상적 개념으로 주어지는 휴가로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인한 병가제도와는 근본취지 자체가 다르다. 여기서 보상적 성격이라는 의미는 ‘1달 열심히 일했으니 옜다 하루, 1년 열심히 일했으니 옜다 15일 주마’ 이렇게 ‘시혜적으로’ 주어지는 휴가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는 좀 어렵지만 현행법체계가 그렇다.

 

반면, 병가(Sick Leave)는 연차와는 별개로 아플 때 의사 진단서 등이 있으면 쉴 수 있는 휴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현행법체계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유급 병가가 별도로 부여되어 있는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단체협약 등에서 별도로 정해놓지 않는 한 연차와 구분되는 유급 병가제도는 따로 규정되어있지 않다. 또한, 외국에서는 자녀나 고령의 부모 등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기 위한 가족 돌봄 휴가(Family Leave)도 유급으로 부여하는 곳이 많은데 현재 가족돌봄휴가가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병가나 가족돌봄휴가는 단협 등에서 특별히 정해놓지 않는 한 유급휴가가 아니므로 근로자들은 자연스레 100% 소득보전이 되는 연차휴가부터 사용하게 된다. 내 휴가 내가 쓰겠다는데도 왜 눈치가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눈치 보면서라도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현재 연차휴가 부여의무가 아예 없으며, 5인 이상 사업장이라 할지라도 취업규칙 등에서 소위 ‘빨간 날’을 ‘유급 약정휴일’로 정해놓지 않았다면 ‘연차휴가사용 대체합의’에 따라 실질적으로 사용 가능한 연차휴가가 거의 없는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어린 자녀를 양육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아무리 지극정성으로 돌보아도 아이는 툭하면 아프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엔 철마다 온갖 종류의 전염병이 유행한다. 휴가 낼 때마다 항상 ‘그 집 애는 왜 맨날 아파?’라는 무심한 대꾸가 안 그래도 새가슴인 부모를 후벼판다. ‘그러게요, 저도 대체 왜 그런지 알고 싶네요!’ 길 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외치고 싶을 정도이다.

 

이러다 보니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은 항상 쉬어도 쉰 것이 아니다. 차라리 출근이야말로 부모들에게는 휴식이다(물론 상사와 동료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지만). 양육자들에게 휴식권이 박탈된 결과는 그대로 사업장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양육자들–주로 여성양육자-은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결국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상황에 정리해고 일순위로 올라가게 된다.

 

이와 같은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연차나 병가와는 다른 ‘돌봄휴가’제도이다. 그럼 다른 나라는 이 돌봄휴가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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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돌봄휴직제도 개선 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6년 수행한 연구용역보고서를 살펴보면 OECD 국가들의 가족돌봄 관련 휴가제도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당시 보고서에서 인용한 데이터는 2014년 기준이었던 관계로 자료 업데이트를 위하여 같은 통계자료를 다시 찾아보았는데 놀랍게도 최근 몇 년 사이에만 해도 가족돌봄 휴가제도가 개정된 나라가 거의 절반 이상에 육박했는데, 방향은 대상범위의 확대 및 세분화, 휴가기간의 확대, 그리고 유급휴가 비중의 증가로 모두 한결 같았다.

 

모든 나라들을 비교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보고서에서는 우리와 유사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 일본, 유럽 국가들 중에서 최근 법 개정이 이루어진 독일, 영미법제 국가들 중 최근 유급돌봄휴가를 위한 법안이 발의된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는데, 경향은 역시 동일했다. 심지어 비교적 최근에 제도가 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더 개정이 이루어진 곳도 있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자녀돌봄휴가를 무급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심한 병을 가진 가족을 병구완할 때는 임금의 67%까지 보전해 주고 있다. 이마저도 2014년 당시에는 40%였던 것을 최근 개정하였다. 독일의 경우 목적과 대상에 따라 휴가의 종류가 더 세분화되어있는데 유급휴가인 경우 소독 보전율이 80~90%에 달한다. 무급휴가인 경우에도 요건을 갖추면 무이자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미국은 의외로 모성관련 제도가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를 제외하면 우리나라보다도 부실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무급인 가족돌봄휴가의 유급화는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계속 논쟁 중인 사안이었다. 이와 같이 해외 주요 사례를 비교해보아도 고령화 저출생 시대에 있어서 유급돌봄휴가의 확대는 필연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우리는 연차휴가와 별개인 가족돌봄휴가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심지어 한시적이기는 하나 올해 처음 도입된 이 휴가는 유급화되어 일부는 소득보전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변화는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코로나19 상황을 통해 계속해서 사유실험을 해나가야 한다.

 

휴가신청사유가 무엇이든 간에 일단 자리를 비우면 무조건 ‘놀다 오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는 경직된 조직문화의 구성원들은 자녀의 갑작스러운 휴원·휴교, 양가 부모 병수발, 장애자녀 케어 등 수많은 돌봄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양육자들에게 ‘불성실한 직원’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자발적으로 퇴사라는 선택지를 받아드는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힘들어도 어떻게든 일과 가정을 동시에 지키며 이 상황을 버텨내는 것이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돌봄을 위한 퇴직 경험이 있는 응답자 267명 중 65.8%는 휴가나 휴직을 사용할 수 없었더라도 ‘출퇴근 시간 조정’이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등과 같은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주의 조치만 있었더라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긴급한 돌봄상황이 한 달 이내에 끝난 사례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급돌봄휴가 도입은 단순히 제도의 도입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족친화적 제도를 허용하는 유연하고 가족친화적인 조직문화로의 대대적인 전환을 수반할 때 그 실효성이 제고될 것이다.

 

또한 가족돌봄휴가뿐 아니라 가족돌봄을 사유로 한 단축근로도 가능함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육아기 단축근로나 임신기 단축근로 등 각종 모성보호 관련 규정에 준하는 수준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이에 대한 소득보전방안을 논의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전례 없는 실업난이 이미 현실화된 이 시점에 고용유지 의무가 수반되는 일·가정 양립제도의 실효성 확보는 노동시장 이탈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실업급여보다 훨씬 두텁고 안전한 보호막이자 궁극의 복지제도이다.

 

위기상황은 통상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종료한다. 하지만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이탈은 인간관계의 파괴, 가정의 파괴, 재정의 파탄 등 한 인격체에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초래한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이런 재난 상황이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부디 이를 계기로 앞으로 유급돌봄휴가의 도입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기 기대한다. 아울러 지면관계상 미처 다루지 못하였지만 기존의 고용보험 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노동자, 소규모 자영업자 등을 포함하는 등의 대상자 요건확대 역시 전 세계적인 흐름이자 향후 대한민국의 복지정책 설계에 있어 중요한 논의 대상일 것이다.

 

참고문헌

박선영·박복순·송효진·김정혜·박수경·김명아(2016), 여성·가족 관련 법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연구(IV): 가족돌봄휴직제도 심층분석, 서율: 한국여성정책연구원

OECD(2020.1.), Family Database, Indicator “Public Policies for Families and Children PF2.3: Additional Leave Entitlement for Working Parents”, 5-14 쪽, (http://www.oecd.org/els/soc/PF2_3_Additional_leave_entitlements_of_working_parents.pdf) 최종접속일: 20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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