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지킨다 – 에바다의 천일행사 참관기

에바다문제는 장애인복지와 특수교육에 대한 우리들 스스로의 반성의 거울이다. 여기서 끝내지 않으면 더 많은 장애인들에 대한 유무형의 폭력은 교묘한 수법으로 지속될 것이다.

경기도 평택이라는 작은 중소도시에서 세인의 관심도 전혀 받지 못하던 어쩌면 평온하기 조차한 자그마한 시골 농아시설에서 1996년 11월 27일, 소리없는 외침이 드디어 세상사람들의 가슴으로 울려퍼지게 되었다. 더우기 재단측의 강제노역, 폭력 등 인권유린과 부정부패로 점철된 이 시설의 전모가 폭로되기 시작하면서 지겹도록 보아왔던 사건이 또다시 우리 앞에 다가왔다. 경악과 분노로…

그로부터 1,000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보아왔던 부정한 사회복지시설이 공개되어 여론이 들끓다가 쉬 마무리되는 과정을 무수히 보아와서 에바다 사태도 그렇게 되리라 보았으리라. 쓴 웃음을 지으면서…

그런데 1,000일이라는 세월동안 그 싸움이 진행되는 것을 간헐적으로 보면서 의아해 했으리라.

1000일이란 우리들에게도 시간적 해석으로 길게 느껴지겠지만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농아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경험해야 했던 시간은 단순히 산술적인 1,000일, 그 이상일 것이다.

비리재단측과의 싸움과정에서 만나야 했던 힘겨운 고통과 이 사태의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흘렸던 눈물의 시간, 그리고 동지로서 한마음으로 만나서 몸으로 부대끼며 나누었던 기쁨 등 이들이 경험해야 했던 시간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더우기 아직도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 현실은 1000일을 맞이하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1,000일 – 새로운 시작이다.

다시금 1000일을 기점으로 여러 시민사회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라는 연대기구가 결성되었다.(아마도 에바다사태 해결을 위한 기구도 여러 개가 될 것이다.) 이 연대회의는 여러차례 회의를 거쳐 다양한 1000일 기념사업과 이후 진행할 정치적 압력과 국제인권단체들과의 연대 등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새롭고 다각적인 시도들을 논의하였다.

그 일환으로 지금까지의 투쟁을 평가하고 투쟁과 병행하여 현실적인 운영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에다바, 이렇게 운영하자'라는 주제로 8월 18일 카톨릭회관에서 토론회를 가졌다. 일각에서는 전혀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는 투쟁의 현실적 시점과 맞지 않은 한가한 주제가 아닌가하는 이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들의 대안을 가지고 투쟁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토론회에서는 시설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용자, 시설종사자, 지역사회 대표들이 참여하는 시설운영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방안에서부터 현실적으로 구재단측의 완강한 입장의 변화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법인의 해산을 고려하자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장과 대안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8월 12일 이사회를 통해 이사진의 개편 등 당장 현실적인 문제해결 방법을 시도하였지만 구재단측의 완강한 반대로 아무것도 진행된 것이 없어 이 토론회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아쉬움을 남겼다.

다음날 연대회의 참여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수용시설의 일상화된 비리로 인해 장애인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발생한 형제복지원, 수심원, 에바다 문제 등 수많은 비리와 인권침해 사건들이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면서 에바다 정상화를 촉구했다. 그리고 김선기 시장과 에바다 비리재단에 대한 특별수사 실시, 비리재단 척결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에바다 법인 승인취소 등 정부의 개입, 김선기 평택시장에 대한 자민련의 비호 중단, 새 관선이사장 이성재 의원의 정상화를 위한 결단 등을 강력히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연대회의는 오후에 종묘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시민 결의대회'를 갖고 시민들의 관심과 동참을 호소했다.

그 자리에서 '장애인시설 비리척결과 에바다 문제해결을 위한 대학생 연대회의'의 김형수 의장은 자신이 대학교 1학년때 시작된 에바다 농성이 졸업반이 된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며 결코 포기하지 않고 결국 이길 것이라며 새로운 시작을 강조했다. 그리고 피해 당사자인 농아원생들은 수화를 통해 대통령과 언론도 풀지 못한 에바다 문제에 이제 믿을 수 있는 건 국민들의 힘뿐이라며 동참을 호소하는 대목에서는 숙연해 지는 분위기였다. 결의대회를 마친 후 그 대오들은 마로니에 공원에 마련된 특설무대로 향하면서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여느 시골마을의 농아학교 촌뜨기 선생에서 이제는 에바다 투쟁의 상징으로 투사가 되어버린 권오일 선생님이 선봉에 서서 절규의 외침을 선창하며 가까우면서도 먼길(장애우들에게는)을 행진했다.

역시 이번 1000일행사의 절정은 문화제였다. 이미 도착해 있던 많은 시민, 학생들이 무대를 에워싸고 있었고 점점 어두움이 짙어 가면서 에바다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1000일 투쟁이 결코 혼자가 아니고 든든한 동지들이 함께 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는 시간이었다. 공연은 꽃다지 등 인기가수들의 공연, 수화공연, 풍선터뜨리기, 에바다 1000일 다큐영화상영 등으로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다달았고 운집해 있는 천여명의 시민, 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촛불을 밝히며 우리사회의 사회복지시설의 비리가 에바다로 끝나 더 이상 우리들의 어린 장애우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그리고 에바다문제를 기필코 해결하고 말 것이라는 결의와 굳은 약속을 서로에게 전해주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1,000일의 약속 – 약속은 지킨다.

이제 1,000일을 넘기면서 장기전으로 이 싸움은 돌입했다. 그리고 그 공은 현 이사장과 평택시, 정부의 몫으로 넘어갔다. 연대회의는 현 이사장의 진행여부를 최대한 지켜보자는 의견이다. 당장은 에바다 산하 기관과 시설장을 민주적 인사로 개편하고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시급히 구성하면서 기본틀을 갖추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로 보인다. 만약 이 마저 우선적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결국 법인해산을 포함한 극약처방까지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연대회의는 사회복지시설의 운영비리 악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복지법인 = 사적소유'라는 사고를 근절시킬 사회복지사업법 등에 대한 법적, 제도적 정비도 함께 준비할 것이다.

김대중대통령이 에바다 문제 해결을 공개적으로 세 번이나 약속했다고 우리는 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이번 1000일 행사를 통해 다시금 서로에게 굳은 약속을 한다. 에바다사태를 해결하고 장애인복지시설의 모범적인 모델을 만들자 그리고 더 이상 어린 농아학생들을 비리주범들에게 다시 되돌려 주지 말자라고….

이제 그 약속을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송원찬 / 경기복지시민연대 사무국장, 다산인권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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