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5 2005-12-10   3142

1960년대의 사회복지 – 4

이번 호에서는 역사기행에서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주제, 즉 사회복지교육에 관한 주제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로써 1960년대에 관한 기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여기서 다룰 사회복지교육은 시기적으로 1960년대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1950년대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복지교육은 오늘날에도 여러 주체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실 사회복지교육은 그것이 행해지는 사회에서 사회복지제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런 사회복지제도 내지 사회복지현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짓는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한국 사회복지교육 현장을 지배했던 담론과 문제의식은 오늘날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사회복지교육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한국 사회복지교육과 그것이 길러내는 사회복지사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전문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전문직이라는 화두 역시 하나의 담론으로서 그것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제도와 그 제도에 관한 사회일반의 태도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고 이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사회복지교육에 대해 살펴보자.

한국에서 사회복지교육이 대학 수준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1947년 이화여자대학교에 기독교사회사업학과가 설치되고 나서부터였다.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사회사업학과의 교육목적은, “성경을 배우고 기독교정신으로 움직이는 사회사업가로서 사회사업지식을 가지고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기독교 교육지도자를 양성”한다고 되어 있었다. 즉, 선교사들이 학과를 설립한 관계로 사회복지교육보다는 기독교 교육 내지 인격형성을 위한 교양교육에 더 중점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교수들도 대부분 선교사들이어서 8명 중 1명만 사회사업학 전공자였고 나머지 7명은 모두 신학 전공자들이었다. 교과목도 대부분 신학 계통 과목이 주를 이루었고 사회사업전공과목은 개별사회사업, 집단사회사업 등 일부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화여자대학교의 학부과정에 설치된 사회사업교육과정이 미국에서는 대학원 과정에서 교수되고 있던 것이라는 데에 있다. 선교사들의 본국에서는 대학원 과정에 배치되어 있는 교육과정을 한국에서는 왜 학부에 개설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현재로서 잘 알 수 없으나 이것이 학부 졸업자에게 전문직을 강조하게 된 하나의 배경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 기독교사회사업학과에서 가르친 전공과목은 대부분 미국식의 임상사회사업 위주의 과목이었고 제도나 복지국가에 관한 과목은 전무했다는 점이다. 물론, 1955년에 이화여대에서 전공과목의 수를 늘려 개별사회사업 등 3대 사회사업방법론 외에 사회입법이나 사회정책 등도 포함시켰지만 이것이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화여자대학교에 뒤이어 사회복지교육을 시작한 대학(혹은 대학에 준하는 교육기관)으로는 중앙신학교(1953년, 현 강남대학교), 서울대학교(1957년), 한국그리스도신학교(1958년, 현 그리스도 대학교) 등 3개 기관이 있었으나 이들 역시 미국식 사회사업교육의 영향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앞의 역사기행에서 1950년대를 다루면서 당시 노동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실업보험제도 도입요구가 있었다는 점을 살펴본 바 있으며 또한 1950년대 말부터는 일부 사회보장전문가들과 보사부 관료들을 중심으로 사회보장제도 도입을 위한 준비작업이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을 본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과 대학 수준에서의 사회사업교육은 아무런 관련을 갖지 않았다. 그 이후 한국사회사업대학(1961년, 현 대구대학교)이 한국 최초의 사회사업계 단과대학으로 설립되고, 중앙대학(1961), 성심여자대학(1964), 원주대학(1964, 현 상지대학교), 서울여자대학(1968), 숭실대학(1969), 부산대학(1969) 등이 사회사업학과를 설치하여 11개 대학에서 사회사업학을 가르치게 되었으나 여전히 미국식 사회사업교육의 영향은 강하게 지속되었고, 한국에서 도입되는 각종 제도에 대학의 기여는 별로 없었다. 다만, 1960년대 초에 이화여자대학교의 노창섭 교수와 서울대학교의 하상락 교수 등 몇몇의 교수들이 공공부조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다소간의 참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의료보험이나 산재보험의 도입에는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회사업학계는 사회보장제도 도입에만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서도 한국의 현장에는 큰 관련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는 물론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서구의 경우에는 19세기의 자선사업으로부터 시작하여 19세기 중반 자선조직협회의 활동, 그리고 그러한 활동으로부터 얻은 경험 등이 수 십 년 간 축적된 이후 1890년대에 가서야 사회사업교육이 시작되었다. 페이비안 협회가 런던정경대학(LSE)를 설치한 것은 1896년이었고, 여기에 사회행정학부를 설치한 것은 1912년의 일이었다. 또한 자선조직협회가 고등교육 차원에서 사회사업교육을 시작한 것은 1903년 런던사회학대학(London School of Sociology)을 설립한 것이 처음이었다(런던사회학대학은 페이비안협회가 세운 런던정경대학으로 1912년에 흡수됨). 이들도 초기에는 주로 철학 등 인격형성을 위한 교양교육 중심으로 사회사업교육과정을 운영하여 실천적인 교육보다는 철학과 이론교육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사회사업고등교육은 그 이전에 축적된 경험과 이러한 경험을 가져다 준 사회복지현장을 전제로 성립된 것이었다. 이는 미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사회사업고등교육은 한국인 자신들의 사회사업실천에 관한 경험의 축적이나 사회복지현장의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주로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이식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사회사업교육은 한국의 사회복지현장과 무관하게 미국식의 이론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자리매김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미국식 사회사업교육의 전문직 강조 경향이 더해지면서도 한국 사회사업교육의 현장과의 괴리는 더욱 심화하였다.

서구의 사회사업교육이 자신들의 사회복지현장과 거기에서 축적된 경험을 전제로 성립한 것이라는 점에서 영국과 미국은 유사하지만, 양자의 차이도 있다. 사회사업(social work)이라는 용어는 영국에서 19세기 말 경에 처음 만들어진 말인데, 이 용어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사회사업은 원래 개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19세기 후반 영국은 자본주의화의 모순이 본격적으로 분출하기 시작하면서 19세기 초의 자유방임사상을 수정 내지 대체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었는데, 이러한 노력들은 대체로 보아 자유방임사상이 강조했던 경제학적 논리가 아니라 사회학적 논리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하여 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등장하였고 사회개혁(social reform)이니 사회병리(social pathology)니 하는 “사회”라는 형용사를 붙인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자선조직협회와 페이비안 협회도 이러한 흐름 속에 위치한 세력 중 하나였다. 페이비안 협회는 빈곤문제나 실업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빈곤한 사람이나 실업자 개개인에 대한 접근보다는 빈곤과 실업을 양산하는 사회제도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보다 거시적인 입장을 취하였고, 자선조직협회는 정부에 의한 거시적인 접근은 가난한 사람 개인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평균적인 시책이 될 것이므로 오히려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그들의 생활태도 등을 개선하여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았다. 페이비안 협회나 자선조직협회나 모두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었지만, 그 방법에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자선조직협회는 자신들이 주장한 방법과 그에 의한 활동을 “social work”이라고 명명하였다. 즉, 그것은 사회의 개혁을 위해 사회에 대해 행하는(social) 다양한 활동(work)인 것이다. 그런데, 이 social work은 가난한 사람 개개인에 대해 그들의 특수한 사정을 감안한 공감적 접근(sympathetic approach)이어야 하므로 그것은 곧 casework인 것이다(사례별(case) 활동 (work)). 비록 그 당시에도 자선조직협회는 다소 보수적인 반열에 속하긴 했지만 그들이 벌인 활동(social work)은 사회개혁적인 색채를 상당히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회사업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그 성격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의 사회사업가들과 사회사업교육자들은 사회사업을 전문직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그 이전 영국에서도 사회사업은 주로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활동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경우에도 그것은 사회개혁적인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사회사업가들은 사회개혁적인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 한 것이 아니라 의사직을 모형으로 한 전문직 모형을 구상하고 그러한 성격의 기술적인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사회사업에 정신분석모형이 응용되기 시작하는 등 사회사업은 사회개혁적인 성격을 서서히 탈피하여 기술적인 성격의 직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이식된 사회사업교육과 사회사업직업의 모형은 이와 같은 사회개혁적인 성격으로부터 탈각한 미국의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사회사업교육은 한국의 사회복지현장과 무관하게 이론을 가르치면서 한국의 문화나 상황과는 무관하게 전문직을 강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문직 강조의 경향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한 인력들이 한국의 사회복지현장에 가지 않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국립사회사업지도자훈련원이 1970년에 발간된 ꡔ사회복지종사자 인력조사보고서ꡕ를 보면, 당시(1969년) 사회복지시설에 근무하고 있던 종사자들 중 대학졸업 이상자가 23.3%였으며 이들 중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한 사람은 14.7%에 지나지 않았다. 즉, 다시 말하면 사회사업시설 종사자의 2/3가 넘는 76.7%가 대학졸업자가 아니었으며, 대학졸업자들 가운데에서도 85.3%는 사회사업학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결국 사회사업학과 졸업자는 종사자 총수의 3.4%에 불과하였다. 반면에 사회사업단체(법인 및 외원단체)의 경우에는 대학졸업 이상자가 70.8%에 달했고 이들 중 사회사업학과 졸업자는 27.9%에 달했다. 사회사업단체 종사자 총수와 비교하면 사회사업학과 졸업자는 19.7%에 달하였다. 이는 한국의 사회사업고등교육이 한국의 사회복지현장을 겨냥한 인력양성에 목적을 두었다기보다는 미국식의 이론을 단순히 가르치는 데에 더 치중하였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기실 미국식의 전문직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열악한 한국의 사회복지서설에 근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책임을 모두 사회사업교육자들에게 물을 수는 없다. 역사적인 이유도 있고, 또 이식된 교육기조가 미국식이었다는 데에도 일단의 원인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사회복지현장과 괴리된 채 막연히 전문직만을 강조하는 교육을 지속한 데에는 사회사업교육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이처럼 대학이 한국의 사회복지현장과 사회복지제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현장에서 일할 종사자를 양성하는 실질적인 업무는 1957년에 설립된 국립사회사업종사자훈련원(후에 국립사회사업지도자훈련원 → 국립사회복지연수원)으로 넘겨졌다. 이것은 일견 유럽의 사회사업교육과 유사한 모형인 것처럼 보인다. 유럽의 사회사업교육은 대학교육보다는 국가가 설립한 전문대학 수준에서의 교육이 중심이 되어 있다. 최근에 다소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독일의 경우에도 사회사업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은 전문대학 수준의 Fachhochschule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리스의 경우도 사회사업가 양성을 목적으로 한 국립전문대학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덴마크도 국립교육기관에서 사회사업가 양성을 주로 맡고 있다. 물론, 대학교육이 있기는 한데 수가 많지 않으며 대학교육과정에서 사회사업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전문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과는 엄격히 구분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국립사회사업종사자훈련원은 유럽 모형과도 유사하게 보인다. 하지만, 유럽과 국립사회사업종사자훈련원은 완전히 다르다. 우선 이것은 정규적인 교육기관이 아니며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단기교육에 대해 대학들은 끊임없이 비판을 해 왔다. 한국의 사회사업교육은 미국식의 전문직 강조교육과 유럽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국립교육기관의 단기교육(정식교육과정이 아닌)으로 이원화하여 있었던 것이다. 대학은 전문직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대학이 양성한 인력은 사회복지현장에는 가지 않았다. 사회복지현장을 지킨 사람들은 대학이 비판했던 국립사회사업종사자 훈련원에서 단기교육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사회사업교육은 양적으로 크게 확대되었고 질적으로도 상당히 풍부해졌다. 이는 사회복지제도의 확장에 주로 기인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회사업직업에 있어서 전문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는 혹은 다녔던 많은 사람들은 전문직으로서의 사회복지사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 말은 필자 역시 학부 시절과 대학원 시절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말이다. 하지만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필자의 경험으로는 그렇게 전문직을 외치면서도 정작 전문직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을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사실 필자 스스로도 전문직에 관해 천착하지 않았으므로 전문직에 관한 제대로 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전문직의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학부 시절 길버트와 스펙트(Gilbert and Specht)가 쓴 ꡔ사회복지정책의 차원ꡕ(Dimensions of Social Welfare Policy)이라는 제목의 1974년판 책에서였다. 이 책의 전달체계에 관한 장에 전문직에 관한 내용이 조금 나오는데 거기에 나온 전문직 정의는 말하자면 기능주의적인 입장에서 내린 정의이다. 기능주의적인 전문직 정의는, 대개 어떤 직업이 이러 이러한 특성을 이러 이러한 정도로 갖추면 그것은 전문직이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는 곧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능(function)을 일정한 특성과 요건을 갖추어 수행하는 직업을 전문직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능주의적인 입장에서 본 전문직은 그 입장이 열거하는 특성을 갖추면 그 전문직은 곧 사회에 대해 기능적(functional)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직이 기능주의자들이 정의한 것처럼 자신들이 말하는 요건만 갖추면 모두 사회적으로 기능적인 존재가 되고 또 사회적으로 기능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가? 기능주의자들의 전문직 규정은 주로 의사와 변호사를 모형으로 하여 내려진 것인데, 모든 사회에서 의사와 변호사가 기능적인 존재인가? 의사의 존재는 사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서구에서도 대체로 미국의 의사들은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이 강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하지만, 유럽의 의사들은 미국의 의사들만큼 부유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유럽의 의사들이 기능주의자들이 말하는 특성(전문직적 지식, 윤리강령, 자체적인 조직 등)을 갖추지 않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결국 기능주의적인 전문직 규정은 전문직으로 불리는 직업이 갖는 존재의 여러 측면 중 한 가지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문직은 그 직업에 속한 사람들의 고립된 노력에 의해서 전문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직이 속한 사회의 전반적인 제도구조와 담론에 의해 전문직으로 인정받게(recognized)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문직은 사회적인 존재(social being)이지 기술적인 존재(technological being)가 아니다. 이는 사회복지직업의 경우에 특히 더 그러하다. 더욱이 사회복지직이 의사나 변호사를 모형으로 구축된 전문직 모형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도 안된다. 의사가 전문직으로 인정받게 된 데에는 환자를 전인격적인 존재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질병을 그의 전인격적 존재로부터 분리해내어(analyze) 그것에만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리는 세균학의 발전에 의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세균의 발견으로 인해 질병은 사회적인 것이나 인격적인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생물학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세균의 존재는 분명한 것이므로 질병에 대한 기술적인 접근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사회환경과 인간을 다루는 사회복지직도 그러한 “사회적 세균”을 상정할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세균”은 사회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사회복지직업은 전문직을 추구하기보다는 사회직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간과 그를 둘러싼 사회환경을 강조하면서 의료직을 모형으로 한 전문직을 추구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남찬섭 /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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