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06-03   1868

[기획2] 국민연금제도 개혁, 언제까지 정쟁으로 남겨놓을 것인가

국민연금제도 개혁, 언제까지 정쟁으로 남겨놓을 것인가

적정 노후 소득보장⋅국가 책임 명문화를 위한 「국민연금법」 개정을 기대하며

 

이은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정책위원

 

5월 말,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지난 20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했던 입법과제들이 속절없이 사라질 예정이다. 20대 국회는 1만 5천여 건의 법안을 처리하지 못했다.1) 처리하지 못한 것인지 처리할 시간이 없었는지 평가는 분분할 것이다. 빨리 해결되어야 할 민생법안들이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의 현안에 밀려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사장되면서 21대 국회에서는 다시 처음부터 들춰봐야 하는 과제들이 산적하게 되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구호처럼 새로운 대리인들에 의해 새롭게 논의될 법안들은 어떤 운명을 겪게 될 것인가.

 

사회복지법안의 기원은 18대, 19대 등 1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오래된 구호들이 많다. 법이 없어서 보호받지 못한다는 얘기가 최소한 3~4회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논쟁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당면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소홀함의 결과이다. 이런 ‘관행’이 관습이 되면 규칙을 정하는 것은 공회전 되고, 규칙을 통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기 위한 첫 단추를 꿰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좌절이 일상화된다. 정치는 나의 생활을 더 낫게 만들려는 민주주의의 장이 아니라 정쟁과 갈등의 장으로 형해화되었다. 다툼이 있는 현장은 외면하는 것이 상책이다. 지난 국회가 또다시 우리에게 증명한 현실이다. 이 안에 국민연금제도의 입법과제 또한 자리하고 있다.

 

국민연금제도가 당면한, 즉각 추진되어야 하는 입법과제는 소득 대체율 하락 방지와 노후 소득보장의 국가 책임 명문화이다. 이는 적정 노후 소득보장이라는 연금제도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관문이다. 두 현안은 흔쾌히 국민의 합의로 상정되었다기보다 끊임없는 국민 설득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입법과제가 되면서 여러 쟁점이 동시에 부딪히고 법률 개정으로 성사시키지 못한 채 공허한 구호가 되어버렸다.

 

우선 국민연금의 국가 책임 명문화는 국가의 연금 지급보장 의무를 법률에 명시하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제도는 국가가 고용주의 입장에서 연금지급의 의무가 있는 것에 착안하여 국민연금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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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건은 10년 이상 논의되었지만 20대 국회에서도 법률로 안착하지 못하였다. 법안 통과로 한 번에 국민에게 믿음이 가는 제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전 국민의 편안한 노후에 관심을 갖는 정부 의지의 표현일 수 있는 이 과정이 국회의 논의에서 뒷전으로 밀리고 배제되면서 제도에 대한 신뢰 회복은 고사하고 고질적인 불신의 재생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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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이 더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소득 대체율은 국민연금가입자가 노후에 받게 되는 연금의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2007년 연금개혁으로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은 2028년까지 20년에 걸쳐 40%까지 낮아지는 중이다. 그런데 소득 대체율을 낮추는 제도개혁은 실제로 국민연금이 성숙한 시점인 2025∼40년 사이에 제대로 연금에 가입한 장기가입자의 연금소득을 낮추는 부작용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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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 기간이 더 긴 세대의 연금수급액이 더 낮아지면서 2007년 급여감액의 개혁 조치 효과가 시간 차이를 두고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은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이 50%에 도달한 해로 적정 노후 소득보장의 수준이 더 축소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더욱이 재정재계산 이후 연금개혁방안을 논의하고 이를 반영하는 것은 법률로 정한 약속이다. 그러나 명목소득 대체율 회복을 주장하면 항상 실질 소득 대체율과의 대체관계가 논의되면서 연금의 핵심 기능은 간과되었다. 논쟁이 계속될수록 당장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문제로 연금가입이 불리한 사각지대 문제가 치고 들어오면서 향후 10년 이내 발생하게 될 연금수급자의 연금하락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물론 국회에서는 이조차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

 

2018년은 4차 재정계산을 통해 국민연금제도의 미래를 다시 한 번 발표한 해였다. 제도발전위원회의 전문가들은 5년 만에 다시 모여 연금제도의 수정 방향에 대한 대립 구도를 보여주었다. 사회적 합의 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정부는 제도발전위원회에서 제시한 연금개혁안을 경사노위로 이전시켜 다시 합의구조를 가동시켰으나, 제도발전위에서 제안한 2가지 개혁안은 4가지 안으로 분화하면서 국민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2018년부터 논의된 국민연금제도개혁안은 2019년 사회적 합의 기구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국회에서 입법 과정을 통해 제도의 수정이 확정되었어야 했다. 여러 단계의 검증과 합의라는 고비를 넘기고 나서 비로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대안의 단초를 마련한 기회가 속수무책으로 방치되었다. 국회의 입법과제가 되었다는 의미는 그만큼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현안의 최종단계로 쉽게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20대 국회는 관행처럼 국민연금개혁법안을 테이블에 올리고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오랜 논쟁을 거쳐 만들어진 과제에 대한 무게감을 인식하고 문제의 마침표를 찍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무기력한 국회임을 자처하였다. 최소한 이견이 없었던 법안, 예를 들면 지급보장 명문화, 크레딧 확대와 같이 경사노위 연금특위에서 합의했던 안들조차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다. 20대 국회는 다시 한 번 정치의 회의감과 불신의 무한 증식을 방치하고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국민연금제도는 이제 32세 청년기로 접어들고 있다. 제도를 도입한 시점에는 제도가 이렇게까지 큰 역할과 기대를 받게 될 줄 몰랐다. 제도 도입은 80년대 중반 매달 국민이 낸 연금보험료를 걷어서 중화학공업의 투자자금으로 쓰고 싶은 정부의 계획이 맞물려 시도되었다. 당시는 노인 인구가 적고 청년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열심히 일하는 모습만 각인되어 있는 산업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평균 수준의 성장이 아니라 소위 폭풍 성장을 이루어냈다. 매해 쌓이는 보험료의 규모를 보면, 축적된 기금은 이미 대한민국 한 해 예산을 초과한 수준이다.3)  성장의 결과는 연금기금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노령연금 수급자는 약 500만 명을 넘어 노인 인구의 2/3를 포괄하고 있다. 주변에는 30년 이상의 연금가입으로 매달 고액의 연금을 받는 노인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4)  과거의 상상이 현실에 도래했음에도 국민의 불안감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약속된 연금을 통해 안정된 노후생활의 보장을 먼저 살피기보다, 현금의 이전 자체가 비용 부담으로 와 닿는 복지정책의 속성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구조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인구구조나 사회구조의 변화를 볼 때 국민연금은 더 불안정한 미래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확증 편향이 강력하게 작동된다. 국민 개개인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노후 소득보장제도의 역할은 끊임없이 의심받고 청년기 국민연금제도는 쉽게 존폐가 거론되는 등 총체적 불안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국민은 국민연금제도의 성장을 지켜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적연금제도 안에서 서로 엮여 있다. 그 과정이 자발적이었든 비자발적이었든 약 2,200만 명의 경제활동인구는 국민연금 가입자로 노후를 준비하고 500만 명의 노인이 연금수급자로서 노후 생활의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 순환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 제도가 국민연금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제도가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국민의 염원이며, 이는 적정한 시기에 제도의 여건에 맞는 수정 보완을 통해 만들어 가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제도개선의 요구가 수퍼 파워의 권위만 강조하는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방치되는 것을 또다시 지켜보기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연금제도가 가지고 있는 파급성과 불신이 결합하여 국회에서 논의되는 연금제도의 수정안은 ‘폭탄 돌리기’와 같은 공포를 유발한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성장기를 맞이한 제도가 잘 성숙할 수 있도록 기반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작은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제도개선을 위해 충분히 논의되었던 합의 내용을 수용하고 제도화하는 입법 과정으로 실현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지급보장 명문화와 명목소득 대체율의 인하 중지(혹은 명목소득 대체율 인상) 외에도 미래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점진적으로 보험료를 올리고, 여전히 사각지대로 내몰린 채 보호받지 못하는 일하는 사람의 노후를 보장하기 위한 보완 방안들을 법안으로 제시하였다. 현시점에서 국민연금제도의 개혁은 적정 노후 소득을 꾸준히 보장받을 수 있는 세대 간 연대구조를 안착시키는 중요한 단계에 놓여있다. 21대 국회에는 이런 과제들을 잘 이해하고 착실히 제 역할을 수행하는 일 잘하는 사람들이 모였기를 기대한다. 이제 법률제안 자체가 국회의원 개인의 성과로 부각되고 정량으로 국회의원 일의 성과를 측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누가 얼마나 법안을 내고 책임지지 못했는가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소위 일머리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책임 있게 국민의 노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법안을 수용하고 만들어 나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1) 연합뉴스, 2020.4.19. “20대 국회 계류법안 1만 5천여 건.. 64% 미처리”; 참고로 20대 국회에는 국민연금법개정안이 127건 발의되었고, 이 중 96건은 계류 중이어서 곧 폐기될 예정이다. 

2) 주은선·오건호·이은주·전미나, 2019, 공적연금발전방안 연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p.9

3) 2020년 2월 기준으로 적립된 연금기금은 737.4조 원(내곁에국민연금, 2020년 5월 20일 방문), 2020년 정부예산 512조 3천억(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2020년 5월 20일 방문)

4) 물론 이들은 국민연금수급자가 아닌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수급자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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