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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20
  • 2020.04.01
  • 638

법과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본 혐오와 사회권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지난 1월 말 숙명여대 합격소식을 밝히며 법 공부에 대한 기대와 포부를 밝힌 트랜스젠더 여성은 그로부터 열흘도 채 지나지 않은 2월 8일 입학포기 의사를 밝혔다. 그녀의 입학소식에 숙대의 일부 재학생을 비롯한 국내 여러 여대 페미니즘 동아리들이 “생물학적” 남성이 여대에 입학하려 한다며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하려는 것은 당시 일부 재학생들이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으로서도, 소수자로서도 연대가 아닌 배제의 대상으로 보았고, 당사자는 그 결과 수학능력시험 등 입학을 위한 모든 과정을 정상적으로 거쳐 입학허가를 받고도 결국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차별이고, 교육권에 대한 침해에 해당함은 분명하다.

 

혐오에 대해 명확한 정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쓰이는 맥락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배제’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연대의 반대말은 혐오라 할 수도 있겠다. 연대하지 않을 뿐인데 혐오라니? 물론 모든 거리두기를 혐오라고 지칭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나 나의 거리두기가 상대방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작년에 발간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에 따르면 총 3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입장을 거부당하거나 이용을 거절당해 쫓겨났다’(19.1%), ‘일부 항목에 대해 판매나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20.7%), ‘기관이나 단체에서 원하지 않는 지원이나 서비스를 강요받았다’(16.2%), ‘채용을 거부당했다’(28.9%), ‘일터에서 승진, 작업 배치, 임금, 보너스 등에 관해 불이익을 받았다’(37.4%), ‘소속된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했다’(18.8%)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받은 차별과 불이익이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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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라 부르지 않더라도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민 중 상당수는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배제가 사회권과 밀접한 생활영역에서의 차별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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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배제가 사회권에 대한 침해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교육을 받을 권리(헌법 제31조), 근로의 권리(헌법 제32조), 근로자의 단결권(헌법 제33조), 혼인과 가족생활, 보건에 관하여 보호를 받을 권리(헌법 제36조),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헌법 제34조) 등 사회권으로 분류되는 권리들은 모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거나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다.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배제되거나, 방치되거나, 누락되기 쉽다. 

 

혐오는 바로 그러한 배제, 방치 또는 누락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혐오할 때 통상 혐오의 원인을 상대방이 속한 집단이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특징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일정한 기준으로 하나의 집단으로 구분하고, 그 집단에 공통되는 부정적 특징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서술은 점잖거나, 전문적이거나, 선량한 외양을 갖추었다 하더라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배제와 연대 결여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외국인에 대한 사회보장 또는 사회보장으로부터의 배제 문제를 들 수 있다. 화교들은 대대로 한국 땅에서 살아왔지만 영주권이 있더라도 사회보장제도 중 가장 기본적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이 없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령상 기초생활수급자격이 있는 외국인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결혼이주민도 한국국적 아동을 임신(또는 한국인 배우자가 임신) 또는 양육하거나 한국인 배우자의 직계존속과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만 기초생활수급자격이 있다. 한국 국민의 가족이라도 저출산ㆍ고령화의 국가적 과제 해결에 기여하는 경우에만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겠다는 심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노숙인쉼터, 임시주거지원 등 홈리스 정책은 원래도 매우 열악하지만, 그마저도 국적을 가려서 외국국적 홈리스들은 그야말로 없는 존재로 방치되고 있다. 부모의 양육을 받지 못해 공적 보호가 필요한 외국국적 아동은 기초생활수급자격이 없기 때문에 아동복지체계에 들어오지 못하고 민간의 선의에 의존해 양육되거나 양육되지 않고 있다.

 

보건에 관한 권리도 마찬가지다. 2019. 7.부터 직장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고, 한국에서 6개월 이상 장기체류하는 모든 외국인은 지역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여야 한다. 지역건강보험 강제가입 자체는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소득이나 재산이 적더라도 전년도 지역건강보험 세대당 평균보험료 이상을 내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이 없으면 의료급여 수급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전년도 평균보험료를 내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기준 세대당 113050원이다. 그런데 한 세대로 인정하는 범위가 부모와 미성년 자녀로 한정되어 있어서 대학생 자녀, 부모, 조부모 등 3대가 같이 살고 있는 가족 중 한 달에 40만 원이 넘는 고지서를 받는 집도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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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당시 외국인을 지역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하겠다는 등의 건강보험제도 개편을 예고한 위 보도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외국인에 대한 지역건강보험 강제가입은 처음부터 외국인의 건강권 보장에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제목에서부터 외국인 관련 건강보험 제도는 도덕적 해이와 내국인에 대한 불이익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저소득 이주민들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여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지역건강보험도 비싼 보험료 때문에 가입하지 못했으며, 직장건강보험과 지역건강보험 외국인 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합쳤을 때 보험료가 보험급여를 상회하는 점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건강보험기금을 “도덕적으로 해이한” 외국인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음을 어필하고 있다. 외국인을 건강권을 보장해야 하는 정책대상으로 보지 않은 탓이다.

 

지역사회로부터의 배제 역시 사회권 침해로 이어진다. 시설에 ‘혐오’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배제와 차별을 예고하는 말이 된다. 예전에는 주로 쓰레기 소각장과 같은 시설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으나, 현재 장애인 그룹홈2), 북한이탈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3), 특수학교4), 난민지원센터5), 임대아파트6) 등 취약한 계층을 위한 복지시설과 주거지가 혐오시설로 간주되어 지역사회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은 더 이상 보기 드문 현상이 아니게 되었다. 단순한 시설용도의 문제가 아니라, 취약한 이들의 교육권, 주거권, 거주ㆍ이전의 자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권리와 사회보장에 관한 권리가 타인의 침해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통상 부동산 값이 떨어진다는 것이 주된 이유인데, 자기 재산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다른 이들을 배제하는 데 거리낌 없는 모습은 취약계층에 대한 혐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위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배제는 상대방을 밀어냄으로써 그 생활과 활동 영역에 제약을 가하는 효과가 있으며,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대한 침해를 수반한다. 혐오하는 쪽이 아닌 혐오를 받는 쪽의 공간과 영역이 침범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가장 멀리 밀려나가는 것은 가장 취약한 이들이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고, 헌법 제11조는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함으로써, 혐오, 차별과 배제로 인한 사회권 침해가 사인 간의 사적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문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헌법이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이미 지났다.

 

1)  한겨레신문, 최저임금 고려인 모녀, 한 달 건보료가 22만원 넘는다고?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07220.html)

2)  한국일보, “장애인 이웃 안돼” 차로 막고 연팡장 돌리고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5301620034244)

3)  KBS뉴스, “탈북자 학교 우리 동네엔 안돼!”... 갈 곳을 잃은 여명학교 (http://mn.kbs.co.kr/mobile/news/view.do?ncd=4369211#kbsnews)

4)  중앙일보, “엄마들 무릎 꿇은 서진하교 주민 반대 여전” (https://news.joins.com/article/23460016)

5)  한겨레신문, 동두천 ‘가콜릭 난민센터’ 주민 반발에 개소 차질 (http://www.hani.co.kr/arti/area/capital/909622.html)

6)  한국일보, 그놈의 집값이 뭐라고 ... ‘일단 반대’에 에워싸인 청년주택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2111986744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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