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도 기초생활보장 에산(안) 및 대상자 축소에 관한 의견 (표빠짐)

지난 8월에 시민단체에서 그토록 요구하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어 이제야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의 기본이 갖추어지는구나 하고 기뻐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중요 내용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가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그 가구에 노동능력자가 있건 없건 간에 최저생계비만큼의 생활을 국민의 권리로서 국가가 보장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저소득 가구에 노동능력자가 1명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그 가구의 생활이 아무리 궁핍하다고 하더라도 생계비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기획예산처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편성을 보면 생활보호예산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 복지부는 생활보호대상자 지원대상을 올해 수준으로 유지하되 생활보호대상자 중 자활보호자에 대한 일거리 및 생계비 지원을 새로 시작한다는 방침 아래 생활보호대상자 지원예산을 올해 1조 9천 4백억 원보다 16% 증액된 2조 2천 6백억 원 수준을 요청했다. 그런데 기획예산처에서는 오히려 올해보다 9%나 줄어든 1조 7천 7백억 원으로 축소 조정했다. 기획예산처의 예산근거는 올해 전체 생활보호대상자 191만 9천 명(전체 인구의 4.2%) 중 76만 명을 차지하는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 가운데 절반인 38만 명에 대한 예산지원을 삭감해서 내년도에는 153만 9천 명만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해서 지원하겠다는 것이고, 복지부에서 요청한 신규사업 예산을 전액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기획예산처의 당초 안은 당정협의를 거쳐 올해 예산보다 4.1% 축소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는데, 그 축소폭을 줄이게 된 것은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를 정부가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결과인데, 예산 재조정의 핵심은 내년도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의 축소폭을 줄인 것에 있다(1월부터 9월까지는 54만 명, 10월부터는 38만 명).

어쨌든 정부가 내년도 생활보호대상자수를 올해보다 대폭 줄일 예정이고 기초생활보장 예산을 축소한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제대로 실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실업자수가 감소추세에 있기 때문에 대상자수를 줄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실업자 규모가 감소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이 빈곤율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생활보호대상자수의 축소를 전제로 한 예산의 대폭적인 감축은 타당성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면 현행과 같은 방식으로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합리적인 방법으로 수급자를 선정하게 되기 때문에 수급자수가 현행 생활보호대상자수보다 대폭 늘어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시민단체에서 청원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정부와 국회에서 받아들인 것은 기존의 생활보호제도가 불합리하게 되어 있어서 그 법으로는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합리한 생활보호제도를 하루 빨리 개선하여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나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불합리한 현행 생활보호제도의 방식을 전제로 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실시 이후의 수급자수를 예상하였고, 또한 그것을 근거로 하여 예산을 책정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처사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실시되면 경제회복으로 인한 실업률 감소를 감안하더라도 수급자수가 현재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현행 제도상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부양능력이 없어야만 한다. 그런데 현행 제도는 부양능력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에 문제가 있다. 현재는 생활보호대상자 선정기준보다 조금이라도 생활수준이 높다고 한다면 그 가구는 부양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피부양가구가 대상자로 선정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여 부양능력 판단기준이 상향조정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부양의무자 규정 때문에 대상자가 되지 못한 많은 가구들이 수급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잔다.

현재는 대상자 선정을 위한 재산기준이 합리적인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너무 낮게 설정되어 있는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에는 소득을 발생시키지 않는 재산의 경우는 소득 환산대상에서 제외되게 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재산기준 때문에 대상가구가 되지 못한 가구들이 수급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에는 소득기준을 합리적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수급자수가 현행 대상자수보다 늘어난다. 현행 대상자 선정을 위한 소득기준이 1인당 일정액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소규모 가구가 대상자로 선정되는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선정기준이 전국 단일기준으로 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물가가 높은 대도시 지역의 저소득가구는 대상자로 선정되기 어려웠다. 그런데 올해 12월에 가구규모별 지역별 최저생계비가 공표되어 내년도 대상자 선정기준으로 사용되면 소규모가구와 대도시의 저소득가구가 대폭 대상자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선정기준의 불합리한 점 때문에 우리나라 인구의 1/4이 거주하는 서울시의 경우 현행 대상자수가 서울시 인구의 2%(전국평균 4.2%)도 안되는데, 선정기준을 합리화한다면 대도시 지역의 수급자수가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량실업이 발생했으나 저소득층에 대한 홍보부족으로 신청하지 못한 가구들이 여전히 많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제대로 홍보가 이루어진다면 현재보다 대상자수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빈곤율이 최하 7%에서 최고 30% 사이에 분포하고 있다는 연구자들의 보고가 있다).

빈곤정책의 변화에 대한 사회복지전문요원이나 사회담당 직원의 이해부족으로 보호받아야 되나 대상자에서 누락된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과 제도정비로 대상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기초생활보장법 상에는 소득평가액 산정시 지출(과다한 병원비 및 교육비)이 고려되고, 근로유인을 위한 소득공제제도가 도입되어 현행 불합리한 소득조사 방법을 합리적으로 변경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현행 생보자 선정기준과 동일한 수준의 최저생계비가 공포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소득수준으로 볼 때 현 생활보호대상자보다 상위계층인 가구들이 대상자로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수급자 규모 문제를 제외하고도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산증액의 가장 커다란 이유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실시 이전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행 자활보호대상가구 생계급여액 수준이 최저생활을 보장하기에 부족하고 급여액 지급대상 가구수가 전체 자활가구의 30%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것도 동절기 6개월 동안(1-3월, 10-12월)만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자활보호대상가구라고 하여 자활이 가능한 혹은 노동능력이 있는 가구가 아니라 50% 이상은 자활이 불가능한 가구이며, 많은 자활보호자들이 오히려 거택보호대상가구보다 더 참혹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따라서 생계비를 지원받지 못한 자활보호가구의 경우 아동결식, 부모의 가출, 가족해체가 발생하고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생계비 지원을 위한 예산편성은 그 어떤 정부 예산보다도 우선시해야 하는 부분이다. 또한 현행 생활보호대상자 선정방법이나 급여방식이 불합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행법 하에서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개선되어야만 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자활보호대상자에 대한 생계비 지원(생계보호)이다. 현행 생활보호법으로도 자활보호대상자에게 연중 생계보호를 실시할 수 있고, 대상자 선정을 좀더 합리적으로 변경할 수 있으므로 내년 10월 이전이라고 하더라도 기초법 제정의 의의를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자활보호대상가구에 대하여 최저생계비에 부족한 생계비를 연중 지원할 수 있게끔 예산을 편성해야 할 것이다.

예산을 증액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현재 생계비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많은 가구들이 여전히 최저생활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필요부분만큼 예산증액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생계보호를 받고 있는 자활보호대상가구의 경우 가구소득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거택보호가구 중 최상위등급에 속하는 가구가 받는 금액(1인가구 79천 원, 4인가구 258천 원)을 일률적으로 지원받고 있을 뿐이고, 거택보호대상가구의 경우는 소득이 전혀 없는 가구의 경우도 1인가구 15만 2천 원, 4인가구 44만 3천 원만을 지원받을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합리한 급여체계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실시 이전이라고 하더라도 개선되어야 한다.

현행 급여액 산정방식의 불합리한 점으로 인해 수준이 국민기초생활보장에서 보장하고자 하는 생활 보장수준은 절대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고, 일각에서 우려하는 복지병을 유발할 만큼의 수준이 아닌 그야말로 최소한의 수준이다. 따라서 이제 남은 국회심의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가 시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허선 /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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