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8-11   2504

[심층분석5] 시장 임금을 넘어서서: 공정노동과 사회보장

은수미│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붉은 화염에 휩싸인 건물. 검게 그을린 채 거리에 나동그라진 자동차. SF 영화가 아니라 영국의 일부 도시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영국발 보도에 따르면 저임금 근로자와 이주민이 집중된 지역을 중심으로 폭동이 퍼졌고 영국 정부의 긴축재정과 복지예산 축소, 실업 등에 의해 소외된 젊은이들의 분노와 좌절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영국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저임금 근로가 많다는 점에서 시장임금에 대한 의존이 심한 나라이다. 여기에 세계화의 효과로 이주 노동력이 증가하면서 인종적 문제까지 존재한다. 또한 영국만의 문제인 것도 아니다. 최근 EU에서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고 사회보장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공식 노동이나 저임금 근로에 주목하는 것은,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고 일을 해도 가난한 집단의 발생이 선진국에서도 고민거리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또한 사회보장이 매우 관대한 국가의 경우에도 이윤을 쫓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따른 세계적 경제위기나 노동력 이동으로 발생하는 인종적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근 노르웨이 총격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겠다.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다.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좁은 좌석을 넓게 차지하여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서 “나도 그랬나?” 혹은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즉 사물이나 사람의 부정적인 면을 보고 교훈을 삼는 것이 반면교사이다. 외국의 사례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반면교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반대의 ‘타산지석’이라는 말도 있다. 좋은 것은 귀감을 삼는다는 의미인데 외국의 사례는 타산지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일 것이다.

한국은 시장임금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이다. 이것은 국민이나 시민이면 누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기본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태어난 아이가 인간으로서의 살아갈 수 있는지 여부가 개인적 소득이나 능력뿐만 아니라 부모(심지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재력,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행운이나 불운 등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사회의 책임보다는 개인의 책임이 크게 부각될 때 좌절하거나 저항할 수밖에 없고 사회통합은 약화된다.

필자가 지난 2, 3년간 심층면접을 하면서 만나 뵌 사람들은 높은 시장 임금 의존이 개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1950년생 유씨(남성)는 초등학교만 졸업했지만 34년 이상 쉬지 않고 일을 하여 자식을 교육시켰다. 면접 당시 일이 없어 잠시 쉬고 있노라는 유씨는 만약 아내마저 일자리를 잃으면 박스를 줍는 것이 노년 대책이라고 대답했다. 연금이나 저축으로 노년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꿈조차 꾸지 않는다.

1967년 생으로 20년 이상 취업을 한 윤씨(남성)는 만났을 때 신용불량자였다. 애들은 처가에 맡겼고 혼자 품팔이를 하면서 일자리를 찾는다. 노숙은 간신히 면했다지만 인터뷰 내내 얼굴 한 구석의 깊은 시름을 어쩌지 못했다. 1964년 생 장씨는 1998년 모 공기업에서 희망퇴직을 한 후 10여년 만인 2009년 12월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했다. 그 와중에 아내는 5년간 암으로 투병하다 눈을 감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노모를 부양해야 한다. 신용불량자인 장씨는 아이들을 봐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월79만원 받는 사회적 일자리로는 생계가 어려워 우유배달, 대리운전을 병행한다. 물론 가외 소득을 신고하지 않았다. 신고할 경우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시장 임금만이 아니라 사회보장 제도 등 사회 임금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일자리를 잃는다고 해서 곧바로 돈이 없거나 빈곤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를 잃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보호가 이루어지고 재기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일자리를 잃으면 거의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일자리를 잃은 동안 본인이나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병에 걸리거나 집세를 올려줘야 하면, 한참 아이들 교육비가 많이 들어가야 하는 시기라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일자리 잃으면요? 빚내야지요. 집 있는 것 대출받고 그것도 안 되면 전세로, 월세로 옮겨 앉아야지요”. 1969년생 김씨(여성)의 담담한 대답이다. 

그런데 최근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한 ‘근로 빈곤’이 20대, 30대로까지 넓혀졌다.  1974년 김씨(남성)는 10년 가까운 취업 경력을 갖고 있다. 가난한 집의 자식으로 태어나 지방의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결국 대학을 끝마치지 못하고 군입대 했다. 제대한 이후에 복학을 하지 못하여 모텔에 취업을 했는데 쥐꼬리만 한 급여마저 아예 현금으로 준다. 그래서 김씨의 소원은 급여를 통장으로 받는 것이다. 월급 통장이 있으면 그나마 근로기록이 남아서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은행 문을 두드려 볼 수 있지만 현금으로 받게 되면 사채에 손을 벌려야 한다. 그래서 김씨는 카페나 호프집의 알바를 뛰면서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를 2년간 했다. 100대 1이라는 경쟁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였지만 좌절하지 않고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쏟아 부어 1년간 어학연수를 갔다 왔다. 그 경력으로 섬유회사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4년간 일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안정적이라서 참 좋았어요”. 문제는 이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이다. 중소 영세사업장에서 항상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이다. 결국 그는 지금 모텔에서 24시간 카운터를 본다. “24시간 잠도 못자고 일을 했는데 1시간 더 하라고 할 때가 있어요. 그렇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너무 힘들지요”. 당연히 그에게는 애인과 저축통장과 자가용이 없다.

한동안 소위 유연안정성의 대표적 모델로 소개되었던 덴마크는 유연안정성 모델의 핵심 목표를 “덴마크 국민이면 누구나 경제적 고통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고 소개한다. 최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일자리를 잃으면 4년간 기존 급여의 최대 90%까지를 받는다. 아예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청년층도 유사한 급여를 받으며 직업훈련을 하고 보다 나은 직장을 꿈꿔 볼 수 있다. 최저임금 수준도 높을 뿐만 아니라 저임금 근로 비중이 8%로 한국의 1/3도 안 된다. 게다가 저임금 근로자도 각종 사회보장 수당을 받기 때문에 한국의 저임금 근로자와 비교할 수가 없다. 물론 최저 임금을 받는 사람도 소득의 최소 31%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그래서 덴마크 학자들은 미국은 일자리를 잃는 것이 곧 돈이 없는 것이지만 덴마크에서는 그냥 일자리를 잃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시장 임금만이 아니라 사회 임금으로 생활할 수 있는 나라조차 세계화 시대 자본의 이동이나 노동력 이동의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한다. 그러니 사회 임금이 취약한 한국은 어쩌겠는가. 쌍용자동차나 한진 중공업과 같이 대규모 정리해고가 발생하면 그 부담을 오롯이 개인이 져야 한다. 혹자는 그것을 정규직 이기주의라고 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내 코가 석자인 나라, 한 번의 해고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나라에서 근본적인 제도 변화나 새로운 전망 없이 이기주의라고 비난하면 다 일까. 또한 그와 같은 문제의 사회적 해결이나 복지국가를 이야기하면 갑자기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한다. “돈 나고 사람 나냐, 사람 나고 돈 나지”라는 한국의 오랜 속담, 사람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이야기가 포퓰리즘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최근의 복지 논쟁은 시장 임금 외에 의존할 것이 없는 사회적 현실을 바꾸어보자는 제안으로 읽힌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복지의 핵심은 공정 노동의 확립, 즉 정의롭고 존중받으며 정당한 노동의 확립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사회보장을 결합할 때만 복지국가로의 선회가 가능한 것이다. 공정한 노동시장과 보편적 사회복지를 통해 일자리를 잃거나 그와 유사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개인이 감당해야할 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 헌법 제 10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또한 헌법 제34조 2항은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강조한다. 위험의 회피는 개인의 책임만이 아님을 이미 헌법에서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현실 가능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첫째, 사내하도급을 규제하고 파견법을 개정하며 노동에서의 차별을 없애고 공정노동을 보장해야 한다.
사내하청, 민간위탁, 외주 용역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사내하도급은 10여년 이상 공정 노동을 훼손하는 주요한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모 대기업 자동차의 왼쪽 바퀴는 정규 근로자가 오른쪽 바퀴는 사내하청 근로자가, 정규 근로자의 50%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만들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일부 언론에서는 외국에서도 사내하도급을 쓰는데 무슨 문제냐고 한다. 물론 외국에도 사내하도급이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컨베이어벨트 등 조립이나 수리업무에 사내하도급을 사용하지 않으며 만약 사용하면 불법으로 처벌받는다. 또한 적법한 사내하도급을 쓸 경우에도 원청이 사내하도급 근로자에게 일정하게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아무런 규제가 없는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

둘째,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 3권을 보장해야 한다. 한국의 노조법 제2조는 특정 기업에 고용된 사람으로만 노동조합에 가입을 제한하여 사실상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의 범위를 좁힌다. 또한 제 29조는 노동조합이 사업장의 노동자가 아니라 조합원만을 대표해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정규직 이기주의를 해야 합법이다. 이와 같은 법적 제한은 노동조합의 규약이나 단체협약에 그대로 반영되어 비정규직, 실업자 등 취약 집단의 노동조합 가입을 가로막는다. 게다가 최근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홍익대 측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나타나듯이 단체행동권 역시 상당히 제약되어 있다. 따라서 모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법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조합 조직율 10%, 단체협약 적용율 12%의 현실은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3권이 일부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항임을 웅변하는 것이다.

셋째, 성별, 연령, 학력, 기업규모, 고용형태별 임금 격차를 줄이고 최저임금을 평균 임금의 50%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이 60% 수준에 머무를 뿐만 아니라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 격차 역시 적지 않다. 또한 고등학교 혹은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의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는 일 역시 흔하다. 괜찮은 일자리를 확대하여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늘리고 비정규직 등의 차별을 없애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책이다.

넷째, 고용보험의 가입율을 크게 높여야 한다. 한국의 고용보험은 1인 이상 기업의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제도이다. 하지만 30% 가까운 노동자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실업자 중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도 10% 남짓이다. 중소영세업체의 사용주와 노동자 모두 여러 가지 이유로 고용보험 가입을 회피하거나 가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엄격한 행정지도가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당장의 부담이 있다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고용보험 가입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경험하는 집단을 만들뿐만 아니라 당장의 부담 자체를 줄여주는 것이다. 최근 사회보험료 감면 논의는 그런 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다섯째,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이나 기초생활 보장 대상자가 아닌 취업자들(약 1,200만명)을 위한 별도의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이와 같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시급하게 검토해야할 사안이며 청년층에 대한 구직수당의 형태로 시험적 도입을 고려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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