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5-02   894

그녀들 이야기

새 이름으로 활기차게 탄생한 10명

햇살에 여전히 날카로운 찬 느낌이 묻어 들어오던 지난 2월, 저는 10명의 새 식구를 맞이하였습니다. 이름하여 풋사랑 사업단! 발건강 관리 사업단이지요. 발건강 관리가 사회적으로 대체 의학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시장의 전망도 있었지만, 사실 1차 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참여 주민들이 자신의 건강을 돌보면서 의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에 이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모집 공고가 나고 며칠 안되어 예상인원 10명이 모두 채워졌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기관에서는 참여하는 주민분들을 아무개 어머님이나 아버님, 혹은 아무개 님으로 부르곤 하였는데,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침 모두 여성분들이고, 연배가 30대부터 40대까지 그리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별칭을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며칠 만나면서 서로에게 가진 인상이나 평소에 불리고 싶었던 이미지 몇 가지를 올려놓고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 이름지었습니다. 몇몇은 자신이 부모의 알뜰한 살핌을 받은 기억 없이 부여받은 이름에서 늘 부당하게 살아왔다는 느낌을 나누며 새로운 이름을 통해, 표정이며 마음의 틀이 활짝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새로운 별칭으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바다, 파도, 장미, 개코, 차돌, 늘보, 해바라기, 팡팡, 원추리, 화…이름은 참으로 사람을 변하게 하였습니다. 존칭을 떼고 난 자리에 자매애가 들어가고, 서로 진정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깃들어 가면서 모두 이름대로 넓어지고, 향기로워지고, 예뻐지고, 발랄해져갔으며 무엇보다 처음 기관의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어둡고 두려운 표정이 사라지고 웃음과 활기를 품고 있는 것이 보여 너무나 좋습니다.

눈물을 이겨낸 바다와 팡팡

바다는 남편의 외도와 가출이라는 충격에다가 교통사고라는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혈압, 관절, 비만 등으로 인해 계단을 한번에 3개 이상 오르지 못하고 표정엔 당연히 웃음이 적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런 바다가 발관리 사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왔을 때 그녀 자신의 건강 상태가 더 염려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너무 표정이 어둡고 자신감이 없어서 우리 사업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녀를 은근히 거절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의지는 확고했고, 결국 마침 빈자리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들어온 그녀는 배우는 것에 최선을 다하였고, 실습하는 과정에서 건강이 회복되면서 삶의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실습을 끝내면서 가방을 정리하다가 그 동안 필수품처럼 가방 가득 들어있던 약 봉투를 버리면서 감격과 설움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는 그녀의 말에 제 가슴도 울려왔습니다.

팡팡은 30대 중반인데 2년 전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때는 갓 돌 지난 딸과 유치원생 딸 둘을 데리고 어떻게 사나하여 눈물도 나오지 않았더랍니다. 자신을 사랑했으나 무능했던 남편 때문에 어렵게 살아왔는데, 이젠 그도 없다는 것이 더욱 절망이었을 것입니다. 사업 초기에 풋사랑 사업단끼리 공동 프로그램을 하던 중에 울면서 이제 마지막으로 우는 거예요 그런데 그녀는 이제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참으로 의지로운 그녀는 지금은 가장 기술도 뛰어나고 야무져서 일반 전문샵에서도 탐을 낸답니다.

단독비행에 성공한 파도

파도는 당당한 이혼녀입니다. 부부가 불행하고 우울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 자신과 아이들 모두의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하여 이혼하였으나, 지금도 그때도 후회는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녀는 아이와 잘 지내는 방법을 참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엄마한테 보물이 있는데 뭔 줄 아니? 바로 너희들이다. 난 너희들이 짱 좋다’하며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잘 표현해내었습니다. 그리하여 한쪽 날개로 불완전하게 비상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단독 비행임을 그녀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코올중독 남편도 안아주는 서로의 지지

남편이 알콜리즘인 늘보와 해바라기는 모두 손가락질하는 남편에 대해 여전히 마음의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알콜리즘이라는 것이 지속적인 상황이라 견디어내기 힘들지만, 그녀들은 남편을 차마 버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녀들이 감내 해야하는 무게가 조금은 덜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국화는 특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진실된 보살핌을 받은 일이 거의 없는 사람처럼 늘 불안하고 그래서 어떤 관계에도 깊이 있게 뿌리를 가져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차츰 표정과 표현이 늘어갔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녀에게 특별한 변수는 바로 같은 팀의 일원들이었습니다. 함께 부딪기면서 지지해주는 마음을 그녀는 알아낸 것이지요. 표정에 윤기가 없기로는 차돌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남편과는 연락이 안된지 5년여가 되어가고 있었고, 자신은 신장이 안 좋아 늘 몸이 부어있었으며 딸아이는 천식기운까지 있었지만, 아이들을 둘 곳이 없어 집에서 단순한 부업만을 하다가 우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향기로 자신과 타인을 예쁘게

실습이 끝나고 제일 예뻐진 사람이 차돌이려니와 그녀의 얼굴에 저렇게 웃음과 장난기가 숨어있었다는 것이 감사하고 신기합니다. 장미는 첫인상과는 달리 감수성도 풍부하고, 타인과 잘 지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처음엔 가시의 장미였지만 지금은 향기의 장미입니다. 원추리와의 인연은 좀 오래되었습니다. 법적, 경제적 문제로 남편과 떨어져서 아이들과 살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충실함을 가졌습니다. 개코 또한 늘 남을 유쾌하게 하는 긍정적인 태도로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대부분 발이라는 곳이 더럽고 추한 곳이라는 생각에 처음에 남의 발을 잡기조차 부담스럽고 싫었는데, 실습을 하면서 자신의 건강도 호전되고, 발 자체가 참 귀한 곳인데 험하게 쓰이는구나 하는 측은지심도 생겼으며(그래서 발이 꼭 자기들 같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직업적이고 전문가적인 안목과 실력이 생겨가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 비전과 정서적 안정 찾기를

많이 밝아지고 뭔가 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지만 그들 앞의 장애는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경우는 시장 진입형의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우리와 같이 일정 시간 이후의 야간 작업이 불가피한 경우 여성 한부모는 어린 자녀들을 방임하면서까지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싸이게 됩니다. 게다가 수급자라는 사회적 주홍글씨를 떼어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막상 충분한 소득(빚도 갚고, 아이 양육비용도 감당되는 수준의)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라면 과감하게 수급자의 줄을 놓기가 힘들 것입니다. 주민들과 경제적 비전과 함께 정서적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내는 성공적인 모델이 드물다는 것도 자활사업의 취약성이라 할 것입니다(두 마리 모두 놓쳐버리는 경우도 많지요).

아침 햇살에 부드럽고 따사로운 기운이 실리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갈 것 같지 않던 겨울이 간 것처럼, 우리 엄마들의 삶에 긴 겨울이 거둬지고, 다시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봄일 수 도 있겠네요.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께서 함께 마음으로 응원해 주시겠어요? 더욱 힘내시라구요!

허소영 / 은평자활후견기관 사회복지사, aura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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