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8 2008-09-02   773

[동향 2] 국민연금, 어디로 가고 있나?

국민연금, 어디로 가고 있나?




김연명
중앙대교수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후퇴하는 기금의 지배구조


최근 국민연금의 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두 가지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다. 첫 번째는 국민연금기금의 지배구조의 개편이고, 다른 하나는 2008년 재정재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마련된 국민연금 제도개선에 관한 보고서이다. 먼저 국민연금기금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내용을 보자. 정부는 올해 8월달에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구조 개편을 포함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하여 통과시키고 국회에 법률개정안을 제출한 상태이다. 이번 개정안의 초점은 국민연금기금 지배구조의 개편에 맞추어져 있는데 핵심적인 내용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민연금기금의 전략적 자산배분을 결정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운용위’)의 구성이 노사정, 시민단체 등의 대표로 구성된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금융투자전문가의 조직으로 완전히 바뀐다는 것이다. 즉, 지금은 노동계대표, 사용자대표, 그리고 정부대표 등으루 구성된 ‘기금운용위’가 전략적 자산배분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만 개정법률안에는 7인으로 구성된 금융투자전문가가 국민연금기금 중 급여지출 비용 등을 제외한 여유자금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이는 1997년 국민연금법 개정 당시 설정된 사회적 합의구조 하에 기금을 운용하는 원칙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기금운용구조가 사회적 합의보다는 전문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 것은 ‘기금운용위’ 위원들이 전문성이 없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금규모가 GDP의 24% 정도로 막대한 국민연금기금의 성격을 볼 때 투자전문가 위주로 지배구조가 개편되는 것은 국민연금기금이 수익성 위주로 운용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이 다른 투자펀드처럼 과연 수익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제기된다. 25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공공‘기금이 수익성을 좆아 움직일 때 나타나는 시장의 파급효과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민연금제도(OASDI)는 이런 이유 때문에 연금기금의 주식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정신에 의해 기금운용위가 운영될 때는 그나마 국민연금기금의 공공적 성격을 어느정도 유지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으나 사회적 합의정신이 없어진 새로운 ’기금운용위‘는 기금운용의 리스크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기금운용위‘는 사회적 합의구조 정신을 유지하는 선에서 위원들의 전문성을 보완할수 있는 구조, 즉 사회단체의 대표들과 투자금융전문가들이 적절하게 안배된 기금운용위 구성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에 대한 정부와 시민단체의 시각차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말뿐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  
 
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두 번째 특징은 국민연금공단에 있는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로 독립시키고, 기금운용공사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통제하는 구조로 만든다는 것이다.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키는 것은 일단 방향이 잘 잡힌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동안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한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가 내용적으로는 너무 큰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아래 그림의 A모형에서 보는 것처럼 자산운용을 전담하는 기금운용공사 내에 기금운용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과 상임위원 2인을 두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그리고 기금운용위원회의 사무를 지원하기 위해 사무국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는데 정부는 이를 기금운용위원회가 독립․상설화된 모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중 위원장과 상임위원 2명을 두는 것은 과거보다 진일보한 조치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화, 상설화와는 거리가 먼 얘기이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가 제기된 배경은 현행법상 분기별로 한번 씩 회의를 하는 기금운용위원회 구조로는 거대한 연금기금에 대한 책임성이 있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위원들의 정확한 정책판단과 결정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하위기구를 갖추고, 이 기구에서 실제 기금운용을 담당하는 기금운용공사를 체계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위원장과 상임위원이 배치된다 하더라도 실제 기금운용공사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자신들의 행정기구를 갖추지 못하면 기금운용조직에 대한 관리감독도 불가능하고, 중장기투자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정책적 판단자료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모형 A 에 나타난 기금운용위원회 구조는 투자를 집행하는 조직과 관리감독하는 조직이 하나의 기구로 되어 있어 스스로 집행하고, 스스로 감시하는 체계가 되는 엉성한 구조이다. 즉 기금운용의 중요한 원칙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들어가 있지 않다.


따라서 기금운용위원회는 실제 기금운용을 담당하는 기금운용공사와는 독립된 조직이 되어야 체계적인 관리감독이 가능해진다. 정부안에서는 이러한 기초적인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가 들어가 있지 않다. 특히 기금운용위 산하에서는 적어도 세 가지 기능을 갖춘 하위조직이 있어야 한다. 기금의 중장기투자정책을 논의하는 기능을 갖는 부서가 있어야 하며, 펀드메니저의 모럴 헤저드를 감독할수 있는 부서가 있어야 하며, 일일단위로 기금운용의 성과평가를 하는 기능을 갖춘 부서가 있어야 한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는 상임위원 몇 명을 두는 것이 아니라 기금운용공사를 체계적으로 관리감독하고, 기금운용위원회의 주요 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생산해내는 하부조직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상설화이다. 정부안에 나타난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는 이름만 상설화이지 상설화가 제기된 본래의 문제의식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연금의 목적을 잊어버린 재정재계산


국민연금법에 의해 5년마다 실시되게 되어 있는 연금재정재계산의 결과와 국민연금의 주교 제도개선 방안이 8월 19일 공청회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미 2007년도에 국민연금급여수준을 60%에서 장기적으로 40%로 급격히 낮추는 안이 통과되었기 국민연금의 재정재계산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다. 그 결과는 현재처럼 9%의 보험료를 유지하고, 급여수준을 40%로 낮출 경우 기금고갈 시점이 2044년에서 2060년으로 약 16년 정도 늦춰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기본 가정의 경우). 재정불안정 해소를 위해 연금액을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 기금고갈시점이 겨우(!) 16년정도 연장된 것이다. 그것도 재정추계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기금고갈시점을 연장시킨 효과를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

기금고갈시점을 늦춘 결과 국민연금은 보다 본질적인 것을 잃었다.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기능이 현저히 약화된 것이다. 실제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20년 정도로 가정하면 중산층의 연금조차도 1인가구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청회에서 발표된 보고서의 주요 논리는 재정불안정을 해소하는데 2007년의 연금개혁 인하가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여전히 불안정성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리 속에 숨어있는 것은 국민연금이 자체적으로 수지균형을 맞출 때까지 급여수준을 추가로 인하하거나 아니면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제도 개선 사항에서는 국민연금의 노후소득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급여수준을 인상해야 한다는 점은 전혀 지적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2011년에 다시 연금재정재계산이 이루어지면 비슷한 논리의 반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공청회 보고서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국민연금 급여비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시된 점이다.   보고서에서는 2050년에 국민연금 급여비 지출이 GDP의 5.5%에 이를 것이며 앞으로 70년 뒤인 2078년에 가서야 GDP의 7.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2065년에 18세-6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를 의미하는 노인부양비가 90.4%에 이른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2060년대 이르면 노인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할 것인데 이들 노인을 위해 지출되는 연금의 총량이 GDP의 6%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노인인구가 12%-14% 정도 되었을 때 GDP의 10% 정도를 연금급여로 지출하였다.  다시 말하면 연금급여로 지출되는 재정의 절대액이 작아 노인인구 1인당 돌아가는 연금액이 얼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연금의 재정건전성이 충분히 달성되고도 남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을 인상해서 노인들에게 돌아가는 몫의 크기를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정당성을 갖는다. 노인인구가 40%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들을 위한 연금으로 GDP의 5%-6%를 지출한다는 것은 가족의 지원이 없을 경우 대부분의 노인들이 빈곤의 위협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8년 국민연금의 재정재계산의 기본구도는 지금까지 연금개혁을 주도했던 재정안정화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무엇이 재정안정화인가에 대해서는 진지한 사회적 토론을 해 보아야 한다. 공청회 보고서의 기본 가정은 국민연금의 기금고갈이 없고 자체적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것이 재정안정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향후 지불할 급여를 사전에 적립해 두는 순수한 사보험에서 쓰는 재정안정화 개념이지 세대간 재분배를 기본으로 하는 공적연금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공적연금에서 재정안정화는 공적연금의 비용을 사회적으로 감당할수 있는가? 감당할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선이 적정선인가?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향수 수십년가 GDP 대비 국민연금의 비중이 5%-6% 정도에 불과하다면 재정의 ‘과잉’안정화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국민연금의 존재의 목적은 재정안정화가 아니다. 노후빈곤을 예방하는 것이 국민연금의 핵심적 목적이다. 하지만 2008년도 재정재계산보고서는 연금의 재정안정화라는 개념을 일차원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연금제도의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노령화가 급속이 전행되는 현재의 시점에서 연금제도의 기능악화로 노후빈곤의 문제가 향후 한국 사회에서 매우 심각해질 것이고, 한국 사회는 상당한 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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