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배제의 선명한 선 긋기; 다문화정책 최근 몇 년 새 각 정부부처마다 앞 다투어 다문화정책과 다문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사업 뿐만 아니라 언론매체를 통해서도 ‘다문화’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정부는 ‘다문화사회’를 표방하며 여러 가지 ‘다문화정책’과 함께 이를 시행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그 중 하나가 법무부가 제정한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이다. 법명만을 봤을 때는 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의 처우를 규정하는 기본법이라고 생각되지만, 법 제2조는 적용대상을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자”로 한정하고 있다, 나아가 법 제12~17조에서는 그 구체적 대상으로 ‘결혼이민자 및 그 자녀’, ‘영주권자’, ‘난민’, ‘국적취득자’, ‘전문외국인력’, ‘과거 대한민국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 한정한다. 이처럼 정부의 다문화정책은 한국의 모든 이주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이 아닌, 미등록 체류자는 물론 소위 ‘가난한 나라에서 온 공장노동자’들을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에서도 밀어내는 정책이다. 체류자격이 먼저냐, 노동권이 먼저냐;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직장이전 일반적으로 ‘이주노동자’란 자신의 국적국이 아닌 곳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자를 말한다. 따라서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선수도 한국의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노동자도 모두 이주노동자인 것이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저숙련’과 ‘전문인력’이라는 이름으로 분리하여 정책을 수립․운용하고 있는데, 영세한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건설현장의 이주노동자, 식당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재중동포 아주머니가 정부가 말하는 소위 ‘저숙련외국인력’이다. 정부는 94년부터 06년까지 이주노동자에게 취업비자가 아닌 ‘연수생’ 비자를 발급하고, 실제로는 노동을 해도 비자가 ‘연수생’이라 노동자라고 인정하지 않아 엄청난 인권침해를 야기했던 ‘산업연수생제도’를 운용했었다. 이주노동자인권단체와 종교,시민,사회단체등 각계의 노력으로 산업연수생제도는 폐지되고 2004년부터 ‘고용허가제’라는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산업연수생제도는 고용허가제와 병행실시되다 2007년 1월 1일부터 고용허가제로 일원화되었다). 고용허가제도의 가장 큰 의의는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여 취업비자를 발급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와 동일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한다는 것이다. 정말 한국의 이주노동자에게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가 온 것일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입사를 했다가도 조건이나, 사정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회사를 그만 둘 수 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그렇지 않다. 회사를 옮길 수 있는 횟수는 3년간 3회, 회사를 옮길 수 있는 이유도 법률로 정해져 있다. 이 규정을 어기게 되면 3년간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했다하더라도 체류 자격을 잃게 된다. 소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체류자격과 직결되기 때문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이직을 하고 싶어도 이직을 하지 못한다. 1년의 계약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산업재해 이주노동자 세 명 중 한 명은 본인이 치료비 지불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빈도는 해가 갈수록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산재사고는 잘 보고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빈도는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이주노동자 산재발생율의 뚜렷한 증가는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정부의 조치가 사실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주노동자 산업재해 발생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위험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시설 감독 및 산업안전교육 등의 조치가 실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주노동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행되는 산업안전교육이 의무화되어야 한다. 자료 1. 이주노동자 산업재해건수 (자료생략)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예방 조치가 전혀 취해지고 있지 않음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동시에 산재 발생 후 이주노동자들이 산재보험처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점 역시 큰 문제 중 하나이다. 2009년 8월, 고용허가제 시행 5주년을 맞아 진행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과 관련하여 다치거나 아픈 적이 있다고 답한 이들 중 약 절반가량이 회사 측에서 산재처리를 하거나 병원비를 지불하였다고 답하였다. 그러나 다친 이들의 37.7%는 자신이 치료비를 지불하였다고 답하였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법과 제도를 잘 몰라서 사용자가 말하는 대로 따르게 되는 경우도 많고, 사용자에게 치료비를 요구할 경우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해서 권리 주장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고용과 체류의 연동시스템은 합법 체류 상태에 있는 이주노동자라 할지라도 권리 주장을 할 수 없는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 자료 2. 이주노동자 거주 형태 구분 빈도 비율 유효비율 단독주택 52 9.8 10.6 가건물(컨테이너, 비닐하우스 등) 123 23.1 25.1 아파트 34 6.4 6.9 다가구주택 86 16.1 17.5 공장에 있는 방 184 34.5 37.5 기타 12 2.3 2.4 응답계 491 92.1 100.0 무응답 42 7.9 합계 533 100.0
이주민도 한국에 산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 간사
이외에 사회보장의 준거법이 되는 ‘사회보장기본법’은 외국인에 대한 사회보장을 상호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어, 외국인이 사회보장권을 누리는데 있어 근본적인 제약이 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합법적으로 회사를 옮길 수 있는 경우는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재고용을 거절하는 경우, 휴업이나 폐업과 같이 이주노동자의 귀책사유 없이 계속 근무가 불가능한 경우, 상해 등으로 원래 일하던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기에 부적합한 경우로 한정되어 있다. 지난 10월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정부는 근로조건이 계약조건과 상이하거나 부당한 처우 등 근로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를 이동사유에 추가하였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는 여전히 멀기만 하고, 체류자격과 연동된 노동조건은 이주노동자의 발목만 옥죄고 있다.
출처: 김용규, 국내 이주노동자 산업재해와 사망 현황(2008)
이주노동자의 집 = 컨테이너,여관,식당,고시원,비닐하우스; 주거권
(단위: 명, %)
출처: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고용허가제 시행5주년 이주노동자 인권실태조사(2009)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들이 일하지 않는 3D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들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이주노동자들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2009년 8월, 앞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건물이나 공장에 딸린 방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응답자의 62.6%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2/3 가량이 회사 내 임시시설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본국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할 시에는 주거시설이 제공된다는 정보를 듣는다. 그러나 주거시설이 제공된다는 사실만을 들었을 뿐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바 없이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말도 통하지 않고, 돈도 없기 때문에 대부분 회사에서 제공하는 임시시설에 거주한다.
공장에 딸린 공간이나 컨테이너이지만 엄연히 기숙사라 불린다. 실제 시설은 형편없다. 좁은 공간에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생활하고, 밤새 돌아가는 기계소리와 함께 잠은 자는 경우도 많다. 제대로 된 부엌이나 화장실이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정부는 이토록 열악한 곳에서 생활하는 이주노동자 주거권 보장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되려 주거시설을 제공하고 있으니 숙식비를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에서 공제하겠다고 한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한다. 중소기업 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이나 노동권은 모두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한편 아무런 숙박시설이 제공되지 않는 건설업이나 식당보조, 간병인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목돈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주거공간은 바로 만만한 고시원이나 여관이다. 많은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일이 끝난 후 일하는 식당이나 여관에서 잠을 잔다. 식당에서 잠을 자다 성폭행이나 강도를 당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고시원이나 여관에서도 이미 여러 건의 사건 사고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2008년 7월 용인 고시원 방화 사건, 같은 해 10월 논현동 고시원 방화 난동 사건을 비롯한 여러 건의 고시원 방화 사건의 사상자 명단에는 중국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 바로 이번 달 28일 충남 서산에서 발생한 여관 화재 사고 사상자 명단에서 네팔 이주노동자의 이름을 발견한다.
들어가기는 어려워도, 나오기는 쉽다; 이주아동의 교육권
한국 정부는 원칙적으로 ‘저숙련외국인력’에 해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가족을 동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현재 약 2만 명 이상의 미등록 이주아동이 거주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 미등록이주노동자인 이들의 부모는 경제적인 이유로 학령기 이전의 아동들을 교육기관에 보내지 못한다. 대부분의 아동들은 부모가 저녁 늦게 돌아올 때까지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학령기가 되어서도 학교에 입학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현행법상으로 학교장 재량 사항인 것이 바로 문제의 발단이다. 학교장 재량으로 입학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마땅한 이유 없이, 미등록 아동을 입학시키는 것이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막연한 편견으로 미등록 아동의 입학을 거부하는 사례도 많다. 학교생활을 지속하는 것은 학교입학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이들 아동을 위한 별도의 한국어 교육이나 교육과정은 운영되지 않는다.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동들이 아침부터 오후까지 하루 종일 한국어로만 진행되는 교실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렵게 학교를 들어가더라도 학업에 흥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적응하기가 어려워 많은 아동들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법적으로 이들 아동의 입학 허용만을 강조할 뿐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아동의 숫자나 이유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사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아이들은 오늘도 학교와 일터의 갈림길에 서 있다.
죽음의 경계선 – ‘합법’과 ‘불법’ ; 미등록이주민의 사회권
2007년 12월 26일 충남 아산 지역에서 일하던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사망원인은 복막염이었다. 사망 며칠 전부터 맹장염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미등록 신분이었던 그는 건강보험 적용없이 지불해야 할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치료를 포기했고, 결국 그는 한국에서 그의 생을 마감했다. 2009년 9월 현재, 약 115만 명의 이주민 중 미등록이주민의 수는 16%에 달하는 18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건강보험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꼭 미등록이주민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주노동자도 한국인노동자와 마찬가지로 4대보험 가입대상이지만 2009년 2월말 현재 총 357, 947명만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즉 합법 비자를 갖은 약 50여만 명의 이주민도 건강보험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2월 11일, 전남 여수의 외국인보호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국가기관에서 발생한 화재로 10명이 죽고 17명이 다쳤다. 전부 외국인이다. 그렇지만 범죄자는 아니다. ‘외국인보호소’의 영문 명칭은 ‘Detention Center’, 구금기관이다. ’외국인보호소‘는 출입국공무원에게 단속된 미등록체류자 소위 불법체류자가, 당장 귀국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 출국 전까지 임시로 거주하는 공간이다. 당장 귀국하지 못할 사정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으나, 3개월 이상 장기 보호 사유는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수는 체불임금 등 채권미회수 문제이다. 그 밖에 산재문제처리나 소송, 인권위, 노동부 진정을 진행 중인 경우에도 3개월 이상씩 신체의 자유가 억압된 채, 주거공간도 아닌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표는 또한 이주민들에게 분쟁이 발생하거나 법적 구제가 필요할 경우, 적절한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자료 3. 연도별 3개월 이상 보호된 자의 보호사유 현황 (자료 생략)
자료: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2008)
이주노동자들은 ‘합법 체류’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사업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꾹 참는다. 자칫 잘못하면 사업장 이동 횟수 제한에 걸려 미등록자가 될 수도 있고, 법에서 정한 4가지 사유가 아니면 사업장을 아예 옮길 수도 없기 때문이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여성결혼이민자들도 꾹 참아야만 한다. 영주권이나 국적 취득을 하기 까지 걸리는 4~5년 동안 비자연장을 위해서는 남편이나 한국인의 신원보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을 당하더라도 별 도리가 없다.
비자 없이 살아가는 이주아동들 역시 한국에서 아이들의 부당한 따돌림이나 놀림이 있어도 참아야만 한다. 자칫 싸움에라도 연루되어 경찰서라도 가게 되면, 혹은 못된 마음을 가진 아이가 미등록자라고 신고라도 하게 되면, 당장이라도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이주민들은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미등록 신분인 이주민들은 자신의 체류지위가 노출되어 강제송환이라도 당할까 두려워 제아무리 불합리한 일을 겪더라도 이야기하기 어렵다.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가졌다 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체류자격을 잃게 될까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외국인이 우리와 똑같은 권리를 보장받는 것을 불편해하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를 동정하지만 평등의 눈의 바라보지 않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차별의식은 115만 여 명에 달하는 이주민을 사회구성원이 아닌 손님의 자리에 맴돌게 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11월 사회권위원회가 한국정부심의 후 발표한 최종결론 중 이주관련 권고를 살펴보면, 국제사회의 인권전문가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비자로 분류되는 다양한 체류형태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한국 내 다양한 이주민들 역시 한국인과 동일하게 사회권을 보장받아야 할 주체임을 상기시킨다. 12개 사항을 아래에 덧붙이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유엔 사회권위원회 최종권고 중 이주관련 12개 사항 요약
1.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한 난민신청자 취업가능성 허용 긍정 평가
2. 헌법이 외국인에 대해 적용가능하지 않은 점에 대한 우려
3.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채택 – “국적 및 성적지향”등 배제에 대해 우려
4. 난민인정심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개선사항 권고
5. 남편에 의존하는 여성결혼이민자의 체류지위에 대한 우려 및 개선 권고
6. 이주노동자 최저임금에서 숙식비 공제되지 않도록 보장할 것
7. 체류지위상실 우려에 따른 사업장내 성희롱 피해 여성이주노동자 구제책 전무 우려
8. 근로감독관이 이주노동자의 산업안전보다 체류지위에 초점을 맞추는 상황에 대한 우려
9. 고용허가제 구직기간 제한 등 고용허가제 재검토 및 이주노조에 대한 고법판결 수용 요구
10. 예술흥행비자(E-6) 여성이주노동자의 인신매매에 대한 우려와 개선 노력 강화 요구
11. 빈곤층 비율 조사에 있어 인종집단을 조사기준항목 중 하나로 채택할 것
12. UN 이주노동자권리협약 서명 혹은 권고 고려 장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