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참여연대 공식일정+ 더보기

사회복지위원회  l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의 복지를 만들어갑니다

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19
  • 2019.05.10
  • 1115

71번째 4월, 평화기행으로 기억하는 제주의 역사

 

백가윤 제주다크투어 대표

인터뷰 및 정리 김경희, 홍정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제주4·3은 지난해 70주년을 계기로 시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2013년 개봉한 영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가 흑백의 제주섬을 그렸을 때도 독립·예술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관객들의 주목을 이끌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올해 71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4·3을 “대통령으로서 끝까지 챙기겠다.”고 했고, 국방부도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최근 법원은 억울하게 투옥됐던 제주4·3 피해자들이 청구한 재심에서 원고에게 사실상 무죄와 다름없는 공소기각을 선고했다.

 

군경에 의해 잔혹하게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역사에서 희미해질 위기도 찾아왔지만, 제주4·3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절대로 잊힐 수 없는 상징이다. 국제인권단체에서 시작해 제주도로 향한 백가윤 제주다크투어 대표의 이야기를 실었다. 인터뷰도 주요 매체와는 달리 한 달 늦은 시점에야 성사되었고, 제주에 있는 그를 직접 만나기 어려워 통화로 대신했다.

 

‘씨리얼(C-Real)’과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등장해서 이전보다 유명세가 높아진 것 같다

유시민의 알릴레오의 힘이 대단하다. 진행자가 제주다크투어를 굉장히 좋게 소개해주신 덕분이다. 작년에 씨리얼에서 4·3 관련 영상을 만들고 텀블벅으로 <제주 4·3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모금 수익의 일부를 제주다크투어에 후원한 것도 단체를 알릴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유튜브 방송 이후에 제주다크투어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고 있고, 후원도 조금 늘었다.

 

이력이 굉장히 특이하다. 국제인권단체에서 시작해서 서울에 있는 시민단체로, 그리고 제주도까지 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경우 지역활동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가고, 중앙에서의 국제연대 활동을 계기로 국제사회로 진출한다. 그러나 거꾸로 흘러가도 배울 것은 충분히 많다. 평소에도 지역을 이해하지 못하면 국내연대, 국제연대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지역에서 활동해보고 싶었다. 평화운동·인권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민운동을 만들고 경험하고 싶은 욕구도 컸다.

 

제주4·3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제주4·3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던 계기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육지에서 내려온 경찰의 강경대응을 보면서 ‘4·3때랑 똑같은 짓을 한다.’고 외친 것이었다. 제주4·3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민간인이 많이 죽은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주를 오가던 활동가로서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제주4·3 당시 도민들이 외쳤던 주요 구호는 ‘통일독립 전취하자’, ‘경찰탄압에 반대한다’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런 문제들이 당시에 잘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한반도가 분단된 것이고, 그로 인한 군사적 갈등과 과도한 방위비 지출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제주4·3이 한국의 인권운동과 평화운동의 근간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있던 젊은 활동가가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단체를 차린다고 제주도에 내려가자마자 제주4·3 70주년을 맞았다. 마침 4·3에 대한 미국 측의 책임을 묻는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지역에서 영어가 능통하고 국제연대 활동의 경험이 있는 사람을 필요로 했다. 이에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산하 국제연대포럼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흔히 지역으로 내려간 외지 활동가들이 말하는 텃세라는 것도 느껴볼 틈도 없이 제주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제주 해군기지 관련 활동을 통해 만났던 분들께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제주 4·3을 기념한 심포지엄에 참석한 백가윤 제주다크투어 대표

제주 4·3을 기념한 심포지엄에 참석한 백가윤 제주다크투어 대표 <사진 = 제주다크투어>

 

올해 4·3은 어떻게 보냈나

4·3 전날은 유족회 위령제에 참석했다. 4·3 당일에는 매년 정부 주최로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추념식을 연다. 매년 국가추념식이 시작하기 전에 유족들이 새벽부터 과일이랑 음식을 싸들고 평화공원에 도착해 행방불명인 표석이나 위패봉안소 안에서 제를 지낸다. 작년, 그리고 올해에도 새벽부터 출발해 아침 7시 즈음 공원에 도착해서 유족들의 제를 지켜봤다. 항상 예를 지키는 마음으로 함께 하려고 한다.

 

국가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7년 7개월간 벌어진 제주4.3의 희생자가 약 3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4·3 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 있는 위패는 1.4만 여개밖에 안 된다. 희생자로 인정된 사람이 이 정도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어디로 갔을까? 온 일가족이 몰살당해서 사망신고조차 하지 못했거나, 50년 넘도록 그 일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도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 유족들도 있다. 특히 많은 무장대들은 희생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4·3 당일 오후에는 의귀리 전투에서 패배한 무장대들의 시신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가 묻힌 송령이골에 다녀왔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들을 추념하기 위해서다.

 

정부 차원의 사과와 희생자 지원 대책이 시작된 것은 언제인가

2000년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어 진상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로 국가보고서가 작성됐다. 당시 국가폭력에 의한 과거사 이슈로는 처음으로 특별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희생자 및 가족에 대한 배상·보상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혹시나 배상·보상 논의에 막혀 특별법 제정되지 못할까봐. 그렇게 19년이 흘렀고, 이제 특별법 개정에 대한 논의도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희생자에 대한 배상·보상 논의와 당시 절차부터 불법적이었던 군사재판의 결과를 전면적으로 무효화하고 일괄적으로 사면하자는 논의다. 아직까지 재심을 청구한 18명만 올해 사실상 무죄를 선고받았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되거나 소송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이 3~4천여 명으로 추정된다.

 

제주4·3의 희생자는 국가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나

후유장애를 인정받은 사람만 약간의 치료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후유장애를 가진 분들이 국가에 신고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사건이 벌어진 지 50여 년이 지난 2000년대부터다. 그런데 피해사실을 신고할 때의 입증책임이 본인에게 있었다. 신체적인 흉터만 하더라도 제주4·3때 입은 피해인지, 농사를 짓다가 다친 것인지 입증해야 한다. 올해 초 미국 워싱턴에 있는 9·11 트라우마센터를 방문했을 때 센터장이 인상 깊은 말을 남겼다. 당시 7년 7개월 동안 섬의 인구 10%가 죽은 것이 사실이라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신체적인 상처가 있건 없건 그 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트라우마 희생자라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희생자들을 선별해서 피해자로 인정하고 구분하면 국가의 존재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제주4·3에 대한 이름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정명’ 논란도 계속되고 있는데

4·3은 7년 7개월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복잡할 수밖에 없다. 4·3에는 탄압의 시기, 항쟁의 시기 그리고 대학살의 시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을 바로세우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제주4·3은 해방 직후 분단에 반대하던 시민들의 저항정신이 깃든 항쟁의 역사다.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제주4·3의 희생자들은 단순히 ‘불쌍한 사람’이 아닌데, 처연하게만 그려지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집회를 다시 떠올려보자. 그 집회에 주최측이 아닌 참가자로 앉아 있다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은 사람을 ‘무고한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부를 수 있을까? 5·18의 역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광주가 이에 대해 자존감, 자긍심을 갖는 것처럼 제주4·3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리라 믿는다.

 

토속신앙에서 신을 모시는 신성한 장소를 둘러보는 기행 프로그램 참가자들

토속신앙에서 신을 모시는 신성한 장소를 둘러보는 기행 프로그램 참가자들 <사진 = 제주다크투어>

 

대표를 맡고 있는 제주다크투어의 활동을 소개해 달라

‘다크투어’라는 이름은 여행사 같지만 사업은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는 기행사업이며, 제주다크투어의 가장 큰 사업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제주4·3 유적지를 직접 방문해야 역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개인적으로는 기행이 가장 큰 의미의 평화운동이자 인권운동이다. 사람들이 유적지를 방문해서 그냥 주변을 둘러보고 ‘슬프다’ 혹은 ‘많이 죽었다’라는 감정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늘 강조하고 있다. 기행의 참가자들과 ‘현재진행형의 제주4·3’, 가깝게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미얀마의 로힝야족, 팔레스타인 등 다양한 이야기를 같이 고민하고 함께 나눈다.

 

두 번째는 유적지 기록사업이다. 제주4·3 유적지는 제주도에 600~800개나 있다고 하고 사람들이 주로 방문하는 몇 군데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찾아가기도 어렵다. 그런 장소들을 포털사이트 지도서비스에 등록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민간인 수용소 터 등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유적지의 사진을 기록하고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구글 지도에 기록해 나가고 있다.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앞서 언급한 국제연대사업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가

맞다. 제주다크투어의 세 번째 사업이 제주4·3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이다. 국제연대 사업에는 단순히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활동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유엔 진실, 정의, 배상, UN 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을 초청해서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심포지엄을 같이 준비한 과거사 단체들이 모여서 ‘진실과 정의 네트워크’라는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한국의 과거사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후에는 대만 2·28 사건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의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한 활동도 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네 번째는 제주4·3을 알리는 교육사업이다. 육지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제주4·3을 알리기 위해 지역으로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강좌를 열고 있다. 그 강좌 참가자들이 제주도를 방문하는 기행사업까지 이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년에는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와 수원 다산인권센터를 찾았고, 올해는 광주트라우마센터와 함께 강좌를 열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인권재단 사람 <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권·평화·젠더의 관점에서 본 제주4·3>을 주제로 제주도 내에서 강좌를 기획 중이다. 제주다크투어는 인권 감수성을 반영한 프로그램을 열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몇몇 작은 단체들이 붙어서 할 수 있는 규모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제주도 단체들이 오랜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제주4·3의 역사를 알리고 싸워왔기 때문에 70주년을 맞을 수 있었다. 제주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 특히 유족들이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원고지에 수기로 모은 소중한 자료들이 축적되었기에 ‘오늘날의 4·3’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소중한 노력을 이어가기 위해 젊은 세대들이 제주4·3을 기록하는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제주다크투어에 주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방문하는가

제주4·3 70주년을 계기로 제주도를 직접 방문해서 역사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유적지는 주요 관광지로부터 떨어져 있고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기 때문에 막상 평화공원만 다녀가는 경우가 많았다. 작년에는 제주다크투어를 비롯한 제주도 내 6개 단체들이 제주4·3 70주년기념위원회 산하 평화기행위원회를 맡아 평화기행을 진행했다.

 

제주의 역사를 알고 싶은 마음으로 제주도를 방문하는 분들이 어떻게 해야 제주도에서 4·3의 역사를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제주다크투어를 통해 제주4·3 유적지를 돌아보며 제주의 역사를 다시 그려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신다. 그래서인지 점점 기행 신청도 많아지고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약 1,300 명의 국내외 방문객들이 제주다크투어의 기행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동안 진행했던 기행 프로그램에서 기억에 남는 참가자가 있다면

작년 70주년을 맞아 외신 기자들을 초청한 기행 프로그램은 직접 진행을 맡았다. 최근에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제주에 오고 싶다고 연락한 부부도 기억에 남는다. 혼자 오시는 분들의 경우 일정 앞뒤로 붙여서 같이 팀을 만들어서 개인의 부담을 줄여드리려고 노력한다. 혼자서 둘러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월별 일일기행도 진행한다.

 

제주다크투어의 해설사들은 남다른 이력을 갖고 있다. 제주4·3을 주제로 다룬 시인, 노래를 만들었던 예술가들도 있다. 제주다크투어의 기행 중 문학작품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시인이거나 문학박사인 해설사가 작품의 배경인 장소를 방문해 직접 그 위에서 소설이나 시의 한 구절을 함께 읽어보기도 한다. 기행 곳곳에서 음악가인 해설사가 본인이 만든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다크투어’의 뜻은 무엇인가? 해외에도 비슷한 시도들이 있는지

단어의 근원을 찾아보면 중세시대의 순례객들로부터 출발한다. 다크투어는 평화기행, 인권기행보다 훨씬 포괄적인 개념이고, 일반적으로는 재난 혹은 참사가 일어난 장소에 가서 교훈을 얻는 기행을 일컫는다. 다크투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교훈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가장 유명한 다크투어 장소를 뽑기도 하는데, 9.11 테러의 발생 장소와 아우슈비츠 같은 곳이 많이 알려져 있다.

 

반면 다크투어라는 용어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20세기 들어서 연예인이 죽은 장소들을 팬들이 찾아가는 것을 다크투어라고 부르는 시도도 있었다. 역사적인 의미와 관계없이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자살숲’을 돌아보는 것도 다크투어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다크투어를 귀신이나 유령을 찾아다니는 ‘고스트’투어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관광’의 성격이 강조되어 역사적인 장소에서 추모하고 애도해야 한다는 교훈이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활동에 따르면 제주다크투어는 후자의 의미와는 상관없는 곳 아닌가

맞다. 다크투어의 본래 의미에 충실하도록 노력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알리면 된다고 본다. 제주4·3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기행을 원래 ‘역사순례’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 단어가 지닌 의미가 너무 무거운 탓인지, 사람들이 어렵게 느꼈다. 제주다크투어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는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역사를 접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다크투어라도 제주도의 배경과 아우슈비츠의 배경은 극명히 대비된다

얼마 전 뉴욕에 있는 9·11 기념관과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다녀왔다. 미국이나 유럽의 역사적인 장소에 가면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없다. 침묵과 애도, 진중한 시선으로 공기가 채워진다. 어린 아이들조차 떠들지 않는다. 반면 제주4·3 평화공원을 방문객들 중에는 평화공원 내를 큰 소리로 뛰어다니거나 셀카를 찍으며, 추모와 애도를 위한 역사의 공간을 관광소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 학교에서부터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

 

북촌마을 4·3희생자 추모 위령비

북촌마을 4·3희생자 추모 위령비 <사진 = 제주다크투어>

 

앞으로 제주다크투어, 혹은 제주4·3 유적지를 방문할 사람들에게 남기고픈 말이 있다면

제주다크투어나 제주4.3 유적지를 방문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감사하다. 하지만 제주를 다녀가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제주의 역사를 계속 기억했으면 한다. 기행에서 빠지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제주도 애월에 있는 빌레못동굴의 유래다. 그 동굴에서 군인이 아이의 발을 잡고 거꾸로 매달아 바위에 내쳐 죽였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재작년 기사를 읽다가 ‘군인이 우리 아이의 발을 잡고 바위에 메쳐 죽였다’라는 내용의 기사 제목이 있었다. 당연히 제주 빌레못동굴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기사를 열어보니 최근 미얀마 로힝야 족이 겪고 있는 이야기였다. 70년 전 제주도에서 일어난 국가폭력이 똑같이 지금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한국 밖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잔혹한 사건과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팔레스타인도 작년 ‘대재앙의 날’ 70주년을 맞았다. 제주4·3을 겪는 동안 ‘사라진’ 마을이 많다. 팔레스타인 활동가는 이러한 ‘빼앗긴’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비슷한 일을 겪은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역사를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예전에 일어났던 비극을 막지 못했다면,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비슷한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 또 다른 제주4·3을 어떻게 막을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표의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 달라

 

다크투어는 제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으로 민간인이 100만 명이나 희생당했다. 유해발굴사업은 전국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와 협력해서 제주도 외의 지역에서도 다크투어 기행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전국에 다크투어 네트워크 만드는 것이 작은 꿈이다. 더 큰 꿈은 그 무대를 동아시아네트워크로 넓히는 것이다. 가깝게는 오키나와부터 시작할 거다.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역사의 의미를 찾는 동아시아 평화운동을 계속 할 예정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참여와 행동에 동참해주세요
참여연대 회원가입·후원하기
목록
제목 날짜
[국민청원] 삼성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당합병에 이용된 국민연금 손해배상소송 촉구 31 2019.06.18
[목차] 복지동향 2019년 6월호: 환경불평등과 환경정의 2019.06.03
[출판물] 기본소득, 존엄과 자유를 향한 위대한 도전 2018.10.04
[안내] 월간복지동향 정기구독 1 2013.04.22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를 소개합니다 2019.02.23
© k2s0o1d4e0s2i1g5n. Some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