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12-19   1388

[동향5] 자, 이제 <탈시설>을 말하자! – <도가니>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여준민│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도가니>의 배경이 됐던 인화학교 실제 사건은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잔인하다”

 

 

소설가 공지영의 말이다.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을까?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사람들은 분노에 휩싸여 있는데, 이보다 더하다는 작가의 말에 어떤 상상을 할까?
며칠 전 평일 늦은 오후 시간 영화 <도가니>를 봤다.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보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고 마음 깊은 곳에서 선뜻 내키지 않아 세상이 온통 <도가니>이야기로 난무해도 영화관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저녁 도가니의 배경이 되었던 <인화학교 사건 관련된 집담회>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질문지를 받아보니 영화를 보지 않고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지난 10월 2일 장애․인권․노동․시민사회단체 등 32개 단체가 모여「광주인화학교사건해결과사회복지사업법개정을위한도가니대책위원회」(이하 ‘도가니대책위’)를 구성했고, ‘이제 정말 중요한 관련 법 전면개정에 힘을 쏟으면 그만이지’ 하고 생각했지만, 여하튼 관련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내키든 내키지 않던 영화를 봐야만 했다.

 

 

인권위 권고, 대한민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화 <도가니>는 한마디로 ‘공포영화’였다. 내내 가슴이 떨렸지만 머릿속에서는 2006년 국가인권위 조사 때 민간조사원으로 참여하면서 만난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관련자들이 떠올라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사무실에 돌아와 그 때 당시 썼던 보고서와 아이들 설문지, 인터뷰 내용들을 다시 살펴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이들의 진술은 너무나 분명했고 영화 속 내용보다 더 무섭고 참혹한 상황을 내뱉고 있었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A4 17페이지나 되는 장문의 결정문을 통해 문제점을 정리하고, ▲성폭력 관련자들을 검찰총장에게 고발하고 ▲광주광역시장에게는 사회복지법인 우석의 모든 이사진을 해임 조치하고, 공익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로 임원진을 재구성할 것을 ‘권고’하며 ▲피해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문적 치유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성폭력 전문상담시스템을 갖추도록 ‘권고’하고 ▲청각장애특수학교 교사들 중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소지한 교사의 비율을 높이고 교육권 확보를 위한 대책을 강구할 것 등을 ‘권고’하는 대책을 제안했다.
모두 ‘권고조치’다. 당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 전이었고, 인권위의 권한은 ‘권고조치’가 전부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 또 다른 국가기관의 ‘권고’를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온통 <도가니 열풍>이다. 시민들의 반응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으니 분노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은 좀 의외다. 아니 화가 난다.
2007년 시설인권연대 등 장애인권단체들이 「사회복지사업법」전면 개정안을 국회에 올렸을 때 한나라당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강한 어조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윤석용 장애인위원장은 “개방형 이사제는 사회주의적 사고로 특정 정파나 특정 정권에 의해 획일화된 가치를 사회복지시설을 통해서 달성하려는 포퓰리즘적, 반헌법적인 발상”이라며 반대했었다. 여기에 시설을 운영하던 기독교단체들의 저항 또한 거셌다. 시설 운영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시설은 100% 국민의 혈세로 운영하는 공공의 재산이다. 법인이 운영 주체라 해도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책임이 있으며,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학 재단과 마찬가지로 ‘사적재산’ 운운하며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인권의 문제를 사회주의 운운하며 ‘좌, 우의 문제’로 몰아가 쟁점을 흐려놓았다. 지금 정부와 한나라당이 서둘러 내놓는 개정안과 대책을 반갑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정부의 대책 마련 호들갑, 그러나 내용이 없다

 

게다가 국무총리실에서 발표한 일명 도가니 대책에는 역시나 내용이 없었다. 뭔가 분주히 움직이는 듯 했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건질만한 알맹이가 하나도 없다. 

 

정부는 ▲가해자 처벌 강화 ▲인화학교, 인화원 법인 취소 ▲피해자 보호 확대 ▲법인 시설의 공공성 확보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핵심 문제인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관계부처 합동 점검단을 구성하여 기숙사가 설치된 특수학교(41개교, ’11.10)부터 그 외 모든 특수학교(114개교, ’11.11)에 대한 운영실태 점검, ▲민․관 합동조사팀을 구성하여 미신고 및 개인운영 사회복지시설(119개소, ’11.10) 대상으로 실태 점검, ▲위법사례에 따른 관련자 형사고발, 시설 폐쇄 등 행정제재도 병행한 조치 및 후속대책 마련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특히, 지난 10월 6일부터 진행된 미신고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1단계 실태점검을 통해 폭행(신체, 언어), 성폭력(성추행․성폭행 등), 가혹행위(감금․학대), 이용 장애인 금전관리(수당․연금 등) 및 회계관리, 자기결정권 보장실태 등 문제 사례 발견 시 즉시 격리 조치 및 심층면담을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글쎄올시다…”란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당시 복지부는 문제 시설에 대한 폐쇄 의견을 거의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조사대상 시설에 「사회복지법인」산하의 시설은 모두 빠져있다. 규모가 큰 곳은 건드리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작고 힘없는 시설만 슬쩍~ 건드리겠다는 속셈이다.

 

 

복지부는 시설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터질 때 마다 “실태조사를 한다, 「사회복지법인 투명성인권강화위원회」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그 결과는 늘 조사로 끝났다.
이런 대책과 요식 행위는 과거 시설에서 인권 문제가 터질 때마다 있어 왔다. 하지만 언제나 민간단체(시설인권연대 등)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고, 뾰족한 대책이 나온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그때의 그 민간단체를 배제한 채 조사하겠다고 한다. 그 민간단체들은 지금 「도가니 대책위」를 구성해 법률 개정운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설에 대해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는 인권 활동가들이다. 그런 「도가니 대책위」는 제외한 채 법인 중심의 장애인단체들로만 구성해 논의되는 구조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을 만한 획기적인 대책이라는 것이 나올 수 있을까?

 

이렇듯 정부가 「도가니 대책위」에 의견을 묻거나 참여를 제안한 적이 없지만, 핵심 내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정부 위원회’ 등의 생색내기 요식행위는 앞으로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도가니로 붉어진 시설의 문제, 그리고 우리의 요구

 

하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에 ‘시설 문제’를 이야기하고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임은 분명하다.
시급히 구성된 「도가니대책위」는 일단 대국민선전전과 법 개정을 위한 10만인 청원운동에 돌입했고, 법률팀은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하며 「사회복지사업법」개정안을 마련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회복지법인 및 시설의 공적 책임과 시설거주인 인권보장, ‘탈시설-자립생활’ 권리실현을 기념이념과 원칙으로 천명하고, △사회복지법인 및 시설의 공공성, 투명성, 민주성 강화하고, △사회복지서비스 신청제도의 실효성 확보하고, △시설에 우선하여 ‘탈시설-자립생활’ 권리실현을 위한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시설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정책을 보완하고, △장애인 권리옹호제도(Protection & Advocacy)를 도입하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탈시설-자립생활>로의 방향전환을 위한 정책 마련을 중요한 내용으로 잡고 있다. 시설조사를 다닐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설에서의 인권침해는 매우 심각하고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시설’이란 구조 자체가 가져오는 집단성과 권력 관계에서 오는 인간다운 삶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설’은 함께 모여 의지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절대 아니다. 누군가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권력 구조이고 개인의 선택과 자유보다 집단의 이익이 우선시 되는 공간이다. 비용과 효율의 잣대로, 보호와 봉사의 논리로, ‘사람’을 가둬두는 곳에 지나지 않는 ‘그곳’. 이제는 ‘그곳’을 제대로 볼 때다.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내 말을 들어!

 

2006년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인화학교, 인화원을 조사했을 당시 아이들에게서 나온 증언들이다.

 

“00교회. 모든 아이들이 00교회만 다녀야 했다. 그곳에서 박00 전도사가 쫒겨 났는데, 성추행을 일삼았던 박00 전도사가 인화원에 들어와 아이들을 통제했다”
“pc에서 다운받은 야한 영화를 같이 보자고 했다. 더러운 느낌이었다.”
“갑자기 이불속으로 들어와 키스하고 돈 3만원을 줬다”
“엄마가 좋아? 선생님이 좋아? 물은 후 엄마가 좋다고 하니까, 선생님을 더 좋아해야지…하면서 강제로 키스하고..키스 방법 알려준다고 말하며, 혀를 넣으면 더 맛있다고 했다”
“여러 학생들이 있는 가운데서도 키스하고 엉덩이를 만졌다”
“말 안들을 때는 이렇게 하면 된다며, 라이터 불을 켜 성기 쪽에 불을 붙이는 행동을 하고, 학부모들 앞에서 그걸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래야 말을 듣는다고”
“남학생은 체벌, 여학생 체벌은 뽀뽀”
“술 취한 채 막걸리 병으로 아이들을 때리고, 흘러내린 술 때문에 아이들 몸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하고”

 

 

왜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몇몇 나쁜 교사들의 저질스러운 행위로만 치부되어야 할까? 그들만 처벌 받으면 끝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지, 이제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시설에서 살게 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당시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누구하나 그건 “잘못이고 나쁜 일이야”라고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하나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부모도 수화를 모르고 시설 직원과 교사도 수화를 모르니 아이들의 교육권 침해는 물론이고 폐쇄적 환경 속에서 철저히 고립돼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결코 모르지 않는다. 다만 누구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거다.
속이 썩은 것 같다고 했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했고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던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를 불쌍하다고 했다. 마음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다들 얘기를 안 한다고 했다. 전학을 간 한 친구는 다른 학교 가니까 그런 행위 자체가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화가 난다고 했다.

 

조사 당시 수업참관을 했는데, 고등학생이 문장, 단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수준이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설사 단어와 문장을 안다고 해도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그건 수화로 여러 가지 부연 설명을 해야 인지될 수 있는데 교사가 수화를 모르니 그냥 빈칸 속에 들어가야 할 말을 칠판에 적어주면 끝이었다. 영어나 수학 수업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었고, 학생들은 잠을 자거나 딴 짓을 하고 있었다. 어느 교사는 “오전에 참관하시는 줄 알고 관련 수화를 조금 익혔는데, 오후에 오시니까 당혹스럽네요”라고 뻔뻔하게 말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교사가 교육을 못하고 있음에도 그들에겐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수화는 또 하나의 언어이다. 장애인권리조약에서도 ‘언어’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언어란 의사소통의 문제임과 동시에 사회 전반에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그들의 언어인 수화를 모르는 교사가 대부분이란 것은 교육권 침해만이 아니라 소통의 부재, 그로 인한 존재감 상실이란 결과를 가져오는 심각한 배제와 차별이다.
낮에는 학교에서, 나머지 시간은 인화원이란 시설에서 지내던 아이들의 울부짖는 손짓은, 모두의 외면과 차별 속에서 그리고 국가의 정책부재 속에서 허공을 떠다니며 드러나지 않았다. 드러난 후에도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교육청과 시, 구는 책임을 회피하며 법인의 이야기만 들었다. 

 

일명 <도가니 사건>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것, 아니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폐쇄적 구조에서 발생한 심각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이다. 책임을 방기한 국가의 폭력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중 정유미가 공유에게 쓴 이메일에 아이들의 변화된 모습을 언급한 부분을 보면, 아이들은 이 사건을 통해 “우리도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느꼈다고 전하고 있다. 존재의미를 되새기며 한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온전히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홍보 포스터에 적혀 있는 말이다.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내 말을 들어!”
이제, 시설과 시설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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