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7-18   3532

[동향3] 삼성 백혈병 사건을 통해 본 산재보험법 개정의 필요성

 이종란│공인노무사, 반올림 활동가

 

들어가며

 

지난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 14부(재판장 진창수)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황유미(23)·이숙영(31)씨의 경우, 백혈병이 여러 유해화학물질과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발생한 “산업재해”로 봐야한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같이 소송을 냈던 다른 노동자 3명은 백혈병 발병을 일으킬만한 유해물질에 지속적인 노출이 있었는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필자는 피해자들과 함께 산재인정을 위해 동고동락해 온 반올림 활동가 중 한명으로써 그동안 삼성의 온갖 회유와 방해,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처분, 노동부의 냉대를 무릅쓰고 굳건히 버텨온 피해자들 모두가 산재인정이 한꺼번에 되지 않은 것은 억울한 일이고, 또 모두 비슷한 유해 환경에서 일해 왔는데 선별적으로 판단한 부분도 매우 억울했지만, 단 2명이라도 산재가 인정되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삼성을 쓰러뜨렸다면서 제 일처럼 기뻐했다.

삼성이 개입된 행정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것의 의미도 크지만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백혈병을 비롯 업무상 질병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고 특히 업무상 질병 피해를 입은 노동자에게 산재임을 입증하라는 과도한 “노동자 입증책임” 문제를 드러내 주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신청 사건이 근로복지공단에 최초 접수되었을 때부터 공단의 불승인 처분을 받기까지 어떤 어려움과 문제점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나라 산재보험제도의 문제점과 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해보고자 한다.

 

삼성 백혈병 산재신청 사건에서 겪은 어려움 혹은 문제점

 

문제점 1. 너무 긴 시간이 걸림. 신속보상 원칙 위배

이 사건 최초의 산재신청은 고 황유미씨(23세)의 아버님이 2007년 6월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에 산업재해보상보험 유족급여 등을 신청 하면서부터였다.

그 뒤 황유미씨 아버님의 호소가 알려지면서 2007년 11월 대책위(반올림)가 꾸려졌고 반올림은 피해자 찾기 운동 등을 통해 2008년 4월에 추가로 5명의 백혈병 피해노동자들을 규합하여 집단 산재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다단계 판정위원회(역학조사 평가위원회->자문의사협의회 혹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거쳐 1년 혹은 2년만인 2009년 5월 전원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전원 불승인 처분이후 2009년 7월에 근로복지공단에 심사청구를 하였지만 마찬가지로 2009년 11월 전원 불승인 처분을 받았고 2010년 1월 11일 서울행정법원에 불승인처분 취소소송을 내어 올해 6월 23일 일부 인정 판결을 받은 것이다.

즉 최초 산재신청부터 1심판결까지 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는 걸 생각하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 목적, 즉“신속한 보상을 통해 재해노동자보호에 이바지 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됨을 알 수 있다.
 <참고> 고 황유미 유족의 산재신청 경과
표1.jpg

 

문제점 2.  직업성 암 산재 인정율 0.1%…하늘의 별따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4조 제1항은 다음 세 가지 요건 모두에 해당하면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① 업무수행 과정에서 유해ㆍ위험요인을 취급하거나 유해ㆍ위험요인에 노출된 경력이 있을 것
② 유해ㆍ위험요인을 취급하거나 유해ㆍ위험요인에 노출되는 업무시간, 그 업무에 종사한 기간 및 업무 환경 등에 비추어 볼 때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인정될 것
③ 유해ㆍ위험요인에 노출되거나 유해ㆍ위험요인을 취급한 것이 원인이 되어 그 질병이 발생하였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될 것

그러나 이러한 기준에 모두 부합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특히 직업성 암의 경우 이러한 부적절한 인정기준의 문제점으로 인하여 산재인정율은 0.1%에 불과하다. 직업성 암은 전체 암 발생 수의 4% 정도를 직업성 암으로 추정하나 2007년 산재로 인정되어 공식 보고된 직업성 암은 7건인 바, 2007년 직업성 암 발생 추정치(6,477명)의 0.1%다.  즉 직업성 암에 대한 산재 인정기준이 너무 협소하여 산재 불승인율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치료와 생계에 대한 정당한 권리가 제한된다. 또 직업성 암을 예방해야 할 기업과 정부의 사회적 책무는 너무 적게 부여하여, 그에 따라 수많은 노동자들이 직업성 암의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야 하는 현실이다. 

 

문제점 3. 부실하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재해조사의 문제점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 한 경우 업무상질병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자체 조사가 힘든 경우에는 역학조사 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재해조사를 한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좀처럼 밝혀내기 어려운 백혈병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도록 면밀하게 짜여 진 조사라기보다는 사업주와 사전에 합의된 날짜와 시간에  현장에 들어가서 벤젠이나 방사선 등 ‘널리 알려진 발암물질’을 몇 개 뽑아서 공기 중 농도를 한번 재보았다는 정도에 불과한 조사를 하였다.   결국 설비와 공정 기술이 변하고 그에 따라 사용 물질이 바뀐 공정, 예전에 없던 환기 장치가 생기고 개인 보호구가 지급된 상태에서 몇 시간 동안 공기 중 농도를 측정한 뒤 ‘허용기준 이하이므로 업무관련성이 낮다’라고 결론내린 것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전자산업의 직업성 질병은 모든 제조업 보다 높다. 그 중에서도 반도체 산업의 직업성 질병은 월등히 높습니다.(표 3.2. 참고) 발암물질, 발암의심물질, 생식계·신경계·면역계 독성물질들이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도체 산업은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유해 위험 물질과 방사선 등이 사용되고 이들이 서로 상호반응하여 부산물이 생성되는 등 건강상 매우 유해위험한 수많은 유해인자들이 존재하지만 더 큰 문제는 현재의 노출패턴으로 과거를 추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첨단 전자 자본들의 속도경쟁은 수많은 첨단 전자제품들을 불과 몇 달 만에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고 매우 빠르게 변모하는 산업에서 노동자들이 직업성 암에 걸려 (암은 최소 수년~십여년의 잠복기를 거쳐 발병함)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고자 한다면 가장 질병피해가 큰 사업장에서 단 한 명도 제대로 산재인정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삼성 백혈병 산재신청의 경우에도 이미 없어진 과거의 작업환경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는 문제에 봉착했는데 이에 대하여 역학조사 기관에서는 이미 바뀌어버린‘현재’측정하여 백혈병 유발물질이 공기 중에서 검출되지 않았으니 과거에도 없을 것이라고 추정하여‘업무상 인과관계가 낮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또 노동자에게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으나 실제 작업과정에서 노동자 자신이 사용한 물질명이 무엇인지 노동자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안전교육도 거의 전무하고, 사용한 물질의 이름을 일부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물질의 이름만 가지고 다 파악할 수 없다. 물질 혹은 제품의 구성성분이 제대로 파악되어야 하나 구성성분까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노동자와 사업주는 거의 없다.

 

한편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반도체 공정 위험성 평가 자문보고서) 결과에 따르면,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의 경우 ▲ 물질안전보건자료가 있지만 기흥공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화학물질의 성분이 자체적으로 확인된 경우는 단 한건도 없었고, ▲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모르는 제품이 60%에 이르며 ▲ 5라인에서 사용되고 있는 99종의 화학물질 제품의 구성성분 확인결과 83종의 단일 화학물질 중 10종은 영업비밀 이라는 이유로 성분자료조차 확인이 안 되었다고 합니다. ▲ 또 83종의 단일화학물질 중 작업환경측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물질은 24종으로 전체의 28.9%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중요한 점은 현재 측정을 통해 관리되지 못한 물질들이 절대로 안전한 물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첨단 전자산업노동자를 포함하여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으로서의 제 기능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명확하게 발병원인 물질이 확인되고 노출정도가 확인되어야만 산재를 인정하는 구조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개연성이 충족된다면 산재를 폭넓게 인정해주어야 한다.

어떤 물질이나 화학물질이 안전하다고 증명되기 전까지는 그 물질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는 “사전예방의 원칙”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침일 것이다.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재해노동자가 어렵게 산재신청까지 하더라도 결국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는 근로복지공단 단계에서 산재로 인정받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백혈병 행정소송 과정에서 “명백한 자연과학적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의심스러운 정황만으로 산재를 인정하게 되면 공단의 산재보험 재정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하려면 우선 1조가 넘는 흑자재정의 이유가 우선 해명되어야 하며, 0.1%에 지나지 않는 직업성 암 승인율은 이대로 내버려 두어도 상관없는지에 대하여 답해야 합니다. 실제 재정부담이 걱정이라면 산재보험 재정확충 방안을 그 대안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지 아픈 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직업병 예방조차 될 수 없도록 하는 현행의 협소한 산재인정기준과 절차에 대한 변명으로는 매우 부족하다.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령과 시행규칙 등을 전면 개정해야한다. 특히 과거 시행규칙에 제한적으로 머물던 조항인“업무상 요인에 의하여 이환된 질병이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는 규정을 상위 법 조문으로 승격하여 법적 구속력을 갖게 만듦으로써 재해노동자와 그 가족이 적극적으로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래의 부비동암 산재인정기준 완화 판결은 이에 대한 해법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서울고등법원 2009. 2. 2. 선고 2009누8849 판결)

「…특히 작업현장에서의 발병원인물질과 업무상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 유무를 따짐에 있어서는, 그 발병원인물질의 생산과정이나 구성성분, 그로 인하여 인체에 미치는 영향, 유해성 등에 관하여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므로 전문가가 아닌 피재 근로자 또는 유족들과 같은 일반인들로서는 그와 관련된 특수한 인과관계를 과학적,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일뿐더러, 당시의 과학기술수준에 비추어 그 물질과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의 고리를 모두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 역시 곤란 내지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데다가, 피재 근로자의 작업환경을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하게 배려해 줄 사회적 책무를 지닌 사업주 측 및 관련된 공공 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는 기술적, 경제적으로 피해자보다 원인조사가 용이할 뿐 아니라 당해 물질의 유해성 여부를 조사할 사회적 책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므로…(중략)…사업주 측 또는 국가 측이 발병원인물질이 인체에 전혀 무해하다든가, 그 질병이 발병원인물질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아니하는 이상, 그 물질에 발병원인이 존재하며 그로 인하여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였다고 추정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함으로써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취지와 손해로 인한 특수한 위험을 적절하게 분산시켜 공적 부조를 도모하고자 하는 사회보험제도의 목적 및 사회형평의 관념에 맞는다고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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