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2 2012-10-15   5695

[심층분석1] 이명박 정부 복지정책 평가

이명박 정부 복지정책 평가

 

남찬섭ㅣ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

 

Ⅰ. 서  론

출범 초기부터 사회복지와 관련하여 호의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이명박 정부는 집권기간 전반에 걸쳐서도 유사하게 비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제 집권기간이 막바지에 접어든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 복지정책에 대한 평가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리라 예상되며 이 글도 그러한 예비적 시도의 하나일 수 있지만 이미 학계에서는 몇 편의 평가가 나온 바 있기도 하다.

 

이 평가의 대표적인 한 연구는 이전 정권에서 도입된 제도의 성숙, 과격한 복지축소를 지향하지 않고 오히려 신사민주의에 가까운 이념적 지향, 직접민주주의의 저항, 저출산과 금융위기라는 심각한 문제 등에 의해 이명박 정부에서도 김대중 정부 이후 진행된 한국의 복지확대경향은 단절되기보다는 지속되었다고 평가하고 그로부터 한국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김원섭‧남윤철, 2011). 반면에 또 하나의 평가는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인 복지정책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이전 정부와 비교해서 복지정책의 급격한 후퇴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비판하며 나아가 이런 평가는 이명박 정부 복지정책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민주정부의 국가복지가 여전히 허약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김순영, 2011).

 

이들 두 연구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한 지배적인 평가와는 다소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집권기간을 비교적 전체적으로 다루었고(물론 발표시기가 둘 다 2011년이어서 모든 기간은 아니지만) 나름의 평가틀에 근거하여 학술적인 차원에서 시도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들 평가는 이명박 정부 복지정책에 대한 평가가 이전의 민주정부 복지정책에 대한 평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김성욱, 2012). 즉 이명박 정부에서도 복지확대경향이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는 이전의 민주정부에서 복지확대가 진행되었다는 평가를 전제하며,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이 신자유주의적인 것이었다는 평가는 이전 정부의 복지정책도 신자유주의적인 것이었다는 평가를 전제한다. 그런데 이전 정부 그리고 현 정부의 복지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 평가는 보다 장기적으로 보면 1980년대 후반 민주화 과정에서 제기된 사회경제적 과제와 그 이후 본격화한 지구화와 탈산업화 경향에 대응해야 하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과제와 관련된 각 정권의 지향과 성과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평가와 맞물린 것이다. 결국 그것은 민주화라는 화두를 매개로 제시된 한국사회 개혁과제를 지구화와 탈산업화 시대에 어떻게 조화롭게 적응시켜나갔는가라는 평가와 관련되는 것이다.

 

복지정책이라는 창을 통해 볼 때 민주화가 한국사회의 개혁과제로 어떤 역사적 과제를 제기하는가? 이 질문에는 논자에 따라 다양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지만 아마도 복지정책(혹은 사회정책)이 사회경제적 민주화 혹은 실질적 민주화와 관련된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위한 한 수단으로서의 복지정책이 갖는 의미는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라는 두 민주정부 기간을 거치면서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아마도 그 의미는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오래 전부터 구조화해온 경제성장 일변도의 사회경제적 체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는 성장과 분배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둘째는 지구화‧탈산업화 경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는 성장과 분배의 관계라는 문제와 연관되면서 이를 변화한 상황에 적응시키는 과제이기도 하다. 셋째는 국가가 사회구성원들로부터 어떻게 자원을 추출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는 조세개혁의 과제이다. 조세는 국가와 사회 간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한 창인데 이는 현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취한 조치가 이른 바 부자감세였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복지논쟁에서도 증세문제는 매우 뜨거운 주제 중의 하나라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넷째는 저출산‧고령화 경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는 가족구조와 기능의 변화라는 사회존속의 기본조건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의 과제이다.

 

이들 네 가지 과제는 과거부터 형성되어온 한국의 사회경제적 구조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임과 동시에 새로운 상황변화에 대응하는 데 연관된 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 네 가지 과제는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복지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 틀을 제공한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들 두 민주정부의 성과를 제약한 구조적 요인이기도 하였다. 이하에서는 이들 네 가지 과제에 비추어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이 어떤 지향성과 성과를 보였는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성장과 분배의 관계

최근 복지논쟁을 보면 성장과 분배의 관계가 다시금 쟁점이 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성장과 분배의 관계를 질문하는 것 자체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양자 간의 관계는, 보수적인 대통령 후보 진영조차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삼는 데서 보듯이, 논쟁을 하지 않아도 대체로 선순환관계에 있다는 데에 적어도 규범적인 차원에서는 큰 이견이 없는 듯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성장과 분배의 관계를 논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자 간의 관계를 한국사회의 시스템 내에 선순환관계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민의 정부는 과거 수 십 년 동안 성장만을 제일의 가치로 여겨온 한국사회에서 분배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각인시키고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으며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 기간을 거치면서 중요성이 인정된 분배를 성장과 실질적으로 조화로운 관계에 있게 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개혁작업을 수행하였다. 물론 두 민주정부 기간을 거치는 동안 성장과 분배가 한국사회에서 선순환관계에 있도록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노동시장유연화가 진행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되었으며 이로부터 근로빈곤문제가 본격화하였고 양극화는 계속 심화하여갔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성장과 분배의 관계를 고민하거나 양자를 한국사회의 개혁과제로 삼는 것 자체를 폐기해버렸다. 일부 논자들은 2008년 경제위기를 맞아 이명박 정부가 위기극복패키지를 내놓으면서 복지지출을 일부 확대한 사례 등을 들지만 이것은 임기응변적인 대응이었을 뿐 제도화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집권 초기에 실시했던 유가보조금도 일시적인 보조였을 뿐 제도화는 아니었다. 이것은 1980년대 후반 민주화로부터 이어져온 사회경제적 민주화 과제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복지지출은 다소 속도는 느려졌지만 증가하였으며 지니계수 개선효과로 측정한 재분배효과도 점진적으로 향상되었다. 하지만 복지지출은 이전정부에서 도입되었거나 도입이 계획된 제도가 그대로 시행되었고 또 국민연금 등의 지출이 증가한 데서 상당부분 기인하며 또한 지니계수 개선효과도 제도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는 시장소득 지니계수가 하락하면 일정부분 향상될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장과 분배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재편하지 못했던 것은 현실적인 저항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경제와 복지를 이원적으로 접근한 데에도 원인이 있다. 그리하여 두 정부는 경제부문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기조를 받아들이고 복지부문에서는 개혁적인 혹은 확장적인 정책기조를 취하여 크게 보면 이중전략을 취하였다. 참여정부가 끝나가던 시기에 이 이중전략의 한계는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었으며 한국사회는 이 한계를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던 것인데 이명박 정부는 이중전략의 한계를 복지확대의 한계로 재단하고 성장우위전략으로 급선회하였다. 이런 급선회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당시 한국사회가 택한 전략이기도 했는데 하지만 그런 전략의 문제는 이내 드러났다. 만일 복지지출과 지니계수 개선효과에만 주목한다면 보수세력조차 복지확대를 추구하는 정치적 합의가 형성된 것이 아닌가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그 복지지출과 지니계수 개선효과의 추이가 이중전략의 한계 내에 철저히 머물러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보수세력은 복지확대나 복지개혁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세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성장우위전략으로는 성장과 분배의 관계를 선순환적인 성격으로 자리잡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한 ‘공헌’은 한 셈이고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적인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한 ‘공헌’은 한 셈이며 이는 최근의 복지논쟁을 통해서도 입증되는 바이지만 한국사회가 경제와 복지를 이원적으로 접근했던 데 따른 한계를 여전히 안고 있다는 사실까지 깨닫고 있는지는 아직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가 현실에서 어떻게 결실을 맺을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2. 지구화와 탈산업화에 대한 대응

성장과 분배의 관계 문제는 현재 상황에서는 곧 지구화와 탈산업화 시대의 성장과 분배의 문제를 질문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성장과 분배의 관계라는 문제는 고전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한국사회에 국한하여 말한다면 1980년대 민주화 투쟁에서부터 연유하는 경제민주화의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1980년대나 1990년대와는 판이한 경제환경 속에서 양자 간의 관계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기간에 이 문제는 적절히 대응되지 못하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노동시장유연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그로 인해 양극화 경향은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성장과 분배는 이중전략으로 접근되었고 이는 곧 지구화‧탈산업화 경향에 대해 이중전략으로 접근했음을 의미한다. 그 이중전략이 극명하게 나타난 예가 한미 FTA의 추진이었다. 사실상 한미 FTA로 양극화가 심화할 조건을 강화하면서 그에 대해 아직 미성숙한 사회정책으로 대응하겠다는 참여정부 집권세력의 구상은 무리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지구화‧탈산업화 경향을 사회가 대응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두 민주정부가 비록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한계를 고민하고 새로운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할 과제를 한국사회는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대응해야 한다는 기조 자체를 부정하였다. 집권 초기에 촛불시위 등에 의한 저항에 직면하여 다소 주춤거리기는 했지만 다양한 불법적인 조치를 동원하여 한미 FTA를 강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 유럽연합이나 중국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시켰다. 한국사회는 이제 FTA라는 틀 안에서 지구화‧탈산업화 시대의 성장과 분배의 관계를 고민해야 할 매우 새로운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중전략이 주는 한계를 극복하기가 더욱 요원해진 환경 속에서 그 한계의 극복을 추구해야 할 유산을 한국사회에 남겨놓은 것이다.

 

3. 조세개혁과 소득파악

최근 복지논쟁에서 증세문제가 큰 쟁점이 되고 있으며 이는 곧 조세개혁과 맞물린 중요한 사회경제적 개혁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조세개혁이 개혁과제로 인식된 것은 최근의 복지논쟁에서만이 아니다. 적어도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전에도 조세개혁은 매우 중요한 사회경제 개혁과제의 하나였다.

 

하지만 민주정부 집권기간을 거치면서 조세개혁은 개혁과제로서의 성격을 점점 잃어가고 소득파악문제로 변질되어갔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복지에 관련지어 보면 민주정부 기간에 복지제도가 급속한 속도록 확대되어갔고 이 과정에서 복지제도 확대의 주대상이 되어야 할 저소득층의 소득파악이 미진하여 이들이 실제로는 확대된 복지제도의 대상으로 포섭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리하여 조세문제는 점점 소득파악문제로 전환되어갔고 처음 조세개혁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그 불가피성을 면피성으로라도 인정하던 보수세력들은 소득파악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면서 복지제도 확대에 제동을 걸기 시작하였고 이후에는 이를 세금폭탄론으로 증폭시켜 복지개혁에 저항하였다. 민주정부 집권기간 동안 소득파악문제로 변질된 조세문제는 끝내 사회경제적 개혁과제라는 담론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세금폭탄론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저항을 이용하여 집권 초기 이른 바 부자감세를 단행하였다. 이것은 민주정부 기간에 보수세력들이 전파했던 ‘세금폭탄’의 실제 대상이 사회구성원 전체가 아니라 소수의 부자들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부자감세 역시 사회경제 개혁과제로서의 조세문제를 전면 부정한 것이며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전면 부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소득파악문제로 변질된 과제조차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도록 악조건을 만들어놓았다. 그것은 사회보험료 징수업무를 건강보험공단으로 일원화한 조치에 의한 것이다. 당초 참여정부는 사회보험료 적용‧징수업무를 국세청으로 일원화하는 조치를 시도했었는데 이 조치는 첫째 소득파악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향후 소득파악문제를 원래의 조세개혁과제로 복원시킬 수 있는 행정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와 둘째 정부조직 내에서 복지확대업무와 소득파악업무가 복지관련 정부조직에 집중되어 있는 부담을 해소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사회보험의 적용(자격관리)‧징수‧급여업무 중 징수업무만 분리하여 이를 건보공단으로 넘겨줌으로써 위에서 말한 첫째의 의미와 둘째의 의미가 실현될 가능성을 전부 폐기해버렸다. 건보공단으로 일원화된 징수업무는 적용(자격관리)업무와 연계성이 떨어져 그 자체로도 효율성을 보장키 어려우며 소득파악문제를 해결할 행정적 토대의 마련도 어렵고 복지관련 정부조직에게서 소득파악의 부담을 덜어주어 본래 기능에 집중할 수 있게 할 가능성도 차단시켜버렸다.

 

게다가 사회보험료 징수업무의 건보공단 일원화는 한국의 사회보험제도 및 그 공급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발생시킬 수도 있는 새로운 경로를 창출하였다. 징수업무를 담당한 건보공단으로서는 징수의 효율성을 위해 자격정보를 필요로 하며 따라서 향후 적용(자격관리)업무도 건보공단으로 이관시킬 객관적 압력이 발생하게 되었다. 건보공단으로 징수가 일원화되어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그 위에서 징수업무를 효율화하기 위해서는 적용업무까지 건보공단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것이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으며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는 한국 사회보험 공급구조를 건보공단 중심으로 재편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이는 그렇지 않아도 거대한 건보공단을 더욱 거대화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경로만 해도 이것은 그 이전까지의 한국 사회보험에서 결코 상정되지 않았던 경로인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경로를 강화하고 있다.

 

즉, 사회보험 공급구조에서 건보공단 중심성이 강화되면서 국민연금공단 존립의 위기가능성이 점차 커져간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의 위기가능성은 물론 건보공단 중심성의 강화에 의해서만 커진 것은 아니다. 그 상당부분은 연금기금관리기구를 정부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시도에 기인한 바 크다. 현금급여지급이 급여업무의 주된 내용인 국민연금공단으로서는 징수업무가 건보공단으로 넘어간 상태에서 적용업무마저 건보공단으로 넘어가고 나아가 연금기금관리기구가 독립한다면 국민연금은 제도로서는 존재할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이 큰 규모의 관리조직이 필요없어질 가능성을 충분히 우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민연금공단에 새로운 역할을 계속 부여하게 되었다. 국민연금공단은 사회보험료 징수업무의 건보공단 일원화 조치가 취해진 다음 해에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관리운영을 담당하도록 새로운 역할을 추가로 부여받았으며 그 다음 해에는 장애인등록심사업무의 일부를 담당하도록 또 다시 새로운 역할을 추가로 부여받았다. 그리하여 현재 한국의 국민연금공단은 노후소득보장기능이라는 본질적 기능 외에 장애인서비스업무까지 수행하는 기구가 되어 있다.

 

이런 상황은 좀 더 크게 보면 사회보험공단이 사회서비스 공급에 참여하게 된 상황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즉,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관리운영기구가 건보공단이므로 이 조직은 이미 노인장기요양서비스라는 중요한 사회서비스의 공급에 참여하고 있고 여기에다 국민연금공단까지 장애인활동지원 및 등록심사라는 장애인서비스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업무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사회보험공단이 사회서비스 공급에 결코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의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 이전까지의 복지확대경로에서 이런 시나리오는 예견된 바가 없었다. 나아가 조세개혁문제가 복지제도의 본격적 확대의 타이밍과 맞물려 저소득층 소득파악 담론으로 변질되고 그에 행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참여정부가 벌였던 노력이 부정되면서 결국에는 사회보험 공급구조에서 이처럼 새로운 경로가 창출될 지는 예견된 바가 없었다.

 

이 기이한 경로가 얼마나 강력한 경로의존효과를 발휘할 지는 아직 예측키 어렵다. 하지만 조세개혁에서 소득파악, 그리고 조직존립의 문제와 같은 중층적인 문제로 얽혀있는 이 경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와 같은 기이한 경로는 사회경제적 개혁과 맞물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자체로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득파악문제는 사실상 공급자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며 노동시장유연화의 측면에서 보면 사회보험으로부터의 배제 나아가 사회보장으로부터의 배제의 문제가 그 본질이다. 이 배제의 문제는 흔히 사각지대라는 용어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소득파악의 미비에서도 비롯되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노동시장유연화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따라서 노동시장유연화에 대처하려는 사회경제적 개혁(사회보험제도 자체의 개혁을 포함하여)의 추진과 징수업무 건보공단 일원화나 사회보험공단의 사회서비스 참여문제를 분리하여 접근할 경우 위에서 말한 기이한 경로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는 사회경제적 개혁과제의 추진이라는 틀 속에서 사회보험 공급구조의 재편을 수행해야 할 기이한 유산을 한국사회에 남겨놓았다.

 

4.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대응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대응은 대단히 넓은 범위의 대책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주로 사회서비스와 연관지어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회서비스와 연관지을 때 저출산‧고령화는 그로 인한 가족구조 및 기능의 변화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서비스 수요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서 저출산‧고령화는 가족구조‧기능에 변화를 발생시키고 그에 따라 사회서비스(좀 다르게는 돌봄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고 따라서 사회서비스의 확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서비스의 본격적인 확대가 추진된 시기는 대체로 참여정부 기간이었다. 그런데 이 기간에 사회서비스가 매우 빠른 속도로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저출산‧고령화와 그에 따른 돌봄수요 증대에 대응하기 위한 현대화된 공급구조를 구축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이는 공급구조의 구축 자체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과제라는 데에도 원인이 있는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참여정부가 취한 조치 자체가 일관성이 없었다는 데에도 원인이 있는 것이었다. 참여정부는 한편으로는 사회서비스 지방이양(재정분권)을 단행하여 지방정부의 복지기획력을 향상시키려는 조치를 취하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바우처제도를 도입했다든지 노인장기요양보험 관리운영기구를 건보공단으로 결정하는 등 중앙집중화를 지향한 조치를 취하였다. 이런 상반된 지향을 가진 조치들은 사회서비스 공급구조의 파편화를 결과를 씨앗을 내포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아마도 이런 가능성 자체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참여정부도 사회서비스 공급구조의 중요성을 적절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서비스 확대를 추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공급구조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주민생활지원서비스 구축이나 사례관리체계 구축 등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성과를 내기에는 초기에 상반된 조치를 취한 영향이 있었고 또 지나치게 집권후반기여서 시간이 부족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의 시도들로부터 벤치마킹이 가능했을 법도 한데 참여정부가 취했던 사회서비스 확대전략이 상반된 지향성을 가진 것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사회서비스와 관련된 공급구조 구축이라는 것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응급조치적 성격을 갖는다든지(예컨대, 민간기관에서 인력을 파견하여 민생안정요원을 충원하려는 시도 등) 공무원의 복지급여 횡령 건을 계기로 또는 복지수급자를 잠재적 범죄자처럼 간주하여 이들을 가릴 목적으로 전산망을 통합‧일원화하는(예컨대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의 구축) 등 제도화로서는 부족하거나 아니면 제도화를 하더라도 사회통합목적을 명분으로 하기보다는 사회통제를 명분으로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이명박 정부는 현재 한국의 사회서비스 공급구조에 배태되어 있는 모순을 해결하는 과제와 관련해서는 사실상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바우처는 그것대로 확대경로를 지속적으로 밟아갔으며,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민연금공단을 비롯한 사회보험공단의 사회서비스 참여는 지속적으로 추진되었고, 지방이양된 사회서비스는 그것대로 그대로 운영되었고, 그 와중에 사회복지통합관리망 구축은 또 그것대로 마치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지역 단위에서는 바우처로 운영되는 제도와 지방이양된 제도, 사회보험공단이 참여하는 제도가 공존하게 되었으나 이들을 지역 단위 전체적으로 조정할 주체와 기능은 전적으로 결여되어 공급구조의 파편화는 심화하고 있으며,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은 그런 조정기능과는 무관하게 구축되어 있다. 게다가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은 수 백 가지 공적자료를 거기에 통합시켜 비록 기초자치단체에서 허가된 인원만 그에 접근토록 한다고는 하나 ‘복지급여’라는 명목으로 시민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깊숙이 개입할 통로를 만듦으로써 향후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에 있어서 중대한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여러 가지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 때부터 잉태된 사회서비스 공급구조 파편화의 씨앗을 본격적으로 자라게 하였으며 그만큼 한국사회에 어려운 과제를 던져놓았다.

 

Ⅲ. 결  론

지금까지 성장과 분배의 관계, 지구화‧탈산업화에 대한 대응, 조세개혁, 저출산‧고령화와 관련된 사회서비스의 확대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 복지정책의 기조와 결과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명박 정부는 대체로 이들 네 가지 측면과 관련하여 한국사회에 제기되고 있었던 문제를 부정하고 그 과제를 해결할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는 여건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성장과 분배의 관계와 관련하여 민주정부가 갇혔던 이중전략의 한계는 방치되어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로 남아있고 지구화‧탈산업화 경향을 대응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닌 숙명처럼 받아들여야할 것으로 규정하고 FTA라는 악조건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게다가 조세개혁과제나 사회서비스와 관련해서는 이전에 거의 예견치 못했던 새로운 기이한 경로를 창출하거나 공급구조 파편화를 본격화시켰다. 사회보험제도와 관련하여 나름의 청사진을 가졌던 참여정부는 스스로 추진했던 시도에서 실패한 반면 사회보험제도와 관련하여 아무런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이명박 정부가 한국 사회보험의 공급구조에 새로운 경로를 창출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또한, 복지확대에는 뜻이 없는 정권이 ‘복지’를 명분으로 시민의 사생활에 깊숙이 개입할 이른 바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라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결과에 이른 것 또한 ‘베이징으로 간 닉슨’에 비견할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0-2세 무상보육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바 무상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그토록 비난하던 이 정권이 그야말로 포퓰리즘적 행태로 0-2세 무상보육을 시행하여 보육서비스 자체의 경로를 기이하게 만들더니 드디어 이마저 번복하려는 것 역시 향후 보편복지의 확대와 관련하여 큰 논란의 불씨를 뿌리고 만 것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이명박 정부가 남겨놓은 이처럼 기이하고 부정적인 유산을 극복하는 일은 쉽지는 않을 것이나 한국사회의 실질적 민주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이다.

 

 

참고문헌

김성욱. 2012. “한국 복지국가 평가의 전제와 과제에 대한 고찰.”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2012년 춘계학술대회 발표문.
김순영. 2011. “이명박 정부의 사회복지정책 : 사회복지정책의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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