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05-15   5809

[심층분석2] 가족과 부양의무

가족과 부양의무

 

허 선 ㅣ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들어가며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효를 중시해 왔지만, 최근에 와서 그러한 문화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자식을 상대로 부모가 부양료지급 청구 소송을 내는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의 범위와 부양 의식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도 우려스러운 상황이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식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는 노인은 일부에 불과할 뿐이고, 상당히 많은 버려진 노인은 속만 끙끙 앓는 채로 살아가고 있으며, 심지어 자식들의 사회적 체면을 생각하여 자신을 치매 노인으로 위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자식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최소한의 공적 부양도 받지 못하며 살아가는 노인이 매우 많다는 점에 더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가족문화, 부양의식, 그리고 부양여건이 악화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대응은 매우 느리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정부는 여전히 노인문제를 각각의 집안 문제로 여기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변화되는 사회에 맞는 가족부양과 공적부양의 적정한 경계선을 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족부양과 공적부양의 경계: 민법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 규정

 

우리나라 민법상 부양의 의무는 친족 사이에 인정되는 생활보장의 의무를 말하는데, “부양을 받을 자가 자기의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이를 이행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부양정도에 따라 생활 유지의 부양(1차적 부양)과 생활 부조의 부양(2차적 부양)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친족부양(제974조 이하)이라고 하면 생활 유지의 부양을 의미한다. 1차적 부양인 ‘생활 유지를 위한 부양’은 부부 사이, 친자 특히 부모와 미성년의 자녀 사이의 부양의무를 말한다. 생활 부조(扶助)를 위한 부양 (2차적 부양)은 자기의 생활에 여유가 있는 경우 일반친족에게 최소한도의 생활을 보장시켜 주는 관계이다. 부모와 성인이 된 자녀 사이와 같은 직계혈족 및 시부모와 며느리, 처의 부모와 사위 같은 직계혈족의 배우자간에는 생활부조를 할 부양의무가 있다.

 

한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기초보장수급가구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없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가족부양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부양의무자가 수급신청자를 실제로 부양하는가와는 무관하게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을 조사하여 일정 수준이 넘으면 피부양자를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수급자에서 제외시키는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즉, 수급자 선정을 위해서 실제 생활곤란 정도가 아닌 간주부양(비)을 고려할 뿐이다. 부양의무자가 부양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정하는 것은 소득의 경우, 최저생계비의 130%보다 가구 소득이 적어야 ‘부양능력 없음’으로 판정받는다.

 

공적부양에 관한 주요 판례

 

2011년에 가족부양과 관련된 의미 있는 판결(사회복지서비스및급여부적합결정처분취소청구의소, 선고 2010누2549 판결)이 있었다. 부양능력이 있는 자녀가 있더라도 현재 연락을 끊고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에게는 사회복지 서비스와 급여를 제공하라는 판결이 대법원[각공2011하,969]에서 확정되었다. 이 판결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동안 정부에서 인정한 ‘가족관계 단절’ 사유의 범위가 소극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판결문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보건복지가족부 지침에서 부양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로서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은 대표적으로 흔한 사례를 예시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어떠한 이유이든 실제로 명백히 부양을 기피하거나 거부하고 있는 사실이 인정되면 이 법에 따른 수급권자가 되기 위한 요건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또한 대법원(2012.12.27. 선고 2011다96932 판결)은 우리나라 가족부양과 공적부양의 경계를 움직이게 할 만한 영향력 있는 판결을 최근에 내렸다. 이는 우리나라 공공부조제도상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개선되는데 중요 근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법 제826조 제1항에 규정된 부부간의 상호부양의무는 혼인관계의 본질적 의무로서 부양을 받을 자의 생활을 부양의무자의 생활과 같은 정도로 보장하여 부부공동생활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제1차 부양의무이고, 민법 제974조 제1호(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간의 부양의무 규정)에 따라 기혼 자녀와 그 부모간의 상호간의 부양의무는 부양의무자가 자기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생활을 하면서 생활에 여유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부양을 받을 자가 그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그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제2차 부양의무이다”라고 판시한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1차 부양의무와 2차 부양의무를 구분하지 않은 채 행정편의적·예산맞춤형으로 정해진 현행 부양능력판정기준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판례라고 할 수 있다.

 

기초보장법상 부양의무자기준의 문제점

 

최근에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수급자에서 탈락하거나 급여액이 감소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기사를 자주 보게 된다. 현행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한 사람들이 공적 부양을 받을수 없도록 만드는 최대의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 최근에 경제상황 악화와 빈곤율 증가에도 불구하고 수급자수가 늘어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수급자 선정시 부양의무자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현행 부양의무자기준은 합리적인 방법과 수준에서 결정되지 않고 있다.

 

현행의 간주부양비 제도에 대해 대다수의 학자와 단체에서 비판하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약간의 기준 조정이 있었을 뿐 부양의무자기준에 관한 기본적인 틀을 변화시키지 않아 왔다. 실제 부양과 상관없이 부양의무자가구의 소득과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수급신청자의 수급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커다란 문제임에 분명하다.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은 부양비를 간주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설정한 소득 및 재산 수준이다. 그 수준은 정부가 심의를 거치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정할 뿐이다. 한국복지패널데이타를 활용한 허선·유현상(2009)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부양의무자기준을 적용한 결과 부양능력이 없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가구의 비율은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6.12%에 불과할 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부에서는 84%에 달하는 우리나라 대다수의 가구가 2인가구 최저생계비(당시 약 70만원)의 전부 혹은 일부를 피부양자에게 보낼 수 있는 능력과 의사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비현실적인 기준일 뿐이다.

 

가족부양의 사각지대를 축소하려면: 신정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

 

가족부양과 공적부양의 경계를 현실에 맞게 정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부양의무자기준을 철폐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부양의무자 범위의 축소를 비롯한 일부 기준을 변경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기준의 변경은 부양의무자 범위를 축소하거나 부양비 부과율을 인하하는 대안이 가능하고, 재산기준과 소득기준을 인상하는 안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실제 부양과 무관하게 부양을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측면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는 것이 아니라 줄이기 위한 조치에 불과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제 부양하는 정도를 감안한 수급자 선정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은 국가가 부양의무를 부양능력이 부족한 부양의무자에게 떠넘기기만 할 뿐 실제 최저생활을 보장받고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는 방식이라면 새로운 방식은 국가와 부양의무자 누가되었든 수급권자의 최저생활을 책임지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신정부의 계획상으로는 일부 문제만을 개선할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과 계획상에는 부양의무자기준 개선안이 포함되어 있다. 2013년 2월에 발표된 인수위 보고서에 따르면 (사각지대 완화를 위해) “부양의무자가 수급자를 부양하고도 중위소득수준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부양의무자 기준을 개선”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현행 부양능력판정기준을 대폭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분명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이 실행에 옮겨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여전히 간주부양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고, 따라서 소수의 사람만 수급자로 포함될 뿐 대다수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하게 되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은 알아야 할 것이다. 부양의무자에게 피부양자의 부양을 맡겨둔 채로 놔두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실제 최저생계여부를 확인하여 부양의무자와 담판 짓는 ‘최저생계보장의 국가보장시스템’의 도입이 부양여건 및 의식의 변화에 맞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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